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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교와 불교의 병행현상 연구②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6/12/05 [07:40]
무속이 외래종교와 공존·융합해 제3의 새로운 종교적 양태 창출

한국 무교와 불교의 병행현상 연구②

무속이 외래종교와 공존·융합해 제3의 새로운 종교적 양태 창출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16/12/05 [07:40]
▲ 토템적 성격의 용신앙과 불교의 관음을 결합시켜 해수관음이라는 신앙형태로 발전시켰다. 사진은 양양 낙산사의 해수관음상.  

무속이 외래종교와 공존·융합해 제3의 새로운 종교적 양태 창출

 
무속(巫俗)이란 말이 속된 표현이라고 한다. 무(巫)가 아니라 속(俗)에 대한 거부를 보인다. 민속은 민중들 사이에서 구전되거나 실제 생활 속에서 이어져오는 전통적인 삶의 양식.....지배층 중심의 전통문화에 맞서는 ‘민중적 전통문화’이며 시간적 지속성을 지니며 변화하는 가운데 전승되는 것이므로, 민속은 어제의 것이자 오늘의 것이며 또한 내일의 것으로 지속된다는 것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의 것이라고 자랑하는 이름 붙인 것 가운데 민속이란 말이 있다. 여기서도 속이 포함되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민속이 속되고 일제에 의해 우리문화가 폄하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가 하나의 종교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름이 필요하다. 무속에서 속이 비하적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의식해 학문을 직업으로 사람들은 무속을 무교라고 표현한다. 무속에 종사하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이 하나의 종교에 종사하는 사제자 의식보다 직업으로 의식하고 있기도 하다.
 
무속인들이 자발적,비자발적인 조직들의 이름에서도 그런 현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종교단체로서 구성하기보다 단체, 협회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도 뚜렷하게 그들이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의식(儀式)이 종교적이란 인식이 약하다. 일부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 불교종단에 편입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군의 집단에서 종교라는 명칭을 붙여주려고 노력하고 그런 의식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자신들의 소명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김인회는 한국의 고유종교를 ‘무속’또는 ‘무교(巫敎)’와 더불어 ‘무속종교’개념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데, 무속은 민속학적 의미를 지닌 현상으로 다룰 경우 사용하고, 무교는 한국 고대의 고유종교 또는 무당이 중심이 되는 한국의 종교 현상으로 취급할 경우 사용하며, 그리고 무속종교는 무속과 무교를 포괄하는 경우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무속을 종교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름지기 신도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믿음의 대상으로 초월적 존재가 있어야 하며 끝으로 그들 사이를 중재해줄 사제가 필요하다. 무는 종교의 이 기본틀을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 신도인 단골이 있고, 초월적 존재인 신령이 있고, 사제인 무당이 엄연히 존재한다. 따라서 무는 마땅히 종교로 보아야 한다.
 
민속종교와 범세계적인 종교의 다른 특성
 
일반적으로 민속종교는 범세계적인 종교와 다른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민속종교는 민족적 전통의 종교라는 의식이 강하다. 외래종교의 요소가 많이 혼합되어 있어도 비교적 자기 민족적 고유한 종교라는 특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둘째, 흔히 미신이라고 불릴 만큼 아직 원시성이 많은 종교라는 점이다.
 
셋째, 사회적으로 보아 신자나 신앙 종사자들이 지배계층이 아닌 서민 또는 대중이라는 점이다. ‘민간신앙’이란 말은 folk-belief, folk-religion 등의 역어이다. 민간신앙은 원초부터 인간본연의 종교욕구에서 자연 발생한 자연종교성을 가지며, 계시,교조,교리 등이 없고, 교단도 조직적은 아니다. 민간신앙의 중요성은 그 유구한 역사성과 대다수 민중의 생활과의 밀착성에 있는 것이며, 이 현실은 도외시 될 수가 없는것이다.
 
