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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독재·권위의 신정일치 이슬람국가 되나?

매일종교 뉴스2팀 | 기사입력 2016/07/19 [19:46]
‘6시간 쿠데타’ 실패는 정교분리에 대한 이슬람주의의 승리

터키, 독재·권위의 신정일치 이슬람국가 되나?

‘6시간 쿠데타’ 실패는 정교분리에 대한 이슬람주의의 승리

매일종교 뉴스2팀 | 입력 : 2016/07/19 [19:46]
‘6시간 쿠데타’ 실패는 정교분리에 대한 이슬람주의의 승리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6시간 천하'로 그친 터키 쿠데타의 실패는 이슬람주의의 세속주의에 대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세속주의를 앞세운 군부 쿠데타가 실패하면서 터키가 머지않아 급격한 종교화의 물결에 휩쓸릴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더불어 쿠데타 세력을 단기간에 제압하면서 통치기반을 굳건히 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1979년 이슬람혁명을 맞이했던 이란과 유사한 수순을 밟아 정치와 종교를 모두 아우르는 ‘이슬람 지도자’에 등극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세속주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엄격한 신정일치 체제로 전환했던 이란의 혁명 루트를 터키가 그대로 답습할 것이란 예측이다.
 
소네르 차압타이 미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8일(현지시간)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터키가 1979년 이란혁명의 상황을 맞이하다(Turkey Faces Its Iran 1979 Movement)’란 제목의 글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이슬람 국가로 선회할 조짐을 보였던 터키가 쿠데타 시도를 겪은 후 빠르게 혁명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닌게 아니라 에르도안 대통령이 군부의 쿠데타를 빠르게 진압하며 3천명 가까운 쿠데타 세력을 체포했다. 또 쿠데타에 동조한 혐의로 전국의 판사와 검사 2천700여명을 해임하고 이들에 대한 체포에 나섰는데 이는 세속주의자들에 대한 숙청이기도 하다.
 
터키 군부세력은 쿠데타 공표 뒤 TV방송에서 "헌법 질서를 바로 세울 것"이라고 공언했다. 터키 헌법은 '세속주의'를 존중한다. 1928년 터키공화국 헌법 개정 당시 "터키공화국의 국교는 이슬람교다"라는 항목이 삭제됐다. 국민 99%가 무슬림이지만 특정 종교를 강요할 수는 없다.
 
터키의 세속주의는 1923년 건국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4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군림한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고 1차대전 패전후 연합국에 국토가 찢겨 분할될 위기에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가 터키공화국을 설립, 강력한 서구화정책을 펼친다. 칼리프제 폐지, 정-교 분리, 종교의 자유 보장, 남녀평등교육, 일부다처제 폐지, 여성의 선거권, 아랍문자 폐지와 알파벳 사용 등의 정책을 펴고 군은 무스타파 케말 정신 즉 정교분리의 세속주의 정책의 수호자로 나선다.
 
그러나 이러한 군부의 세속주의 전통은 2003년 이스탄불 시장 출신인 에르도안이 나타나 총리가 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무스타파 케말 이후 가장 성공한 정치인으로 꼽히는데 이슬람에 뿌리를 둔 현 집권 정의개발당(AKP)를 창당, 세 차례 총선 승리를 거두면서 2003~2014년 총리를 지내고 4연임을 제한한 당규에 막히자 2014년 첫 직선제 대통령이 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슬람 가치를 강조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 이스탄불 교통국에서 일할 때 군 출신 국장으로부터 콧수염을 밀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사직하기도 했다. 터키 공직에서는 헤드 스카프 착용이 오랫동안 금지돼왔지만 아내에게는 이것을 쓰도록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중요 요직에 측근들을 배치하고 강력한 통치권을 휘둘렀다. 비판적인 언론사를 통폐합하고 이슬람주의 정권에 반발하는 세력을 축출했다.

터키 군이 쿠데타를 시도한 명분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슬람주의에 대한 반발이자 그의 독재·권위를 막으려는 민주주의 수호라는 기치였다.
 
▲ 터키 경찰과 시민들이 쿠데타군의 탱크 위에서 환호하고 있다.    
 
15일 쿠데타 발발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지지자들은 일반적인 집권자 지지세력이 아닌 터키의 종교화를 원하는 신실한 이슬람교도들이며 일부 이슬람 성전주의자(지하디스트)들도 섞여 있었다는 분석이다. 터키의 건국이념인 세속주의에 맞서면서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권장하고 알코올 소비를 억제하는 식의 종교화에 힘을 기울였던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지지라는 해석이다.
 
쿠데타 진압 이후 에도르안은 대통령 중심제로의 개헌을 추진하면서 점차 득세하는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을 앞세워 1979년 이란혁명과 비슷한 이슬람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터키인 27%가 이슬람국가(IS)에 반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혁명에는 성나고 흥분한 소수가 필요한 만큼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들 세력을 혁명의 동력으로 앞세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실제 혁명에 착수할 경우 서구와 멀어질 수밖에 없어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의 자격을 잃거나 경제난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쉽게 이란의 1979년 선택을 따를 수 없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하지만 소네르 차압타이 미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과거 어느 때보다 이슬람혁명을 감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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