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실크로드기행⑪신 실크로드의 탐험가들, 그들은 누구인가

이치란 | 기사입력 2016/04/27 [09:21]
인문학적 지평 넓히는 다양한 국적, 다양한 목적의 여행가들

실크로드기행⑪신 실크로드의 탐험가들, 그들은 누구인가

인문학적 지평 넓히는 다양한 국적, 다양한 목적의 여행가들

이치란 | 입력 : 2016/04/27 [09:21]
▲ 타슈켄트에서 만난 신혼여행 커플과 함께한 이치란 박사.     © 매일종교신문

나는 실크로드 기행을 하면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면서 다니는가 하는 의문과 회의감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여행하면서 가장 긴장되는 문제가 여권과 돈이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돈 떨어지면 움직일 수가 없다. 여권도 다시 발급받는다고 하지만, 현지 한국대사관까지 가야하고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여행목적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제1조가 여권과 돈(카드)이다. 다음은 숙소문제이다. 짧은 여행이라면 그리고 여행비가 넉넉하다면 별문제이거니와 적어도 몇 개월간 다니고 어떤 특별한 여행목적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무슨 연구 프로젝트로 경비를 받아서 다니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자비로 자기가 좋아서 다니는 여행은 경비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돈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몇 개월씩 배낭여행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다들 빠듯한 경비로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배낭여행에서 주된 무기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영어이다.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세계어가 영어이다. 영어라도 통하면 최소한의 경비로 커버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한국인들도 이제는 배낭 여행자들이 세계 곳곳에 제법 된다. 다들 영어회화가 기본은 되는 분들이다. 젊은이 못지않게 중장년층도 있고, 여성분들도 남성분들 못지않게 여행을 다니는 것을 봤다. 부하라에서는 두 명의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30대의 젊은이는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조금하다가 자전거 여행을 한다고 했는데, 1년 6개월 됐다고 했다. 자전거도 탈줄 몰랐는데, 최소의 경비로 실크로드를 여행하고 싶어서 자전거 여행을 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서 목포를 거쳐서 인천에서 중국 청도로 건너와서 신장성 우루무치를 통과해서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키리기스스탄 비슈케크로 가서 파미르 하이웨이를 따라서 파미르고원을 넘고 타지기스탄 두산베를 통과해서 사마르칸드를 둘러보고 부하라에 이르렀다고 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나 이란 이라크를 경과해서 터키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다. 하루에 수십km를 달려야 하고 더운 대낮에는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낮잠도 자면서 에너지를 보충하고 잠은 도로변에서 야영을 하든지 아니면 민가에서 잔다는데, 하루 경비를 5천 원 정도를 넘지 않는다고 했다. 많이 써야 만원 미만이라고 했다. 대단한 젊은이였다. 자전거에는 텐트를 비롯해서 장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그 무게만도 만만치 않았다. 서울 부산 목포 인천을 도는데 3개월 걸려서 자전거 타는 데에 익숙하도록 훈련을 했다고 했다. 여행목적은 그냥 다니는 것이었다. 사진도 잘 찍지 않는다고 했다. 오직 보면서 다니는 견문각지(見聞覺知=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가 그의 여행 목적이었다. 맥주 몇 병 사줬더니 3개월만이라고 했다. 공짜가 아니면 사마시지 않는다고 하면서 너무나 맛있게 마셔서 사준 내가 즐거웠다.
 
그가 중간에서 만난 또 다른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가 그에게 연락이 왔는데, 어디냐고 묻는 것 같더니 금방 나타난 것이었다. 60대인 사진작가였다. 그는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작품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 신장성 우루무치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터키에서 러시아로 가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라고 했다. 세 시간 정도 담소를 나누면서 서로의 여행담을 공유하면서 간접 경험을 했다.
 
카슈가르에서 키리기스스탄의 오쉬로 국제버스를 타고 갈 때, 만난 친구들은 일본 싱가포르 미국 네덜란드 등 국적이 다양했다. 한 40대 일본인은 이채로웠다. 큰 가방을 등에 메고도 손에 중 가방을 들고 가슴에도 소형 가방을 매달고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일본에서 10년간 돈을 모아서 5년 계획으로 세계 일주를 하노라고 했다. 내가 만날 때 일본을 떠나 온지가 3년쯤 됐는데, 중국 몽골 태국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를 거쳐서 다시 중국에 두 번째라고 했는데, 중앙아시아를 통과해서 카스피 해, 조지아 터키 그리스 아프리카 유럽 러시아를 거쳐서 한국은 마지막에 들른다고 했다. 목적은 견문각지와 여행지를 사진에 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른 여행자들과는 좀 달라 보이는 독특한 여행객이었다.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왜 그렇게 짐이 많으냐고 했더니, 옷과 침낭 등이라고 했다. 열대 한대 온대지방을 다니다보니 옷가지가 많이 늘었다고 했다. 중국 신장성 카슈가르에서 출발한 국제버스가 키리기스스탄 오쉬에는 새벽 2시경에 도착했는데, 그는 게스트 하우스에 갈 필요가 없다면서 버스 터미널로 향했는데, 잠은 터미널 대합실에서 자고 아침 버스로 비슈케크로 간다고 했다. 그도 경비를 가능한 아끼면서 다니고 있었다. 후에 나는 그를 비슈케크 숙소에서 만났는데, 타지키스탄 비자를 받기 위해서 2주째 대기 중 이라고 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비자 받는 것 또한 큰 일거리이다. 