이러한 민간신앙의 특징은 기성 고등종교가 교조(敎祖)·교리·교단조직을 가진 것에 대한 대립적인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최태민이 목사·승려·천주교·무속을 넘나들면서도 ‘무당’이란 비하조로 불리는 이유
 
우리가 사는 이곳 한반도에 인류가 정착하면서부터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그들 나름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것을 샤머니즘 무속, 무교, 민간신앙, 고유신앙 등 다양하게 불렸다. 이와같이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는 것은 존재집단에 대한 정확히 정의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국정농단이란 말을 듣고있는 최태민씨 부녀의 정체 특히 최태민씨와 관련 무당이란 표현을 쓴다. 최태민씨가 돈을 주고 장로교단으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았다는 보도이후에 지속적으로 ‘무당’이라고 소개하였다.
 
최근 이와같은 언론보도 태도에서 알 수 있듯 우리사회 무당, 무속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씨 부녀의 일부 추정되는 행위만으로 미래의 일들을 보는 영매자들 모두를 무속인으로 본 것인지 굿이란 의례 수행자들을 무당으로 볼 것인지 그것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이 주도적으로 2016년 10월 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많이 등장한 최태민 부녀를 무당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개신교,불교,천주교 그외 일부 종교현상을 제외한 종교적 행위에 대해 신앙적 비하행위로 규정하는 예라 할 것이다. 이번 최태민 일가의 단순한 조언자의 행위를 무속의 기능 가운데 조언상담자의 부분만을 무속행위라는 규정했거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파생된 언론사들의 혼란상황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으로 합리화하는 용어 만들기를 즐긴다. 자신의 신앙과 다른 믿음에 대해 우상숭배, 사이비, 이단집단, 기성교회 등 그러다보니 애매한 기준점으로 종교를 분류하기에 이른다. 제도권 종교와 비제도권 종교라는 신종용어다. 이들이 말하고 있는 제도권 종교는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중앙정부, 지방정부 포함)로부터 국고지원을 받거나 혹 세제상 혜택을 받는 비정상적인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정부라는 공권력에 의해 비제도권 종교는 자신들의 신앙과 무관하게 자신들을 공격하는 집단을 후원하는 모양이 되는 것이다.
 
제도권 종교를 비정상적 집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다수의 비신자들의 세금으로 혜택과 편의를 제공 받으면서 그들을 적대적 집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종교의 기본 가르침인 감사와 순명이 없이 다름에 대한 거부감을 공격적 행동으로 보이고 있다. 배척과 배타의 대상집단에서 받은 경제적 도움으로 자신들의 선교와 포교 자금을 만드는 반 논리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 종교의 반 이성적이며 반 지성적 행위와 대치점에 있는 종교집단들은 스스로를 드러내기 보다 이들로부터 민속신앙, 민속종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자신들과 무관한 이름과 규정에 묶여 사는 것이다.
 
