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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天問天答 72

담선(談禪)공부 모임 | 기사입력 2016/12/05 [07:47]
최종적 ‘깨달음ㅡ깨어 있음’은 어느 누구도 도달할 수가 없다

통찰! 天問天答 72

최종적 ‘깨달음ㅡ깨어 있음’은 어느 누구도 도달할 수가 없다

담선(談禪)공부 모임 | 입력 : 2016/12/05 [07:47]
연재 취지-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밝힌다
인간이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인간들은 그러한 역경 앞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실감 하면서
그러한 한계를 타파해 줄 -무언가-에 의지하고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무언가-를 찾아서
인류문명과 문화가 발전을 해 왔다 할지라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로 인한 대립이 극에 치달았고,
그로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가치보다, 이념가치보다,
사상가치보다, 종교적 가치보다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비록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우침으로 해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일깨워 나가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지성 인류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이루든지, 무엇을 믿든지, 어떠한 삶을 살든지,
그러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아는 것,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것은 상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식과 인간정신과 더불어
보편진리와의 거부할 수 없는 상관관계를 밝혀나가 보고자 합니다.

최종적 ‘깨달음
ㅡ깨어 있음’은 어느 누구도 도달할 수가 없다

 
질문115: 의식(意識)의 성장(成長)은 무엇이며, 성숙(成熟)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은 무(無)에서 시작되어 다시 무로 돌아갑니다. 다시 말해 무로부터 비롯되어진 모든 유(有)는 반드시 비롯되기 이전(以前)의 무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유(有), 그 어떤 있음도, 그 어떤 사건도, 그 어떤 상황도 결국은 의식이 빚어내는 홀로그램과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식 그 자체로는 어떤 성장도 성숙도 없으며, 단지 ‘의식과 무의식’의 측면으로 볼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깨어 있음’은 그 자체로 모든 변화를 유발하지만, 정작 그 자체는 어떤 변화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장과 성숙은 꿈속에서나 만들어지고 변화하고 통용되는 말일뿐입니다.
 
 
질문116: 최종적 ‘깨달음ㅡ깨어 있음’은, 최종적으로는 목적도 목표도 될 수가 없다고 하시는데 어떤 까닭입니까?
 
 
그 어떤 유형적(有形的), 무형적(無形的) 삶을 산다 할지라도,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어떤 삶이라 할지라도 능동성(能動性)이 없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꾸는 꿈에 불과하며, 그리고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가 아니라 반드시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의식적 삶의 유일한 의미는 그나마 깨어나기 위해 목적하고 목표하고 노력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동안은 전심전력 다하여 ‘깨달음ㅡ깨어 있음’을 목적하고 목표로 삼으세요.
 
태어난 육신이 있고, 이 육신을 자기로 여기는 ‘지금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의 삶’은 무지로 인한 꿈에 불과하여, ‘지금의 나’로서, ‘지금의 나의 삶’ 속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든 것이 송두리째 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는 목적의 주체, 목표의 주체가 깨어져 버렸기 때문에 목적도 아니며 목표도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최종적 ‘깨달음ㅡ깨어 있음’은 어느 누구도 도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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