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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종교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06/30 [20:24]
“종교인들이 먼저 회개하고 ‘욕심 병’ 치유 기도해야”

벼랑 끝에 선 종교

“종교인들이 먼저 회개하고 ‘욕심 병’ 치유 기도해야”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06/30 [20:24]
▲ 이옥용 매일종교신문 회장     © 매일종교신문
“세상이 말세인 게 분명해.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나.!”
 
사람들의 입에서 ‘말세’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세상에 기막힌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종교, 정치, 사회, 환경과 황폐해진 인간성이 한계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21세기 과학문명시대에 살고 있지만, 늘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 전쟁과 테러로 피로 물들어가고 있으며, 빈자와 부자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가고, 도덕적 타락과 범죄는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식량난과 물 부족사태로 생명체들이 죽어가고, 원인모를 전염병의 공포에 움츠러들고 있으며, 화산폭발ㆍ지진ㆍ해일 등, 자연재해와 기후변화는 우리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
 
임계점 넘어선 인간성
 
사람의 심성이 거칠어지고, 영악해지고, 잔인해져 가고 있습니다. 비인간화되어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질을 끌어 모으며, 인정사정없이 남을 짓밟아 인간성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이미 우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주범이 되었고, 동족을 살상하는 마귀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러한 오늘날의 세상을 낙원이다, 천국이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고, 세상도 정상적인 모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 눈에는 예의와 도덕이 무너지고, 돈과 쾌락과 폭력으로 뭉그러져가는 요지경으로 보입니다. 상하간 질서가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지금 당장 자신만 생각하며 먹고, 마시고, 즐기며 희희낙락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인 사회학자 장 지글러는 하루에 10만 명, 5초에 한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현실을 개탄합니다. 먹을 것이 넘쳐나서 성인병예방과 다이어트를 위해 일부러 굶는 판에 다른 한쪽에선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말문이 막힐 따름입니다.
 
오직 나만을 생각하는 세상에서 과연 남을 생각하는 세상으로의 변화가 가능할까요? 저는 그 희망을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사랑하라, 자비를 베풀라, 어질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의 구현을 부르짖고, 세상의 빛과 소금, 그리고 목탁임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금의 종교의 실상은 ‘사람을 구원하고, 세상을 화평케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 간에 갈등하고, 독선과 부패로 만신창이가 되어 비종교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기복신앙을 부추기며, 선전과 자기 종단세력 확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신도들로부터 막대한 헌금을 거둬들여 종교시설을 늘리는데 앞다퉈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종교가 세속화되고,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면서 종교자체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상 끝날’은 ‘종교의 끝날’

오늘날 종교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창시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며, 궁극적으로 사람의 심성을 변화시켜야 할 종교가 그 본연의 역할은 등한시 한 채 세력 확장에만 급급한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가 세상 사람들을 이끌어 나갈 힘을 잃었다는 증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가 내적으로 성숙하지 않으면, 외형을 확장하고 겉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만 혈안이 됩니다. 종교가 저잣거리에 나앉으면, 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구도와 구제의 정신은 사라지고, 정치와 경제논리만 남게 될 것입니다.
 
종교는 요즘 금권화와 대형화, 정치 권력화, 종단 이기주의, 기복신앙, 이단시비 등의 소용돌이에 끝없이 휘말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사회의 병폐와 악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정도(正道)를 벗어난 종교는 사람에게 해로울 뿐이지, 결코 이익 이 될게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아픔과 고통, 세상의 난문제를 껴안고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종교가 신도들의 헌금과 봉사로 종교를 권력집단화하는 행위는 마귀에게 휘둘리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가 본연의 사명에서 벗어나 신도들을 올바르게 인도해 주지 못할 때에는 예기치 못한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 같은 일탈행위가 신(神)을 거역하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종교의 종파가 수없이 계속 생길까요? 자기들 생각대로 이것이 선이고, 진리라고 주장하고, 완전한 진리를 찾지 못해 변질되면서 물질에 매몰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종교 간에도 자기 종교가 옳다고 싸워 창조주하나님이 종교분란의 주인공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종교인도 선과 사랑의 실천자가 되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종교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자기들 복받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종교에 더 이상 선과 사랑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 종교가 옳고, 최고라고 주장하는 욕심 때문입니다. 자기들 의견만 내세우는 종교는 힘을 제일로 여기는 단체이니, 욕심 그 자체입니다. 세상과 인간을 구원해야할 종교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철판 같은 마음의 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말세가 세상 끝 날이 아니라, 종교의 끝 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어서 오시옵소서!
 
대부분의 종교는 말세에 구세주 출현을 주장합니다. 말세가 되면 자기 종교의 교주가 구세주로 출현하여 이 세상과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사이래 수많은 교주와 구세주가 출현했으나 사람과 세상을 구원한 교주와 구세주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람의 죄를 없애주고, 평화의 세상으로 만들어 놓는 분이 바로 구세주인데 우리는 아직까지 그런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어찌 사람과 세상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자기 마음을 주관하고 살면 잘못된 것을 고치기 쉽지만, 사람은 자기 정신과 마음과 몸을 주관할 수 있는 자유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육체가 마음의 주인이 되어서 마음이 육체의 욕구대로 사는 거꾸로 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은 사람 마음의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욕심이 개인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고, 세상을 망하게 합니다. 사람 마음속의 암 덩어리인 이 ‘욕심 병’을 고쳐야 개인의 평화와 가정의 평화와 나라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가 찾아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구세주는 종교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하여 전체를 아우르는 분이어야 합니다. 그런 분이 사람이겠습니까? 사람과 우주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이 아니고 그 누구이겠습니까? 육신을 쓴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과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분명 구원의 열쇠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과 세상의 문제는 사람이 창조주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살아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인들이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께 인류의 고질(痼疾)인 이 ‘욕심 병’을 치유할 길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요, 장차 오실 자다” 나는 오늘도 방석을 깔아 놓고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이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매달리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어서 오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매일종교신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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