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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天問天答 83

담선(談禪)공부 모임 | 기사입력 2017/01/16 [07:50]
수행자만이 ‘아니라, 모든 이의 모든 삶이 ‘영적인 삶’

통찰! 天問天答 83

수행자만이 ‘아니라, 모든 이의 모든 삶이 ‘영적인 삶’

담선(談禪)공부 모임 | 입력 : 2017/01/16 [07:50]
연재 취지-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밝힌다
인간이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인간들은 그러한 역경 앞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실감 하면서
그러한 한계를 타파해 줄 -무언가-에 의지하고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무언가-를 찾아서
인류문명과 문화가 발전을 해 왔다 할지라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로 인한 대립이 극에 치달았고,
그로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가치보다, 이념가치보다,
사상가치보다, 종교적 가치보다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비록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우침으로 해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일깨워 나가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지성 인류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이루든지, 무엇을 믿든지, 어떠한 삶을 살든지,
그러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아는 것,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것은 상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식과 인간정신과 더불어
보편진리와의 거부할 수 없는 상관관계를 밝혀나가 보고자 합니다.

수행자만이 ‘아니라, 모든 이의 모든 삶이 ‘영적인 삶
 
질문143: 이야기하는 ‘영적인 삶’은 결국 ‘자기 자신을 아는 것’으로 받아 들여도 됩니까?

 
 
자기 자신만이 유일한 영(靈)적 실재(實在)라 할 수가 있습니다.
꿈속에서 ‘지금의 나’가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비록 무의식 상태로 꿈을 꾸고 있지만 ‘나’가 꿈을 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 꿈을 내가 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드러나고 나타난 모든 것이 결국은 ‘나’의 의식으로 ‘나’의 뜻과 ‘나’의 의지로, ‘내 마음 먹기’라는 이치에 따라 비쳐지고 투사(投射)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으로 시작하여, 단편적 모든 삶들조차 ‘나’의 뜻과 의지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영적인 삶’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즉 모든 삶들이 결국은 ‘영적인 삶’인 것입니다.
특정한 종교나 문화에 몸과 마음을 의탁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수행자의 삶만이 ‘영적인 삶’이 아니라, 모든 이의 모든 삶이 결국은 ‘영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질문144: ‘자각하는 삶’은 기도가 필요 없다 하십니다. 어떤 연유입니까?
 
 
드러났으며, 드러나고 있으며, 드러날 모든 것이 ‘나’의 뜻이자 의지이며, 모든 것이 내 마음먹기라는 ‘이치’를 자각하고 있는데 어떤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그 어떤 삶이라 할지라도, 설사 그 삶이 불행과 고난으로 비춰지고 있다 할지라도, 단지 악몽(惡夢)에 불과할 뿐입니다. 꿈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불행에서 행복으로 옮아가고, 고통에서 희열로 옮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속박과 번뇌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악몽을 꾼다하여 또 다른 꿈을 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꿈을 깨는 것이 최선이며, 꿈이 깨어졌을 때 더 이상 기도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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