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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母性 리더십으로 ‘하늘나라’ 이뤄가는 한학자 총재
한 총재, 孝情의 전통 세워 천일국의 실체적 안착 위한 ‘비전 2020’ 주도
기사입력: 2017/02/10 [22:34]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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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통일교)은 지난 2월2일(음력 1월6일) 문선명(文鮮明)·한학자(韓鶴子) 총재의 성탄 97주년­74년을 맞아 ‘효정(孝情)의 빛 온누리에 희망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9일까지 다양한 행사를 펼쳤다.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IAPP) 세계총회와 제2회 선학평화상 시상식, 효정세계평화재단 장학금 수여식, 국제과학통일회의(ICUS), 기원절(基元節) 4주년 기념식 등의 순으로 2월9일까지 계속됐다.
 
2017년 천일국 5년(가정연합에서 사용하는 연호)의 성탄일은 가정연합의 ‘비전(VISION) 2020’(문선명 총재 탄생 100주년, 한학자 총재 탄생 77주년을 맞는 해)을 이루는 전환점이다. 한학자 총재는 이번 성탄이 ‘국가적 기반’과 ‘세계적 기반’ 위에 경축하는 자리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세계적 기독교 기반의 실패를 탕감복귀하며 세운 가정연합을 중심으로 ‘국가적 기반’과 ‘세계적 기반’을 확립하는 VISION 2020 전략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한학자 총재는 문선명 총재의 성화(聖和·타계) 이후 신도들을 대신해 문 총재 앞에 3년의 시묘 정성으로 효정(孝情)의 전통을 세우고, 4년 희망 노정을 천일국(天一國)의 실체적 안착을 위한 대전략으로 ▲전도 ▲전도환경창조 ▲천일국 인재양성을 천명했다. 이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한학자 총재의 리더십과 비전 등을 살펴봤다. 
 
‘통일교 미래’를 이끌고 있는 한학자 총재
 
“한국 여성은 전통적인 미덕으로 유명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효도, 남편에 대한 존경, 그리고 자식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 이 3가지 미덕의 전통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여성은 일반적으로 수줍음을 많이 타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용감히 일어서서 생명을 걸고 조국을 지켰습니다. 여러분에게 한국에서의 진정한 힘은 여성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설 『낯선 천국』,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랑』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호경은 저서 『문선명 평전―인류를 사랑한 평화의 성자』에서 한학자 총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평생을 문선명 총재의 뒤에서 말없이 걸어온 한학자 총재는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강연도 여러 차례 했다. 1991년 9월17일 일본에서의 강연은 뜻 깊은 행사였다. 소규모의 사람들과 통일교 신도들 앞에서는 여러 차례 설교와 강연을 했지만 수만 명이 모인 곳에서의 본격적 강연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알래스카에 머물던 문 총재는 대회를 1주일 앞두고 아내의 일본 강연을 결정했다. 9월17일 도쿄(東京)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평화여성연합 일본대회에서 한 총재는 ‘아시아와 세계를 구원하는 참사랑운동’을 주제로 이렇게 말했다.  
 
“옛말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가정이 평화의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이란 사랑 중에서도 하나님을 중심한 절대사랑을 말합니다. 즉 사랑할 수 없는 것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이어서 참사랑 속에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다는 입장에서 서로 평등한 가치를 갖게 되고, 일체가 된 부부는 하나님의 참사랑의 파트너가 되며, 창조주와 인간은 참사랑을 중심삼고 평등한 가치를 갖게 됩니다. 이제 여성 여러분이 아시아와 세계를 위하여 참사랑의 실천자들이 될 때, 오늘의 이 역사적 대전환의 시점은 일본은 물론 아시아가 세계로 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등장할 것입니다.”
 
 
한 총재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르지만 문 총재가 일본어로 강연할 것을 말하자 연설문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읽어 줄줄 외울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거창한 도쿄돔에서 강연을 무사히 끝내 일본 신도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그때를 한 총재는 “꼭 물짠 탈지면처럼 딱 기절해서 쓰러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한 총재의 강연은 편할 날이 한 번도 없었다. 해발 400m나 되는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에서는 산소호흡기를 옆에 두고 강연을 했고, 전쟁으로 폭탄이 날아다니는 크로아티아에서는 비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을 위해 밤새 기도를 올렸다. 한국의 대학을 순회할 때는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곳이 많았으며, 중동에서는 참석자들의 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했다. 아프리카 순회를 앞두고 일주일에 1알씩 복용해야 하는 말라리아 약을 잘못 처방받아 하루에 1알씩 3일을 복용하고 말라리아에 걸려 심하게 앓았다. 그럼에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나라를 옮겨다니며 강연을 했다. 1년에 153회의 강연을 하는 강행군 속에서 강력한 조명의 불빛으로 인해 시력이 나빠지고, 목이 갈라졌다. 세계 여성지도자로서 유례가 없는 대기록을 세우며 참어머니로서의 주어진 책임을 다한 것이다. <『문선명 평전-인류를 사랑한 평화의 성자』의 제12장 ‘통일교의 미래를 이끌 한학자 총재’ 중에서>    
 
