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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인은 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08/2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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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인은 덕을 드러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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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08/23 [21:34]

魯哀公問於仲尼曰: 「衛有惡人焉, 曰哀??. 丈夫與之處者, 思而不能去也? 婦人見之, 請於父母曰: ‘與爲人妻, 寧爲夫子妾’者, 十數而未止也. 未嘗有聞其唱者也, 常和人而已矣. 無君人之位以濟乎人之死, 無聚祿以望人之腹, 又以惡駭天下, 和而不唱, 知不出乎四域, 且而雌雄合乎前, 是必有異乎人者也. 寡人召而觀之, 果以惡駭天下. 與寡人處, 不至以月數, 而寡人有意乎其爲人也? 不至乎期年, 而寡人信之. 國無宰, 寡人傳國焉. 悶然而後應, 氾然而若辭. 寡人醜乎, 卒授之國. 無幾何也, 去寡人而行. 寡人恤焉若有亡也, 若無與樂是國也. 是何人者也!」 仲尼曰: 「丘也嘗使於楚矣, 適見純子食於其死母者. 少焉?若, 皆棄之而走. 不見己焉爾, 不得類焉爾. 所愛其母者, 非愛其形也, 愛使其形者也. 戰而死者, 其人之葬也不以?資? ?者之?, 無爲愛之. 皆無其本矣. 爲天子之諸御: 不?爪, 不穿耳? 取妻者止於外, 不得復使. 形全猶足以爲爾, 而況全德之人乎! 今哀??未言而信, 無功而親, 使人授己國, 唯恐其不受也, 是必才全而德不形者也.」 哀公曰: 「何謂才全?」 仲尼曰: 「死生存亡, 窮達貧富, 賢與不肖, ?譽, 飢渴寒暑, 是事之變, 命之行也. 日夜相代乎前, 而知不能規乎其始者也. 故不足以滑和, 不可入於靈府. 使之和豫通, 而不失於兌. 使日夜無?, 而與物爲春, 是接而生時於心者也. 是之謂才全.」 「何謂德不形?」 曰: 「平者, 水停之盛也. 其可以爲法也, 內保之而外不蕩也. 德者, 成和之修也. 德不形者, 物不能離也.」 哀公異日以告閔子曰: 「始也吾以南面而君天下, 執民之紀而憂其死, 吾自以爲至通矣. 今吾聞至人之言, 恐吾無其實, 輕用吾身而亡其國. 吾與孔丘非君臣也, 德友而已矣!」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에 심하게 못생긴 사람이 있었는데 이름은 애태타라고 합니다. 그 사람을 한 번이라도 만난 남자들은 그 사람 생각에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그 사람을 만난 여자들은 부모에게, 딴 남자에게 시집가느니 그 남자의 첩이라도 되게 해달라고 조르는데, 그런 여자가 열 명도 넘는다고 합니다. 애태타는 앞에 나서서 어떤 주장을 내세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남의 의견을 따라줄 뿐입니다.
 
그에게는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군주의 권력도 없고, 사람들의 배를 채워줄 수 있는 재산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 흉한 꼴이란 차마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남들과 화합할 뿐 자신의 주장을 내 세우지 않으며 그가 아는 것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국한된 것인데도, 그런데도 남자와 여자가 다 그의 앞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에게 반드시 보통 사람과 다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 사람을 불러 살펴보았습니다. 과연 추하기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지내다 보니 한 달이 채 못 되어 그 사람됨에 끌렸고, 한 돌이 채 못 되어 그 사람을 믿게 되었습니다. 마침 나라에 재상이 없어서 나라 살림을 맡기려 했더니, 민망한 듯이 모호한 응답을 하는데, 분명하지는 않지만 사양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민망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라 살림을 떠맡겼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제 곁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뭔가 잃어버린 듯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제 아무와도 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쁨을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애태타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저는 일찍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마침 돼지 새끼들이 죽어가고 있는 그 어미돼지의 젖을 빨고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그 새끼들은 깜짝 놀란 듯이 순식간에 모두 그 어미를 벗어나 그 품을 빠져나갔습니다. 그것은 어미 돼지의 시선이 자기들을 보지도 않고, 죽어가는 어미돼지의 모습이 살아 있을 때와는 다른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어미를 사랑한 것은 그 어미의 몸뚱이가 아니고 그 몸을 부리는 마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정신적 사랑이 없고 육신만 있다면 어미자식 사이라도 사랑으로 맺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비유하자면 전쟁터에서 죽은 자를 장사지낼 때에는 삽?(장례도구)이라는 장례예물을 사용하지 않으니 시신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관을 꾸밀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또 다리를 잘린 자는 신발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모두 다 이것을 필요로 하는 근본이 없기[無其本] 때문입니다. 관을 안 쓰고 매장하는 전사자에게 관을 꾸미는 물건이 소용없고, 발이 없으니 신발이 소용없어진 것처럼 인간의 정신은 육체의 근본이라는 것을 비유하여 형체가 있어야 꾸밈도 이룬다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물론 온전한 육체를 지닌 것만으로도 현실생활에서 많은 이익을 얻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궁녀들은 단정한 몸매를 가꾸어야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자의 후궁이 된 여자들은 그 몸을 잘 보존하기 위하여 손톱도 깍지 않고 귀도 뚫지 않습니다. 단정한 몸으로 지존을 모시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기본적인 행복을 누릴 권한은 있었습니다. 새로 장가 든 사람은 집에서 쉬게 하려고 부역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온전한 몸을 보존하여 신혼의 사랑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이 온전한 자도 그것을 보전하여 사랑을 받게 되는데 하물며 내면의 덕을 갖춘 자는 어찌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애태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이미 신뢰하며, 공적을 세움이 없어도 군왕이 친애하여 자기 나라의 살림을 맡기려 하면서도 오직 그가 받아 주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온전한 재능을 갖추었으면서 그 공을 남에게 돌리고 흔적을 남기지 않으니, 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만물과 함께 봄날처럼 온화함을 유지합니다.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타고날 때의 마음을 온전히 간직한 사람이지요. 이것을 재전才全이라고 합니다.”
 
