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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스님 "화두 타파해 대자유인 돼라"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08/26 [19:16]
진제 종정 하안거 해제 법어 전문

진제 스님 "화두 타파해 대자유인 돼라"

진제 종정 하안거 해제 법어 전문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08/26 [19:16]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28일 하안거(夏安居) 해제를 앞두고 해재 법어를 통해 대중들의 부단한 정진을 당부했다.
 
진제 스님은 26일 해제법어를 통해 “진정한 해제란 화두를 타파해 자기의 본성을 알게 될 때 천하를 횡행하는 대자유인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결제에 임했던 기상과 기개로 삼복더위를 잊고 각고의 정진에 몰두해 본분사를 해결했다면 금일이 진정한 해제가 될 것”이라며 “그렇지 못했다면 해제일이 동시에 결제일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종은 이번 하안거에 전국 102개 선원에서 2천162명의 대중이 용맹정진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안거란 하절기와 동절기 각 3개월씩 전국 스님들이 외부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전념하는 것으로 출가 수행자들은 일정 기간 한곳에 모여 외출을 삼가고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진제 스님 하안거 해제 법어 전문>
 
識得拄杖子 <식득주장자>하면
啐啄之機箭抽鋒 <줄탁지기전추봉>이니
瞥然賓主刹那分 <별연빈주찰나분>이라.
不識拄杖子 <불식주장자>라도
杖頭有眼明如日 <장두유안명여일>하여
漢來漢現胡來胡現 <한래한현호래호현>이라.
 
이 주장자 진리를 알 것 같으면
줄탁의 기틀은 화살과 칼날을 잡음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손과 주인을 가림이로다.
이 주장자를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주장자 머리 위에 해와 같은 밝은 눈이 있어서
한인(漢人)을 만나면 한인을 나투고,
호인(胡人)을 만나면 호인을 나툼이로다.
 
今日(금일)은 어언 여름 석달 安居(안거)를 마치는 夏安居 解制日(하안거 해제일)이라 .
結制(결제)에 임했던 氣像(기상)과 氣槪(기개)로 三伏(삼복)더위를 잊고 刻苦(각고)의 精進(정진)에 沒頭(몰두)해서 本分事(본분사)를 解決(해결)했다면 금일이 진정한 解制(해제)가 될 것이나, 그렇지 못하다면 解制日(해제일)이 동시에 結制日(결제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돌아보아야 함이로다.
 
진정한 解制(해제)란 話頭(화두)를 打破(타파)하여 자기의 本性(본성)을 알게 될 때 天下(천하)를 橫行(횡행)하는 大自由人(대자유인)이 되는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다시금 마음을 담금질하여 大悟見性(대오견성)의 覺悟(각오)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解制日(해제일)이 되었다고 바랑을 지고 이산 저산을 流浪(유랑)을 다니듯이 정신없이 다녀서는 아니 될 것이며 화두를 걸망에 넣어두고 허깨비처럼 行脚(행각)을 떠나서도 아니 될 것이다.
 
그렇게 虛送歲月(허송세월)만 보내서는 大道(대도)를 이루기가 不可能(불가능)하니 話頭(화두)를 打破(타파)하여 善知識(선지식)께 認可(인가)받는 날이 解制(해제)라 다짐하고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이 渾身(혼신)의 힘으로 精進(정진)에 精進(정진)을 거듭해야 함이로다.
 
화두를 챙김에 있어서 一擧手一投足(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걸음걸음마다 호흡호흡마다 화두를 여의지 않고 간절한 의심으로써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흐르는 물과 같이 끊어짐이 없도록 씨름해야 할 것이로다.
 
이렇게 一念(일념)이 되도록 노력하다보면 문득 참의심이 頓發(돈발)하여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며칠이고 몇 달이고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話頭(화두)가 解決(해결)되어 佛祖(불조)의 百千公安(백천공안)을 한꼬챙이에 꿰어 버리게 됨이니. 그러면 누가 어떤 물음을 던지더라도 石火電光(석화전광)으로 척척 바른 답을 내놓게 되고, 諸佛諸祖(제불제조)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살림살이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億萬年(억만년)이 다하도록 깨달은 三昧(삼매)의 樂(낙)을 누리고 閻羅大王(염라대왕)이 잡으러 온다 해도 보이지 않으니 잡아 갈수가 없음이로다.
 