한학자 총재 “북한, 통일교에 지극정성… 방북 시기 보고 있다
 
한학자 총재는 유럽 순회 중이던 2015년 5월11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힐튼호텔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다음은 한 총재가 빈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힐튼호텔 15층 펜트하우스 응접실에서 가진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냉전시대 아무나 할 수 없었던 지하선교를 우리는 했어요.” 한 총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남편인 문선명 총재가 유럽에서 이룬 성과 중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한 총재는 냉전시대 동구권 선교의 기지였던 오스트리아에 “19년 만에 왔다”며 “내가 온다니까 유럽 35개국에서 2500명의 식구들이 왔다. 32시간을 운전해서 왔다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한 총재는 5월10일 빈 오스트리아센터에서 열린 통일교 유럽선교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고, 이날은 빈에 있는 유엔 제3사무국에서 ‘유엔 70주년: 한반도의 긴장관계 해소를 위해’라는 주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연설을 했다. 한 총재는 이후 국내 기자들과 간담회 형식을 빌려 인터뷰를 했다.   통일교 측에 따르면 한학자 총재가 기자들과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남편의 뒤를 이어 통일교를 이끌고 있는 한학자 총재는 국내에서 적지 않은 관심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문선명 총재가 일군 ‘통일교 왕국’을 순조롭게 유지해 나갈지가 세간의 관심사였다. 통일교는 국내에만 13개 계열사를 둔 자산 1조7000억원 규모의 통일그룹 등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교세를 일궈 왔다. 전세계 신도 수는 일본 60만명을 비롯해 300만명 가량 된다.
 
특히 한 총재는 문선명 총재 성화 이후 자녀들과의 관계로 주목을 받았다. 그룹을 책임지던 4남 문국진씨와 종교 부문을 맡고 있던 7남 문형진씨 모두 손 떼게 했다. 여의도 파크원 부지를 둘러싸고 통일교 측과 소송을 벌이는 등 갈등을 빚어온 3남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GPF) 이사장에 대해서도 ‘잘못을 뉘우치고 교회 재산을 원상 복귀해야 받아주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리고 2015년 3월 5녀 문선진씨를 통일교 세계회장에 임명했다.
 

통일교 측은 “현재 한 총재는 문선명 총재 못지않은 카리스마와 모성(母性) 리더십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서 본 한 총재는 7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톤이 높은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혈색도 좋았다. 한 총재는 “건강관리를 위해 좀 걷는다”며 “나이 들어서 까지 이렇게 돌아다녀야 하니까…”라고 했다. 한 총재는 유럽선교 50주년을 맞아 이번에 유럽을 일주한 후 미국에 들러 라스베이거스에 설립되는 통일교 교육원 개소식에 참석한 뒤 귀국하는, 42일간의 해외 일정을 소화한다고 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문선진 세계회장을 비롯해 문연아 세계평화여성연합 회장,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문연아 회장은 한 총재의 장남인 고(故) 문효진씨의, 문훈숙 단장은 차남인 고 문흥진씨의 부인이다. 문훈숙 단장은 이번에 리틀엔젤스를 이끌고 유럽 행사에 동행했다. 이들 딸과 며느리들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한 총재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한 총재는 선교 50주년을 맞는 유럽에서는 통일교 신도들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총재는 “유럽은 기독교 역사와 문화의 꽃”이라며 “유럽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통일교로) 모인다. 그게 미래의 희망”이라고 했다. 통일교 측에 따르면, 현재 유럽의 통일교 신자는 3만명 가량. 독일, 영국, 프랑스 등 3개국에 각각 5000명가량이 있고 1만5천명정도는 동유럽에 있다고 한다. 통일교 측은 동성결혼이 허용되고 전통적인 가정이 흔들리는 지나친 진보 흐름에 대한 반작용으로 통일교가 유럽인들에게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총재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유럽선교 50주년 행사에서 프랑스와 알바니아에서 청소년 신도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며 통일교 청소년 교육센터 건립비용으로 두 나라에 각각 100만유로씩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학자 총재가 강조한 냉전시대 동유럽 지하선교는 ‘승공운동’ 차원에서 1968년부터 시작됐다. ‘프라하의 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를 중심으로 지하선교를 벌여 공산권 체코에만 100명가량의 신도를 확보했지만 선교사들이 투옥되는 등 심한 탄압을 받았다고 한다. 1974년 4월에는 현재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 감옥에 투옥돼 있던 선교사가 순교하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통일교는 동구권 지하선교를 ‘나비작전’으로 명명했다. 선교 교육을 받은 신도들이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주변에 “교회를 떠났다”고만 말한 뒤 ‘나비’가 돼 동구권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빈 오스트리아센터에서 열린 유럽선교 50주년 행사에서는 1994년 통일교 최초의 순교자로 공인된 여성 선교사 등 ‘나비’들의 영상이 소개되기도 했다.   
 
한 총재는 말년에 초종교 활동과 평화운동에 전념했던 문선명 총재와는 달리 자신은 선교에 주력할 의향을 내비쳤다. 한 총재는 “아시아 선교에도 집중하고 있다”며 “태국·인도·네팔 등에서 확장을 하고 있고 라오스·베트남 등에서는 청소년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다”고 했다. 한 총재는 문 총재 성화 이후 축구대회인 피스컵(Peace Cup) 행사를 중단하는 등 통일교가 벌여온 일들에 대한 일종의 구조조정을 단행해왔다. 이와 관련, 한 총재는 “(문 총재가) 하셨던 일을 다 계속하면 좋죠. 하지만 우선이 먼저인 거예요”라며 핵심 과제에 집중할 계획임을 밝혔다.
 
