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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잃으면 미래가 없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03/31 [16:48]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에 적극 대응하는 대책 마련해야

역사를 잃으면 미래가 없다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에 적극 대응하는 대책 마련해야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03/31 [16:48]
이제는 ‘역사 전쟁’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식민사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립 70주년을 맞은 데도 일제(日帝)가 심어준 식민사관에 사로잡혀 우리의 ‘위대한 역사’마저 스스로 부정하면서 적전분열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주변 중국과 일본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 우리의 역사를 지우려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과거사 반성은커녕 역사를 왜곡하면서 주변 당사국들에 깊은 상처를 주면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중국도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적 연구사업)을 통해 우리의 고대사를 심하게 왜곡 또는 훼손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중국·일본과의 역사 전쟁을 효과적으로 대응하자는 차원에서 국가기관이 주도해 설립한 동북아역사재단이 오히려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을 부추길 우려가 있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그동안 역사 전쟁에 맞서는 대응논리를 세우기는커녕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담당해왔다. 역사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동북아역사재단이 중국과 일본의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주류 역사학계의 폐쇄성과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측의 역사 왜곡을 각각 뒷받침하고 있는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을 바로잡고 이를 제대로 대처해야 할 동북아역사재단이 양국의 일부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담은 ≪동북아역사지도≫를 만들어 도마 위에 올랐다.

≪동북아역사지도≫에 中·日의 왜곡된 주장 그대로 반영
 
중국·일본과의 역사분쟁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국가기관이 주도해 만든 ‘동북아역사지도’가 중·일(中日)의 주장과 동일한 내용을 일부 담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특위)와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이 3월24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동북아역사지도는 학계 검증이 거의 마무리된 단계로, 가본(假本) 형태로 완성돼 공개검증 절차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 지도에 중국이 주장하는 ‘한사군(漢四郡) 한반도설’이 반영되는 등 제작 취지에 반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사군 한반도설’은 중국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설치한 낙랑군·임둔군·진번군·현도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학설로, 중국이 고대 한국을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이 학설이 일제강점기에 정립된 뒤 광복 이후에도 우리 역사학계의 통설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지도에도 이런 시각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특위 위원장 대리인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은 “과거 학설을 무비판적으로 이어가면서 시각의 근본적인 재정립이 되지 않아 지도 편찬사업에 문제가 불거졌다”면서 “고대사 관련 내용은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식민사관 극복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도제작 사업은 고대국가의 영역, 동해 표기, 독도 귀속 등을 둘러싼 중국·일본과의 역사분쟁에서 우리 측 연구 성과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지도를 만들어 적극 대응하고 국제 공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 아래 2008년 시작됐다. 국가기관이 특정 시기 역사지도가 아니라 고대부터 근대까지 전(全)시기에 존재했던 국가와 민족의 영역, 행정구역 등을 보여주는 역사지도를 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업에는 지금까지 42억여원의 예산이 들어갔고 2015년엔 5억원이 배정됐다.
현재 각종 지명의 생성·소멸·위치변동 등을 정리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마쳤고, 이를 토대로 지도 300장이 제작됐다.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위원회는 “학계의 연구 역량을 결집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사업은 애초 2015년에 마무리될 계획이었으나 공개 검증을 위해 2018년까지 3년 연장됐다.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앞으로 교육계, 언론계 등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토의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한사군 위치·고조선 영역 논란… 식민사관 논쟁 또 불거져
 
동북아역사재단이 발간 추진 중인 ≪동북아역사지도≫ 사업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 안의 식민사관’ 논쟁이 또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동북아 역사분쟁에 대응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된 사업의 결과물에 고대사 분야에서 중국·일본의 주장과 같은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 한사군 위치를 표시한 중국사회과학원 ‘중국역사지도집’(왼쪽)과 동북아역사재단이 만든 ‘동북아역사지도’. 낙랑과 대방 위치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추종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

