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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최양업 신부 가경자(可敬者)로 선포

매일종교 뉴스1팀 | 기사입력 2016/04/29 [06:11]
복자(福者)의 전단계, 탄생 200주년인 2021년 결론 기대

교황청, 최양업 신부 가경자(可敬者)로 선포

복자(福者)의 전단계, 탄생 200주년인 2021년 결론 기대

매일종교 뉴스1팀 | 입력 : 2016/04/29 [06:11]

한국의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토마스·1821~1861·사진)가 복자(福者)의 전단계인 가경자(可敬者)로 선포됐다.
 
교황청은 27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 신부의 ‘영웅적 성덕(Heroic Virtue)’을 인정해 가경자로 선포했다”고 밝혔다. 순교자가 아닌 인물이 가경자로 인정된 것은 국내에선 처음이다.
 
가경자는 복자(福者)를 위한 교황청 시성성 시복 심사에서 성덕이 인정된 ‘하느님의 종’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음을 입증하는 ‘기적 심사’를 통과하면 복자가 된다. 최근 요한 바오로2세와 테레사 수녀 등이 복자로 인정받았고 한국 교회에선 2014년 교황 방문 때 124위의 복자가 됐다.
 
한국 천주교회는 1997년 최 신부의 복자 신청을 위한 예비 심사를 준비했으며 2005년 본격적인 예비 심사에 들어갔다. 2009년 교황청 시성성에 최 신부 시복 청원서를 접수했으며 2015년엔 최 신부의 기적 심사 법정이 한국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관계자는 “보통 기적 심사가 완료돼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는 10년 정도 걸린다”며 “한국 교회에서 최 신부 탄생 200주년인 2021년에 결론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1835년 입국한 파리외방전교회의 모방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된 뒤 김대건 신부와 서울에서 함께 수업을 받았다. 이어 1837년 중국을 거쳐 마카오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의 신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이후 만주 소팔가자로 거처를 옮긴 그는 1844년 부제품을 받았고 1849년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 해 12월 최 신부는 조선 천주교회의 밀사들을 만나 귀국했다. 최 신부는 귀국 후 1850년 초부터 전국 각지에 숨어 있는 신자들을 순방하기 시작해 그해 6월까지 5개 도와 5000리를 걸어다니며 3815명의 신자를 만났다. 그는 10여년 넘게 이같은 순방 활동을 펼쳤다. 그는 한문 교리서와 기도서를 한글로 번역했고, 선교사의 조선 입국을 도왔다. 순방 기간 갖은 고초를 겪었고 1860년 경신박해 때는 경남 모처에 숨어지내야 했다. 그는 박해가 끝난 뒤 경남 일대 사목 방문을 계속 한 뒤 베르뇌 주교에게 성무 집행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하지만 1861년 6월 과로와 장티푸스가 겹친 그는 문경 혹은 진천에서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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