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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달리트 불교운동①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10/08 [20:42]
신종교운동(불교)⑪

인도 달리트 불교운동①

신종교운동(불교)⑪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10/08 [20:42]

▲ 달리트 불교운동을 주도한 B.R.암베드까르(1891-1956)박사.     © 매일종교신문

인도의 불교를 소개하려면 너무나 방대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난감하다. 인도불교의 쇠망이후 근대에 이르러서 인도인의 손으로 인도의 불교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서구(유럽)의 동양학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 소개되었는데, 학자적 반열에 있는 순수 동양학 학자군(群)이 있는가 하면 식민정부의 관리 군인도 있고, 선교사도 있으며 불교에 직접 귀의한 승려나 법사가 있기도 하다. 이미 영국 삼보 불교종 상가락쉬타 법사를 소개하면서, 유럽의 동양학 연구로서의 인도학 불교학 연구의 사정을 간단하게 소개한 바 있다.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신종교로서의 ‘달리트 불교운동’은 인도불교의 발생시점이나 전성기에서 출발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도불교의 쇠망과 카스트라는 사회구조적 불평등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임을 전제하고자 한다.
▲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왕조 아쇼카 대왕 시대의 최대영토.     © 매일종교신문

 
인도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해서 인도 밖의 영토에 까지 확장됐고, 지금까지도 인도 밖의 나라에서 흥성하고 있지만, 정작 인도에서는 사라지고 없는 운명을 맞고 말았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불교가 기원전 6세기에 생겨나서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대왕 때에는 국교(國敎)의 지위를 누렸고, 기원전후까지 전성을 구가했고,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까지 전파되고 남쪽으로는 인도 亞대륙 전역과 실론 섬까지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불교는 굽타왕조(320-550 CE)후기와 팔라왕조(750-12세기)에 이르면서 쇠퇴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같은 사실은 5세기에서 8세기사이 중국의 인도(서역)구법승(求法僧)들인 법현(法顯:337-422 CE 중국 동진의 승려), 현장(玄奘,602-664 당나라 초기의 고승), 의정(義淨635-713 당나라 고승)과 송운(宋雲-528CE 北魏)에 의해서 조금씩 알려 졌다. 특히 인도 불교의 쇠망에 타격을 입힌 것은 에프탈(Ephthalites)인데, 5세기 중엽부터 약 1세기 동안 투하리스탄(박트리아 일대, 아프카니스탄)을 중심으로 투르키스탄과 서북 인도에 세력을 떨친 이란계(系) 유목 민족인 백색 훈족(White Huns)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사적(史籍)에는 엽달(嚈噠), 읍달, 혹은 활(滑)이라고 기록되었고, 서방 사료에는 에프탈(Ephthalitae) 등으로 왕족은 알타이 지구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투르크족이었으나, 피지배층은 인종·언어가 다 이란계의 투하리스탄 토착민으로 왕족도 상당히 이란化되어 있었던 종족이었다. 게다가 불교왕조였던 팔라왕조의 몰락 후에 가속화되었으며, 무슬림의 인도 亞 대륙의 점차적 정복으로 결국 쇠망에 이르고 말았다.
 
불교가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서, 무슬림지도자들이 불교에 적의를 갖고 있었음에도 이에 저항하는 사회 밑바닥에 불교세력이 약했고, 많은 불교공동체는 세속의 사회에 초연한 출가 공동체들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사회밑바닥에 끈끈한 유기체적 공동체를 이루기보다는 출가자들의 공동체 위주의 수행단체 중심이었다는 진단이다. 고대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불교가 생존한 동부의 벵골(현재의 방글라데시)과 네팔을 제외하고는 19세기 말경까지 인도 亞 대륙에서 불교는 사라지고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도북부 라다크는 티베트 불교전통을 지킨 지역이다.
 
인도 불교는 근대에 들어와서 실론 출신의 불교개혁가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 벵골의 고승 크리파사한 마하스타비르(Kripasaran Mahasthavir,1865-1926), B.R. 암베드까르와 제14세 달라이 라마(텐진 갸쵸)의 영향으로 부흥되고 있다. 이제 근현대 인도불교 부흥운동의 한 축인 달리트 불교운동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하자.
 
