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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자의교서, 바티칸 고위 성직자 ‘사법 특권’ 폐지

김희성 기자 | 기사입력 2021/05/02 [23:10]
추기경 및 주교도 일반 법원 재판…"법 앞에 평등" 강조

교황 자의교서, 바티칸 고위 성직자 ‘사법 특권’ 폐지

추기경 및 주교도 일반 법원 재판…"법 앞에 평등" 강조

김희성 기자 | 입력 : 2021/05/02 [23:10]

 


추기경 및 주교도 일반 법원 재판
"법 앞에 평등" 강조   

교황청 직원 직무 관련 40유로 선물 금지 이은 개혁 박차...교세 확장 의도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시국 내 고위 성직자들의 법적 특권으로 인식돼온 사법제도 관련 규정을 폐지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추기경 및 주교들은 죄를 지으면 추기경 3명이 법관으로 구성된 바티칸 대법원에서 별도 재판을 받았는데, 앞으로는 평신도와 똑같이 바티칸 일반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

 

이 같은 특권 폐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교황은 자의 교서(Mout Proprio)’를 통해 이번 개혁을 이뤄냈다. 자의 교서란 교황이 자신의 권위에 의거해 특별하고 긴급한 요구에 응한다는 취지로 작성하는 문서를 말한다. 교황 직권의 긴급 명령인 셈이다.

 

교황은 전날에도 자의 교서를 발표해 바티칸의 모든 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40유로(54000) 이상의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결정했다.

 

연이틀 교황의 자의 교서가 나오면서 교황이 가톨릭 개혁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2013년 건강상 이유로 돌연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후임으로 선출된 그는 위기에 빠진 가톨릭의 난제를 해결할 새 얼굴이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그는 가톨릭 역사상 첫 미주 대륙 출신 교황이다. ()유럽권 교황이 탄생한 건 시리아 출신 그레고리오 3(731) 이후 1282년 만에 처음이었다. 관행대로 유럽 출신 교황을 뽑으면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 투표 회의)는 비주류인 그를 소방수로 선택했다. 가톨릭 내부의 부패, 성 추문, 관료주의, 파벌 갈등, 신자 감소 등 갖가지 고질병을 고칠 적임자로 받아들여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랫동안 청빈한 삶으로 존경받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추기경으로 봉직할 때 교단에서 나오는 관저와 운전기사를 사양했다.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직접 음식을 해 먹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젊은 시절 사제가 되기 전에는 나이트클럽 경비원, 청소 관리인, 화학 실험실 연구원으로 일했다.

 

교황은 말로만 개혁을 부르짖지 않고 제도 개선으로 교단을 바꿔나갔다. 재무 부서에 평신도와 외부 전문가를 대거 등용했다. 자금 흐름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마피아 검은돈의 자금줄이라는 의혹을 살 정도로 불신이 컸던 바티칸 은행에 외부 감사 제도를 도입했다.

 

교황은 결혼과 가정을 둘러싼 시대 변화도 받아들이며 가톨릭이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도록 시도하고 있다. 오랫동안 가톨릭에서 완강하게 반대한 동성애자에 대해 그들의 인간적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고, 낙태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표현도 썼다. 아동 성 학대를 저지른 사제들은 계속 몰아내고 사과했다.

 

교황의 개혁 행보는 가톨릭 신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지만, 가톨릭 위상을 높여 신도를 늘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약 12억명으로 추산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965년부터 2010년 사이 무슬림 신자는 3배 늘었지만, 가톨릭 신자는 70% 증가하는 데 그쳤다. 1980년대 후반 신도 숫자로 가톨릭은 이슬람에 역전당해 1의 종교지위를 내줬고, 갈수록 격차가 커지고 있다. 1965년에는 전 세계 인구 대비 신자 비율이 가톨릭 18.4%, 이슬람 15.4%였지만 2010년에는 가톨릭 15.2%, 이슬람 22.6%였다.

 

교황이 바티칸과 중국 간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도 교세 확장과 연관돼 있다는 게 중론이다. 아시아가 세계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지만 가톨릭 신자 중 아시아인 비율이 12%에 그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교황은 또 국제 외교 이슈에도 적극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4년 이스라엘 시몬 페레스 대통령과 팔레스타인 마무드 아바스 자치 정부 수반을 동시에 교황청으로 초청해 ‘3자 대면을 했다. 2015년 미국과 쿠바 수교에도 숨은 공로자로 평가받는다. 2019년 역대 교황 중 최초로 이슬람 발원인 아라비아 반도를 찾아 반전(反戰) 메시지를 설파했다.

 

교황 개혁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로마 시내에 교황을 비난하는 벽보가 붙었다. “프란치스코, 당신은 사제들을 제거하고 추기경들을 무시했다는 내용이었는데, 개혁 반대 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됐다.

 

교황이 개혁을 서두르는 이유가 나이·건강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는 올해 85세다. 10대 때 폐 질환을 앓아 한쪽 폐를 잘라냈다. 공개 석상에서 거동이 불편한 모습도 종종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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