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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교와 불교의 병행현상 연구③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6/12/09 [05:54]
가치체계와 세계관을 지배하는 전통적 민간신앙이 유·불· 도교와 習合

한국 무교와 불교의 병행현상 연구③

가치체계와 세계관을 지배하는 전통적 민간신앙이 유·불· 도교와 習合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16/12/09 [05:54]
▲ 붓다와 관련있지 않았 천왕문,산신각,북두각,명부전,용왕전 등이 사찰 공간을 차지해 민속적 신앙과 불교적 신앙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병행적 신앙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법운암(국보급 제13호) 산신각.  

가치체계와 세계관을 지배하는 전통적 민간신앙이 유·불· 도교와 習合
 
종교라는 말은 ‘으뜸되는 가르침’이라는 말이다. 종(宗--머리)이라는 글자의 뜻은 가르침 가운데서도 ‘머리가 되는’이라는 말이고, 교(敎)는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쳐 준다’는 뜻이다. 종교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것은 서기 600년 후의 일로, 중국의 천태지의스님이 󰡔법화경󰡕을 해석하면서 그의 저서 󰡔법화현의󰡕에서 ‘종’이니 ‘교’니 하는 말을 쓴 것에서 유래한다. ‘宗’은 부처님 말씀 가운데 어떤 특정된 교설을 지목해서 말할 때 쓰였고, ‘교’는 그 뜻의 크고 작음이나 힘과 내실의 정도를 밝히는 의미로 쓰였다.
 
으뜸되는 가르침-'종교'는 서기 600년 중국 천태지의스님의 법화경 해석서 유래
 
즉 종교는 부처님의 어떤 특정한 교설을 언어나 문자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지의스님의 법화경을 가장 훌륭한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법화경을 부처님 말씀 중에서 으뜸 되는 가르침이라고 본 것이다. 이후 종교라는 단어는 가장 근원적인 가르침을 제시하는 의미를 가지고 다른 유사한 유교·도교 등에서도 확대 적용하여 쓰였다. 그렇기에 훌륭한 성인들이 교설한 가르침을 모두 종교라고 한다.
 
예로부터 교육을 무엇보다 중시해 온 한자문화권에서는 종교의 본질적인 의미를 교육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위대하며 숭고한 것으로 간주해 왔다. 한자권에서의 종교라는 의미는 宗(마루 종) 敎(가르칠 교)로서 “으뜸으로 가르침” 또는 “조종”이 되는 교육을 뜻한다. 특히 한자권에서는 유교와 관련하여 종교의 의미를 해석하기도 하였다. 가령 ‘宗’이란 글자에서의 갓머리(宀)는 제상 보(보자기)를 보일시 ‘示’는 제상의 제물을 차리는 의미로써 유교의 제사와 관련적 의미로 해석하였다.
 
불교권에서는 경전 '능가경'에서 ‘종’ 자로 번역하였다. 인도경전은 'Siddhanta (siddha, 성취, 완성+anta, 극치)'를 중국에서는 ‘종’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구에서는 종교를 릴리젼(Religion)이라 한다. 이 말은 그 어원을 라틴어 렐리기오(Religio)에 두고 있다. “렐리기오”는 렐리가레(Religare)에서 유래한 것으로 ‘Religare’는 Re (back)와 ligare(to bind)의 합성어로서 ‘결속’ “회귀 또는 돌아감(to bind back)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Relegendo’는 정근(diligence, 정성과 부지런함)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렐리기오’는 넓은 의미로 통용되었는데 신에 대한 의무, 교제, 봉헌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준비하는 태도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한자권에서의 종교라는 말이 사용된 예는 19C후반 일본과 독일이 통상조약을 맺을 때 쓴 조약문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 종교란 말이 사용되면서(1869년) 한국과 중국으로 변천되어 사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사찰내 다양한 신앙공간 가운데 하나 예를 들어보면 독성각은 실제로 역사상 어떠한 사람도 독각성(獨覺聖)이란 증거는 없으며 인도나 중국 각지에서는 독성을 따로 신앙 대상으로 모신 일이 없다.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독성을 모시게 된 것은 그가 불교와 함께 도입된 존재가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신적 존재이며 민중의 신앙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한국에 있었던 존재요, 홀로 도를 깨친 성자가 독성이라면, 결국 독성이란 아사달에 은퇴하여 산신이 된 국조(國祖) 단군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당초에 국조 단군을 모셔오던 사당을 후대에 독성각(獨聖閣)이라고 하여 사찰 속에 편입하게 된것으로 보고있다.