▲ 타슈켄트 시의 상업지구.     © 매일종교신문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여행객들은 다양한 국적에 여행목적 또한 다양했다. 21세기 신 실크로드의 탐험가들이었다. 최근에는 실크로드 연구에서 동쪽으로는 중국 시안에서 한국 경주와 일본 교토까지 확장해서 보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실크로드를 종주하려면 일본 교토에서 한국 경주를 거쳐서 중국 중앙아시아 이란 이라크 아라비아 시리아 터키(동로마=이스탄불)그리스 이탈리아(로마)까지 가야 한다. 여기에 5대 지선까지 탐험하려면 러시아에서 몽골을 거쳐서 중국 티베트 인도 등지로 횡단해야한다.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어서 행복하다고나 해야 하겠다. 낯선 곳을 다닌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인문학적 지평을 넓히는 것이 주요한 여행 목적이다. 특히 역사와 종교(불교) 분야가 나에게는 관심사이지만, 곳곳의 인물들과 풍토와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너무나 행복하다. 실크로드 기행이야기로 돌아가자.
 
부하라에서 우주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로 돌아와서 며칠 묶으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비슈케크로 향했다.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이다. 국민은 우즈베크인 63%, 러시아인 20%, 타타르인 4.5%, 우크라이나인 4% 고려인 2,2%로 구성되어 있다. 타슈켄트는 우주베키스탄 인구 3천만 명의 10%인 3백만 정도가 사는 대도시이다. 일찍부터 이 거대한 오아시스는 실크로드 선상에서 지리상의 위치로 인하여 이란계의 소그드인과 투르크인들의 지배하에 있었다. 8세기부터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다가, 1219년 칭기즈칸에 의해서 파괴되었다가 실크로드의 기능으로 다시 재건되었다. 1865년에는 러시아제국의 손에 들어갔고, 소비에트시기에 크게 발전했다고 한다. 구소련은 중앙아시아를 컨트롤하기에 좋도록 타슈켄트 비슈케크와 알마티의 도시들을 서로 지근거리에 두도록 했다고 한다.  

▲ 천산산맥을 배경으로 초원지대에 사는 키리기스스탄의 유목민.     © 매일종교신문

역사적으로 우주베키스탄은 주로 이란계의 사람들이 살던 지역인데, 투르크계가 밀고 들어와서 정착한 지역이다. 이렇게 보면 투르크계는 중국 신장성 우루무치와 카슈가르에서 서쪽으로는 터키 이스탄불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옛 실크로드 전 노선에 걸쳐있다. 투르크(튀르크로도 발음) 제족(諸族)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시베리아에서 발칸 반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흩어져 사는데 투르크어파를 모어로 하는 민족이다. 인종적으로는 황인종과 백인종이 섞여져 있다. 중국에서는 돌궐족이라고 불렀다. 역사상 수많은 제국들을 건설했으며 수많은 문화와 유산을 남겼다. 역대 투르크족에 관한 기록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 기록들은 발트 해에서 오호츠크 해에 이르는 수많은 나라들의 문헌 속에 존재한다. 《논어》,《한비자》, 진수의《삼국지》, 사마광의《자치통감》, 이븐 알 아시르((1233–1160역사학자)의《완전한 역사》, 알 다하비의 《이슬람의 완전한 세계사》, 예언자 무함마드의《하디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유럽 기사도 문학 《니벨룽겐의 노래》, 토마스아퀴나스의 《교회사》, 프리스쿠스의 《비잔틴사》, 현장법사의《서천취경》등에 광범위하게 등장한다.
 
필자가 중국을 여행하면서 리서치한 바로는 돌궐사에 대한 책이 상당했고, 중세이후 투르크가 사실상 유라시아의 주역으로 등장했기 때문인지 비중 있게 연구하고 있었다. 투르크계는 인종 문화 언어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먼 조상과 모어(母語)가 같다는 형제애가 남달랐다. 터키인들은 한국도 먼 형제로 볼 정도로 역사의식이 투철하다. 투르크계는 하나의 종교인 이슬람으로 결속력이 매우 강함을 피부로 느꼈다. 타슈켄트에서 리서치를 하면서 고려인들의 이야기는 눈물겨운 역사였다.
 