동북아역사재단의 이같은 기이한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재단은 2007년부터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 10억원을 보내어 이른바 '고대한국(Early korea) 프로젝트'라는 것을 시행했다. 한국고대사를 6권의 영문 서적으로 간행하는 것인데, "서구학계에 한국학계의 한국고대사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2013년 12월에 발간한 ​《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과 2010년에 발간한 《The Samhan period in Korean History(한국역사 속의 삼한시기)》는 조선총독부나 아베 내각, 또는 중국 군무원 산하 기관에서 간행했다고 하면 걸맞을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일반적인 대한민국 국민들의 상식이라면 한국고대사의 첫 장면은 당연히 '고조선'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책은 고조선은 지워버리고 중국 한(​漢)나라의 식민지라는 한사군으로 대체했다. 더 큰 문제는 한사군의 위치를 시종일관 북한 영역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기전 108년에 세워진 한사군의 위치를 찾으려면 한사
 
군 설치 당시 생존했던 사마천의​《사기(史記)》나 한나라의 역사서인 《한서(漢書)》를 비롯해 《후한서(後漢書)》· 《삼국지》· 《진서(晋書)》처럼 한사군에 대해 쓰고 있는 고대 사서들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런 중국 고대 역사서들은 한사군의 위치를 일관되게 지금의 베이징(北京) 부근 허베이(河北)성 일대로 표기하고 있다. 한반도 내로 표기한 중국 사료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런데도 동북아역사재단이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간행한 이 책들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한사군을 한반도 북부로 비정(比定·비교해서 정함)하고 있다. 중국 동북공정의 주장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유사시 중국이 북한 강역을 자국 영토로 편입시킨 후 북한은 원래 중국의 역사 강역이었다고 주장해도 반박할 논리가 없게 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 책에서 낙랑​(樂浪)을 우리식 발음대로 ‘낙랑(LakLang)’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러랑(Lelang)’이라고 표기한 것을 비롯해서 모든 지명을 중국 발음으로 표기했다. 북한 지역은 중국의 역사 강역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조선총독부 산하 식민사학자들 간에 견해가 다른 부분까지 그대로 서술했다. 진번군에 대해서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의 '북부설(평안북도)'과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남부설(황해도)'을 그대로 옮겼다. 자신들이 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후신이라는 생각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사군 관련 내용을 동북아역사재단이 참고한 연구자료 67건 중 35건의 작성자가 고(故)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라는 것이다. 일제가 만든 황국사관(皇國史觀)의 전파기관인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던 이 전 교수는 한사군 한반도설을 주장한 학자로, 광복 이후 한국 주류 역사학계를 지배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앞으로 3년간 역사지도 내용을 공개 검증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치권과 학계 일부에서는 주류 역사학계의 잘못된 역사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형국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은 지난 3월24일 동북아역사재단이 2019년 발간을 목표로 그리고 있는 동북아 역사지도에서 서기 120~300년 시기 고구려 국경선 위치 '비정‘이 중국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만든 ≪중국역사지도집≫의 위치 비정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료허(遼河) 지역부터 한반도 서북부 지역을 중국 한나라 땅으로 편입시켜 놓고 있다는 것이다. 료허 양쪽 지역을 한나라 땅으로 편입시킨 것에 대해 도 의원은 낙랑군·대방군 등 한사군을 한반도에 위치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中·日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

 
역사지도 편찬사업이 처음 검토된 것은 2007년이다. 하지만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국내 학계의 역사지리 연구 기초가 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듬해 사업에 착수했다. “주변국의 역사왜곡이 심화하는 상황”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중국과 일본이 역사지도를 먼저 제작해 교육용으로 사용하고 국제적으로 자국 입장을 관철하는 도구로 활용하는데, 우리는 지도 자체가 없는 형편이었다. 일본은 고대 한반도 남부에 일본의 통치기관이 있었다는 주장인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이라고도 함. 이는 일제가 그들의 한국 침략과 지배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해 낸 식민사관 중에서, 한국사의 전개과정이 고대부터 외세의 간섭과 압제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타율성이론의 대표적인 산물의 하나임.)을 명시한 ≪아시아역사지도≫를 1966년 출판했다. 중국도 한반도 북부와 백제 지역을 지배했다는 내용을 담은 ≪중국역사지도집≫을 1974년 발행했다.

