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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교와 불교의 병행현상 연구⓵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6/12/01 [07:06]
토착 신앙 포용, 습합적 성향은 한국불교 만이 아닌 불교 전반의 특징

한국 무교와 불교의 병행현상 연구⓵

토착 신앙 포용, 습합적 성향은 한국불교 만이 아닌 불교 전반의 특징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16/12/01 [07:06]
불교 전통적 포용사상과 우리 민족 정서가
이루어낸 독특한 종교문화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유입된 불교는 인도에서의 원형을 간직했다기보다 중국을 통해 들어오면서 일차적으로 노장사상과 유학(교)이 만나 중국화된 불교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중국의 민간신앙과 불교가 새롭고 독창적인 불교로 거듭 난후 한국으로 전래되면서 일차적으로 우리의 민속신앙과 습합된다. 불교와 습합된 산신과 도교와의 습합, 칠성신앙과 불교의 습합은 불교와 도교, 민속신앙이 공존하는 가람의 구도를 형성하는 것에서 바로 그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종교간 습합, 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적 양상은 불교의 전통적 포용사상과 우리 민족의 정서가 이루어낸 독특한 종교문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전통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며, 이것은 한국불교가 갖는 가장 커다란 특징이며 단점인 종교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신신앙을 형성하고 중국 고유종교인 도교에서는 북두칠성과 조왕을 받아들여 북두각, 공양간(부엌)이란 별도에 공간을 통해 신앙되고 있다.
 
불교는 한반도에 유입된 이후 쉽게 포교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외래종교인 불교가 한국에 들어와 각기 신관ㆍ제의ㆍ사제ㆍ종교적 사상체계ㆍ신도의 태도 면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수수관계가 이루어져 한국적 종교로 변용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그만큼 외래종교로서의 생존이 전통적인 한국의 종교적 토양을 떠나서는 살아나가기 어려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변용된 원인은 그 일차적 원인을 무속과 불교가 그 기저에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이런 종교적 미분성의 기반을 지닌 체 불교가 한국적 종교 토양 위에서 성장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재래의 전통적인 무속 내지 민간신앙의 요소가 불교 속에 들어가고, 이렇게 불교와 무속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무속 쪽에서 다시 불교의 종교적 위력 내지 조직성을 원용하여 상호수수적 습합현상이 있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토착 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습합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유독 한국불교만의 현상이 아니라 불교 전반의 특징이다.
 
일본에도 불교가 도입된 이후 부처와 일본 전래의 신과 융합를 꾀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부처를 주로하고 일본의 신이 따르는 불주신종습합론에서 출발하여 9세기부터는 일본의 신은 인도의 부처가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라는 일본 특유의 신불습합론이 등장한다. 신불습합론이란 신불동체설에 입각하여 고유의 신과 불교의 불보살을 동일시 하여, 양자를 같은 곳에 모시고 믿는 것으로 신불혼효라고도 한다. 이후 일본에 진구지(神宮寺:진자에 부속되어 설치된 사원)나 혼지스이쟈쿠(本地垂迹)설의 유행도 낳았다. 혼지스이쟈쿠(本地垂迹)란 불교 용어로써, 혼지(本地)란 부처나 보살의 진실한 본체를 의미하고, 이 혼지로서의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시로 신이나 인간의 모습을 빌려 나타나는 것을 스이자쿠(垂迹)라 한다. 일본에서는 일본 고유의 신은 인도의 부처가 일본 중생의 교화를 위하여 나타난 것이다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면 일본의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오가미(天照大神)의 혼지(本地)는 대일여래라는 식으로 각 일본신과 부처를 연결하고있다. 이와같이 일본인의 외래문화 수용의 한 양식을 보여준 신불습합은 1868년 메이지 정부의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유신정부가 천황의 신권적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종래 습합되어 있던 신도와 불교를 분리시키고자 한 정책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기 전까지 일본사회에 지속되어 왔다. 일본에 불교도래 시기와 관련 538년에 백제에서 전개되었다는 설과 함께 서기 552년 흠명 13년에 유입되었다고 주장되고 있다.
 
종교 전통 사이의 상호교류를 통해 이루어진 종교적 습합
 
종교적 습합은 사실 종교 전통 사이의 상호교류를 통해 이루어졌다. 특히 종교사상의 습합 내지 교섭 관계는 무궤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원칙에 입각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복, 구도, 개벽의 삼대 신념 유형은 어느 종교 전통(특히 고전 종교)에나 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어떤 특정한 신념 유형을 유지하게 될 때 그 유형에 입각해서 여러 종교 전통의 사상 내용들을 수용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습합사상 내지, 습합종교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 3대 신념 유형간의 삼각관계가 습합현상의 규범을 이루고 있다. 습합적 종교 현상속에는 다른 종교현상을 함께 신앙하는 병행적 모습을 보이게 된다. 병행은 습합되어가는 과정에서 유사한 신양형태가 함께 신앙되어가는 모습을 말한다.
 
