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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운명이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11/23 [08:55]
장자 쉽게 읽기

바로 운명이다!

장자 쉽게 읽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11/23 [08:55]
子輿與子桑友. 而霖雨十日, 子輿曰: 「子桑殆病矣!」?飯而往食之. 至子桑之門, 則若歌若哭, 鼓琴曰: 「父邪! 母邪! 天乎! 人乎!」有不任其聲而趨?其詩焉. 子輿入, 曰: 「子之歌詩, 何故若是?」 曰: 「吾思夫使我至此極者而弗得也. 父母豈欲吾貧哉? 天無私覆, 地無私載, 天地豈私貧我哉? 求其爲之者而不得也! 然而至此極者, 命也夫!」
 
자여子輿와 자상子桑이 벗으로 사귀었다. 음산한 장맛비가 열흘이나 내렸다. 자여가 “자상이 아마도 배가 고파서 병이 났을지도 몰라, 밥을 담아가지고 가서 먹여 주어야지.”라고 말하면서 자상의 집 문 앞에 이르렀다. 집 안에서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 곡哭을 하는 듯 알 수가 없는 소리가 들렸다.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 꼴로 가난한 것은 아버지 탓인가? 어머니 탓인가? 하늘 탓인가? 아니면 사람 탓인가?”
 
그리고는 그 노래마져 힘이 부치는듯 노랫 말이 곡조보다 빠르게 웅얼거렸다.
 
자여가 들어가 물었다.
“무슨 노래를 그렇게 하는거야?”
 
자상이 대답했다.
“누가 나를 이 지경으로 오게 했는지를 생각해봐도 전혀 알 수가 없네. 부모님인들 어찌 내가 이렇게 가난하게 살기를 바라셨겠어? 하늘은 만물을 덮어 주는데 있어 공평하거늘 하늘이 나라고 사사로이 덮어주지 않을 리가 없고, 땅이 사사로이 나라고 실어주지 않은 것도 아닌데, 하늘과 땅인들 나만 가난하게 만들 리가 있겠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 찾아보았지만 전혀 알 수가 없었다네. 그러니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은 역시 운명인 것이야!
 
霖雨(임우): 장맛비.
殆病矣(태병의): 아마도 병이 들었을 것임.
?飯而往食之(과반이왕사지): 밥을 싸가지고 가서 먹이다. 食(사)는 먹일 사.
鼓琴(고금): 거문고를 뜯음.
不任其聲(불임기성): 힘에 부쳐 곡조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는 뜻.
趨擧其詩(추거기시): 노랫말을 곡조에 맞지 않게 대충대충 주워섬겼다는 뜻.
思夫使我至此極者而弗得也(사부사아지차극자이부득야):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자를 생각해 봤지만 알아내지 못함.
天無私覆(천무사부) 地無私載(지무사재): 하늘은 사사로이 덮어줌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실어줌이 없음.
 
이 장의 핵심은 ‘명命’이다. 자상은 가혹한 현실에 대해 절망한다. 극도로 가난하고 병이 들어 곤경에 빠진 이유는 운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명’은 신이 내린 명령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 필연성을 가리킨다. 자상이 절망에 빠져 애타게 찾은 하늘[天]도 종교적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장자』에서 하늘과 명은 종교성과 관련이 없다.
 
중국 고대 철학에서 핵심적인 개념인 천天과 명命은 천지만물을 주재하는 하느님[上帝]이다. 이런 고대적인 의미의 천과 명은 공자 때에는 변화한다. 공자는 “50세가 되어서야 천명을 알았다”고 했다. 이 천명은 인격적인 신을 뜻하는 것이 아닌 운명이나 자연성에 가깝다. 공자의 천은 상제라는 의미에서 자연의 천으로 가는 과도기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천과 명의 자연성은 장자에 이르러 더욱 심화된다.
 
장자가 말하려는 명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요 대자연의 생명활동의 이법理法을 뜻한다. 따라서 모든 만물이 각각 다른 형태와 생활 방식을 취하는 것도 다 이 결과라는 것이며 인간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응당 제왕이 되어야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무심하여 자연스러운 변화에 몸을 맡기는 자가 응당 제왕帝王이 되어야 한다. 자연에 순응하면 세상은 저절로 다스려진다. 그리고 무위로 하라. 무엇이든 꾸미거나 더하거나 덜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 있게 할 것이며, 하면 하는 그대로 할 것이니, 어떻게 있게 하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조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장자가 말하는 제왕은 정신세계에서 도를 얻은 절대자인 동시에 그러한 능력으로 현실세계를 다스리는 최고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도를 체득한 성인. 지인과 같은 사람이라야 한다고 말한다.
 
성인의 정치는 천하를 다스리지 않고 천하에 맡겨두는 정치이다. 인위적인 지식으로 사람을 구속하는 통치는 인간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결과적으로 쟁투로 이어지는 비극을 초래한다고 했다.
 
장자가 이상으로 삼는 정치는 다스림이 없는 다스림[無治之治]이다. 덕치德治보다 더 높은 차원인 무치無治의 치治는 그 모델을 자연에서 찾은 것이다.
 
자연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포괄하면서 스스로 존재하게 한다. 자기들을 길러주고 보호하며 통제하고 다스리는 존재가 따로 의식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들이 커다란 조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질서를 갖게 되는 상태이다. 인간 사회도 각자가 자기의 활동을 자연스럽게 함으로써 하나의 전체적 조화를 이룩할 때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대자연 속에서의 완전한 조화 속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 장자의 믿음이다. 개개의 인간이 모두 주인으로서의 절대적 존엄성을 지니며 동시에 하나하나의 인간적 가치를 최대한으로 실현하는 사회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각 장마다 뛰어난 제왕들의 면모가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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