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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작은집 日本王室⑨나라를 처음 세운 조국왕 칭호는 오직 숭신왕 뿐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06/26 [11:31]
광복 70주년, 한일수교 50주년 기념 기획 시리즈―그곳엔 지금도 배달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한민족의 작은집 日本王室⑨나라를 처음 세운 조국왕 칭호는 오직 숭신왕 뿐

광복 70주년, 한일수교 50주년 기념 기획 시리즈―그곳엔 지금도 배달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06/26 [11:31]

숭신왕 원명 ‘미마기’ 김해지방 御間城 거주 증명

 
『일본서기』는 신무왕이 초대 왕이라 했고 제10대 숭신왕 또한 나라를 처음 세운 조국(肇國)왕이라 했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의 시초가 되는 왕은 누구부터 인가.
 
『일본서기』에 숭신왕은 가이까(開化)왕과 이가가시고 메노미꼬도(伊香色謎命)와의 사이에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미마기 이리비 고이니에 노스메라이고도(御間城入彦五十瓊殖). 숭신왕은 서기전 97년 1월13일 즉위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미마기히메(御間城姬)를 왕후로 맞았다.
 
이러한 그에게 조국왕이라는 칭호를 붙인 것은 그가 신무계의 왕통이 아니고 다른 계열의 세력임을 말해 준다. 그래서 “신무왕에 관한 이야기는 본래 숭신왕에 속한 것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佐伯有淸; 일본 중앙공론사 발행『일본서기 해제』)
 
8세기 초 일본 역사를 처음 기록한 사람들이 자의 혹은 타의로 일본 역사가 오래된 양 만들기 위해 6백여 년이나 고대로 올라가는 역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사실 효안, 효령, 효원, 개화 등은 실명이 아니고 왕 칭 이다. 그 당시 이런 왕 칭이 있었을까. 이는 필시 후대에 조작했을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그래서 스이제이(綏靖)서 가이까(開化) 까지는 동시대의 인물일 가능성이 짙다고 보는 사가들도 있는 것이다. 혹시 이 여덟 왕이 동시적인 여러 소국가들의 군주였는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있다.
 
여기서 먼저 밝힐 것은 숭신왕의 이름 가운데에 있는 미마기(御間城)는 지역 이름이라는 사실이다.
 
에가미 나오미(江上波夫. 東京大 교수)는 그의 『騎馬民族說』에서 “숭신왕은 김해(金海)지방에 자리했던 변·진 12국의 마지막 왕이다”며 “숭신왕의 이름이 미마기(御間城)이었음은 김해지방에 자리한 어간성(御間城)에 거주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숭신왕이 일본을 조국한 왕이라는 근거는『일본서기』숭신 12년 조에 “…집집마다 물건이 가득차고, 사람들은 만족에 취하여 천하는 대단히 평온 하였다. 그래서 천황을 찬양하여 하쓰구니 시라스 스메라미고도(御肇國天皇)라 이르게 되었다(家給人足 天下大平矣 故稱謂 御肇國天皇也).
 
그러면 이제 신무와 숭신이 어째서 처음 나라를 세운 것으로 되었는가를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물론 이 두 인물 모두가 한민족의 후예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일본서기』에서는 숭신왕이 비로소 일본국을 ‘조국’했다고는 하나 그 당시 우리나라의 고구려, 백제, 신라 또는 일본의 중·근세 이후처럼 통일된 단일국가로의 일본건국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남부에 있던 삼한 가운데 마한은 마한대로 54개국이었고, 변한은 변한대로 12개국이었던 것같이 일본의 신무나 숭신 같이 ‘조국’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국을 통일한 단일국가 통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구주(九州)만 하더라도 서·남·북부 등 극히 일부분에 국한된 작은 나라들을 뜻하는 것이다.
 
삼한조선이 멸망하면서 철제무기를 가진 신장 팔척(八尺)의 조선인들이 신장 3~4척의 작은 체구의 해양 족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 제각기 한자리씩을 차지하며 ‘나는 고구려왕이다’, ‘나는 백제왕이다’, ‘여기는 여육지한국(膂肉之韓國이다’, ‘여기는 신라국이다’, ‘이곳은 고금(栲衾)신라다’ 등 하며 그리하여 1백여국이 나타났으리라는 게 사가들의 말이다.(문정창<文定昌>『일본상고사』)
 
이들 각 소국들 간의 쟁패전의 양상에 따라 왕조의 교체와 국가 간의 통합과정을 겪었으리라 본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각 세력의 왕들과 또는 일본 열도 내에서 생겨난 왕들을『일본서기』는 모조리 신무왕계에 꿰어 맞추어 한 자손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이런 거짓 기록들을 자세히 읽고 캐면 캘수록 그들은 스스로 궁지에 몰릴 것이다.
 
과거 김해지방에 자리 하였다가 그 나라를 세력이 커진 신라에 빼앗기고 일본으로 건너가 기나이(畿內)지방의 왜국 왕이 되어 ‘조국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숭신왕은 신무왕과는 왕통을 달리하는 별개의 세력국가 군주였음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숭신왕의 조국(肇國)은 변·진 12국이 망한 해에 비추어 약 서기전 1세기경이니 신무왕조의 실제보다 이른 5백여 년(『대일본연표<大日本年表>』)을 빼면 숭신과 신무가 거의 같은 시기가 된다.
 
이 둘이 거의 같은 시기에 신무는 남구주(南九州) 지방에, 숭신은 기나이(畿內) 지방에다 각각 왜국(倭國)을 건설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각각 처음 나라를 세운 왕이 된다. 그러나 일본역사에서 나라를 처음 열었다는 조국왕(肇國王)이라는 칭호를 받은 왕은 오직 숭신왕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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