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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진석 추기경 장례미사 거행…용인 성직자 묘역에 안장

이중목 기자 | 기사입력 2021/05/01 [21:43]
염 추기경, 강론 중 감정 북받쳐 말 잇지 못해...김수환 추기경 옆자리 안장

故 정진석 추기경 장례미사 거행…용인 성직자 묘역에 안장

염 추기경, 강론 중 감정 북받쳐 말 잇지 못해...김수환 추기경 옆자리 안장

이중목 기자 | 입력 : 2021/05/01 [21:43]

 

▲ 명동성당에서 거행되는 고 정진석 추기경 장례미사    


염 추기경
, 강론 중 감정 북받쳐 말 잇지 못해...김수환 추기경 옆자리 안장

 

지난달 27일 선종한 고() 정진석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1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봉헌되고 이어 경기 용인공원묘원 성직자묘역 내 고() 김수환 추기경과 김옥균 주교의 묘소 옆자리 1평 공간에 안장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날 명동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한국 주교단 공동 집전으로 고인의 장례미사를 거행했다. 성당 앞에 삼나무로 짠 정 추기경의 관이 놓였다. 일체의 장식 없이 직접 만든 문장만 새겼고, 성경책이 올려졌다

 

강론자로 나선 염 추기경은 선배이자 동료 사제였던 정 추기경과 함께했던 일을 돌아보며 안식을 기원했다.

 

염 추기경은 "교회의 큰 사제이자, 우리 사회 어른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참 슬프고 어려운 일"이라며 "김수환 추기경께서 돌아가셨을 때 의지하고 기댈 분이 없어 허전하다고 했던 정 추기경 말씀을 저도 이제 깊이 동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종 때도 언급했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이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면, 정 추기경님은 우리 교회와 사제에게 어머니 같은 분이었다""겉으로 보이는 근엄하고 박력 있는 모습 이면에 가까이 지내면 부드럽고 온유하고, 넓은 아량에 사랑을 지니신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A4용지 여러 장에 정 추기경을 애도하는 내용의 글을 써온 염 추기경은 고인의 생전 일을 언급할 때는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종이를 든 그의 손은 울먹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떨렸다.

 

그는 "정 추기경은 모든 것을 버릴 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역설을 당신의 삶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셨다""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이고 하느님 뜻인지 알려주셨다"고 돌아봤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염 추기경에게 애도 서한을 보내 정 추기경 선종을 위로했다.

 

교황은 미사에 참석한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가 대독한 애도 서한에서 "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을 느꼈다""서울대교구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진심 어린 애도의 말씀을 전하며 기도로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고 추모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주교단 대표로 고별사를 올렸다. 그는 "다른 이들을 위해 전 생애를 봉헌하신 추기경님을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 시간"이라며 "추기경님께서 일생 한국 천주교회에 베풀어 주신 큰 사랑과 영적 보화를 남겨 주심에 감사드린다"고 마음을 전했다.

 

고인이 소신학교 교사였을 때 사제의 연을 맺었던 제자 백남용 신부는 사제단 대표로 나와 "스승의 날이면 장미 100송이를 들고 인사드릴 때 아버지처럼 웃으시며 좋아하시던 스승님"이라고 기억했다.

 

평신도 대표로 나선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손병선 회장은 정 추기경이 생전에 이룬 훌륭한 업적을 일일이 말씀드릴 수 없다며 '최고의 목자 정진석 추기경님'이라는 12글자를 따서 12줄의 추모의 글로 바쳤다.

 

미사 추모행사가 끝난 뒤로는 정 추기경이 28년간 몸담았던 청주교구의 교구장 장봉훈 주교가 고인의 관 앞에서 고별식을 올렸다. 관 위에 성수를 뿌리고 향을 태우며 정 추기경에게 작별을 고했다.

 

고별식이 마무리되자 사제들은 정 추기경의 영정과 십자가를 앞세우고 그가 잠들어있는 삼나무관을 성당 앞 검은 운구차량으로 옮겼다.  

▲ 故정진석 추기경 하관예절이 열린 1일 오후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내 성직자 묘역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정 추기경 관에 향로로 축복하고 있다.    

