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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天問天答 71

담선(談禪)공부 모임 | 기사입력 2016/12/01 [07:02]
‘自覺’은 가장 자연스러운 無爲

통찰! 天問天答 71

‘自覺’은 가장 자연스러운 無爲

담선(談禪)공부 모임 | 입력 : 2016/12/01 [07:02]
연재 취지-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밝힌다
인간이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인간들은 그러한 역경 앞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실감 하면서
그러한 한계를 타파해 줄 -무언가-에 의지하고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무언가-를 찾아서
인류문명과 문화가 발전을 해 왔다 할지라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로 인한 대립이 극에 치달았고,
그로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가치보다, 이념가치보다,
사상가치보다, 종교적 가치보다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비록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우침으로 해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일깨워 나가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지성 인류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이루든지, 무엇을 믿든지, 어떠한 삶을 살든지,
그러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아는 것,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것은 상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식과 인간정신과 더불어
보편진리와의 거부할 수 없는 상관관계를 밝혀나가 보고자 합니다.
 
‘自覺’은 가장 자연스러운 無爲
 
질문113: 자유로워지기 위해 많은 기도를 했으며, 많은 수행을 했으며, 많이 찾아 다녔습니다.
 
 
아무리 많은 기도를 한다고 해도, 아무리 많은 수행을 한다고 해도, 아무리 여러 곳과 많은 곳을 찾아 다녀도 어떻게 자유로워 질수가 있습니까?
‘자유(自由)’, 스스로 말미암다,
즉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무얼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가 스스로 자기로부터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에 의지(依支)하고, 무엇에 기원(祈願)하고, 무엇을 통해서 어떻게 자유로워 질수가 있습니까?
 
태어남과 병이 듬과 늙어 짐과 죽어 짐이 자신의 의지(意志)이자 뜻임을 자각하지 않는다면, 불현 듯 태어나 졌으며, 불현 듯 병들어 졌으며, 불현 듯 늙어 졌으며, 불현 듯 죽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어떤 ‘삶’이 자유롭다 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삶’이 자유로워 질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면, 단언컨대 모든 것이 속박(束縛)입니다.
 
 
질문114: 모든 것을 수용하고 포용하고 허용하기 위해 의도적인 어떤 노력이 필요 합니까?
 
 
만약에 의도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본인 스스로 어떤 것도 어느 것도 수용하지 않는다는 반증(反證)이 될 수가 있습니다. 단지 수용하는 척 할뿐이며, 포용하는 척 할뿐이며, 허용하는 척 할뿐입니다.
 
어떤 꿈이라 할지라도 그 꿈은 내가 꾼다는 것입니다. 즉 그 꿈의 시작을 유발(誘發)하는 것은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꿈을 ‘내가 꾼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조차도 모든 게 ‘나’의 뜻이고, ‘나’의 의지(意志)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나’의 뜻이고, ‘나’의 의지(意志)임을 자각한다면 수용하고 포용하고 허용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자각(自覺)’은 가장 자연스러운 무위(無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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