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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apartheid(인종차별)와 반상(班常), 양극화 현상

신민형 | 기사입력 2016/06/24 [07:18]
불평등과 차별은 반복되는 인류역사, 평등한 유토피아는 마음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현대판 apartheid(인종차별)와 반상(班常), 양극화 현상

불평등과 차별은 반복되는 인류역사, 평등한 유토피아는 마음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신민형 | 입력 : 2016/06/24 [07:18]
▲ 드론을 이용해 하늘에서 찍은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빈부촌 모습(사진 위. 연합뉴스 TV 화면 캡쳐)과 구룡산 밑 강남 판자촌인 구룡마을과 도곡동 빌딩가 모습(사진 아래)     © 매일종교신문
 
불평등과 차별은 반복되는 인류역사,
만인이 평등한 유토피아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구룡산 밑 강남 마지막 판자촌인 구룡마을과 그 바로 아랫마을 타워팰리스 등 도곡동 고급 아파트들을 동시에 스마트폰에 담으며 대한민국 사회의 양극화의 전형을 보는 듯 했다.
 
최근 남아공의 사진작가가 드론을 이용해 남아공 케이프타운 빈부촌을 동시에 촬영했는데 그 모습이 도곡동 빌딩숲과 구룡마을 판자촌의 확대판 같았다.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에 화려하게 채색된 주택가, 황량한 벌판에 빼곡하게 들어선 무채색의 빈민촌의 대조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아르파헤이드(인종차별정책)로 악명 높았던 남아공에서 이제 인종차별은 사라졌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으로 현대판 아르파헤이드가 생겨난 것이다. 반상(班常)제도는 사라졌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로 그보다 더한 반상이 생겨난 한국과 별다를 게 없다.
 
빈부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두 나라의 사진은 양극화, 불평등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실상 사진에 담을 수 없는 그 이상의 양극화, 불평등, 차별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 아르파헤이드와 반상제도의 시대보다 더욱 더 다양해진 양극화, 불평등, 차별이다. 취업자와 실업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업주와 근로자, 대기업과 소기업, 원·하청 근로자, 권력자와 서민, 원주민과 난민…갑과을의 관계가 노비문서, 노예문서보다 더 얽혀져 있다. 그에 따라 내재된 가진 자의 차별의식과 못 가진 자의 노예근성이 아르파헤이드와 반상제도 시대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다.
 
양극화 해소가 이 사회의 화두다. 다양한 분야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너도 나도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르파헤이드와 반상제도가 폐지된 뒤에 갖가지 양극화가 생겨났듯이 양극화 해소가 이루어진다 해도 또 다른 차별, 불평등의 탄생은 뻔히 보인다. 얼마간의 양극화 해소를 통해 힘을 받게 되는 것은 양극화 해소에 나선 권력자일 것이고 그들에 의해 또 다시 차별, 불평등이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어떤 집단이든, 어떤 공동체에서건 생존경쟁을 벌이며 새롭게 권력과 부를 새롭게 쟁취하는 자들은 또 다른 차별, 불평등을 조장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 아닐까. 유토피아를 이루기 위해 인간의 심성을 가다듬는 선지자가 나타나야 하지만 그 선지자들을 이용한 새로운 권력이 생겨나는 세상 아닌가. 유토피아는 말그대로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인가.
 
부자이든 빈자이든, 갑이든 을이든 유토피아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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