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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나타난 태몽⑥(끝)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11/26 [03:54]
명랑, 원효, 자장의 태몽

삼국유사에 나타난 태몽⑥(끝)

명랑, 원효, 자장의 태몽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11/26 [03:54]
명랑스님과 용가 관련한 예지몽
 
명랑스님은 사간(沙干) 재량(才良)의 아들이며 어머니 남간부인(南間夫人) 사이에 막내로 태어났다. 신라에 태어나 당나라로 건너가 불법을 공부한 후 귀국길에 바다 용의 요청에 의해 용궁을 다녀왔다. 그의 탄생설화에 의하며 처음에 그 어머니가 꿈에 푸른빛이 나는 구슬을 입에 삼기고 태기가 있었다. 용이 가진 장엄하고 화려한 성격 때문에 흔히 용은 위인과 같은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로 비유되면서 왕권이나 왕위가 용으로 상징되기도 하였다. 동양의 용이 하늘에 오르기 위해서는 여의주라는 구슬을 지녀야 한다. 민족이 융성하고 국운이 왕성할때의 용은 힘차고 용맹스러운 자태로 승천의 웅지를 떨치면서 민중 앞에 군림한다. 반대로 민족의 기상이 미미하고 국운이 쇠진되었을때 용은 승천의 희망과 용기를 상실한 채 힘없는 이무기의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법사의 어머니가 꿈에 삼킨 구슬은 용의 여의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구슬은 보배나 구슬을 취득하는 꿈은 부귀한 집안에서는 자손이 출중한 재예를 떨치게 되고 학자는 명성과 업적이 향상되며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양띠해에 큰 발전, 흥왕을 획득하게 되고 잉태에는 현능한 자녀를 출산하게 되며 혼인에는 가연의 화합을 성취하게된다. 광체가 밝고 모양이 둥글 경우는 법사의 형통과 발전을 성취하게되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몽이다. 스님의 태몽처럼 용과 관련된 일화가 생기게 된다.
 
태몽의 큰 울타리는 벗어나지 못한 원효스님
 
원효스님의 아명(兒名)은 서당(誓幢)이요, 또 한 가지 이름은 신당(新幢; 당幢은 우리말로 모毛라고 한다)이다.
 
처음에 어머니 꿈에 유성(流星)이 품 속으로 들어오더니 이내 태기가 있었으며, 장차 해산하려 할 때는 오색 구름이 땅을 덮었으니, 진평왕(眞平王) 39년 대업(大業) 13년 정축(丁丑; 617)이었다.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남보다 뛰어나서 스승을 따라 배울 것이 없었다. 별은 해와 마찬가지로 일의 초반, 중반, 종반을 태몽에 있어서는 초반, 중년, 말년의 운세를 예시한다. 별은 위대한 인물이나 운동선수, 연예인, 예술가 등을 상징한다.
 
유성이 떨어져 입으로 들오가는 꿈 학문 내지 전공분야 종사자는 더욱 발전하고, 부인의 임신에는 좋은 길몽으로 발전, 입신과 부귀양명을 따를 징조일 수도 있지만, 본디 유성이 꼬리를 끌며 떨어지는 것은 큰 재앙을 암시하거나 별이 방안이나 침상 위에 떨어지는 꿈은 장차 크게 입신 부귀하는 훌륭한 자손을 두게 되든지 또는 본인 자신이 높게 출세양명하고, 번성 영달하는 상서로움을 획득할 징조다.
 
원효와 관련 800여부 200여 권의 저서를 남긴 세계적인 저술가이며 경·율·론 삼장과 대·소승경전에 두루 통하고, 화엄, 천태, 법상, 정토, 인명 등 각 방면을 두루 섭렵했던 웅대한 안목의 학자....동방의 성인으로 추앙되고 용수와 마명에 비견하는 인물로 보고있다. 이와같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고승 원효 역시 태몽의 큰 울타리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별 꿈 꾼 태기로 석존(釋尊)과 같은 날 태어난 자장
 
대덕(大德) 자장(慈藏)은 김씨(金氏)이니 본래 진한(辰韓)의 진골(眞骨) 소판(蘇判; 삼급三級의 벼슬 이름) 무림(茂林)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맑은 요직을 지냈으나 뒤를 계승할 아들이 없으므로 삼보(三寶)에 마음을 돌려 천부관음(千部觀音)에게 아들 하나 낳기를 바라고 이렇게 빌었다.
 