타슈켄트에서 키리기스스탄의 수도인 비슈케크로 향했는데 우주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보다는 발전이 좀 뒤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본인 남자와 키리기스스탄 여자 부부가 운영하는 숙소에 들렀더니 중국 신장성 카슈가르에서 국제버스로 함께 오쉬로 넘어 왔던 여행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대부분 타지키스탄 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미르 하이웨이로 고원을 통과하면서 아프가니스탄 경계를 지나서 두산베로 가기 위함이었는데, 타지키스탄 대사관에서는 일정한 원칙도 없이 기분 따라서 비자발급을 하다 보니, 운이 좋으면 금방, 아니면 한 달도 기다린다고 했다.
 
키리기스스탄은 인구가 6백만 명 정도 되고, 수도 비슈케크는 100만 명 정도의 도시이이다. 키르기스족들이 70%정도 되고 기타 소수민족은 러시아인 9.0%, 남부의 우즈베키스탄족이 14.5%이다. 키르기스어와 러시아어가 공용어이며, 키르기스어는 1991년 9월부터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이것은 신생국인 키르기스스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이 대부분 떠나게 되는 원인 중 하나였다. 러시아어는 2000년에 다시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키르기스어는 투르크어족에 속한 언어로 20세기까진 아랍 문자로 표기되었다. 1928년에서 1941년까진 로마자로 표기되다가, 1942년부턴 키릴 문자로 표기되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이해할 줄 안다.
 

▲ 키리기스스탄 천산산맥에 둘러싸인 바다 같은 이식쿨 호수. 가로 182km 세로 60km 면적은 6,236 m²로, 607m의 높이에 위치해 있고 호수 깊이는 668m이다.     © 매일종교신문
 
키리기스스탄인들은 투르크계로 원래는 지금의 몽골지역에서 출발, 여기저기 유목생활을 하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된다. 1세기 무렵 흉노의 지배, 6세기에 돌궐의 지배를 받게 된다. 7세기에는 당나라의 지배, 8세기에는 다시 위구르의 침략을 받아 지배를 받게 된다. 9세기에는 위구르 제국을 멸망시키고, 키르기스스탄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의 지배하에 다시 들어가고, 16세기에 이르러 현재의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1863년 북쪽 지역이 러시아 제국에 병합이 되며, 1922년 소비에트 연방이 성립되게 된다. 1926년 키르기스 자치공화국으로 개칭을 하고, 1993년 새 헌법을 제정하고, 지금의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비슈케크에서 미니버스로 이식쿨 호수를 갔다 왔는데, 스위스 알프스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아름다웠고, 호수 주변에는 초원도 있어서 유목민들이 양을 기르고 있었다. 호수 주변에는 어촌들이 있고, 해수욕장 또한 있어서 관광지화 되어 있었다. 구 소련시대에는 러시아인들의 휴양지였고, 지금은 카자흐스탄 부자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했다. 카자흐스탄의 대도시 알마티에서는 국경을 넘으면 곧 도착하는 곳이 이 호수이다. 실크로드 시대에는 이식쿨 호수도 중간에 쉬어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타림분지에서 타슈켄트로 가는 길에, 카슈가르나 아극소에서 이식쿨 호수를 거쳐서 타슈켄트로 가기도 했다. 지금은 러시아인과 유럽 미국인들이 호수보다는 텐산 산맥의 트레킹 코스를 즐기기 위해서 온다고 했다. 하루 이틀 정도 쉬려고 했으나 빈방이 없을 정도로 숙소는 만원이었다. 해가 얼마 남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경우를 당하다보면 정말 난감하다. 판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 겨우 비슈케크로 돌아가는 미니버스를 잡아 탈수 있었다. 문제는 5시간 정도 소요되는 길을 같은 날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은 아무리 여행 마니아라고 할지라도 지루하기 그지없다. 여행길이란 새로운 맛에 다니는데, 갔던 길을 다시 반복한다는 것은 정말 지겹지만, 또 견뎌내야 인내력이 길러진다. 이런 지구력이 없으면 배낭여행을 한다는 것은 피곤해진다. 비슈케크에 도착하니 한 밤중이라서 방향감각마저 상실해서 숙소를 찾아가는데 애를 먹었고, 택시 기사는 번지수를 알려주어도 제대로 찾아 가지를 못할 정도로 주위만 빙빙 돌면서 같던 길을 몇 차례나 또 가고서야 겨우 목적지에 찾아가는 것이었다.  

