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뱁새가 둥지를 틀어도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08/27 [08:23]
장자 쉽게 읽기

뱁새가 둥지를 틀어도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다

장자 쉽게 읽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08/27 [08:23]

堯讓天下於許由, 曰: 「日月出矣而?火不息, 其於光也, 不亦難乎!時雨降矣而猶浸灌, 其於澤也, 不亦勞乎! 夫子立而天下治, 而我猶尸之, 吾自視缺然. 請致天下.」
許由曰: 「子治天下, 天下?已治也. 而我猶代子, 吾將爲名乎? 名者, 實之賓也, 吾將爲賓乎? ??巢於深林, 不過一枝; 偃鼠?河, 不過滿腹. 歸休乎君, 予無所用天下爲! ?人雖不治?, 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
 
요堯 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하면서 말하였다.
“해와 달이 나와 세상이 환하게 밝은데 횃불[炬火]을 끄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그 횃불의 빛을 아무리 밝히려 해도 공연한 힘만 들일 뿐입니다. 단비時雨가 내리고 있는데 여전히 논밭에 물 대는 일을 하는 것은 그 논밭을 윤택하게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공연히 수고롭기만 합니다. 덕망이 높으신 선생께서 천자의 자리에 오르시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터인데 부족한 내가 이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다는 것은 내 스스로 보아도 도저히 만족할 수 없습니다. 청컨대 천하를 바치고자 합니다.”
 
허유가 말했다.
“그대가 천하를 이미 잘 다스리고 있는데 내가 그대를 대신하다니 안될 말이오. 나더러 천자라는 이름을 얻기 위하여 그대를 대신하라는 말이오? 이름이라는 것은 실질의 껍데기일 뿐이오. 형체가 있다면 그림자요, 소리가 있다면 메아리와 같으니 나더러 그러한 껍데기가 되라는 건가요? 뱁새가 깊은 숲 속에 둥지를 틀어도 필요한 건 나뭇가지 하나요, 두더지가 목이 말라 황하수를 마셔도 자기 한 배를 채우면 그만입니다. 임금이시여, 돌아가서 쉬십시오. 나는 천하가 소용없는 사람이오. 제사를 지낼 때 요리하는 사람이 요리를 잘 못한다고 하더라도 시동尸童이나 축관祝官이 제사상을 넘어가서 요리사 일을 대신하지는 않는 법이오.”
 
許由(허유): 인명. 堯(요)의 선양을 거절하면서 귀를 더럽혔다 하여 귀를 씻은 [洗耳(세이)] 전설로 남아있는 중국 最古(최고)의 隱者(은자)임.
?火(작화): 관솔불. 횃불. 炬火(거화).
時雨(시우): 때맞추어 단비가 내림.
浸灌(침관): 적실 침, 물댈 관. 논밭에 물을 부어 저셔 주는 일.
不亦難乎: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공연히 어렵기만 하다는 뜻.
不亦勞乎: 또한 수고롭지 않겠는가. 수고롭기만 하다는 뜻.
我猶尸之(아유시지): 내가 아직도 천하를 맡아 다스림. 尸(시)는 주관하다[主(주)]의 뜻.
缺然(결연): 만족할 수 없음.
請致天下(청치천하): 청컨대 천하를 바치고자 함.
吾將爲名乎(오장위명호): 나더러 장차 명예를 구하라는 것인가.
實之賓(실지빈): 실체의 손님으로 비본질적인 虛像(허상)임.
??巢於深林(초료소어심림): 뱁새가 깊은 숲에 둥지를 지음.
偃鼠飮河(언서음하):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심.
滿腹(만복): 배를 채우다.
?人雖不治?(포인수불치포): 熟手(숙수)가 음식을 잘못 만든다고 해서.
尸祝不越樽俎而代之(시축불월준조이대지): 尸童(시동)과 祝官(축관)이 술단지와 제사상을 넘어가서 숙수 일을 대신하지 않음.
樽(준): 술단지
俎(조): 祭器(제기), 제사상
 
작은 새가 아무리 깊은 숲속에 둥지를 틀어도 그가 거처하는 장소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또 작은 짐승이 먹고 마시는 데 그렇게 많은 것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도 육체적 생리적인 욕구는 다른 짐승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 육체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인간은 욕구하며 이 욕구대로 생활함으로써 자타自他가 함께 고통스러워지고 불안不安하며, 부자유不自由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실로 인간이 욕구해야만 할 것이 무엇이며, 우리생명에 참으로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를 근원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한다.
 
허유에게 천자의 지위란 뱁새의 둥지만도 못하고 두더지의 배를 채울 한 모금의 물만도 못하다. 자기 실질에 수반해서 찾아드는 일시적인 가상물인 손님이 되라고 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것이다. 정치적 지위다툼에 목숨을 걸고 자기 소모를 하는 정치판을 보면 허유는 그만 입이 다물어진다.
 
인간은 역시 욕망을 버릴 수 없기에 권력을 탐하고 자리를 노린다. 허유에게는 욕망이란 것이 지나가는 손님일 뿐이다. 그러나 결코 주인이 아닌 손님이 되게 하는 것에 침을 흘리고 자신을 시달리도록 매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주인이란 또 무엇일까? 자기의 생의 조건에 걸맞게 살아야만 진정한 자유가 확보된다는 것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