▲ 실론 출신으로 불교개혁가이며 인도불교 부흥과 성지보호에 공헌한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1864–1933).     © 매일종교신문

 
달리트(Dalit) 불교운동은 19-20세기에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회복운동이다. B.R.암베드까르 (Bhimrao Ramji Ambedkar1891-19561891)박사의 주창과 지도로 1956년 힌두교에서 불교로의 개종(改宗) 선언대회를 계기로 이 운동이 본격화됐다. 인도의 계층제 사회에서 가장 하위층에 기반을 둔 카스트로부터 탈출하는데 이념과 동기를 제공하고 이들에게 정신적 귀의처가 된 신불교(종교)운동이다. 이 운동을 이끈 암베드까르 박사가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를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을 불교에서 발견하고, 실천에 옮겨 탈(脫) 카스트화한 신종교운동이다.
 
달리트는 학대 받는 자의 뜻으로 인도 전통의 사성계급에서도 제외된 열외의 하층계급을 말한다. 인도의 카스트 시스템은 ‘와르나(Varna)’라고 해서 색(色)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 차별제도는 인도 사회구조의 핵을 이루는 4층의 종성(種姓) 제도를 말한다. 이 종성제도는 종교적 신분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데, 특히 힌두교와 직결되고 있다. 인도사회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와르나(카스트)의 어느 하나에 속하면서 운명과도 같은 삶을 시작하게 되어 있다.
 
▲ 마드라스(첸나이)를 방문하여 카스트에 따른 차별제도의 철폐를 토론하는 마하트마 간디 옹(1933).     © 매일종교신문
 
자티(Jāti जाति )란 말은 ‘출생’의 뜻을 갖고 있는데, 이 자티에 의해서 한 신생아의 운명은 수천 개의 문중(門中), 종족, 지역 공동체와 전통적인 직업의 기능과 종교적 신앙과 어느 특정 언어 그룹에 속하게 되는 운명을 타고난다. 태어나면서 부여받는 한 생명체의 이름 앞에 붙는 성(姓)은 자티에 따른 소속 공동체를 반영하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성이 간디(Gandhi)는 향료 판매란 의미이며, 도비(Dhobi)는 세탁업, 스리와스타바(Srivastava)는 군사기록의 뜻이 있는데, 이 직업들은 다 카스트와 종교와의 관련 속에 사회 공동체에서의 신분을 나타내고 있다. 이 카스트 제도는 인도사회의 오래된 사회계층제도인데, 브리티시 통치 시대에 변형되어 청산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게 된 악습이다.
▲ 브라흐마나(바라문)들이 베다를 암송하고 있다(1912).     © 매일종교신문
 
카스트는 와르나(色)의 관념인데, 고대인도 베다시대에 사회구조의 등급은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계급으로 분류되었다. 브라흐마나(바라문)는 카스트 가운데 최고상층계층으로서 인도사회의 지식 종교성직계급으로서 힌두교의 사제나 선생(지식인)들이 대부분이다. 이 바라문 계급은 수많은 지역 공동체의 코트라(gotras 씨족 문중)로 세분된다. 바라문 계급은 정신생활에 의한 지성활동을 하는 지식계급이며 통치자들의 고문 역할을 한 계급이다. 두 번째 크샤트리아(Kshatriya)는 인도의 카스트는 불교 경전과 논서(論書)들에서는 찰제리(刹帝利) 또는 찰리종(刹利種)이라고 번역했다. 크샤트리아는 상위 계급으로 성직자 계급인 바라문을 모시며, 하위계급인 바이샤(서민), 수드라(천민) 계급을 통치하는 지배계급이다.
 
바라문은 그 신분 자체가 성직자이므로 정치에는 개입할 수 없어 인도는 크샤트리아가 다스리고 왕을 비롯하여 인도의 주요 관직은 모두 크샤트리아가 담당하고 총리, 의원은 물론 군 지휘관, 법관, 경찰 등의 공무원 계열의 직업도 모두 크샤트리아가 담당했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 사캬무니 붓다는 대표적인 크샤트리아 계급출신이다.     © 매일종교신문

 
바이샤는 세 번째 계급으로 평민 계급에 속하며,《마누법전》에 따르면 농업, 상업, 목축에 종사하는 것이 의무로 규정되어 있다. 예술가도 바이샤로 취급되며, 바이샤는 어원인 삶이라는 의미(vish)에서 파생된 말이다.
 