≪동북아역사지도≫는 동북아 3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몽골, 티베트 등을 포함해 고대에서 근대까지 존재한 모든 민족·왕조가 형성한 국경, 행정구역, 주요 교통로 등을 표시했다. 이를 위해 각종 역사지리 정보를 취합해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었다. 역사지도편찬위원회 관계자는 “접경지역 민족과 국가까지 포함한 것은 중국이 주변국과 맺었던 관계를 면밀히 분석해 중화주의를 깨뜨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론상으로 해마다 변화된 내용을 반영한 역사지도 제작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동북아역사지도≫는 세기별 ‘동북아전도’, ‘국가왕조별 지도’, 행정경계가 완비된 국가·왕조의 ‘지역세밀도’로 구성된다. 분야별 전문가와 각종 학회 등이 검증작업을 벌인 300장을 만들어 놓은 상태다. 조선시대 면의 경계선 획정, 동북아 시대별 고해안선·고지형 복원, 한·중·일 3국의 역대 교통로선 획정 등도 성과로 꼽힌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같은 내용으로 논란

≪동북아역사지도≫ 내용을 둘러싼 논란은 고대사 분야에 집중된다. 특히 한사군 위치 문제는 가장 예민한 사안이다.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설치한 한사군의 위치에 따라 한국 고대국가의 영역과 활동 범위가 달라지는 까닭이다. ≪동북아역사지도≫는 한사군 위치를 지금의 평양 등 한반도 북부로 표시했다. 이른바 ‘한사군 한반도설’과 같다. 일제강점기 이래 크게 변하지 않은 국내 주류 역사학계의 통설이다. 문제는 한사군 한반도설이 중국 동북공정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사군 한반도설을 근거로 만리장성이 평양 부근까지 들어왔었다고 주장한다. 패수(浿水·고조선과 중국의 경계를 이뤘던 강)를 지금의 평안북도에 있는 청천강으로 보는 것도 논란거리다.

이런 관점에서는 고조선 영역은 두 강의 남쪽지역으로 쪼그라든다. 지난 3월20일 동북아역사재단의 국회 업무보고에서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이 “재단의 지도는 동북공정으로 작성된 ≪중국역사지도집≫과 동일한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비판한 이유다.

비주류 학계에서는 사료와 고고학 발굴 유물 등을 근거로 한사군과 패수 위치를 지금의 중국 동북부 지역으로 보고 있다. 인하대 복기대 교수는 “1차 사료만 제대로 검증한다면 한사군 한반도설이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도 의원실 관계자는 “최소한 다양한 학설을 병기하는 것으로 역사지도 내용이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지도≫의 이런 문제가 역사학계의 폐쇄성과 편향성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많다. 특위 위원장 대리인 김세연 의원에 따르면 한사군 관련 내용을 역사지도편찬위가 참고한 연구 자료 67건 가운데 35건의 작성자가 고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다. 일제가 만든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던 이 전 교수는 한사군 한반도설을 주장한 학자로, 광복 이후 한국 주류 사학계를 지배했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기초 자료 활용의 편향성이 드러난다”고 꼬집었다.

편찬위 관계자는 이런 지적에 대해 “김 의원에게 제출된 목록에 활용 자료 중 일부가 누락됐고, 이병도 전 교수가 작성한 자료는 다양한 1차 사료가 포함되어 있어 이것을 참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학계 검증을 상당 부분 마친 상태이지만, 앞으로 3년간 공개검증을 할 것”이라며 “고조선 영역, 한사군 위치 등에 대해서는 논란을 예상했다. 만나서 설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는 “지도가 출판될 때까지는 계속 검증 작업이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의견일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접근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동북아역사재단 "한반도 북부는 中식민지, 남부는 일본?"
 