애공이 다시 물었다.
“온전한 재능[才全]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죽음과 삶, 흥하고 망함, 운수의 막힘과 트임, 가난과 부유함, 똑똑함과 어리석음, 비난과 칭찬, 목마름과 배고픔, 추위와 더위 이러한 것은 세상일의 변화이며 운명의 흐름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밤낮 없이 이러한 일이 우리 눈앞에 번갈아 펼쳐지지만 사람의 지혜로는 그 변화의 근본 원인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인의 경지는) 변화하는 그대로 맡겨 둔다면 그 변화라는 것이 마음의 조화를 어지럽히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그 변화가) 신령한 창고와 같은 사람의 마음[靈府]으로 끼어들어와 스며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마음이 잘 조화되어 있으면 시원히 트여서 항상 즐거움을 잃지 않으며 밤이나 낮이나 변화가 끼어들 틈이 없어 만물과 더불어 따스한 봄날과 같은 온화함을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물과 접촉하여 그 때에 따라 마음에 조화로운 기운을 생동해 내는 것입니다[生時於心]. 이것을 온전한 재능[才全]이라고 합니다”
 
애공이 물었다.
“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평평함은 물이 완전히 멈춰 고요해진 상태입니다. 이것이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은 안에 고요를 간직하고 밖으로는 출렁거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덕이란 화해和諧를 완성하는 수양입니다. 안으로 투명한 광채를 머금은 채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사람이야 말로 사람들이 자연히 이끌리어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서 떠나지 못합니다.”
 
애공이 다른 날 민자건에게 말했다.
“처음에 나는 임금이 되어 천하에 군림하면서 백성들의 기강을 잡고 그들이 굶어죽지 않을까를 염려하는 것으로써 지극한 도리를 다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공자에게서 지인至人의 말을 듣고 난 뒤 내 자신이 성실한 덕이 없고 경솔하게 내 몸을 움직여 내 나라를 망치지 않을까를 걱정하게 되었다. 나와 공자는 군신의 사이가 아니고 덕으로써 사귄 친구이다.”
 
