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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수곤澤水困

이시헌 | 기사입력 2015/01/19 [17:10]
곤경의 터널을 빠져 나오니 도가 보인다

택수곤澤水困

곤경의 터널을 빠져 나오니 도가 보인다

이시헌 | 입력 : 2015/01/19 [17:10]

못의 바닥이 터져 물이 흘러 버려서 못의 물이 마른 상태이다. 강한 사람은 곤경(困境) 속에서 불요불굴의 의지로 더욱 견고하게 나아가므로 형통하고 바르다[困 亨貞 大人吉 无咎]. 이 견인불발의 시기에는 내면의 힘을 응집시키는 때이므로 속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지만 사람들도 또한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곤경에 처한 사람의 말은 믿어주지 않는 다는 슬픈 상황인 것이다[有言 不信]. 섭섭히 여길 것도 없다. 침묵한 대로 하늘의 이치를 기꺼이 여기고 자신의 운명을 편하게 받아들여야 한다[樂天安命]. 몸은 비록 곤경에 처해 있어도 도가 형통하도록 자신을 닦아가야 한다[身困而道亨]. 강한 사람은 곤경에 빠져 숱한 위험을 겪고 나서도 밝고 기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險而說].
 
이 밝고 기쁜 마음은 훗날 성공의 토대가 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이겨내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못이 말라 물이 없어 곤궁하니 이미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궁색과 우환에 마음을 구겨지게 하지 말고 자신의 뜻을 행할 뿐이니, 생명을 던져서라도 자기의 옳은 뜻을 이룬다는 것이다[澤无水 困 君子 以 致命遂志].
❋困곤궁할 곤, 澤못 택, 致바칠 치, 遂이룰 수, 志뜻 지, 命운명 명
 
온 몸을 던져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司馬遷)의 치명수지(致命遂志)
사마천은 40대의 젊은 나이에 궁형(宮刑: 男根을 떼어내는 형벌)을 당하여 절망과 비탄의 시련 속에서 사기 저술에 집념을 쏟았다. 처음 얼마동안은 수치심과 슬픔을 못 이겨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고통에 빠졌었다. 이 때 생각했다. 목숨을 던져서라도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그러한 결심을 가지고 그 방대한 사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을 망각하기 위하여 그 기록에 매달렸다. 처절한 집념이었다. 끝 모를 절망이 그를 다시 일으켜 주었다. 오직 한 가지 그의 염원은 역사를 저술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목숨을 내 걸었다[致命遂志]. 사마천은 사기를 쓰는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의 가슴 속에서 부활했다.
 
처음 얻은 음효 “깊은 골짜기 나무 등걸에 몸 붙이고 3년”
 
유약하고 지극히 낮은 곳에서 곤경을 당한다. 음효이면서 아래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헤쳐 나갈 능력이 없는 자이다. 위 넷째 효의 원조를 받아야 구제되는 데, 그 자신도(사효) 음효에 가려져서 빛을 못 보는 형편이라 남을 구해줄 상황이 아니다. 나무 등걸에 엉덩이를 걸친 형국이 되었다. 그윽한 골짜기에 들어가 3년이 되어도 보지 못한다[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 不覿]. 혼미하고 어두운 깊은 곤궁 속으로 빠져 든 것이다.
❋臀볼기 둔, 株그루 주, 幽그윽할 유, 谷골짜기 곡, 覿볼 적
 
그러나 곤의 처음 효는 대학입시 수험생이나 국가고시를 목표로 공부하는 고시생이 얻으면 확실히 합격이 보장되는 효이다. 도서관 나무 걸상에 오래 앉아 엉덩이에 곰팡이가 생기도록 공부하고 토론하는 곤고(困苦)함을 겪고 심산유곡에서 세상을 보지 않고 수련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이 상황은 고통과 답답함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희망이 멀리서 아주 멀리서 보인다는 것을 이 효에서 엿볼 수가 있다. 괘사에서 나오는 ‘험한 속에서 기쁨을 찾듯이[險以說]’ 짓무른 엉덩이에 연고를 발라가면서 학문 속에서 희열을 느끼고 있으며, 골짜기를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마음의 고달픔을 씻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苦괴로울 고, 險험할 험, 說기쁠 열
 
둘째 양효 “밥 먹기도 어려운데 취업의 문이 열린다”
 
이 효는 학문에 몸을 담근 선비인데 곤궁한 처지를 당하여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다. 일찍이 가볍게 처신하여 세속에 적응하고 살았다면 먹고 살아갈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이 효는 역경 속에서 세운 뜻을 이루기 위해 죽도록 고생해 온 의지의 지성인으로써 어느새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그에게 주홍색 인끈을 들고 대인이 찾아온다고 하는 것이다. 이 효를 발탁하는 경사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하늘이 무심하지 않은 것이다. 이 효는 정성으로 제사를 드려 신께 기도드리고 기원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困于酒食 朱紱 方來 利用享祀 征 凶 无咎]. 주불(朱紱: 주홍색 장식띠를 찬 임금)이 오기 전에 마음이 급해져서 먼저 간다거나 하면 난처하게 되니, 제사를 드리는 정성으로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면 귀인이 이끌어 주어 등용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곤의 상황에서도 이런 경사가 있게 되니[困于酒食 中 有慶也]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朱붉을 주, 紱인끈 불, 享제사지낼 향, 祀제사 사
 
셋째 음효 “돌에 부딪치고 가시에 찔린다”
 