특히 한 총재는 젊은 지도자 육성에 우선적으로 투자할 계획임을 밝혔다.
 
“내가 70억 인류를 내 자식으로 생각하고 길을 열어주려는 사람인데, 사회사업을 할 수 있으면 해야죠. 앞으로는 더 할 거예요. 미래의 지도자, 하나의 세계로 나가는 길을 인도할 수 있는 많은 지도자를 배출해 내려고 합니다. 거기에는 내가 아끼지 않을 거예요.”  
 
한 총재는 2013년 1000억원 기금 규모의 원모평애재단이라는 장학재단을 발족시켰다. 원모평애재단은 2015년 3월 세계 68개국 2000여명에게 100억원의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민간 장학재단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재단법인 효정(孝情)세계평화재단(효정재단) 원모평애장학원은 지난 2월5일 ‘2017 장학증서 수여식 및 봉사상 시상식’을 갖고 국내외 대학생 등 2000여명에게 장학금 100억원을 전달했다.   
 
한 총재는 통일교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북한 방문 의사도 내비쳤다.
 
“평생 위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나라를 위한다면 못할 게 없죠. (방북) 시기를 보고 있어요. 되도록이면 양쪽(남북한 정부) 면을 세워 줘야 하잖아요.”  
 
한 총재는 현재 북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아놓은 상태라는 게 통일교 측의 설명이다. 2012년 문선명 총재가 성화했을 때 김정은이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을 통해 유족들에게 조전(弔電)을 보내면서 한 총재 초청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당시 평양 세계평화센터에 차려진 문선명 총재 분향소에 장성택 당시 국방위 부위원장과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방문해 김정은 명의의 조화를 방북했던 7남 문형진씨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한 총재는 “북한에서는 (우리에게) 지극정성이에요. 문 총재님과 김일성 주석과의 관계는 굉장히 끈끈했어요. 김정일·김정은 위원장이 다 (통일교에 대한 김일성의) 유지(遺志)를 받들었어요”라고 말했다. 
 
▲ 2015년 5월10일 빈에 있는 오스트리아센터에서 열린 통일교 유럽선교 50주년 행사에 모인 유럽의 통일교 신도들.  

북한에서 평화자동차, 보통강호텔, 세계평화센터 등 7~8개의 현지법인을 운영해온 통일교는 자동차 사업의 운영권과 지분을 북한에 다 넘긴 후 새로운 사업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교는 평화자동차와 북한 조선민흥총회사가 7 대 3의 비율로 출자한 남북 최초의 합영기업인 평화자동차총회사의 지분을 문선명 총재 성화 이후인 2013년말 북한에 무상 양도했다. 한 통일교 관계자는 “평양에 이마트와 같은 유통업을 설립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한 총재는 인터뷰에서 “내가 어려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라면서도 기자들에게 통일교의 교리를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통일교를 이단시해온 기독교에 대해 언급했다.
 
“기성 기독교가 잘못했어요. (문 총재가) 위하여 사는 참사랑을 말씀하시면서 나왔기 때문에 (기독교와) 싸우지 않았죠. 이론적으로 대화하게 되면 기성 교인들이 말할 게 뭐가 있어요. (우리에게) 달려요. 그러니까 자기들이 무서워서 자꾸 (우리를) 나쁜 쪽으로 말하는 거예요.”   
 
한 총재는 “기독교인은 무슨 신앙을 갖고 뭘 기다려야 하는지 잘 모른다”고 했다.
 
“예수님은 2차 아담으로 오신 분이에요. 그런데 상대를 이루지 못했어요.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다시 오마고 했어요. 그때 말씀하신 것이 내가 와서 어린 양 잔치를 한다 했어요. 요한계시록에도 나와요. 이게 뭐예요. 결혼한다는 거예요. (예수 이후) 기독교 2000년 역사는 독생녀 기반을 닦아 나온 거예요. 기독교인들이 이걸 몰라요.”   
 
한 총재는 문 총재와 자신을 ‘참부모’로, 스스로를 ‘독생녀’라고 지칭했다. 예수가 이루지 못한 가정을 문 총재와 자신이 이루었다는 의미였다. 한 총재는 “가정 완성이 중요한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가정을 가지라고 했는데 참가정을 잊어버렸다”며 “복귀섭리는 가정이라는 이상의 완성이다. 그 모델이 참부모”라고 말했다.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1960년 17세의 나이에 23살 연상인 문선명 총재와 결혼해 7남7녀를 둔 한학자 총재는 자신이 문 총재를 만난 것 자체가 섭리라고 했다.
 
“일본 압제하에 있을 때 외삼촌이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했어요. 그분이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남한에 가서 군대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외할머니와 어머니, 내가 외삼촌을 보러 내려왔다가 38선이 터진 거예요. (6·25전쟁 발발) 그렇게 하늘은 나를 인도해 (북한에서) 빼내왔어요.”   
 