▲ 바이샤는 평민계급으로 농업이나 상업에 종사한다.     © 매일종교신문


수드라(首陀羅)는 4번째 계급으로 노예계급이며 천민으로 번역된다. 타 종교에서 힌두교로 개종할 경우, 수드라 계급으로 편입된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육체노동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 인도의 한 영화에 묘사된 수드라들의 모습.     © 매일종교신문
 
달리트 불교운동은 인도의 이 기본 4계급에도 소속되지 못한 불가촉천민계급(不可觸賤民) 의 사람들이 일으킨 불교운동이다. 브리티시 인디아 통치시기에는 최하층민 계급으로 취급되었고, 독립이후 헌법에 차별받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는 지정카스트가 되었다. 2011년 통계에 의하면 전인구 대비 지정카스트는 16%, 지정 부족은 8%이다. 독립이후 차별철폐주의에 의해서 인도 헌법은 이들 계급에서 정치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 불가촉천민으로 지정카스트인 달리트(복수 달리츠)는 인도사회구조에서 수드라 보다 더 밑바닥에서 가장 천한 일을 하면서 겨우 생명을 부지할 정도의 비참한 생존을 했던 계층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1932년 브리티시 인디아 정부는 지방자치의 관점에서 달리트 공동체 지도자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분리된 선거를 치르도록 권고했으나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독립운동가인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मोहनदास करमचन्द गांधी,, 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는 반대했다.
 
그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 인도의 시인인 타고르가 지어준 이름이다. 이 문제는 ‘뿌나협정’이라고 해서, 달리트 지도자 B.R.암베드까르 박사와 협상에 의해서 달리트의 인권과 사회적 지위가 개선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독립이후 헌법상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신종교운동관점에서 달리트 불교운동의 기폭제는 암베드까르 박사였다. 그 자신이 불가촉천민 출신으로서 인도사회의 고질인 카스트 제도를 뚫고 크게 성공한 케이스이다. 인도사회의 최하위 계층인 불가촉천민이었지만, 해외 유학을 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인도 공화국 헌법을 기초하고 초대법무장관을 역임했으며, 정당의 당수까지 지냈지만, 그에게는 항상 무겁게 짓누르는 카스트란 망령(妄靈)이 도사리고 있었다. 자신만이 아닌 수천 만 명의 불가촉천민이 그의 주위에서 떠나지 않고 그를 압박했다. 자신이 비교적 인도사회에서 성공한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인도사회 저변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과 무시는 개인의 문제를 떠난 불가촉천민 다수의 현안이었다. 비록 헌법상 보장되었다고 할지라도, 관념상으로는 기존 사성계급의 하위인 수드라계급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 불가촉천민에서 사성계급인 수드라에 속한 것만도 고마운 일이었지만, 암베드까르 박사에게는 이마저도 불평등 그 자체였다. 그는 고민에 빠졌고 탈출구가 필요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에게 민주사회시민으로서의 인권과 사회평등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인도사회에서는 이런 법철학(法哲學)이 통하지 않았다.
 
인도 공화국 헌법을 기초하고 국회의원과 법무장관을 지내고 정당의 당수를 역임했지만, 수천 년간 인도사회구조의 밑바닥에서 자리 잡은 카스트(種姓制度)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드디어 그는 인도의 역사와 종교와 철학과 사회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답이 나왔다. 그것은 샤카무니 붓다였고, 불교란 종교였다. 하지만 인도에 불교는 없었고, 역사로만 남아 있었을 뿐, 힌두교와 무슬림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음을 뼈저리게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눈을 크게 떠보니 인도 아 대륙의 남단 물방울처럼 생긴 실론 섬에 아직도 불교의 전통이 살아 있음을 감지하고 단숨에 실론으로 달려갔다.
 
실론(스리랑카)은 기원전 3세기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로부터 불교를 수용했다. 아쇼카 대왕의 아들과 딸이 비구 비구니로 출가하여 직접 경전과 보리수 가지를 갖고 전도사로 내도(來島)하여 불법을 전파한 이래 2천 3백년간 인도불교의 원형을 유지하고 하고 있다. 실론불교역사에서 굴곡은 있었지만, 인도불교의 원형인 상좌부 불교의 전통을 간직한 종주국으로서 현재까지도 그 권위와 명성은 절대적이다. 암베드까르 박사는 1950년 5월 세계불교도우의회 창립총회가 열린 실론으로 가서 인도불교의 원형인 상좌부 불교 전통을 견학하는 기회를 갖게 되고, 근대 실론 불교개혁의 산실이며 인도불교성지보호운동을 펴기 위해서 설립된<마하보디소사이어티(Maha Body Society 大覺會)>를 방문한다. (해동불교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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