昔日(석일)에 趙州(조주) 선사께서 行脚次(행각차)에 黃檗(황벽)선사 會上(회상)에 들르시니, 황벽 선사께서 趙州(조주) 선사 오시는 것을 보시고 方丈室(방장실)로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셨다. 이에 조주 선사께서 法堂(법당)에 들어가서,
“救火救火(구화구화)라!”
“불이야! 불이야!”
하시니, 황벽 선사께서 문을 열고 나와서 조주 선사를 붙잡고 말씀하셨다.
“道道(도도)하라!”
“일러라! 일러라!”
이에 조주 선사께서
“적과후장궁 <賊過後張弓>이라.”
“도적이 지나간 후에 활을 쏨이로다.”라고 하셨다.
 
一日(일일)에 조주 선사께서 臨濟寺(임제사)를 방문하여 발을 씻고 있는 차에, 臨濟(임제) 선사께서 다가와 물으시기를,
“어떤 것이 祖師(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시니, 조주 선사께서
“마침 老僧(노승)이 발을 씻는 중이니라.”
하고 대답하셨다. 이에 臨濟禪師(임제선사)께서 가만히 다가가서 귀를 기울이고 들으시거늘, 조주 선사께서
“알면 바로 알 것이지, 되씹어 무엇 하려는고?”
하심에 臨濟禪師(임제선사)께서 팔을 흔들며 가버리시니, 조주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30년간 行脚(행각)하다가 오늘에야 처음으로 注脚(주각)을 잘못 내렸다.
 
時會大衆(시회대중)은 趙州(조주) 선사를 알겠는가?
 
須具透頂透底之眼 <수구투정투저지안>하야
處處相逢善知識 <처처상봉선지식>하니
當機一句千古輝 <당기일구천고휘>로다.
 
조주 선사는
모름지기 위를 뚫고 아래를 뚫어보는 그러한 눈을 갖추어서
處處(처처)에 선지식을 상봉하니
기틀에 다다른 일구가 천고(千古)에 빛남이로다.
 
대중은 黃檗(황벽) 선사를 알겠는가?
 
龍虎相撲에 全身廻避難 <용호상박 전신회피난>이라.
雖然如是 <수연여시>나
好手中에 呈好手 <호수중 정호수>하니
天上人間能幾幾 <천상인간능기기>냐?
 
용과 범이 서로 부딪힘에 전신을 회피하기가 어려운지라.
비록 이와 같으나
능란한 솜씨에 능란한 솜씨를 바치니,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에 몇몇이나 될꼬?
 
대중은 臨濟(임제) 선사를 알겠느냐?
 
臨濟全機格調高 <임제전기격조고>라
棒頭有眼辨秋毫 <봉두유안변추호>로다.
掃除狐兎家風峻 <소제호토가풍준>이요
變化魚龍電火燒 <변화어룡전화소>로다.
 
活人刀殺人劍 <활인도살인검>이여!
倚天照雪利吹毛 <의천조설이취모>로다.
一等令行滋味別 <일등령행자미별>이니
十分痛處是誰遭 <십분통처시수조>오
還會臨濟麽 <환회임제마>아?
蒼天 蒼天 <창천 창천>이로다.
 
임제(臨濟) 선사의 온전한 기틀은 격조(格調)가
정말로 높고 높은지라,
주장자 머리 위에 눈이 있어서 가을철 털끝을 가림이로다.
야호와 토끼를 쓸어 없애니 가풍이 준걸함이요,
변화의 어룡(魚龍)을 번갯불에 사름이로다.
 
사람을 살리는 칼과 사람을 죽이는 검이여!
하늘을 비껴 번쩍이니 날카로운 취모검이로다.
일등 령(令)을 행함은 그 맛이 특별함이니,
십분(十分) 아픈 곳을 이 누가 알리요.
도리어 임제 선사를 알겠는가?
아이고! 아이고! 곡(哭)을 함이로다.
 
乙未年 하안거 해제일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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