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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생신(俱生神)은 도풀갱어인가?

사나소 | 기사입력 2015/01/14 [17:29]
사나소 이야기

구생신(俱生神)은 도풀갱어인가?

사나소 이야기

사나소 | 입력 : 2015/01/14 [17:29]

천문학적으로도 그 가능성이 재기돼있는 ‘평행우주’ 개념이 환타지 소설에 곧잘 등장한다. 이 땅 위에 ‘이’ 세계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겹의 세계가 철저히 격리된 채 겹쳐 존재하며 그 여러 세계는 ‘한 땅’ 위에 살면서도 서로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 아니라면 우주 저 어느 곳에 ‘나와 같은 이름, 나와 같은 모습했으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인간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그런 가설. 그곳이 이 땅 위이든 아니면 먼 우주의 어느 곳이든 상관없는 것은 가설 자체가 시공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에서 트집 잡힐 것이 아니다.
 
소설 ‘2012년 영혼의 전쟁’(휘틀리 스트리버 지음)에 나오는 세계가 그렇고 소설 ‘셰르부르의 저주’(랜달 개릿 지음)는 몇 세기 전 어느 때부터 전혀 다르게 역사가 진행돼 온 또 다른 세계의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필립 풀먼의 환타지 ‘황금 나침반’ 역시 그런 평행우주가 무대다.
 
사람마다 ‘데몬(Demon)’이란 존재가 하나씩 있는 세계.
 
예를 들어 데몬은 개 사자 원숭이 각종 새 등등의 동물 모습을 하고 있으며 늘 그 사람 가까이에 있는 눈에 보이는 영혼 또는 수호령에 해당한다. 만약 데몬이 죽으면 그 사람은 마치 영혼 없는 존재처럼 살게 된다. 사람과 데몬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으로 연결돼 있다.
 
이해를 돕자면 소설에 나오는 ‘데몬을 가진 인류’는 이 지구 위에 우리와 중층을 이루며 같은 공간 위에 살고 있으나 어떤 신비한 막으로 차단되어 서로 부딪치지도 않을뿐더러 전혀 교섭도 없다.
 
데몬이라면 우리에게는 악마나 악령이다. 그러나 원래 그리스에서는 수호신이란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다 기독교 문화 안으로 편입되면서 악마가 되고 만 것이라는데, 그러고 보니 인간이 데몬과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그린 이 소설은 데몬의 본래적 의미를 택한 것 같다. 내용이 하느님과 일전을 겨뤄 승리하는 것이니…….
 
데몬이 온갖 동물의 모습으로 나오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 영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문명에 따라서는 영혼이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보기도 하지 않는가.
 
불교에서는 죽은 후 영혼이 49일간 중음에 머무를 때 죽은 이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보다 작은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이 영혼은 향(香)을 먹이로 삼고 있어 식향(食香)으로도 불린다. 49재를 올릴 때마다 제단에 끊임없이 향을 피우는 것은 죽은 이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환생을 믿는다면 영혼의 크기가 엄지나 또는 티끌 만하다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전생의 모습 그대로 새로운 모태에 들어간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우니까. 그렇다 해도 가장 그럴듯한 것은 영혼을 자신과 똑 같은 모습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가 더러 접하게 되는 수술 받을 때의 유체이탈 경험, 예를 들어 어쩌다 천장으로 붕 떠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의사들이 열심히 수술하고 있고 환자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영혼은 역시 자기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수술 때의 유체이탈 경험은 의학적으로 ‘클로르포름 효과’라는 것으로 일정 부분 인정되기도 한다.
 
동서양 저승 이야기에도 영혼들은 이승의 모습 그대로 서로 만나기도하고 천당이나 극락에 가기도하고 심판을 받고 벌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일지스님이란 분이 쓴 어느 글을 보니 불교 경전에 나오는 구생신(俱生神)이 서양에서 말하는 도플갱어(Doppelganger)와 같은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구생신은 어느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사람과 함께 하며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의 행위를 감시하고 기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도교에서는 비록 신은 아니라 해도 삼시(三尸)라는 것이 구생신 비슷한 역할을 한다. 세 마리 벌레라고도하고 세 명의 소인이라고도 하는 이들은 사람의 몸 안에서 그 사람의 과실(過失)을 살피다가 경신(庚申)날 밤 사람이 잠들었을 때 살짝 빠져나가 하늘의 천제(天帝)에게 이를 일러바친다 한다.
 
여기에 주목할 만한 것이 하나 있다. 삼시가 사람이 잠들었을 때 빠져나간다면 그들은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도록 무슨 장치를 해 두고 가야 할 것이다. 그 장치는 사람이 수마를 이기지 못하게 해 두는 것이다.
 
경신 날이라면 60일 만에 한 번씩 드는 날이니 1년에 6번 경신 날이 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경신 날 사람들이 잠을 안자고 견디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이다. 도교나 불가의 승려들 가운데 ‘경신 날 잠 안자기’로 수마극복 수련을 쌓는 예가 많다. ‘경신수행’이라면 그래서 수마와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1년의 6번경신날을 잠 한 숨 안자고 보낼 수 있다면 해탈은 물론 초능력도 생긴다고 믿는다. 물론 잠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잠을 안 자고도 살 수 있는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근대 한국 선종의 중흥조 경허스님의 맏제자인 수월스님은 해탈 후 잠 한 숨 안자고도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참고하면 되겠다. 수월스님이 경신수행을 하셨는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즘도 수마를 극복하고 잠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스님이 계신다는 이야기는 있다.
 
경신수도자는 ‘경신 날 잠 안자고 버티기’위해 경신 날 이전 며칠간 충분히 잠을 자 두기도 한다. 그럼에도 경신 날 잠 안자기는 정말 이루기 어렵다고 한다. 수련의 깊이가 있는 수도승들 가운데 1년 두 세 번은 ‘잠 안자기’에 성공한다 해도 6번 성공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 도플갱어는 독일어지만 이를 분신이란 의미로 더블(Double)이라 부르기도 한다. 도플갱어 역시 구생신같이 죽음에 임박해서 그 사람 앞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일본영화 ‘도플갱어’의 포스터,     © 매일종교신문
 
그럼 도플갱어로 돌아가자.
 
일지스님은 구생신, 즉 도플갱어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세계 여러 곳에서 전한다고 쓰고 있다. 몽고와 북미 인디언들에게는 자신의 구생신을 본 사람은 곧 죽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도플갱어 역시 죽음에 임박해서 그 사람 앞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플갱어는 독일어지만 이를 분신이란 의미로 더블(Double)이라 부르기도 한다. 거울을 보면 누구나 자신과 똑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만 거울이 아닌 현실 속, 눈앞에 자신과 똑 같은 자신 하나가 나타난다면 놀랄 것은 당연한 일. 비록 환영이라 할지라도 그 놀람이 죽음을 불러들이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에서 처음에는 ‘다른 신’인 그리스 로마 적 수호신을 악마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뒤에 필요에 따라 수호천사란 개념을 도입하게 되는데 그것이 로마인들의 수호신 개념이었을 것이라 한다.
 
로마인들은 남자에게는 게니우스genius, 여자에게는 유노juno라는 수호신을 누구나 갖고 있다고 믿었으며 게니우스는 남성적 에너지와 활력을 말하고 유노는 로마신화의 최고 여신으로 여성적 에너지를 의미한다.
 
데몬, 구생신, 도플갱어, 아스트랄체, 성기체, 영혼 등등, 그러고 보면 우리 몸에 출입이 잦은 존재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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