민족 고유의 정서를 종교만큼 잘 반영하는 문화적 양태도 흔치 않다. 더구나 다른 민족과의 접촉과 교류할 때 민족종교는 외래종교와 만날 수 밖에 없고, 이때 일어나는 복잡하고 미묘한 정신사의 드라마는 일률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외래종교가 고유의 종교와 너무나 다를 경우 그것들의 관계는 애당초부터 불협화음이나 냉담한 거부반응으로 끝나버릴 수 있지만, 반대로 서로간의 상사와 공통의 요소가 적지 않을 경우 두 종교의 만남은 오히려 ‘습합(習合)’의 가능성을 띤 것으로 나아간다. 이때 두 종교는 당연히 상호친화의 길을 모색하면서 복잡 미묘한 습합사의 과정을 만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설사 외래종교라 할지라도 오랜 세월과 더불어 민족종교의 일익을 담당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민족의 전통적 요소마저 흡수ㆍ소화하게 되는 것이다.
 
민간신앙의 구조는 맨 밑바닥에 생득적으로 발생한 자연신앙이 있고, 거기에서 정령숭배가 일어나고, 이 숭배에서 신령이나 조령의 신앙이 진전되고, 이와 함께 신당 ·감터란 신앙이 동반했다. 이 2차적인 민간신앙이 다시 성립종교와의 접촉에서 세속적인 혼합신앙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민간신앙은 민간 사회층에서 중첩적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민간신앙을 한국인의 종교생활 체제란 측면에서 보면 성립종교의 밑에 정위되면서도 그 종교들의 기층부에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민간신앙과 불교가 만나 새로운 민속불교(불교민속) 만든다
 
이단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습합현상을 기독교 측에서는 새벽기도, 산기도, 제사 등을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절충적 변형을 보이는 것과 같이 불교에서도 민간신앙과 불교가 만나 새로운 민속불교(불교민속)를 만드는 절충점이 되고 있다.
 
우리 고래의 전통적 민간신앙은 세월에 흐름에 따라 비록 제반 양상은 바뀌어 갈 망정 아직도 속신으로 민간 저변에 깔려 있는 요인은, 이러한 사상이 바로 한국문화의 지핵을 형성하고, 한국문화의 심층에서 여전히 그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행동 양식을 결정할 가치체계와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신앙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유, 불, 도교와 습합된 양상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신앙을 하나만 믿는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믿음의 양태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풀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외형적인 모습을 습합의 형태로 드러나고 신앙형태에서는 병행적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절에는 불교적 전각을 제외하고 다양한 건물들이 있다. 그곳에 상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공간과 신자들의 신행행동을 돕는 건축물이다. 그러면서 한편 불교와 상관없는 공간들이 차지하고 있다. 천왕문,산신각,북두각,명부전,용왕전 등 그것은 처음부터 붓다와 관련있지 않았다. 후세 사람들에 의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들을 찾는 사람(신도)들은 붓다가 머물고 있는 대웅전과 함께 신앙을 한다. 그곳에 기도하는 목적은 같거나 비슷하다. 민속적 신앙과 불교적 신앙을 함께 신앙하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이와같이 자연스럽게 신앙하는 모습은 병행적 신앙형태이다. (삼국유사문화원장·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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