 

관을 실은 차량은 성당 앞마당을 천천히 출발했다. 이를 지켜보던 사제와 수녀, 신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명동성당을 떠나는 차량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 추기경의 시신은 경기 용인공원묘원 성직자묘역으로 운구됐다. 그는 성직자 묘역 내 고() 김수환 추기경과 김옥균 주교의 묘소 옆자리 1평 공간에 안장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공식 조문 기간인 지난달 28~30일 정 추기경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총 46636명으로 집계됐다. 281360, 292827, 3015449명이다. 장례 기간 비가 내리고,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가 적용됐음에도 많은 조문객이 정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염수정 추기경 강론 전문>

 

찬미 예수님. 오늘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의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 추기경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장례기간 동안 조문해주시고 기도해주신 모든 분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교구의 성직자, 수도자, 신자분들, 서울성모병원 의료진들, 봉사자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교회의 큰 사제이자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참 슬프고 어려운 일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이제 의지하고 기댈 분이 없어 참 허전하다고 하시던 정 추기경님의 말씀을 저도 깊이 더 실감하게 됩니다. 저도 마음으로 정 추기경님을 많이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뵙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했습니다.

 

지난번 선종 미사 때도 언급했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이 아버지같은 분이시라면 정진석 추기경님은 우리 교회와 사제들에게 어머니가 같은 분이셨습니다.

 

정 추기경님은 일단 식별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은 꼭 실행하시는 추진력을 지니셨기에 하느님께서 우리 교구에 꼭 필요한 큰 어른을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 추기경님은 겉으로 보이는 근엄하고 박력있는 모습 이면에 가까이 지내보면 부드럽고 온유하며 넓은 아량과 많은 사랑을 지니신 분입니다. 정 추기경님께서는 당신의 사목표어인 모든 이에게 모든 것’, ‘옴니부스 옴니아처럼 인생을 사셨습니다. 정 추기경님은 진정한 행복에 대해서 늘 강조하셨고 마지막 말씀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버릴 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역사를 우리에게 당신의 삶으로 보여 주셨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이고 하느님의 뜻인지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청주 교구장이셨던 정 추기경님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김수환 추기경님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좋은 교구장을 뽑아 보내주셨다고 하신 바 있습니다

 

정 추기경님은 교회법 분야에서는 그야말로 선구자이셨습니다. 추기경님은 동양에서 최초로 라틴어 교회법전을 우리말 해설서 전집으로 출간하셨고 이는 한국교회 역사의 큰 획이 되었습니다.

 

또 정 추기경님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얻는 행복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고 신자들을 위한 성경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출간하셨습니다. 당신의 하느님 체험과 그 행복을 신자들과 조금이라도 더 나누고자 단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추구했던 추기경님의 자세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추기경님은 기도하는 분이셨습니다. 늘 같은 시간에 묵주를 들고 산책하며 기도하는 모습은 아름답기조차 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교회, 북한 동포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그분들의 부모님을 늘 기억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정 추기경님 사목의 첫 자리에는 늘 선교와 사제양성이 있었습니다. 1970년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교구의 대부분 외국 선교사들이었고 한국 사제는 수적으로 열세여서 사제회의를 영어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청주교구에 사제 100명을 달라고 하느님께 떼쓰며 기도하셨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추기경님께서 28년을 교구장으로 일하고 서울대교구장으로 오실 때 이미 100여 명이 넘는 한국인 사제들이 수품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 추기경님이 마지막까지 소원하셨던 것은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이 시복시성되어 우리 교회가 그 모범을 본받아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정 추기경님은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의 라틴어 편지를 번역하시면서 더욱더 순교자들을 존경하고 사랑하셨고 순교자들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라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그분들의 편지를 번역하면서 감동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마침 지금 로마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사제의 시복 작업을 전해듣고 계셨는데 결실을 미쳐 보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안타깝지만 하늘에서 두 신부님을 이미 만나셨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삶에서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긴 정 추기경님은 사실 자신의 인생은 덤으로 사는 것이며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순리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정 추기경님은 지난 222일 병자성사를 받으시고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 드리겠다는 의지로 하느님 만세!”를 외치기도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신부님들 의료진들이 지켜보다가 다들 너무 놀랐습니다. 그래서 정 추기경님의 선종 슬픔과 아쉬움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께 마지막 순명을 다한 자녀로서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추기경님이 마지막까지 간직하신 이 부활 신앙 덕분에 우리도 고통과 죽음에 억눌리지 않고 오히려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다시 한번 정 추기경님처럼 훌륭한 목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정 추기경님께서 생전에 우리와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셨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그분의 영원한 안식과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모든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저희 기도를 자애로이 들어주시어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에게 천국 낙원의 문을 열어주시고 남아있는 저희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믿음의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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