무속인이 불교종단에 진입을 통해 신분세탁하는 과정이 병행현상
 
이와같은 행위에 대해 이들 비 제도권(글의 편의를 위해 용어를 사용할 뿐 이런 구분은 동의하지 않는다.) 신앙인들은 자신들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말하기 전 제도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민족종교를 표방한 아류집단과 불교종단에 유입이다. 이들 가운데 특히 불교종단에 진입을 통해 신분세탁하는 과정이 병행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인간이 불교승려의 신분과 무속인,풍수사 등 다양한 신분을 유지하면 그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현상도 개인적인 병행신앙의 한 형태라는 것 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무속인의 숫자와 관련 일부 단체와 언론들은 1백만 혹은 2백만 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주장을 근거로 연간 전국에서 통용되는 복채 추정액을 산출하기도 하는데 연간 복채로 전 국민이 사용하는 돈의 액수가 수조라고 한다. 무속인으로 무업에 종사하면서 승려신분을 취득한 이들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없는 상태에서 전국 무속인의 숫자는 정확한 숫자라 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전국에 존재하고 있는 승려들의 숫자 역시 정확하지 못하다. 현재 한국내 실질적으로 무업에 종사하는 무당의 숫자는 대한민국 어느 기관에서도 정확한 통계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정 할 수 없지만 대략 몇 만 정도라 것이 무속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그 몇 만 속에도 순수하게 무업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과 무속행위를 하면서 방편으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 종단, 단군계통의 민족종교단체 등에 가입 승려, 회원으로 활동하는 숫자가 다수 포함되어 정확하게 분류하고 통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무속인 친목단체인 (사)대한경신회에서 제공하는 회원 숫자 속에는 무당이면서 동시에 불교종단 승려의 신분을 유지하는 회원들의 숫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황해도 굿의 정상에 올랐던 제자 금파란 무당이 직업적 회의를 느끼고 2008년 10월 태백산, 설악산, 가야산, 해인사, 지리산의 기도를 통해서 2012년부터 다시 무당의 길을 걷는 과정을 자전적 에세이을 통해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무당으로 불교 승려가 되고자 했지만 다시 무속인의 길을 걸어야 하는 한 무당의 이야기는 불교와 무속이 인적교류가 일어나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들이 불교라는 제도권 종교에 유입되는 것은 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무과정의 현실과 민중의 신불심(信佛心)과 자기네의 상승작용에 의한 것이다. 부처를 모셔놓으면 불도들도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신에만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떳떳이 불교의 일부라는 사회적 지위의 상승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종단에 흡수되는 사례와 별도로 구성원들에 의한 창종도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한불교 관*종(자유***연맹),대한호국불교미**종(사단법인 한국민**술연구원), 대한불선불교 **종(신무*총본산 *승종)이 그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종단(단체)은 일인 운영체제이며 동일인이 불교종단과 무속단체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승려증과 회원등록증을 발급하고 있다.
 
많은 종교들은 외부적인 것, 이질적인 것과의 접촉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늘 수용하는 가운데 부단한 자기갱신을 이루어 나갔다. 현재 활동 중인 종교는 대부분 그와 같은 작업을 통해 계속되었다.
 
종교 간의 만남에서 나타나는 융합·대체·공존의 현상
 
종교 간의 만남에 대해 엘리아데는 융합·대체·공존의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는 한국 무속과 외래종교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표면상으로는 무속의 기능을 외래종교가 대체한 것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속이 하나의 종교현상으로서 외래종교와 공존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외래종교와 융합하여 제3의 새로운 종교적 양태를 창출해 내기 때문이다. 이대근이 말하고자 하는 제3의 종교현상을 습합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볼 때 사찰의 삼성각에 모셔진 신격(神格)은 고유의 환인·환웅·단군의 삼신신앙이 불교와 도교와 습합과정을 거치며 칠성·산신·독성의 모습으로 변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삼성각에 대해서는 흔히는 사찰이 후대에 토착신앙적 요소를 흡수하여 생겨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앞에서 소도(蘇塗) 내의 사찰 건립 사례들을 살펴본 바 있듯이 오히려 토착신앙이 외래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긴 모체(母體)의 잔류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우리사회 전통적인 용신앙과 불교가 혼합되어 신앙되는 모습을 보면 병행적 모습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농경문화가 받아들였던 용의 이미지는 가정의 행복, 장수복록, 다남, 무병 등을 기원하는 용왕제(굿)으로 신앙된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불교가 전래되면서 삼국시대 불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면서 용왕보다는 부처, 보살에게 비는 기원의 형식이 바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앙하던 토템적 성격의 용신앙과 불교의 관음을 결합시켜 해수관음이라는 신앙형태로 발전시켰다. 관음신앙이 해안지역에서 기존의 용 신앙과 함께 신앙되는 이면에는 주민들의 만선을 꿈과 평화로운 조업을 위한 기도의 목적이 같고 그것을 이루어 줄 대상이 같다는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삼국유사문화원장·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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