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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본질은 교조적(敎條的)이 아니다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3/07/12 [06:23]
보수․진보교단의 찬반논쟁, 마치 보수․진보정당 세력 다툼 떠올려

종교 본질은 교조적(敎條的)이 아니다

보수․진보교단의 찬반논쟁, 마치 보수․진보정당 세력 다툼 떠올려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3/07/12 [06:23]

 

 
◈ 종교적이란 말이 교조적(敎條的)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떠한 시대나 환경, 현상에 관계없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와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 종교란 인식 때문입니다.
 
실상 종교가 교조적이었기 때문에 권위와 존엄성을 더했다고 봅니다. 이에 따라 종교지도자나 성직자들 역시 교조적으로 보이고 또한 그렇게 행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일한 창조주 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는 심부름꾼으로서가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위와 존엄을 그 자신에게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교조적인 종교지도자들은 몽매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미망에 들게 합니다. 그들이 만든 교조적인 틀 안에서 생활하고 신앙하길 강요하기도 합니다. 일부 그러한 종교와 종교지도자들이 있기에 종교가 세상의 위안이 아닌 세상의 걱정거리가 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성전의 확장, 타 종교 폄훼와 눈살찌푸리게 하는 전도, 금권․ 교권다툼 등 세속의 욕심을 넘어서는 행위가 갈등과 분쟁, 전쟁까지 유발합니다. 교조적 틀에 갖히게 된 몽매한 신자들을 희생양으로 말입니다. 그들은 성스런 수난, 순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영육의 희생자가 된 것입니다.
 
 
◈ 예수님은 낮은 곳에서 아프고 슬프고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뜻은 법을 따르고 ‘자신의 상은 불사르라’는 것이었습니다. 무함마드는 하나님(알라)의 충실한 심부름꾼(사도)임을 내세우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종교가 애초 교조적이고 권위적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종교문화가 차츰 발전과 변화를 해 오면서 교조적․ 권위적인 면을 갖추게 됐다고 봅니다. 종교를 종교답게 하는 역할을 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종교가 우상화 성격을 띠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하나님의 심부름꾼인 교주들에 대한 우상화도 이루어졌습니다.
 
 
◈ 창조주신과 사람과 만물에 모두 이로운 종교가 되기 위해선 종교가 교조적이어선 안된다고 봅니다. WCC한국총회를 앞두고 국내 보수․진보교단이 벌이는 찬반논쟁은 마치 보수․진보정당이 벌이는 세력 다툼과 똑같이 느껴집니다. 쓸데없는 소모전으로 사람들을 허망하고 실망하게 만듭니다. “WCC가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을 용인하는 것은 이단행위”라는 보수교단의 성경적 해석으로 ‘공산주의 찬양, 개종전도금지주의, 동성연애 용인’ 등을 들먹이며 개최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다분히 교조적인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교조적일 수 밖에 없는 보수교단의 신앙으로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이기에 가슴이 더 답답합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가 교조적인 태도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종교탄생에서 그러했듯 말입니다.
 
 
◈ 부처님이 말씀하신 삼법인(三法印) 중 제행무상(諸行無常)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세상에 고정된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으로 저는 ‘교조적인 자세의 벗어남’으로 풀이하게 됩니다. 인간이 만든 것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조적인 말과 행동보다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에 좋은 말과 행동이야말로 영원한 가치라고 믿습니다.
 
 
◈ 그런 의미에서 1962년 바티칸 공의회에서 요한 23세 교황이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가 현대 세계에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 완전히 의식 변화를 해야 한다”고 천명한 것은 우리 종교사상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이 공의회에서는 신앙의 자유, 종교와 정치의 제 역할 찾기, 다른 종교와의 대화, 전례 개혁을 비롯한 교회의 현대화 등을 촉구함으로써 교조적인 자세를 벗어낫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조상 제사가 수용됐으며 각국의 토착화된 성모상 등장, 미사 집전에서의 모국어 사용, 평신도의 역할 부각 등 시대적 변화와 적응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오늘날 한국사회에 펼치는 김희중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을 지난달 27일 만났습니다.(범종교신문 76호 15-16면) 대전 한밭체육관서 열린 '이웃종교화합주간 전국종교인화합대회'에서 입니다. 7대종단 종교인들간의 이해와 화합, 우의를 다지는 뜻깊은 행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이웃종교의 장점과 소중한 가치를 서로 존중하자"며 “지역과 시대에 따라서 민중들이 무엇을 기대하는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알고 이에 부응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교회의 신장보다 영적 성장을 중요시하며 “하느님은 숫자와 양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는 소수 영적(靈的)인 사람이 더욱 중요하다”고 해 필자를 공감케 했습니다.
 
김 대주교는 저와 동향인 전남 목표 출생이기에 더욱 호감이 갔습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종교가 교조적인 것을 벗어나 시대의 변화를 읽는 동시에 사람간의 정도 배제하지 않는 훈훈한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케 한 만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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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3/08/12 [20:32] 수정 | 삭제
  • 이런 분들은 “WCC가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을 용인하는 것은 이단행위”라는 보수교단의 성경적 해석으로 ‘공산주의 찬양, 개종전도금지주의, 동성연애 용인’ 등을 들먹이며 개최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다분히 교조적인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퍼진 반대급부, 즉 흔한 진보적 세대가 지금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그 교조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걸 언제쯤 알까 싶네요. 기독교는 늘 한발 늦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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