동아시아의 영토·역사 분쟁에 맞서는 대응논리를 만들라는 정책 목표로 설립된 국가기관이 동북아역사재단이다. 연간 수백억 원대의 국고가 지원되고 있어 대다수 국민들은 당연히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침략사관에 맞서 싸우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재야역사단체와 독립운동단체들은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은 설립 이래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관에 맞서는 대응논리를 세우기는커녕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담당해왔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 역사기관의 활동을 둘러싸고 '교학사 국사교과서 파동'에 이은 제2의 역사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시작은 이렇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몇년 전부터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 무려 10억원의 국고를 지원해서 한국 고대사 논문들을 6권의 영문으로 번역 출판하는 사업을 벌였다. 이를 텍스트로 세계 학생들을 가르치고 대한민국 재외공관에 배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 이 저서를 검토한 뒤 "동북아역사재단 논리대로라면, 한반도 북부는 중국 식민지가 되고, 한반도 남부는 일본 식민지였던 역사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북아역사재단의 입장은 현재 '일본극우세력과 중국의 침략주의 역사학’과 정확히 일치한다. 중국 측 시각에서 보면 이보다 더 좋은 주장이 없다. “너희 나라 역사학계의 견해가 아니냐?”며 거침없이 우리 역사를 침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야사학자이면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인 이덕일 박사는 "1945년에 조선총독부는 해체되었지만,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가 창안하고 정립한 식민사학을 단 한번도 종합적으로 검토·해체하지 못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합병의 은혜를 망각하지 않는 한국인으로 만들기 위해 ‘조선사’를 편찬한다고 조선총독부는 분명하게 밝혔다. 그런데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하고 왜곡한 역사는 이른바 ‘실증주의’로 치장됐고, 조선사편수회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의 과학적 역사학은 ‘신념이 앞선 관념론’, ‘국수주의’로 매도됐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한국역사 관련 단체들과 독립운동 단체들은 '식민사학 해체 범국민운동본부'를 발족해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국민적 운동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일제 식민사관에 동조했다"...감사 청구
 
일제 식민사관을 답습한다고 동북아역사재단을 비판해 온 역사연구단체와 독립운동단체들이 3월19일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를 발족하고 재단에 대한 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밝히는 등 구체적인 행동에 나섰다. 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발대식과 학술대회를 열어 "동북아역사재단은 설립 이래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관에 맞서는 대응논리를 세우기는커녕 지속적으로 그에 동조해 왔다"고 주장했다.

국민운동본부에는 공동의장을 맡은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허성관 전 광주과학기술원장을 비롯해 김병기 대한독립운동총사 편찬위원장,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등이 참여했다. 이 단체는 동북아재단이 올해 초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를 통해 발간한 연구서 '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이 한국 고대사에 대한 식민사관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운동본부는 "이 책의 논리대로라면 한반도 북부는 중국 식민지가 되고 남부는 일본 식민지가 된다"며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가 정립한 식민사학을 국가기관이 세계 학생과 재외공관에 배포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해당 서적 발간 취지에 대해 "기원전 108년 한(漢)무제가 설치한 한사군 연구와 관련해 일본 학계의 오류를 지적하고 한국 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를 서구 학계에 소개하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단 측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도 "구미학계에서는 심지어 1930년대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한국사 인식이 영문으로 번역돼 유포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내외의 기존 연구 성과를 전반적으로 검토하면서 한사군을 중심으로 일본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한국 고대사 내용을 설명한 책"이라고 국민운동본부의 주장을 반박했다. 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참석자들에게 서명을 받아 조만간 재단에 대한 국민정책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할 계획이다.