▲ 카자흐스탄의 양치기.     ©매일종교신문
 
비슈케크는 조용한 도시였고, 아직은 오염이 덜 된 지역이고 물가도 싸서, 며칠 쉬기로 하고 숙소에서 조용히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다니다 보면 배낭이 자꾸 무거워지는 것은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책을 좋아하다보니, 마음에 든 책이 있으면 구입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성미라서 배낭의 무게는 자꾸 늘어 가고, 귀국길에는 가방을 하나 더 사야할 정도로 책은 불어난다. 비슈케크에서 며칠 쉬고 나니 심신이 좀 게운 해져서 카자흐스탄으로 향했다.
 
알마티에 도착하니 이 지역은 완전히 러시아였다. 이곳 카자흐스탄인은 투르크계 민족이다. 인구는 1800만 명 정도 되고, 영토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넓고 자원도 풍부하다. 수도는 아스타나이지만, 알마티는 문화 상업 관광 중심 대도시이다. 알마티는 카자흐스탄 남동부에 있는 도시로서 인구는 약 130만 명이고, 키르기스스탄 및 중국과의 국경에 가깝고, 톈산 산맥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어서 풍경 경치가 아름다운 도시이다. 카자흐 국립대학교와 고등교육기관, 정부기관 등이 있다. 기계제조, 목면공업, 식료품공업이 발달하였고, 문화의 중심지이다.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의 개최지이기도 했다. 1980년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부터 카자흐스탄까지의 철도가 개통되었다.
 
실크로드 시대에는 중국 신장성 투루판에서 타림분지로 들어가지 않고 우루무치-일리-알마티로 가기도 했고, 알마티에서 타슈켄트-사마르칸드-부하라-이란-이라크로 가기도 했다. 타림분지에서는 아극소나 카슈가르에서 키리기스스탄의 고개를 넘어서 이식쿨 호수를 거쳐서 알마티-비슈케크-타슈켄트로 가기도 했다. 칭기즈칸이 서정(西征)을 할 때, 몽골고원에서 준가리아 초원을 지나 신장성 이리에서 알마티-타슈켄트-사마르칸드를 거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갔다고 한다. 중국 신장성에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나라들은 전부가 이슬람 종교를 믿는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는 곳에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 또한 간간히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알마티에서는 러시아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구소련 시대에는 이 지역이 러시아였기에 많은 러시아 인들이 이주해 와서 정착했었다. 하지만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러시아로 돌아간 이들이 다시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조국 러시아로 돌아갔지만, 러시아인들은 이들을 냉대했다고 한다. 조국에서 배신감을 느낀 이들은 다시 중앙아시아로 돌아왔는데, 알마티에 더욱 많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거리 곳곳에는 러시아인들이 많았고, 도시 또한 러시아 풍이었다. 
 
▲ 알마티의 깔끔한 지하철역 트랙.     © 매일종교신문

도시구획이 바둑판처럼 잘되어 있고, 버스노선이 많고 지하철까지 있어서 교통이 편리했으나, 어쩐지 옛날 맛은 나지 않았다. 중국 신장성 우루무치, 키리기스스탄의 비슈케크와 우주베키스탄의 타슈켄트와도 교통망이 잘 연결되어 있어서 사람과 물류의 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타슈켄트와 알마티에서는 고려인들 말고도 한국인들도 볼 수 있었는데, 모처럼 알마티 시내 한국식당에서 한식으로 입맛을 돋우었더니, 몸이 훨씬 가벼웠다. 여행을 하다보면 세계 어디서나 한국식당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 카자흐스탄 알마티 시내 공원 내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 앞에서 필자.     © 매일종교신문

실크로드의 전 노선이 다 관심이 가지만, 그래도 실크로드의 핵심부분은 둔황에서 카슈가르에 이르는 타림분지인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나라들이었던 투루판 쿠처 호탄 카슈가르 등이다. 또 파미르고원에 있는 타쉬구르칸과 와한 계곡도 흥미 있는 지역이다. 우주베키스탄의 사마르칸드와 부하라 등지의 유적을 보면, 실크로드의 맛을 느끼게 된다. 서쪽에서는 실크로드의 종착역이라고 할 수 있는 동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인 터키의 이스탄불이라고 하겠다. 실크로드 선상에서 종교를 보면 터키에서 중국 신장성의 카슈가르까지가 무슬림들이 압도적이다. 인종적으로 보면 중국인 몽골인 티베트인 인도인 이란계 아랍인 투르크계 등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실크로드의 전성기 때의 무역을 실제로 담당했던 사람들은 중국인 아랍인 페르시아인 벵골인 소말리족(아프리카) 그리스인 시리아인 로마인 아르메니아인 인도인과 박트리아인들이었고, 5세기에서 8세기에는 이란계의 소그디아나인들이 지금의 우주베키스탄 지역에서 중계무역을 장악해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21세기인 현재 실크로드 선상은 투르크계가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실크로드 연구는 실크로드 선상의 국가들과 미국 중국에서 둔황에 대한 연구는 미국과 중국에서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계속)
(이치란 해동 세계 불교 선림원 원장· www.haedongacademy.org)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