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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 에세이-"꿈꾸는 여자들" ~할아버지! 보고싶어요

박현선 | 기사입력 2023/04/03 [18:48]
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5.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박현선 에세이-"꿈꾸는 여자들" ~할아버지! 보고싶어요

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5.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박현선 | 입력 : 2023/04/03 [18:48]

 

  ./무료사진캡처=픽사베이© CRS NEWS


'박재익할아버지를 찾습니다6·25한 국전쟁 때 이북으로 끌려가신 보고 싶은 할아버지입니다.

 

그 시절번뜩이는 태양속에 얼비치는 할아버지 얼굴을 그려봅니다상이 바뀌어 할아버지가 인민군에게 묶여 끌려가던 날. 할머니와 아버지는차마 돌아 설 수 없어 한마디 못하고먼발치에서 쳐다보기만 할 뿐. 눈가가 붉어지면서 할머니와 아버지는 울고, 또 울었답니다.

 

아버지는 지금도 그날 할아버지가 따뜻한 음성으로 , 걱정하지 말그라. 내는 꼬옥, 살아올끼다!” 눈물이 그렁한 서글픈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답니다. 그렇게 가시고 영영 소식이 는 할아버지가 살아계시긴 건지,아니면,하얀 유골이되어 느 이름모를 산에 흩어져 계신 건 아닌지요할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겨 주신 암소 한 마리를 아버지는 소중한 자산으로 만들었지요.

 

맨몸으로 당당히 고달픔과 허기짐에 맞서, 할머니와 밭을 사서 일구어 삶의 터전을 만들었고오늘날까지살아 낼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그때 충격으로 몸에 힘이 풀리셔 하염없이 우두커니 앉아 계시거나, 일하시다가도 눈물을 떨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버지는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가 잘못되시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고 말씀하셨지요. 아버지는 숱한 한으로 얼룩진 초가집과 돌밭에 터를 잡고 사셨고 수십년 할아버지를 기다리셨습니다.

 

결이 고운 어머니와 결혼하여 이 집에서 저를 태어나게 해 주셨지요. 아무리 어머니가 잘해 주셔도 그때 할아버지가 떠나시던 날 눈물이 얼굴을 덮고땀에 젖은 무명옷의 할아버지 뒷모습에 시간이 멈춰 버렸어요. 그래서인지 아버지 얼굴에는 늘 외로움이 짙게 깔려 있었지요. 할머니의 재가로 무뚝뚝한 새 할아버지 밑에서 부모 없는 아이처럼 외톨박이로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이겨낼 수 있는 길은 무언가에 집중해 일하는 그것밖엔 없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북에서 끌고 왔던 소는 종자가 되어 아버지는 재기에 성공하셨어요.

 

아버지는 아침이면 기도를 합니다내가 만나야할 사람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다하여 못만나게 되는일이 없도록 도와주세요라고요. 아버지는 추석 명절이 다가오니 할아버지를 향한 가슴앓이가 또 시작됐나 봅니다. 가을 추수를 하던 아버지의 쿨럭쿨럭!’ 잦은 기침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오늘밤 또 뒤척이시겠네요.

 

아버지는 빛바랜 흑백사진을 종이에 곱게 싸 보관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육척장신에 표정은 좀 굳어 보이지만 호남형 모습이네요. 이마에 주름만 살짝 얹으면 지금 아버지 모습입니다. 할아버지의 바지저고리 입은 모습을 양복으로 재현시켜 가까이 놓고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명절에는 그 사진 앞에 밥 한사발 수북이 퍼놓고 절을 합니다. 차례 후 아버지는 저희에게 말씀하십니다. 할아버지는 참 다정다감한 분이었다고요. 손재주가 좋으셔서 팽이를 깎아 놀잇거리를 만들어주기도하셨고,겨울에는 썰매를 직접 만들어 태워주셨다고요. 그때가 가장 할아버지와 행복했던 시간이었답니다. 겨울밤이면 할아버지는 사랑방에 앉아 새끼줄을 꼬아 농사 준비를 하셨고, 지게를 직접 만들 정도로 손재주가 좋으셨다고 회상하십니다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도 나무를 조각하여 집안을 장식하거나, 창고를 손수 지어내곤 하셨는데 아마할아버지 손재주를 쏙∼빼닮았나 봅니다.

 

아버지도 아주 가끔은 예전 꿈을 꾸신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와 장터에 갔던 일, 동네 놀이패들의 신명 난 가락도 큰 구경거리였고엿장수 가위소리가 쩔렁쩔렁!’나면 할아버지가 고철을 챙겨 주었던 일들. 그때는 아버지가 웃고 지내던 날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릴적 추억을 버팀목 삼아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웠나 봅니다.

 

이제, 아버지는 일생을 돌아보면 후회 없는 삶은 없다지만, 미래는 늘 안개 속과 같이 힘드셨답니다. 기뻐서 웃던 날도 있었고, 슴 치며 울던 날도 있었지만 잘 견디어 내셨지요. 그 속을 걸어온 아버지가 대견스러우며 살아있는 오늘이 감사하다고 합니다. 아직도 가슴 한 갈피에 박재익할아버지를 새겨 넣고 계십니다. 살아계시면 할머니와 동갑이시니까 만 99세이시네요.

 

할아버지를 뵐 수있는 날이 온다면, 쌀밥에 좋아하시던 뭇국을 대접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그리고,따뜻한 벌 지어드리고 은 것이 이 손녀의 바람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저희에게 누런갱지를 잘라 학이나, 배를 접어주시곤 하셨지요. 이 편지를  종이배로 곱게 접어 할아버지 계신그 어딘지 모를 북쪽 흘러가는 길에  띄워 보냅니다.

 

박현선 수필가

▲ 박현선 수필가     ©CRS NEWS

 

박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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