한 총재는 “문 총재도 (공산치하의) 이북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고 이북으로 갔다가 흥남감옥소에 갇혔다”며 6·25 한국전쟁 발발 이후 “소련이 (유엔안보리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 유엔 파병이 결정돼 결국 유엔군에 의해 문 총재가 감옥에서 나오게 됐는데 그것도 다 하늘의 섭리”라고 주장했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문선명 총재는 1948년 2월부터 1950년 10월까지 흥남감옥소에 수감돼 있다가 사형 집행일 전날 유엔군에 의해 풀려났다는 것이 통일교 측의 설명이다. 통일교 창립 이후 모든 행사에 남편과 동행했다는 한 총재는 “우리는 목적이 같았다”는 말도 했다.
 
“최종 오시는 메시아 부부가 탕감(蕩減·어렵게 나아간다는 의미) 복귀섭리의 역사를 완성해야 해요. (결혼할 때)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선택받았으니 내가 책임진다고 결심했죠. 그러니까 부부싸움 할 일이 뭐가 있었겠어요.”   
 
한 총재는 문 총재가 떠난 이후에도 통일교가 계속 성장세를 이어가야 한다는 점을 이번 유럽 행사 기간 내내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한 총재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유럽선교 50주년 행사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감람나무(올리브)가 뿌리내리는 데는 15년이 걸리지만 2000년 넘게 생존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유럽 선교가 50년에 걸쳐 뿌리를 내린 만큼 하나님의 복귀섭리 역사를 앞당기는 세계 중심대륙으로서 사명을 다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특히 한 총재는 자신의 사후(死後)도 대비하고 있다는 게 통일교 측의 설명이다. 혈통보다 법통을 중시해온 한 총재의 성향에 비춰 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후계구도에서 자식들을 배제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주목받고 있는 것은 2013년 8월 한 총재에게 전달된 ‘천일국 헌법’. 통일교 측은 “천일국 헌법에는 최고의결기관인 천일국최고위원회의 구성과 권한 등이 명기돼 있다. 한 총재는 유고(有故)까지 염두에 두고 최고위가 당신의 권한까지 대행하도록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최고위가 가정연합의 후계구도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유럽과 통일교… 냉전시대 동구권 지하선교 주력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유럽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65년. 당시 문·한 총재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바티칸 교황청까지 40여일동안 유럽 16개국을 돌았고, 19개 성지를 정했다. 이후 20여차례 유럽을 방문하면서 선교에 주력해 왔다. 1969년 3월28일 독일 에센에서 8쌍의 합동결혼식을 주례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에서도 합동결혼식을 이어갔다. 안영식 통일교 유럽대륙회장은 “유럽의 통일교도는 1970년대 중반 가장 많이 늘었는데 지금 신도 수의 60%가량이 그때 가입했다”며 “유럽에서 히피운동이 벌어지면서 순결이 무시되고 전통적인 가정이 해체될 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통일교가 호응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도 동성애에 반대하고 가정의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층에서 “통일교를 부르고 있다”는 게 안 회장의 말이다.   
 
실제로 2015년 5월10일 빈 오스트리아센터에서 열린 50주년 선교행사에 모인 유럽 신도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한국의 코엑스 같은 대형 행사장을 유럽 35개국에서 모인 2500명의 신도들이 가득 메웠다. 파란 눈과 금발의 유럽인들이 동시통역기와 영어자막에 의지해 한학자 총재의 한국어 연설을 경청하고, 통일교가인 ‘천일국가’를 한국어로 부르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상당수 유럽 신도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행사장에 왔다.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주재한 합동결혼식을 통해 가정을 이룬 유럽의 통일교 신자들은 1세대를 이어 2세, 3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통일교 측의 설명이다.   
 
통일교 측에 따르면, 냉전시대 동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지하선교는 공산주의의 심장부인 구(舊)소련을 무너뜨리는 데도 기여를 했다고 한다. 문선명 총재는 고르바초프 서기장 집권기(1985~1991년) 때 순차적으로 구소련 대학생 5000명을 미국에 7박8일간 보내 자유세계를 경험하게 했고, 이들에게 통일교의 원리(핵심 교리) 교육을 시켰다. 1990년 고르바초프를 만나 개혁개방 지원을 약속하며 그 반대급부로 요구한 일이었다. 고르바초프가 한때 수구세력들에 연금 당했을 때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탱크에 맞선 시위대 중에는 이들 ‘문선명 키드(kid)’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 통일교 측의 설명이다.  
 
