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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㉖정략결혼 정책 추진…倭에 백제 혈통 심어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11/20 [16:45]
그곳엔 지금도 배달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㉖정략결혼 정책 추진…倭에 백제 혈통 심어

그곳엔 지금도 배달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11/20 [16:45]
제23세 현종(顯宗)의 이름은 홍계(弘計). 아버지는 웅략왕에 살해당한 시변압반(市邊押盤)이다.
이 현종 때에 일본 상고사상 획기적인 큰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은 지난 웅략 9년에 임나국사(任那國司)가 된 기생반숙니(紀生磐宿禰)가 고구려 세력을 업고 대마도(임나)의 왕이 되려는 야심으로 대마도내 백제세력을 몰아내려 하다 동성왕(東城王)의 분노를 사 격퇴 당한다.
 
정략결혼 정책 추진…倭에 백제 혈통 심어
 
『일본서기』에는 ‘기생숙니가 임나에 웅거하여 고려(『일본서기』에는 고구려를 ‘고려’라 했음)와 통교(通交)하며, 장차 서(西)로 삼한(三韓)에 왕이 될 양’ 운운 했다. 여기서 삼한이라 함은 한반도 내가 아닌 대마도 내의 고구려, 백제, 신라를 말하는 것이다.
 
그가 이처럼 야심으로 품게 된 당시의 상황을 잠깐 살펴보자. 현종왕 3년 2월1일 신하 사대(事代)가 중대한 임무를 띠고 임나에 심부름 간다. 사대가 임나에 간 것은 임나에 난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는 일본 사가들도 같은 견해이다.
 
이때 월신(月神)이 사람이 되어 나타나 ‘우리의 조상 고황산령(高皇産靈)이 천지를 만들 때 참여한 공이 있다. 마땅히 너희 땅을 바칠 지어다. 나는 월신(月神)이다. 나의 요구에 복과 경(慶)을 내리리라’ 했다.
 
여기서 ‘고황산령’은 『일본서기』에 나온 신대편의 ‘고황산령’으로서 곧 고구려(또는 고구려 왕족)를 뜻하는 것이다.
 
이상의 구절은 고구려 또는 백제에게 패한 현종이 기내지방의 땅 일부를 내어주게 된 것을 이처럼 글재주로 은폐한 것이다.
 
또 현종왕 3년 4월 일신(日神)이 나타나 ‘반여전(磐餘田)을 나의 조상 고황산령에게 바치라’했다. 사대(事代)가 즉시 현종에게 보고하니 현종은 대마도 하현(下縣)을 내어 주고 토지(14町)를 헌납 했다. 이는 잇따른 패배로 임나의 하현과 토지를 내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종이 3년 4월 사망하자 기생숙니가 고구려와 내통하여 대마도의 왕이 되려는 여욕을 품게 된다. 자칭 신성(神聖)이라 하면서 백제계 세력을 몰아내려 적막미해(適莫彌解)를 미림(彌林)에서 살해하고 황산성을 구축하며 군량의 운송로인 동쪽 길을 가로 막아 군을 굶주리게 하는 등 적대행위를 자행했다.
 
이에 백제 동성왕(東城王)이 크게 노하여 고미해(古彌解), 막고해(莫古解) 등을 보내 다수의 병력으로 일격에 기생숙니군을 격파했다.
 
동성왕의 이 승리는 왜에 대한 백제의 지배체제를 갖추는 계기가 됐으며, 부여씨 백제왕실의 왜에 대한 정략 결혼정책으로 백제왕족의 혈육을 일본왕실에 이식 시키는 등 새로운 역사 상황이 전개 되는 것이다.
 
현종 3년 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성왕은 전쟁에 승리한s 후 왜지(山城國 葛野郡과 太和國 十市郡 磐餘田)에 백제의 기지를 설치하고 대마도내 여러 지역을 할양(割讓) 받는 것이다.
 
백제는 전승국 기지를 통하여 백제왕실의 피를 왜 왕실 또는 왜 지역에 퍼져 나가게 하는 정략 결혼정책을 편다.
 
그 첫째로 백제의 새 점령지인 왜경(倭京) 지방의 갈야군 가황소전(歌荒樔田)과 반여전(磐餘田)의 통치자로서 백제왕의 골족(骨族)을 수출하는 것이다. ‘백제국왕의 골족’이라 함은 그 왕과 왕손을 말함이다. 백제는 군국의 주(主)는 모두 왕자 왕손으로 했다. 그 예로서 개로왕이 요서지방 백제군국의 수령(守令) 11인을 봉임(封任)할 때 왕자 왕손이 무려 8인에 달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梁書』‘동이전’에는 백제가 일본의 새 영유지에 22담로(郡 또는 縣)를 설치하고 왕자 또는 왕제로 분거케 했다고 기록해 놓았음도 이를 말해 준다.
 
다음으로 백제왕녀의 왜 왕에 대한 출가요, 그 셋째는 백제왕손의 직접적인 왜국 왕 등극이다.
 
왜국 내 영유지의 통치자로 보낸바 있는 사아(斯我)는 백제 25대 무령왕(武寧王)의 아들이다. 그가 낳은 아들 법사군(法師君)은 왜군(倭君)의 조상이 된다.
 
日 현종 승전 백제 동성왕에 倭地 일부 헌납
 
아무튼 동성왕에 대한 현종왕이 화해의 조건으로 왜지의 일부를 헌납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백제왕의 자제들이 통치권자로 등장하는 것과 함께 백제왕실의 혈통화해 가는 상황을 부인할 수 없다.
 
현종이 죽자 인현왕이 등장하나 이 역시 11년에 죽는다. 『일본서기』에는 인현왕의 본명이 억계(億計)이며 현종(홍계<弘計>)의 형이라 했다.
 
그리고 인현의 아들이라 칭하는 무열왕(武烈王)이 제25세 왕으로 즉위한다. 그러나 그는 여자와 말을 교접시키는 등 매우 포악하고 행패가 심해 응신왕의 5대손인 계체왕(繼體王)에게 제거 당하고 만다. (기획특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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