魯哀公(노애공): 춘추시대 노나라 군주.
哀??(애태타): 가공의 인물. ??(태타)는 등에 혹이 나온 모습이라는 설도 있음.
惡人(악인): 추남의 뜻.
唱(창): 먼저 말함. 先唱(선창).
與爲人妻(여위인처) 寧爲夫子妾者(영위부자첩자):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그의 첩이 되겠다. ‘與(여) A 寧(녕) B’는 ‘A 하느니 차라리 B 하겠다’는 뜻.
無聚祿(무취록) 以望人之腹(이망인지복): 재물을 모아서 사람들의 배를 채워 줄 수 있는 것도 아님.
又以惡駭天下(우이악해천하): 게다가 그 추악한 꼴이란 천하 사람들을 놀라게 함.
雌雄合乎前(자웅합호전): 남녀들이 그 앞에 모여듦.
有意乎其爲人也(유의호기위인야): 그 사람됨에 마음이 끌리다.
傳國(전국): 나라의 일을 맡김.
憫然而後應(민연이후응): 한동안 무심히 있다가 응락함.
氾而若辭(범이약사): 무심히 사양하는 듯함.
醜乎卒授之國(추호졸수지국): 갑자기 그에게 국정을 맡기려고 한 것을 부끄럽게 여김.
無幾何(무기하): 얼마 안 있다가.
?子(돈자): 새끼돼지.
?若(현약): 깜짝 놀라다.
不得類焉爾(부득류언이): 자기들과는 다른 모습. 어미돼지가 본래의 모습과 같지 않았다는 뜻.
愛使其形者也(애사기형자야): 그 형체를 움직이게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
?(삽): 관을 장식하는 새의 깃털. 싸우다 죽은 사람은 무공이 없으므로 그것을 쓰지 않음.
?者之?(월자지구) 無爲愛之(무위애지): 발이 잘린 사람은 신발을 귀히 여기지 않음. 발이 없는 사람은 신발에 별 관심이 없다.
諸御(제어): 여러 후궁.
不爪?(불조전): 손톱을 깎지 않음.
不穿耳(불천이): 귓밥을 뚫어 귀고리를 달지 않음.
不得復使(부득부사): 다시 숙직을 시키지 않음.
形全猶足以爲爾(형전유족이위이) 而況全德之人乎(이황전덕지인호): 외형을 온전하게 하는 것조차도 족히 그러한데[천자의 사랑을 받기에 또 신혼의 단꿈을 맛보기에 족하다는 뜻] 하물며 내면의 덕이 온전한 사람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뜻.
死生存亡(사생존망) 窮達貧富(궁달빈부) 賢與不肖(현여불초) 毁譽飢渴寒暑(훼예기갈한서): 죽음과 삶, 보존과 패망, 곤궁함과 영달, 가난과 부유함, 현명함과 어리석음, 치욕과 명예, 배고픔과 목마름, 춥고 더움. 인간이 살면서 마주치는 외부세계의 다양한 변화와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의미함.
是事之變(시사지변) 命之行也(명지행야): 이는 사물의 변화이며 운명의 흐름이다.
日夜相代乎前(일야상대호전): 밤낮으로 우리의 눈앞에 번갈아 나타남.
知不能規乎其始者也(지불능규호기시자야): 인간의 지능으로 그 시작을 헤아릴 수 없음. 온갖 변화의 근본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는 뜻.
滑和(활화): 마음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다.
靈府(영부): 정신이 머무는 곳, 즉 마음.
使之和豫通(사지화예통) 而不失於兌(이불실어태): 마음이 잘 조화되어 즐겁게 하면 시원히 트여서 즐거움을 잃지 않음. 使之(사지)의 之(지)는 사생존망 등의 여러 변화를 지칭함.
使日夜無?(사일야무극): 밤낮으로 쉴새 없이. ?(극)은 마음이 사물의 변화에 말려드는 것, 곧 틈새.
與物爲春(여물위춘): 유전변화하는 만물과 더불어 따뜻한 봄과 같은 관계를 이룸.
接而生時於心(접이생시어심): 만물과 접하여 마음 속에서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
平者(평자) 水停之盛也(수정지성야): 평평한 것으로는 정지하고 있는 물이 가장 성대함.
內保之(내보지) 而外不蕩也(이외불탕야): 안에서 잘 보전되고 밖으로 파동하지 않음.
成和之脩也(성화지수야):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충분히 가꾸고 닦은 경지.
閔子(민자): 공자의 제자로 閔子騫(민자건).
以南面而君天下(이남면이군천하): 임금으로서 천하에 군림함.
執民之紀(집민지기): 백성들의 기강을 잡다.
至通(지통): 지극한 도리에 이름.
德友(덕우): 덕으로 사귀는 벗.
 
애태타는 차마 바로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못생긴 외모를 지닌 곱사등이이다. 그러나 그는 내면의 덕을 쌓아서 거의 절대자의 경지에 들어갔다. 세상의 규범이나 주변의 시선을 초월하여 마음의 덕을 닦아 조화를 이룬 사람이다. 덕이 온전한 사람은 자연의 정기를 그대로 마음에 품은 사람이다. 자연의 능력은 온갖 만물이 와서 깃들게 하고 길러주면서도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덕이란 풍겨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시원하게 적당한 온도로 품어 키워주면서 드러내지를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는 봄날처럼 온화함을 유지한다.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이다. 타고난 대로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이다.
 
만물은 한시도 쉼 없이 변화한다. 하늘도 변하고 땅도 변하고 그 사이에 있는 온갖 사물도 변한다.
 
삶과 죽음도 변화가 춤추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다. 변화는 질서를 흔들고 불가피하게 혼란을 불러온다. 이때 천지와 사물의 변화에 맞서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덕이 있는 사람이다. 애태타는 사물의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평평하게 정지해 있는 물과 같이 자기의 마음을 고요하게 멈추어 본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일이 완성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덕이며 덕이 드러나지 않을수록 도의 본성적 조화와 화기가 그대로 지속된다.
 
진짜 덕이 있는 사람은 그 덕이 밖으로 드러날까 오히려 염려하여 삼간다. 드러난 덕은 얕은 덕이다.
 
덕은 한 번 나타나면 반감되고, 두 번 나타나면 없어져 버린다. 덕은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풍겨 나오는 것이고 침묵이나 미소 같은 것이다.
 
애태타는 타인의 생사를 관여할 정도의 군주의 권력도 없었고, 경제적 궁핍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부유함도 없었다. 육체적인 외모가 매력을 주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는 자기를 비우는데 성공한 사람이다. 자기 앞에 ‘자유의 공간’이라는 여유로운 공백을 마련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자유로운 공간인 빈 배 안으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이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었다.
 
애태타는 마치 빈 배와 같이 흐르는 물을 타고 흘러가는 사람이다. 그 곁에 가면 고요와 평화가 연꽃이나 된 듯이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는 것이다. 그 향기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삶이 본질적으로 긍정적이라는 것을 진정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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