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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天文學)의 시원민족

원영진 | 기사입력 2017/04/25 [06:43]
과학의 날을 맞아 깊은 자긍심과 민족적 긍지

천문학(天文學)의 시원민족

과학의 날을 맞아 깊은 자긍심과 민족적 긍지

원영진 | 입력 : 2017/04/25 [06:43]

천문학의 역사를 말하면 자연과학 중에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학문으로 표현한다. 천문학이 고대인들의 생존과 직결된 생활학문이기 때문이었다.
 
시리우스가 해뜨기 직전에 나타나면 나일 강이 범람하는 것으로 전통을 배운 이집트인들, 북극 칠성이 가까이 보이면 죽음을 관장한다는 고대 중국인들의 믿음이 있었다.
 
우리 민족은 단군시대부터 별을 관측하여 인류의 신문명을 개척했다. 하느님께 제사하여 천단(天壇)을 쌓던 고인돌에서도 별자리 모양들이 발견되어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경남 의령군의 고인돌, 평남 증산 고인돌에서 기원전 250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 단군시대에 세계 최초로 천문학을 연구하는 감성관(監星官)을 두고 혼천기(渾天機)를 만들게 하여 천도(天度)와 합하게 했다.
 
감성관 황포덕(皇捕德)이 임금 구을(丘乙)께 아뢰기를 제가 천문(天文)을 관측한지 50년이 됨으로 천체를 추측하였다.
 
천체 중에 제일 큰 것은 북극성 같은 항성(恒星)이다. 그 다음은 태양의 종류이며 다음은 수성 금성 지구성 화성 목성 토성 천명성(天明星) 명성(明星) 같은 행성이 있어 태양을 중추로 삼아 회전하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역시 태양계의 하나인 행성이다.
 
해는 땅의 온도를 조화하여 만물의 성장을 돕는 것이며 지구의 외각에는 붉은 막이 포위하고 있어 지면의 각종기체를 보전함으로써 기체가 발산하지 못하고 태양의 뜨거운 빛을 받아 바람과 구름도 되고 우박도 되고 번개도 되고 서리나 눈도 되어 사계절이 서로 달라진다. 그래서 지면에 사는 사람은 만물과 더불어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으니 사람이 자연의 이치를 헤아리지 못하면 음양(陰陽)을 따라 사시(四時)를 쫓지 못할 것이다.
 
임금께서 그렇다 하시고 국역(國曆)을 새로 만드니 이것이 조선역서(朝鮮曆書)의 시작이다.
 
수천 년이 흐른 후 서양 그리스 최초 천문학자라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월식을 관측하다가 달에 드리운 그림자 둥근 것을 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기원전 350년경에 그의 천체론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발표한다. 그 후 코페르니쿠스가 543 천체 회전에 관하여 논문을 발표, 천동설을 흔들고 1610년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통하여 하늘을 보면서 달의 표면을 관측하여 지동설의 근거를 찾아냈다.
 
17세기를 전후하여 발명된 망원경으로 천문학은 더 발전할 수 있었다. 20세기에 하늘에 보이는 은하수가 별들의 집합인 우리은하라는 사실이 확립되고 그밖에 우주의 팽창이 발견되었다. 우리 민족의 천문학은 단군시대에 고인돌 별자리의 모양부터 단군 구을 임금이 감성관을 두고 연구했고 고구려의 여러 고분에서 일월성신도(日月星辰圖)와 백제 신라 천문대에서 개천설 즉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적 상징을 찾을 수 있다. 고려 개성 첨성대가 보존 조선조 세종 15년 혼천의(渾天儀)가 완성되어 천문학 기틀을 확립했다. 세계 최초로 천문학(天文學)을 개척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과학 문화 분야에서 인류 시원문명과 문화의 역사가 한류와 함께 지구촌에 그 빛이 드러나고 있다. 과학의 날을 맞으며 깊은 자긍심과 민족적 긍지가 빛나고 있다. (단군정신선양회장·전 대종교 총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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