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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天問天答 92

담선(談禪)공부 모임 | 기사입력 2017/02/16 [06:48]
‘眞理’에 대한 증거는 스스로 ‘진리’가 되는 것

통찰! 天問天答 92

‘眞理’에 대한 증거는 스스로 ‘진리’가 되는 것

담선(談禪)공부 모임 | 입력 : 2017/02/16 [06:48]
연재 취지-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밝힌다
인간이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인간들은 그러한 역경 앞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실감 하면서
그러한 한계를 타파해 줄 -무언가-에 의지하고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무언가-를 찾아서
인류문명과 문화가 발전을 해 왔다 할지라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로 인한 대립이 극에 치달았고,
그로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가치보다, 이념가치보다,
사상가치보다, 종교적 가치보다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비록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우침으로 해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일깨워 나가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지성 인류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이루든지, 무엇을 믿든지, 어떠한 삶을 살든지,
그러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아는 것,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것은 상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식과 인간정신과 더불어
보편진리와의 거부할 수 없는 상관관계를 밝혀나가 보고자 합니다.
 
‘眞理’에 대한 증거는 스스로 ‘진리’가 되는 것
 
질문172: ‘진리(眞理)’에 대한 증거는 ‘진리’가 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하십니다.
 
단언컨대 그러합니다. 그 외에는 다 헛되다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말미암은 ‘자유’만이 스스로 깨우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참된 도리 참된 이치, 즉 누구든지 꿈을 꾸고 있으며, 꿈을 깨고 나서야 그 꿈을 내가, 즉 ‘나’가 꾸었다는 것을 압니다. 비록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즉 무의식상태라 할지라도, 즉 그 꿈을 내가 꾸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할지라도, 그 꿈을 내가, 즉 ‘나’가 꾸고 있다는 사실은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꿈을 ‘나’가 꾸고 있으며 꾸었기 때문에 꿈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무엇이라 할지라도, 의식작용이자 꿈일 수밖에 없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참된 이치는 ‘나’ 일수밖에 없습니다.
 
 
질문173: ‘내가 존재 한다’는 것이 그림자와 같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에고의 실체는 바로 이 그림자라 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존재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알려질 수가 있는 ‘내가 존재 한다’는 실체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체는 오직 일체로서 알려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존재 한다’는 그림자, 즉 환영과 같습니다.
따라서 구속과 속박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 한다’, 즉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 즉 환영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따라서 구속과 속박, 번뇌를 해결하기 위해 행하는 일련의 모든 일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나’는 ‘내가 존재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174: 저 나름대로 많은 수행과 수련을 통해 많은 영(靈)적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진경님의 이야기는 제 학식을 벗어납니다.
 
태어나서 이룬 많은 것들을 저는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생에서 수행과 수련을 통해 이룬 많은 영적 앎들을, 태어나기 만 하루 전에 알 수가 있습니까?
 
태어나지 않는 것이 시작과 끝에 의해 훼손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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