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예수의 부활과 성령역사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05/18 [09:35]
《하나님섭리》34-예수의 부활

예수의 부활과 성령역사

《하나님섭리》34-예수의 부활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05/18 [09:35]


 
1. 예수의 부활
 
유대나라의 사형집행 방법 중의 하나가 사형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다. 바르게 살지 못한 죄인이기 때문에 바르게 죽어서 바른 귀신이 되라는 뜻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했다.
 
하나님에게 십자가는 독생자예수를 죽인 철천지한이 맺힌 것이므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그 십자가를 구원의 징표로, 영광의 상징물로 여기며 교회와 성당 꼭대기에 높이 세워놓고 목에 걸고도 다닌다.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가 중요하고 귀한 것이 아니다. 예수의 마음이 귀하고 중요한 것이다. 예수가
 
아바 아버지시여 될 수 있으면 이 잔을 면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 내가 ‘네가 십자가에 죽으면 3일 안에 부활시켜서 세상을 내가 구원하겠노라’ 하고 알려주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며 순종한 그 마음이 중요하고 귀한 것이다. 예수의 순종으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양심의 이《하나님섭리》말씀을 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만약 예수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노릇 안하겠습니다. 순종 못합니다. 십자가에 못 죽겠습니다.’ 하고 불신했다면, 난감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은 서기 2천 년이 되기 전에 지구를 녹여버리고 만년 후에 다시 창조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이 되었을 것이다. 예수는 순종으로 지구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낙원으로 올라왔다.
 
십자가죽음에 순종하여 부활해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것을 장하게 생각하니, 하나님은 가슴이 아파서 말씀을 못하겠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죽었지만, 예수는 죽으면서도 순종하였다. 십자가에 죽은 것이 장한 것이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했으면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 되지 않아 마귀가 데려간다. 그러면 부활도 없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마귀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하나 된 것이 타락이다.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 타락이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하겠다는 자식이 어떻게 부모를 닮을 수 있겠는가.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신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시인할 수 없다. 아담과 하와 같은 사람이다. 하나님도 효자와 충신은 시인한다. 믿는다. 하나님은 우선 순종이다. 그러나 욕심의 순종이냐, 양심의 순종이냐가 중요하다. 예수는 영·육 아울러 부활했다. 육체는 하나님의 기운에 의해 썩지 않은 상태에서 분해되었다.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에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의 영은 생령급에 올라간다. 영이 살아난다. 그러나 생령은 또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성령이 될 수 있는 완성의 이《하나님섭리》말씀을 주기 위해 하나님 내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직접 지상에 강림한다고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과 마음으로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완성의 이《하나님섭리》말씀을 줄 수 있다. 왜 빨리 주지 않고 2천 년을 기다렸느냐? 하나님은 법도와 질서의 하나님이다.
 
2. 예수의 성령역사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서
 
아버지여 저들이 몰라서 그러하오니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한 것은 사실은 하나님이 한 것이다. 하나님 아들이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나님이 한 말씀이다. 예수가 3일 만에 부활하여 제자들과 대화한 것도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한 것이다.
 
하나님은 무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타날 때 예수 모습을 쓸 수밖에 없으며, 예수를 위대하게 증거 할 수밖에 없다. 예수가 마귀에게 죽었다고 하면, 하나님과 예수를 믿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니 하나님이 역사(役事)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예수도 혼자 있을 때도 있었고, 하나님이 예수와 같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하는 것을 사람이 하는 것으로만 알면 안 된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예수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한 말씀이다. 마가복음 16장 10절부터 13절까지 읽어 보라.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보인 모습이 각기 달랐다.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예수같이 나타나고, 제자들에게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왜 다른 모습으로 보였느냐?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보여주었다는 말씀을 하고자 함이다.
 
예수 이후로는 하나님이 예수 모습으로 많이 역사하였다. 예수가 지상에서 마귀에 의해 십자가에 죽었는데, 하나님이 예수에게 역사하라고 다시 지상에 보내겠는가. 예수는 하나님이 마지막에 이《하나님섭리》말씀으로 마귀를 심판한 후에야 지상에 내려올 수 있다.
 
하나님이 예수 모습으로 역사한 것같이, 마귀도 예수 모습으로 많이 역사했다. 그래서 병고쳐주고, 장사 잘 되게 해주고,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느 것이 진리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에게서는 진리말씀이 나오고, 마귀에게서는 처음에는 선같이 하다가 나중에는 엉뚱한 역사를 하는 선악과 말이 나온다. 하나님의 역사는 종이 되는 역사이고, 마귀의 역사는 왕이 되는 역사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은밀한 역사이고, 마귀의 역사는 구세주다, 미륵불이다, 하나님이다 하고 나타난다. 그래서 진리를 바로 찾아야 한다.
 
비유와 상징으로 된 비밀을 모두 밝히 밝혀야 진리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은 진리가 아니며, 비밀을 밝히지 못하는 것도 진리가 아니다. 이제 때가 되었으므로《하나님섭리》말씀으로 밝힌다. (정리: 이승주논설위원. lsj5272@naver. com)
  • 도배방지 이미지

많이 본 기사
1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