문선명 총재는 1985년 스위스 제네바 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세계평화교수협의회(PWPA) 국제회의에서 ‘때 이른’ 소련 공산제국의 멸망을 확언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87년 독일 베를린 장벽 앞에서는 통일교 젊은 신도들의 모임인 대학원리연구회(CARP) 회원 2000여명이 세계평화와 베를린 장벽 철거를 위한 평화행진을 벌였는데, 이는 베를린 장벽 설치 이후 가장 규모가 큰 국제 집회로 기록됐다는 것이 통일교 측의 주장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유럽선교 50주년 행사에서는 문 총재의 장남인 고 문효진씨가 베를린 시위 당시 격정적인 영어 연설을 하는 동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  유럽, 특히 독일은 통일교 입장에서는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중요한 곳이다. 문선명 총재는 생전에 “평화를 위해서는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 간의 기술 격차가 없어져야 한다”며 이른바 기술평준화를 주장했는데, 그 발상지가 독일이었다고 한다. 문 총재는 1981년 독일에 와서 6개월간 독일의 기계공업단지를 둘러본 후 독일 업체들을 잇따라 인수했다. 특수공작기계업체인 ‘반도르’와 ‘하일겐슈테드’ ‘혼스백’ ‘부르세’ 등으로 이들 독일 업체들의 기술은 창원에 들어선 방산업체 통일중공업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유럽에서 통일교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공산권뿐 아니라 기독교 세가 강한 서유럽에서도 적지 않은 탄압을 받았다. 문선명 총재의 경우 1990년대 중반부터 서유럽 15개 국가에 여러 가지 이유로 입국이 금지됐다. 이 기간 유럽의 부흥은 한학자 총재가 이끌었다. 문 총재에 대한 입국금지는 10여년간 유지되다가 해제됐다. 독일에서는 2007년 최고연방법원에서 문 총재를 입국 금지 리스트에 올린 것에 대해 위헌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유럽의 경우 한국 주민등록 같은 서류에 자신의 종교를 의무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나라들이 많은데, 아직 통일교를 공식 종교로 인정하지 않은 유럽 국가들도 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선교 40년이 된 2015년 비로소 통일교가 공식 종교로 인정받았다.  
 
문선명·한학자 총재 “타락에 빠졌던 미국 일깨워”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허드슨강 상류를 따라 4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면 벨베디어(Belvedere) 가정연합 수련원이 나온다. 허드슨강을 옆에 둔 벨베디어 수련원은 고전 영화의 무대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27에이커(3만3100평) 규모의 수련원은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경관’이라는 뜻의 벨베디어는 허드슨강과 초원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이 땅을 1972년 사들여 가정연합의 미국선교 거점으로 삼았다.   2016년 6월5일 뉴욕 테리타운 벨베디어 수련원 입구에는 ‘하나님이 축복한 미국 가정 축제(God Bless America Family Festival)’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축제는 가정연합이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1976년 6월1일 개최한 뉴욕 양키스타디움 대회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오전 10시 행사가 시작되자 ‘유 아 마이 선샤인(You are my sunshine)’ 등 낯익은 노래들이 흘러 나왔다. 뉴저지와 워싱턴DC 등 미국과 캐나다 동부지역에 사는 3000여 명의 가정연합 신도들은 가족과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 흥겨운 노래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행사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한식 체험, 태권도 시범 등 볼거리도 많았다.
 
“가정연합 신도이기 이전에, 당신에게 한국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질문을 하자마자 팟시 카시노는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흑인여성인 그녀는 63살로, 중학교 교사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감정이 북받치게 했을까.
 
“어린 시절,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어요. 수년 동안 가족과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는 7남매였는데, 아버지에 대한 소식은 편지로만 받을 수 있었어요. 저는 아직도 아버지가 한국에서 보내주신 인형을 가지고 있어요. 남자와 여자의 인형인데-아마도 신랑각시 인형인 듯했다-그때 우리 집은 돈도 없고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팟시의 아버지에 대한 회상은 계속됐다.
 
“아버지께선 인종차별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해오셨어요. 제가 문선명 목사를 만났을 때 문 목사는 반공과 인종 구별 없이 인류가 하나의 형제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거기에 감동했어요. 어머니는 가톨릭신자였는데, 아버지는 딱히 믿는 종교는 없었지만 제가 하는 활동에 대해 지지해주셨습니다. 저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1976년 미국에서 공산주의 위협 경고
 
1976년 6월1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 한국에서 온 종교지도자 문선명 총재가 나타났다. 5만명이 모인 당시 집회는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해 ‘미국은 하나님의 소망’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문 총재는 “공산당의 위협과 청소년의 윤리적 파탄을 막지 않고서는 미국에 희망이 없다”며 “미국의 의사요, 소방수로 왔다”고 역설했다. 가정연합은 양키스타디움 행사를 해외 선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억한다. 문 총재는 이후에 미국 선교를 결심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회고했다. 
 
“1972년 미국에 왔을 때 세계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공산주의로부터의 위협이었습니다. 둘째는 기독교의 몰락이요, 셋째는 윤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청소년문제였습니다.”
 
2016년 6월5일 이 행사에서 한학자 총재는 40년전 당시를 회고하며 “청교도의 나라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는데, 기대와 달리 미국엔 퇴폐문화가 만연했다”며 “우리는 양키스타디움 대회를 통해 타락에 빠진 미국을 다시 일깨웠다”고 말했다.
 