자신이 처한 환경도 좋지 않고 중심도 잃은 상태라 곤경을 견딜 능력이 없는 자이다. 게다가 이웃에서도 도와줄 아무도 없는 고단한 처지이다. 도와주기는 커녕 위로 넷째 효의 무뚝뚝한 불친절에 이마가 부딪히고, 아래 둘째 효는 가시덤불을 깔고 앉은 듯 불편함을 줄 뿐이다[困于石 據于蒺藜]. 이 사람이 야무진 구석이라곤 없어 부당하고 부정한 짓만 하고 다닌다. 넷째 효에게 가서도 부정한 행동 때문에 욕만 먹고, 둘째 효한테서는 위태로움만 당하니 상대를 잘 모르면서 함부로 덤비는 것이다. 외롭고 슬플 때 쉴 곳은 집뿐인데 집에 들어가도 배우자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돌아갈 곳조차 없으니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계사전」에 “곤한 곳이 아닌데서 곤하고 의거할 곳이 아닌 데에 의거하니 신상이 위험하다 이미 욕되고 위험해 장차 죽을 때가 오는데 어찌 아내를 볼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據웅거할 거, 蒺가시 질, 藜가시 려, 宮집 궁, 妻아내 처
 
넷째 양효 “님은 더디 오시고 기다림에 지친다”
 
아래 처음 효가 자신을 찾아 천천히 더디게 오는 것은 둘째 효가 막고 방해하기 때문이다. 처음 효를 만나야 하는데 못 만나 곤하게 된 이 효는 마음이 조급하고 인색해 진다. 그러나 늦더라도 만나게 되어 있으므로 끝을 보게 된다[來徐徐 困于金車 吝 有終].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것이다. 음양 응이 되기 때문에 아래 처음 효와 서로 더불어 함께 살게 된다는 것이다.
❋徐느릴 서, 終마칠 종, 吝인색할 인
 
중심 양효 “왕의 눈물”
 
이 효가 아무리 대인군자로써 중심을 잡고 높은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곤경을 피해갈 수는 없다. 둘째 효가 오지 않아서 혼자서는 정치를 못한다. 이 효는 음효들 사이에 갇혀 있다. 위의 음효를 제거하고자 하면 이것은 코를 베는 것과 같다. 코를 베이면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럽다. 아래의 음효를 제거하려고 하면 이는 발꿈치를 베는 것과 같으니 발꿈치를 베이면 행보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적불(赤紱: 신하의 의복)에 곤을 겪는 것이다[劓刖 困于赤紱]. 훌륭한 신하가 없어서 봉변을 당할 정도로 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왕에게는 강태공 같은 훌륭한 신하가 있었고 유비는 제갈량이 현명하게 보필하였는데 여기 곤괘의 중심 효는 이렇게 자기를 보필하는 신하가 없어서 정치가 엉망이 되고 백성들의 원성이 높다는 것이다. 오직 백성들의 안정을 충심으로 바라는 군주가 위아래의 저항세력에 의해 내몰린다는 것이다.
 
대신인 넷째 효에게서도 전혀 도움을 얻지 못한다. 이 효는 편벽된 생각이나 중도에서 이탈하는 짓을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어 나간다. 그래서 상황은 점차 풀려 간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강하게 마음을 다지며 수시로 정성을 바쳐 제사를 지내야 한다. 하늘에서 정성스러운 마음을 보고 복을 내려준다는 뜻이다[乃徐有說 利用祭祀 受福也]. 결국에 가서 자기의 동지인 둘째 효가 오게 되니 기쁨이 있게 되고 서로 만나 뜻을 맞추어 정치를 하게 되어 힘든 것이 모두 해결된다.
❋劓코베일 의, 刖발 베일 월, 赤붉을 적, 受받을 수, 福복 복
 
위 음효 “칡넝쿨 엉킨 산비탈에 서서 뉘우치다”
 
곤궁함이 극에 달했다. 칡넝쿨이 잔뜩 뻗어 있는 산비탈 위태로운 곳에 서있다. 비탈진 곳에 칡넝쿨이 엉켜있으니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꼭 죽을 것만 같다[困于葛藟 于臲卼]. 움직이면 저 험한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이므로 움직일수록 후회만 남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뉘우치고 뉘우쳐라[曰 動悔有悔 征 吉]. 뉘우친다는 것은 길한 방향으로 간다는 말이다[動悔有悔 吉行也].
 
이 효는 곤경의 끝이다. 전환점이 목전에 와 있다. 이전의 실패들에 대해 진실로 뉘우치고 이런 자세로 전진하면 결과는 길할 것이다. 너무 허욕을 부리다가 결국은 오도가도 못하고 그냥 후회막심하게 되었다. 죄를 뉘우쳐서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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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효는 곤궁함을 만나 산골 깊이 들어 앉아 꼼짝 못한다. 둘째 효는 끼니 걱정을 하는 중에 등용의 길이 열린다. 셋째 효는 곤의 어려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넷째 효는 늦게라도 짝을 만나니 다행이다. 중심 효는 곤의 시대를 인군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도층의 이반과 신하들의 저항으로 주변에 심복이 없어 곤궁했으나 충직하기 때문에 벗어난다. 위 효는 극도의 곤궁에서 오직 뉘우쳐서 벗어난다. 가장 위험한 상태에서도 벗어나는 길은 선(善)이라는 밧줄을 잡는 것이다. 개과천선으로 나아가 길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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