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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세계불교⑮내가 본 태국불교

이치란 | 기사입력 2017/01/16 [09:15]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찾게 된 태국 비구승가로의 출가

현대세계불교⑮내가 본 태국불교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찾게 된 태국 비구승가로의 출가

이치란 | 입력 : 2017/01/16 [09:15]
▲ 담마라모(법수=法守)비구 시설의 필자 보검 이치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찾게 된 태국 비구승가로의 출가
 
태국불교는 나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 바 있다. 한국불교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인도의 원형불교를 접한 나로서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뭔가 신선감을 느꼈다. 특히 태국 불교는 계율(戒律)이란 승가의 규칙이 나를 무겁게 누르면서도 빨려들게 하는 흡입력이 강했다. 하루를 수행하다가 말더라도 제대로 한번 해보자하는 각오로 덤벼든 것이었는데, 막상 태국불교에 입문하고 보니 간단한 과정이 아니었다. 태국불교는 인도의 원형불교를 계승한 불교의 정통성을 지닌 상좌부의 종가 집과 같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국불교 1천 7백년사는 너무나 우여곡절이 많은 기복(起伏)과 흥망성쇠의 연속이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왕성했던 한국불교는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숭유억불의 정치이데올로기의 타킷이 되었는데, 이런 현상은 조선 말기에 이르면 불교는 그로기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찰나에 일본불교를 만나서 그나마 소생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간단한 예로서 조선불교는 피폐할 때로 피폐해진 상황에서 일본불교의 조력을 받게 되고, 일본식 대처불교로 재편되는 과정을 밟게 되는데, 한편에서는 실 날 같은 한국(조선)불교의 임제정맥(臨濟正脈)을 지켜오던 선사(禪師)들과 한국불교 교학(敎學)의 정수인 화엄종장(華嚴宗匠)들이 산문 깊숙이 은거하고 있었다. 이런 몇몇 고승들은 비구승으로서의 본분을 지키고 있었다. 다만, 만해 한용운 스님의 경우는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고수하면서도 대처를 수용했던 개혁불교의 기수역할을 했다. 일본불교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의한 불교유신(佛敎維新)의 구체화였다고 보여 진다.
 
광복 후의 한국불교계는 일본불교에 의하여 재편된 일본식 왜색불교인 대처불교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한국불교계는 불교정화운동이라는 대전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은 비구 측의 승리에 의해서 한국불교승가는 명목상으로는 비구승가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처한 한국불교는 다소 무질서하고 혼란이 가라앉지 않은 불안정한 모습의 승가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뭔가 새롭게 해보려는 의지는 강했으나, 승가는 통일되지 않은 채, 비구 승가는 주로 산중사찰에서, 산중 사찰에서 밀려난 대처승들은 도시에 조그마한 사설사암을 세우면서 둥지를 틀게 되는데, 비구 승가는 승가대로 대처승은 대처승대로 어딘지 불완전한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한국불교의 어수선한 환경을 경험했던 필자로서는 도대체 한국불교의 정체성이 뭔지 모를 정도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고, 태국행을 감행하여 불교의 정체성이 뭔지 한번 탐색해 보자는 것이 태국 비구승가로의 출가였다. 태국에서 비구승가의 일원으로서 출가했던 경험이 세계불교를 보는 눈과 귀가 열리고 불교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거의 4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찾아서 마음이 편해지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마치 고향을 떠났다가 만년에 귀향하여 고향의 참 모습과 정겨움을 알게 되듯이 말이다.
 
▲ 필자가 태국에서 비구 생활할 때의 이모저모.    

내가 접한 태국불교는 계율불교(戒律佛敎)였다. 처음엔 적응하기가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 일과가 완전히 율장(律藏)대로인 태국불교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태국불교는 율장상으로는 세계불교에서 가장 정통성 있는 계맥(戒脈)을 계승하고 있었다. 부처님으로부터 율장을 전수 받은 우빨리 존자 이후, 율장의 학습과 계맥은 남.북방으로 전수되었는데 남방은 인도-실론(스리랑카)-버마=태국-스리랑카-인도(네팔)로 다시 원점 회귀했고, 북방으로 전해진 계맥은 한국(비구니계맥)에서 그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었다. 남방불교 권에서는 버마와 태국이 인도의 원형불교와 계맥을 계승하고 있는데, 계맥에 있어서는 태국이 그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동안 비구니 계맥은 1천 년 전(1070년)에 스리랑카에서 맥이 단절되어서 공백 상태였으나, 1996년 12월 인도 사르나트(녹야원)에서 한국 스님들(전 종정, 전 총무원장, 전 호계원장)과 비구니 스님들의 협력으로 11명의 스리랑카 다사실라(十戒) 여성들에게 비구니 계맥을 전수하여 현재 5천 명으로 증가해서 비구니 승단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불교의 비구(비구니)승가는 인도의 원형불교의 한 부파였던 담마굽타카(법장부)의 근본율장에 연원하면서도 스스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범망경》에 의지함으로써 본분과 뿌리를 져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음은 정말 안타가운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태국과 한국은 율장상으로는 뿌리가 같다는 말이다. 한국불교는 태국불교와 보다 더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음에도 이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전연 다른 불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오해라고 하겠다.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가 전연 다른 남.북방으로 향하다보니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언젠가는 증명되고 밝혀 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태국불교에 출가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줄 곳 태국불교와 관계를 맺어왔고, 현재도 한-태 불교 교류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40여 년 전 필자가 처음 태국 불교를 경험하기 위해서 비구승가에 입문했을 때만해도, 태국의 비구들은 한국불교를 마하야나(대승)의 한 종파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고 한국불교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국불교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달라졌다. 태국의 비구들은 한국을 꾸준히 찾고 있으며, 교류의 폭을 넓히려는 의지만이 아닌 대승불교를 연구하고 싶어 한다.
 
▲ 부산의 한 불교대학에서 열린 한-태 불교 워크샵.    
▲ 경북 성주군의 한 공장지대에 설립된 태국 불교센터.    

최근에는 태국 노동자들이 한국에 많이 와 있는 이유로, 이들을 위한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3-4만 명의 태국 노동자들이 경기도와 경상남북도의 몇 몇 공장단지에서 일하고 있다. 태국에서 스님들이 오시면 함께 법회를 보도록 돕고 있다. 이제 태국의 현대불교에 대한 소개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차회부터는 실론(스리랑카)의 현대불교를 다뤄 보고자 한다. 스리랑카불교는 남방 상좌부 권에서는 가장 역사가 긴 인도원형불교의 종주국이다. 하지만 남인도의 공격과 서구열강의 식민지화로 불교는 시련을 겪었고, 승가는 단절되었지만, 태국과 버마에서 승가의 계맥을 다시 이어왔고, 비구니 계맥은 한국에서 이어가서 현재 스리랑카 승가는 비구 비구니 승가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보검(해동 세계불교연구원장 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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