▲ 한학자 총재가 2016년 6월5일 미국 뉴욕 테리타운 벨베디아 야외광정에서 열린 ‘미국에 축복을! 가정페스티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원고 없이 이뤄진 연설에 신도들은 20차례 박수와 환호로 호응했다. 특히 미국의 역할을 강조한 내용에 미국에 터를 잡고 있는 신도들이 크게 공감했다. 한 총재는 미국 신도들에게 “미국은 (가정연합이 진출한) 200여 국가 중 큰형과도 같은 나라로 형제자매들이 하나가 돼 다 같이 잘살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며 “인류가 자랑스러워하는 미국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1976년 행사 참석자들의 회고
 
40년 전 행사에 참여했던 가정연합 신도들에게 1976년 6월 뉴욕 양키스타디움 집회는 큰 의미가 있다. 톰 맥더빗 워싱턴타임스재단 이사장, 신묘 다다하키 전(前) 통일신학대학원 총장, 팻시 카시노 버지니아주 사우스카운티 중학교 교사 등 40년 전 행사에 참석했던 가정연합의 산증인들에게 행사의 의미를 물었다.  
 
“한국 종교인이 기독교의 나라 미국에서 그처럼 큰 종교 행사를 한 경우는 없었어요. 가정연합은 고난 극복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줬고 당시 문 총재가 주장한 미국의 역할은 오늘날 대선 후보에게 들려줘도 손색이 없는 가르침입니다.” (톰 맷더빗 이사장)
 
“문선명 총재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을 두루 만나 냉전 종식에 큰 역할을 했어요.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의 헌신을 요구하셨죠.” (신묘 다다하키 총장) 
 
“어린 시절 흑인으로서 인종차별을 많이 당한 저로선 인종과 국적을 넘나드는 가정연합의 국제결혼을 시대를 앞서는 실천철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흑인도 백인도 동양인도 없다고 선언했던 문 총재의 이야기가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팻시 카시노 교사)
 

▲ 1976년 6월1일 미국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강연하는 문선명 총재(좌측). 오른쪽은 당시 통역을 맡았던 박보희 전(前) 워싱턴타임스 회장    

◆1970년대 공산주의 위협에 대한 경고 
 
가정연합이 미국에 뿌리 내리게 된 배경을 보면 1970년대 공산주의 위협에 대한 문 총재의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뉴욕 맨해튼 소재 뉴요커호텔에서 만난 5선 경력의 댄 버턴(Dan Burton·사진) 전 미국 하원의원(1983~2013)은 이렇게 설명했다. 댄 버튼 전 의원은 2월3일 서울에서 공식 출범한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IAPP)의 공동의장을 맡아 서울에 왔었다.
 

­-문 총재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문 총재가 강한 반공사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기에 (저와) 의견이 맞았어요. 1976년 뉴욕 양키스타디움 대회에 참석했는데, 참 애국심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연 내용 중에 반공과 공산당의 위협에 대해 이야기했던 부분이 기억이 남아요. 또 미국이 왜 강해야 되는지도 이야기했죠.”
 
-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과거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남북통일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북한이 핵무기를 생산하고 운반기술을 발전시키면 한국과 미국은 물론 미국까지 영향권에 들어서게 됩니다. 한국, 일본 등은 미국과 좀 더 관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가정연합은 미국에 신문(워싱턴타임스), 호텔(뉴요커), 문화공연장(맨해튼센터), 대학교(브리지포트), 합창단(국제새소망), 교향악단(뉴욕심포니오케스트라), 록밴드(선버스트), 무용단(국제민속), 관현악단(고월드브라스밴드) 등의 단체를 이끌고 있다.  언론, 교육,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에 뿌리내리게 배경인 것 같다. 김기훈 가정연합 북미대륙 회장은 “문선명·한학자 총재 신앙의 조국은 한국이지만, 가정연합을 세계적인 종교로 키운 곳은 미국이었다”며 “교육 주력, 가정교회 활성화, 통일경전 확립 등 문선명 총재 성화 직후 한학자 총재가 밝힌 교단의 3대 미래 비전을 가슴에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정연합의 미국 진출 
 
1972년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미국 워싱턴교회에서 ‘통일전선 수호’를 연두 표어(標語)로 발표했다. 당시 문 총재는 “신도들에게 민주세계는 공산주의 위협으로 인해 절박한 위기에 봉착하고 있으며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기독교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기독교의 각성과 미국인들에게 공산세계 위협에 대비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7대 도시 대강연회를 추진했다. 조직도 결성했는데, 1월8일 통일십자군(One World Crusade)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전도활동을 전개했다. 통일십자군 조직은 1973년까지 40개로 나뉘어 각 주(州)에 배치됐다. 1973년 2월2일 뉴욕 월가 광장에서 ‘하나님의 대회(Rally of God)’를 개최하고, 2월3일부터 3월6일까지 뉴욕,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버클리 등 7대 도시 강연회를 개최했다. 강연회에서 문 총재는 “기독교 정신의 부흥과 혁명을 일으키고 미국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이 땅(미국)에 왔다”고 선언했다.   1973년 10월1일부터 1974년 1월29일까지 4개월간 21개 도시 ‘희망의 날’ 대강연회가 ‘기독교의 위기와 새로운 소망’이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1974년 2월 15일부터 4월 20일까지 앞서 열린 21개 도시를 제외한 32개 대도시에서 ‘기독교의 새로운 장래’를 주제로 공개강연회를 연장했다.
 