"만일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아이를 내놓아서 법해(法海)의 진량(津梁)으로 삼겠습니다."
 
갑자기 그 어머니의 꿈에 별 하나가 떨어져서 품 안으로 들어오더니 이내 태기가 있어서 아이 하나를 낳았는데 석존(釋尊)과 같은 날이므로 이름을 선종랑(善宗郞)이라 했다. 그는 정신과 뜻이 맑고 슬기로웠으며 문사(文思)가 날로 풍부하고 속세의 취미에 물들지 않았다.
 
이로부터 나라를 다스리고 집안을 가지런히 잘 다스려서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였으니, 그 교화가 엄숙하지 않아도 위엄이 있고 그 정치가 엄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지게 되었다. 더욱이 왕후와 함께 사는 것은 하늘에 땅이 있고 해에 달이 있고 양에 음이 있는 것과 같았으니, 그 공로는 마치 도산씨(塗山氏)가 하(夏)나라를 돕고 당원(唐媛)이 요(姚)를 일으키는 것과 같았다. 그 해에 왕후가 곰을 얻는 꿈을 꾸고 태자 거등공(居登公)을 낳았다.
 
꿈은 무의식 가운데 의식의 삶, 평소 소망의 표현
 
옛사람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기분 좋게 날아 다니는 나비였다. 스스로 즐겁게 마음에 맞아, 자기 스스로 장주임을 알지 못하였다. 갑자기 잠을 깨니 분명한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었는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구별이 있다. 이것을 `만물의 변화라고 한다. 이것은 장자 재물론에 나오는 꿈과 관련된 유명한 우화다. 인간의 삶은 ⅓가량 잠에 들고 일생에 적어도 4년 7개월을 꿈속에 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눈을 뜬 시간에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도 잠에 들어 꿈을 꾸는 시간만큼 지옥의 삶이라면 장주의 삶과 비교하여 어느것이 더 행복하고 덜 행복한지 가름하기 어렵다. 꿈은 무의식 가운데 의식의 삶이다. 꿈은 평소 그의 소망의 표현이다.
 
태몽을 무조건 신봉하거나 배척하기보다
수행의 한 부분으로 해석한 우리의 조상

 
우리 일상에서 다반사로 꾸는 꿈 가운데 태몽은 예지력이 근거가 없다거나 비과학적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태몽이 비과학적이라고 단언해도 오랫동안 하나의 '문화'로 전승되어 온 믿음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이도 없다. 다만 '신의 영역'으로 간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는 가급적 좋은 의미를 부여했던 그간의 풍습에 비춰볼 때, 태몽은 태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태몽을 무조건 신봉하거나 배척하기보다 수행의 한 부분으로 꿈을 해석하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삼가고 준비하는 생활을 통해 몸을 바로 세우는 처신을 했다. 불길한 태몽을 꾸면 아이를 더욱 정성스럽게 키우고, 길한 태몽을 꾸면 아이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 살려주려고 노력했다. 결국 태몽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비하게 해주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태몽을 통해 엄마와 태아의 건강과 심리 상태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 대한 자신의 소망과 욕구를 잘 드러내주는 지표로 삼았다. 아울러 자녀에게는 태몽을 소개하면서 인생의 목표를 삼는 교훈적 가르침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꿈은 말 그대로 꿈을 꾸는 자에 것이다. 어떤 꿈을 꾸었든 태몽을 통해 부모와 자녀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주변 환경을 돌아봄으로써 보다 좋은 내용의 태교와 양육을 할 수 있다면 태몽은 그야말로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해주고 희망을 나눌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역할을 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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