중국 “압록강변이 만리장성 동쪽 끝” 또 주장.. ‘동북공정’ 지속
 
중국 문화재 당국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 기점이 압록강변이라는 자국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발굴사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지역 일간지 <화상신보(華商晨報)> 3월27일자 보도에 따르면 최근 랴오닝성 문물고고연구소는 2014년 3월부터 10월까지 랴오닝성 단둥(丹東)시 러우팡(樓房)진 둥청(東城)촌 동쪽의 압록강 지류 하천변에 있는 요새(要塞)유적 1만8800㎡를 발굴했다. 발굴팀은 성벽 내부 건축물들의 구조와 배치를 확인하고, 1565년 명(明)나라가 세운 이 요새가 요동(遼東) 지역 만리장성 유적 가운데 압록강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압록강변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 2009년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압록강변이라는 주장을 내놓은 뒤 이들 지역에 대한 유적 연구·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3년에는 압록강 하류의 단둥시 콴뎬(寬甸)만족자치현 솽산쯔(雙山子)진에서 벽돌로 쌓은 명나라 시대 요새 성벽 2개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이런 주장은 명나라가 여진족의 침입을 막으려고 산해관(山海關) 동쪽에 설치한 요동변장(遼東邊藏)이 만리장성의 연장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한국 학계에서는 요동변장이 산과 강, 목책 등이 혼합된 개념의 방어선이며 산해관과 같은 견고한 벽돌성이 아니어서 만리장성의 연장으로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명대(明代)에 제작된 지도에도 요동변장이 압록강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국의 동북지역에 미칠 한반도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북 3성이 중국의 역사에 귀속되는 곳이라는 점을 역사적, 이론적으로 분명히 해두기 위한 의도로 풀이하고 있다.

중국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한 '동북 변경 지방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일련의 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일명 동북공정)'을 통해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연구를 다수 진행했고, 이는 현재 중국 역사의 '정설'로 수용되고 있다.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발해를 중국 동북 지역에 살던 소수 민족인 말갈족이 세운 나라로 소개하고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長白山)이 만주족 등 중국 소수민족의 발상지라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과거사 반성은 뒷전인 채… 자국 홍보 열 올리는 일본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종식 70주년을 맞아 역사 문제에는 눈감은 채 한국 등 아시아 번영에 기여했다는 내용을 홍보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이 주변국에 입힌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끝내 외면하려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3월24일 확인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전후 국가 건설: 책임 있는 협력국가로서 일본’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려져 있다. 지난 3월5일 올려진 2분 분량의 동영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주변국 경제 발전 등 아시아 번영에 기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의 뜻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홍보성 내용 일색이다. 특히 외무성 홈페이지 내 ‘외교정책→기타분야→역사인식’ 항목에 동영상이 올려져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평가이다. 주미 일본대사관 등은 대사관 홈페이지에 동영상을 링크해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 중국어 등 10개 언어로 된 동영상에서 “전후 자력으로 부흥을 이룩한 일본은 평화국가로서 아시아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고 국제사회의 국가 건설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왔다”면서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해 국제사회에 복귀한 일본은 1954년 미얀마를 시작으로 일찍부터 아시아 각국에 대한 경제협력을 개시했다”고 소개했다. 동영상은 그 사례로 한국의 포항제철 건설, 중국의 베이징∼친황다오(秦皇島) 철도 확충, 스리랑카 콜롬보항 확장을 거론하고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각국 경제 인프라 정비를 지원했다”고 홍보했다. 동영상은 이어 캄보디아 평화 실현을 위한 회의 개최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요원 파견, 아프가니스탄 재건 활동 등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일본은 국제사회와 협력해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아베 총리의 유엔총회 연설로 끝을 맺고 있다.