◆문선명 총재, 닉슨 대통령과 회담
 
 1972년 6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비밀공작반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닉슨 대통령은 1974년 8월 사임했다.   문선명 총재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닉슨의 위기가 곧 미국의 위기라고 보고 1973년 11월30일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이 사건이 대통령 한 사람이 책임짐으로써 끝날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경제적 위기를 초래하고 세계 영도력 상실의 틈을 노려 공산주의가 득세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워터게이트’ 선언을 발표했다. 닉슨은 문 총재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며 화답했다. 1974년 2월1일 닉슨은 문 총재를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1976년 뉴욕 양키스타디움 대회 성공
 
1976년 6월1일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는 뉴욕 양키스타디움 대회가 5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주제는 ‘미국은 하나님의 소망’이었다. 일련의 활동으로 6월14일 미국 시사매거진 《뉴스위크》는 문 총재를 표지에 실었다.  
 
1976년 9월 18일 워싱턴 모뉴먼트 광장에서 3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미국 건국 200주년 기념 대강연회가 열렸다. 미국 종교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진 행사는 ‘하나님의 뜻과 미국’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당시 문 총재는 “하나님은 이 나라에 새로운 계시를 전하기 위해, 특별히 퇴폐적인 미국 청년들을 구해 주고 미래의 지도자가 될 젊은이를 인도하라고 나를 보내셨다”고 말했다. 당시 강연회에서 문 총재는 모스크바에서 강연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이러한 목표는 14년 후에 달성됐다.  
 
1990년 4월10일부터 13일간 모스크바에서 41명의 전직 정상들을 포함한 언론인, 정치인, 학자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모스크바 대회가 열렸다. 4월11일에는 문선명·한학자 총재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의 회담이 열렸다. 문 총재는 소련과 독립국가연합(CIS) 대학생과 지도자급 인사들을 미국으로 연수시키는 프로그램을 추진했는데, 1990년 7월1일부터 8월19일까지 4차례에 걸쳐 380명의 소련 대학생들이 미국 통일신학대학원(UTS)에서 열린 국제지도자세미나에 참석했다.  미국 선교의 어려움에 대해 문 총재는 1975년 1월16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희망의 날 한국 만찬회에서 “미국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을 미국에 투입할 수 있었다”며 “하나님이 오늘날 미국을 찾아오시기까지 흘리신 피와 땀과 눈물의 수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난 30년간 미국에 있으면서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지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13명의 자녀 낳아 기르며 문선명 총재 아내로서 살아온 삶"
 
한학자 총재의 삶은 어떠했을까. 문선명 총재와는 달리 국내외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던 한 총재에 대해 월간지 ‘여성조선’이 한학자 총재를 인터뷰해 2003년 3월호에 게재한 바 있다. 다음은 이 기사를 정리한 것이다.
 
문선명 총재의 아내이자 세계평화여성연합의 대표인 한학자 총재. 지난 2월5일 한 총재의 회갑기념 '세계평화정상회의'에는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압두라만 와히드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비롯, 베티 윌리엄스와 라모스 헤르타(노벨수상자) 등 세계 정상급 리더 150여 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한 총재, 그녀의 삶을 따라가 봤다.
 
국내 언론에 별로 드러나지 않았던 한학자 총재는 그동안 해외에서 많은 활약을 해왔다. 동양여성으로는 최초로 유엔총회장, 미국 국회의사당, 중국의 인민대회당 등 세계 중심부에서 '세계 평화와 여성의 역할'이란 주제로 강연했고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1960년 23세 연상인 문선명(83) 총재와 결혼한 지 이제 무려 42년. 종교지도자의 아내이자 13명 자녀의 어머니로 살아온 60년은 많은 이들의 모범이 되어왔다. 황선조 가정연합 한국회장(현재 선문대학교 총장)은 "많은 오해와 종교적인 박해 속에서도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하나의 목적으로 살아온 분"이라고 말했다. 

▲ 문선명­한학자 총재 1990년 4월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과 만났고 1991년 12월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났다.    

◆고르바초프, 김일성 주석 등과 만남 갖기도
 
한학자 총재는 1년 중 4분의 3은 외국에 나가 있다. 미국과 한국을 근거지로 세계 185개국에서 종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단체인 '애원'을 통해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세계 난민촌에 대한 구호활동도 벌인다. 황선조 회장은 "한학자 총재는 그동안 도덕성 회복운동, 순결 참가정운동을 국제적으로 전개해 왔다"고 설명했다.
 
"지난 1992년 7월 미국 의회에서 초청 받아서 강연을 했는데 '미국이 정말 세계 중심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 면에서 건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로마처럼 무너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국회의원이 '가정회복의 날'을 정하자는 의견에 일치, 7월 네 번째 일요일을 부모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특히 외국 유명 인사들과의 다각적인 교류는 무척 활발하다. 1990년 4월에는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과 영부인 라이사 여사를 만났고, 91년에는 남북관계가 극히 냉랭해진 가운데 북한을 전격 방문해 김일성 당시 주석을 만나 남북교류에 대한 회담을 하기도 했다. 지난 94년과 95년에는 한-일 역사관계를 풀기 위해 각각 16만 쌍의 한-일(韓日) 여성자매결연, 8000쌍의 미-일(美日) 여성 자매결연을 성사시켰다.
 
