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내 안의 참된 주인은 누구인가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05/18 [09:28]
이시헌의 장자쉽게 읽기

내 안의 참된 주인은 누구인가

이시헌의 장자쉽게 읽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05/18 [09:28]
非彼無我, 非我無所取. 是亦近矣, 而不知其所爲使.
若有?宰, 而特不得其?. 可行己信, 而不見其形, 有情而無形. 百骸, 九竅, 六藏, ?而存焉, 吾誰與爲親? 汝皆說之乎? 其有私焉? 如是皆有爲臣妾乎? 其臣妾不足以相治乎? 其遞相爲君臣乎? 其有?君存焉? 如求得其情與不得, 無益損乎其眞.
 
그러한 감정들이 없다면 나라고 할 것도 없고, 내가 없다면 그 감정들이 나타날 데가 없다. 이것이야 말로 분명한 진실이다. 그러나 무엇이 그렇게 갖가지 감정을 생기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진정한 주재자가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단지 그 조짐을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형상을 볼 수가 없다.
 
[인간은 신체라는 형체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으므로 신체기관을 들어 거기에 존재하는가 찾아보자.]
 
우리 몸에는 백 개의 뼈마디와 아홉 개의 구멍과 여섯 개의 장기를 갖추고 있는데 그 중 어느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가? 그 중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런데도 특별히 어느 하나만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소중한 것 때문에 다른 기능은 신하나 첩으로 함부로 부릴 수는 없는가? 만약 모두 신하와 첩 같은 것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다스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아니면 서로 번갈아 가며 군주가 되기도 하고 신하가 되기도 할 수는 없을까?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몸을 주재하는 진정한 주재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실정을 알건 모르건 그 참다운 진실 자체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는 것이다.
 
非彼無我 非我無所取(비피무아 비아무소취): [갖가지 감정이라는] 상대가 없으면 자기라는 것도 없고, 자기가 없으면 갖가지 감정도 나타날 데가 없다.
 
眞宰(진재): 참된 주재자, 조물주.
?(진): 조짐, 즉 징조가 나타남.
可行已信而 不見其形(가행이신이 불견기행): 그 작용[감정을 일으키는]은 분명하나 구체적인 형체는 볼 수 없다.
有情而無形(유정이무형): 眞宰(진재)가 실재한다는 필연적 조건은 있지만 그런 사실이 있게 한 도의 구체적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 여기서는 아직 도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추구하고 있는 과정이다.
百骸(백해): 백 개의 뼈마디, 百(백)은 수많음을 나타냄.
九竅(구규): 몸에 있는 아홉 개의 구멍, 즉 눈, 귀, 코, 입, 하반신의 두 구멍.
六藏(육장):여섯 개의 내장, 즉 心(심), 肝(간), 肺(폐), 脾(비), 腎臟(신장), 命門(합문: 명치).
?而存焉(해이존언): 百骸(백해). 九竅(구규). 六藏(육장)이 다 갖추어져 몸을 이룬다.
汝皆說之乎 其有私焉(여개열지호 기유사언): 모두 좋아할 것인가, 그 중 어느 하나를 좋아하겠는가.
其遞相爲君臣乎(기체상위군신호): 서로 번갈아가며 군신이 되게 할 것인가.
其情(기정):실정 사실.
無益損乎其眞(무익손호기진):진군 자체의 가치는 조금도 더해지거나 덜해지는 일 없이 변함이 없다는 것.
 
‘나’의 참된 주인공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라, 나의 육체적 기관들이 나의 주인일 수 없고 잡다하고 종잡을 수 없는 감정과 욕구 및 의지가 ‘참 나’일 수도 없으니 ‘참 나’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성찰해보라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는 긍정적인 의미의 마음이다. 사회 공동체의 규칙 속에서 내면화 된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까지 포괄하는 자연적 인격을 뜻한다.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그 사람 자신’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자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사회 공동체적 삶 속에서 학습된 ‘성심成心’과 같은 헛된 자아를 걷어내야만 한다. 성심이란 허심虛心의 반대 개념으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마음이다.
 
우리 모두는 천지 대자연과 화합할 수 있는 원초적인 본능을 이미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내 몸이 곧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나는 진짜 주인이 된다. 진짜 주인은 바로 진리이고 자연이다. 자기의 감정에도 주인이 된 사람은 자기를 잊을 줄 아는 사람이다. 자기 감정에 노예가 되는 사람은 자기를 잊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를 잊어버렸다’는 자기子?는 분명 자신의 감정의 노예가 아니고 주인이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