이와같이 둘 이상의 사물이 한 공간속에 공존하는 현상을 병행현상이라고 한다. 병행은 만물이 함께 생성되어도 서로 방해되지 않고 도는 함께 행하여도 서로 거슬리지 않아야 한다. 중용에 나오는 것으로 우리 민족종교 원불교의 소태산은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일을 함께 아울러서 조화롭게 진행하여 이루어감 병진(竝進)과 같은 뜻 <예기(禮記)> ‘예운편(禮運編)’에 ‘병행이불류(竝行而不謬)’라 하여 양도(兩道)가 아울러가나 서로 어굿나지 않는다고 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수양·연구·취사의 일원화(一元化) 또는 영육쌍전(靈肉雙全) 이사병행(理事竝行) 등 방법으로 모든 과정을 정했나니”(대종경 교의품 1)라고 하여 가르침으로 원용하고 있다. 병행론(竝行論 parallelism)은 정신물리병행론(精神物理竝行論)이라고도 말한다. 물질과 정신을 두 개의 각각 독립된 존재로 보지만, 양자에 나타난 각각의 현상에서는 병행하고 대응하는 관계로 보기도 한다. 종교에서 이와같이 한 공간에 다양한 신앙이 가능한것은 이들 신앙에 대한 신자(구매자)들의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2000년 5월 23일 제13회 심산상 수상강연에서 유교는 불교와 더불어 한국을 위시한 동북아시아 문화의 사상적, 정신적 바탕을 이루어 왔습니다. “저는 천주교의 성직자이지만 한국인이기에 제 몸안에서도 어딘가 유교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표현처럼 우리 민족에게는 하나의 신앙이 존재하지 않는 다면적 신앙형태를 가지고 있다.
 
집안에서 갑자기 사람이 줄줄이 죽어 나간다거나, 하는 일마다 패착(敗着)을 거듭한다거나 하면 사람들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한국인은 여러 해결책을 도모하다. 결국은 무당을 찾는다. 이런 형태를 한말 선교사 헐 버트는 ‘한국인들은 평소에는 유교나 불교적으로 살지만 문제가 생기면 무당에게 간다’고 했다. 이것은 신앙심이 깊지않은 일부 이탈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문제해결 방식이다. 이와같이 하나의 믿음뿐 아니라 복합적인 모습을 병행신앙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민중의 종교는 겉으로는 그 당장 득세하는 종교의 형태를 취하여 적응해 가면서도 속으로는 ‘무교’문화로 일관하면서 원래대로 모습은 간직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유교, 불교, 무당 등 세 종교의 연합된 도움으로 행복에 이른다”
 
한국의 전통적 종교문화는 종교들이 서로 겹쳐 있고,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이에 대하여 1887년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이 땅에서 처음으로 기독교 신학을 시작했던 존스(G. H. Jones, 조원시)는, 이론적으로 한국인들은 유교, 불교, 무교의 세 형식으로 구분하지만 실제적으로 이들의 혼합된 가르침을 마음에 지니고, 결국 이들 셋을 모두 믿고 있다. 한국인은 유교적 교육을 받고, 자손이 잘되라고 빌러 불교에 부인을 보내는가 하면, 병이 나면 무당이나 판수를 찾아서 이 세 종교의 연합된 도움으로 행복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불교인이면서 무교적 사유와 의례를 하고 무교적이면서 기독교적 사유를 한다. 이와같은 신앙형태를 병행적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윤이흠은 다종교 사회속의 한국 종교현상을 “한국인은 인간관계에서는 유교적이며, 인생관은 불교적이며, 행동철학은 기독교적 사랑이며, 운명관은 무속적이다.”라고 한국인의 내면생활에서의 가치복합을 설명하고 있다. 이때 전혀 이질적인 종교사상 전통의 요인들을 무궤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고, 수용자의 정신적 욕구의 성격에 맞는 요인들을 그 욕구의 맥락에 입각해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현대종교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막스 뮐러(Max MÜller, 1823-1900)의 󰡔종교학개론(Introduction to the Science of religion, 1873)󰡕에서의 “하나만 아는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주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순수순결주의 사상은 독창적인 종교이념은 존재할 수 없으며, 하나의 종교사상이 다른 종교 사상들을 만나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창조되는 일종의 문화변용(cultural acculturation)이자 문화융합(cultural meta-morphosis)현상이다.
 
이것은 문화적 지배소(cultural dominant)에 의해 타율적으로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文化素들 간의 상호분유(cultural partici-pation)와 공존의 필요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자가 주로 위로부터의 습합이라면, 후자는 아래로부터의 습합이다. 전자가 대개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통합원리로서 작용하는 문화소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후자는 사상ㆍ종교ㆍ예술ㆍ민속 같은 비정치적 문화소에 의해 이루어진다. 물론 양자가 함께 작용하여 중층적ㆍ복합적 습합을 이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상에 실재하고 있었던 과거의 종교든 지금 실재하고 있는 종교를 막론하고, 모든 종교가운데 白紙狀態(tabularasa)에서와 같이 깨끗한 고유의 종교는 실재하지 않는다. 말로는 그런 종교가 실재할는지 모르겠으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삼국유사문화원장·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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