 한 총재는 이렇게 문화예술활동(리틀엔젤스예술회관, 선화예고, 유니버설발레단 등), 교육사업(선문대학), 언론사업(세계일보, 워싱턴타임스, UPI 등), 대북사업을 해나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땅에서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렇게 수많은 사업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돈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 세상은 인종 갈등, 문명 충돌, 종교간 갈등이 더 심해지지 않았습니까? 종교가 사회적인 병을 고쳐야 하는데 고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종교만이 아닌 다양한 사업을 통해 이 땅에서 평화를 이루고 싶은 겁니다.“
 
 한 총재는 "평화를 위해서는 당파성을 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종교를 갖는 이유를 죽어서 천당에 가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살아서 천국의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서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종교의 역할은 이 땅에 원래 하나님이 바라던 이상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 모든 종교인들이 서로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타종교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 서로 포용하고 이해해야죠."

 
◆13명의 자녀 중 하버드 출신만 4명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학자 총재의 개인적인 삶은 어떨까. 한 총재는 평안북 도 안주 출신이다. 1960년 문선명 총재와 결혼한 후 몸소 출산해 키운 자녀만 해도 딸 6명, 아들 7명으로 13명이다.
 
 "문선명 총재는 어떤 분이냐?"는 질문에 한 총재는 "하나님밖에 모르는 분"이라고 답했다.
 
“하루에 2시간 남짓 주무시면서 기도를 드리는 분입니다. 원리에 어긋나면 누구나 용서가 없을 정도로 엄격하게 하시지만, 인간적으로는 누구보다 다정다감합니다."
 
 종교 지도자의 아내로서 내조가 궁금했다. 특히 가정을 중요시하다보니 한 총재는 언제 어디에서든 문선명 총재와 함께 해야 했다. 해산한 지 며칠 안 된 몸으로 공식행사에 나서야 할 때도 있었다.
 
"100% 노출된 생활입니다.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공인으로서 생활하지요. 그러다보니 자녀들 얼굴 보기가 어려울 때도 많았습니다. 외국에 자주 나가 있을 때도 많았는데 그럴 때면 편지를 자주 썼습니다."
 
황선조 회장은 "문 총재의 리더십은 햇빛 유형이라면, 한 총재의 리더십은 달빛 유형"이라며 "침묵으로, 기다림으로 감동을 주는 분으로, 늘 외부식구들을 보살피고 어루만지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 한학자 총재의 일본순회 강연 때 동행했던 부시 전 미국대통령 부부와 함께    

자녀들은 현재 장성해 막내만이 대학에 다니고 있다. 13명의 자녀들 중 4명이 하버드대를 졸업할 정도로, 각 방면에 재주가 많다. 문화예술 분야, 경영 분야, 스포츠 분야 등에서 나름대로 일을 해오고 있다.
 
한학자 총재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외유내강형'의 모습을 보였다.
 
"부드러울 때는 부드럽지만 원칙을 어길 때는 무척 엄했습니다. 일요일 새벽 5시에 모든 가족이 모여 기도의식을 갖는데, 그때면 아이들은 물론 생후 40일이 지난 손자까지도 참석해야 합니다. 정도(正道)에 어긋나면 아주 엄하게 교육했습니다."
 
측근에 따르면 한 총재는 생활면에서도 무척 검소하고 소탈하다고 한다. 아랫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저녁식사도 함께 하고, 정이 많아 자신의 손에 들어온 물건은 뭐든지 다른 사람에게 나눠줘 버린다고. 심지어 결혼반지도 누구에겐가 줬을 정도라고 한다.
 
◆세계평화는 가정평화부터
 
 한학자 총재는 통일교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아직도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이유에 대해 "이해의 부족 때문"이라고 못박았다.
 
 "초창기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는데, 그 핍박 가운데는 많은 부분이 사실과 왜곡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을 때 진실인 줄만 믿은 경우가 많이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사실을 사실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 편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각자 끼고 있는 색안경을 벗어버리면 좋겠습니다.“
 
지난 2000년 유엔본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 NGO(비정부기구)연합으로부터 '만국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한학자 총재는 앞으로도 "평화세계를 위해 힘닿는 대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학자 총재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많은 나라에서 강연을 했다. 사진은  1993년 유엔본부의 초청을 받아 유엔 총회장에서 강연하고 있는 한 총재의 모습.  

"저희는 처음부터 국제합동결혼식에서 부부가 공동 주례를 서 왔습니다. 1960년에 36쌍을 시작으로 2002년에는 4억쌍이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저는 사회의 기본인 가정에서 평화를 이룬다면 세계 평화는 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부부가 서로 위해주는 마음이 없게 되면 쉽게 헤어집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자신 이상으로 사랑해주고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남을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에 그렇습니다. 남편을 통해서, 아내를 통해서 내가 완성되어간다고 생각하고 서로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는 회갑기념으로 전국 3000여 읍·면·동에서 불우이웃 돕기를 포함한 평화강연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단순히 종교지도자의 아내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여성지도자로서 많은 역할을 해온 한학자 총재. 앞으로 더 큰 활동이 기대된다.
<수암(守岩) 문윤홍·칼럼니스트/논설위원·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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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17/02/20 [22:15]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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