中·日외교장관, 한국서 '과거史 충돌’
 
중국과 일본이 서울 한복판에서 ‘과거사’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지난 3월21일 한·중·일(韓中日) 3국 외교장관 회의 직전에 열린 중·일 외교장관 회담에선 과거사 이슈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양국 간에 격론이 벌어지고, 공동 발표문에 포함할 문구를 놓고 의견이 충돌하면서,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는 예정보다 1시간 이상 늦게 시작했다.

중국과 일본은 이날 회의 직후 시각도 온도도 전혀 다른 각자의 입장을 내놨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정시역사(正視歷史·역사를 똑바로 보다)' '개벽미래(開闢未來·미래를 연다)' 여덟 글자가 발표문에 들어간 것이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시역사'는 일본이 과거 침략 사실과 식민 통치를 부정할 수 없고, 마땅히 져야 할 역사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으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멋대로 거꾸로 돌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개벽미래'는 '정시역사'의 기초 위에 상호 신뢰를 쌓고, 민간 차원의 이해를 증진하며, 공동 이익을 확대하자는 뜻"이라고 했다. 왕 부장은 "일본이 어떤 태도로 과거 '침략전쟁'을 다루느냐는 중·일관계의 기초는 물론, 이웃국가들과의 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반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과거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이 자국 기자들에게 "(3국 회담은 물론 앞서 열린 중·일 회담에서도) 회담 시간 절반 정도가 역사 문제에 할애됐다"며 "중국이 마음먹고 온 것 같은데, 일본도 일본의 입장을 제대로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9월 항일 전쟁 승리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한 것은 '일본을 흔들려는 수(手)'"라고도 했다. 일본 외무성은 회담 후 배포한 보도 자료에서도 '세 나라 외무장관이 방재(防災), 환경, 청소년 교류, 테러 대책, 원전, 북핵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는 내용을 나열한 뒤 맨 끝에 기타 항목으로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발언이 있었다'고 딱 두 줄 언급했다. '역사를 직시한다'는 부분은 뺐다.

양국 언론과 인터넷에서도 공방이 벌어졌다. 중국 언론은 '정시역사, 개벽미래'에 초점을 맞추면서, '3국 정상회담 조기 개최 노력' 부분에는 비중을 두지 않았다. 관영 신화통신은 왕 부장이 "올해는 항일 전쟁 승전 70주년이며, 일본 입장에선 (역사를 속죄할) 시험대이자 기회"라고 말한 대목을 부각했다. 베이징 외교 관계자들은 "중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중국이 그동안 과거사를 부정해온 일본을 쳤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중국 측이 명분과 성과를 강조한다면, 일본은 냉정하게 실익을 따지는 분위기였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22일 "어차피 중국이 항일 기념행사를 여는 9월까지는 관계가 호전될 가능성이 낮은 만큼, 일본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 일본의 방침"이라고 했다. 무라타 고지 도지샤대 학장은 요미우리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에서 '한·중이 역사 인식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이미지가 확대되면 한·중도 아프다"고 했다. 아사히는 "이번 회담은 관계 복원을 위한 길이 어렵다는 것을 거듭 보여줬다"고 썼다.

아베 신조 “위안부는 인신매매의 희생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인신매매의 희생을 당하고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라고 발언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3월27일 게재)에서 아베 총리는 위와 같은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WP는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이날 인터뷰에서 “아베 내각은 199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 때의 무라야마 담화와 2005년 종전 60주년 때의 고이즈미 담화 등 전임 내각의 역사인식을 전체로서 계승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1993년 일본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한 고노 담화를 재검증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고 덧붙였다. 또한 아베는 “정치인들은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 역사가 논쟁이 될 때 그것은 역사학자와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아베 총리가 ‘위안부’를 “인신매매의 희생자”라고 표현한 것은 인권유린의 극악한 표현이자, 국제사회가 ‘성노예’(Sex Slavery) 사건으로 규정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 위한 계산된, 치졸한 발언이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아베의 인신매매의 희생자 소식을 접한 국내 누리꾼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아베신조를 통해 일본의 미래를 본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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