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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유대인 숨겨준 폴란드 가족 9명 시복…일가족 전체 시복은 최초

이인덕 기자 | 기사입력 2023/09/11 [21:21]
나치에 처형된 울마 가족...만삭이던 어머니 태중 아기도 포함돼

교황, 유대인 숨겨준 폴란드 가족 9명 시복…일가족 전체 시복은 최초

나치에 처형된 울마 가족...만삭이던 어머니 태중 아기도 포함돼

이인덕 기자 | 입력 : 2023/09/11 [21:21]

 

▲ 폴란드 동남부 마르코바 마을에서 어렵지만 단란한 삶을 누리던 요제프와 윅토리아 울마 부부, 어린 여섯 자녀들. 윅토리아는 임신한 몸이라 뱃속의 태아까지 합치면 모두 아홉 식구였다. 1942년 말 유대인 8명을 다락방에 숨겨줬다는 이유로 1944년 나치 독일에 의해 즉결 처형됐다. 폴란드 IPN 역사연구소 제공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숨겨줬다가 독일 나치에 처형된 폴란드 일가족이 가톨릭교회의 복자(福者) 반열에 올랐다. 부부와 17세 어린 자녀 6명과 함께 숨질 당시 만삭이던 부인의 태중 아이까지 이례적으로 모두 복자로 인정됐다.

 

10(현지시간) AP 통신과 영국 BBC방송,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날 폴란드 남동부 마을 마르코바에서 유제프·빅토리아 울마 부부와 자녀 등 일가족 9명의 시복 미사가 거행됐다. 일가족 전체가 시복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말, 어린 여섯 남매를 키우던 폴란드의 가난한 농민 부부는 유대인 8명을 농장 안에 받아들였다. 나치가 점령했던 서유럽과 달리 폴란드는 나치의 강압을 한층 더 받아 이런 짓을 했다가 발각되면 곧바로 처형되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 울마 가족의 옛 사진이 펼쳐진 가운데 10일(현지시간) 폴란드 남동부 마르코바 마을에서 진행된 시복 축일 야외미사 도중 십자가가 제단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44세였던 유제프는 농부이자 가톨릭 운동가였다. 그는 아내 빅토리아(31)와의 사이에서 장녀 스타니슬라바(7), 차녀 바르바라(6), 장남 블라디슬라프(5), 차남 프란치셰크(3), 삼남 안토니(2), 생후 18개월 된 막내딸 마리아 등 33녀를 뒀다. 그리고 빅토리아는 만삭이었다.

 

전쟁이 마지막으로 치닫던 1944년 이들 가족과 알고 지내던 경찰관이 나치에 가족의 비밀을 털어놓았고, 득달같이 독일군 부대가 들이닥쳐 일년 반을 다락에 숨어 지내던 유대인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어 울마 가족 8명도 집밖으로 불러 모은 뒤 맏이가 8, 막내가 18개월 밖에 안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즉결 처형 형식으로 부부의 목숨을 빼앗았다. 아내 윅토리아는 임신 7개월째라 뱃속의 태아도 함께 스러졌다. 그리고 아이들도 모두 같은 형식으로 처형됐다.

 

몇 개월 뒤 폴란드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가족을 밀고한 경찰관을 역시 처형했다.

 

울마 가족은 1995년 이스라엘의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기념센터로부터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기간 유대인을 도운 다른 종교인들에게 헌정하는 '열방의 의인'(Righteous Among Nations) 칭호를 받았다.

 

▲ 유대인 숨겨준 폴란드 일가족 시복 미사. 연합뉴스

 

시복 미사에 참석한 마르첼로 세메라로 교황 특사는 "울마 가족이 순교라는 가장 큰 대가를

치렀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한 연설에서 "이들이 전쟁이라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으로 다른 이들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면서 광장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연설은 시복 미사에 생중계됐다.

 

교황청은 이들 가족의 시복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빅토리아의 태중에 있던 아이까지 순교자로 간주해 복자로 인정할지를 두고 고심했다고 한다. 복자에 오르려면 세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논의 끝에 지난 5일 성명에서 "태중의 아이가 순교한 어머니의 피로써 세례를 받았다"고 발표해 시복 자격을 인정했다.

 

가톨릭교회는 공적인 공경 대상이나 그 후보자에게 시성 절차에 따라 가경자(可敬者), 복자, 성인(聖人) 순으로 경칭을 부여한다. 복자는 후보자인 가경자 다음 단계로, 교황이 허락한 특정 교구와 지역에서 공식적 공경의 대상이 된다.

 

최종 단계인 성인이 되면 전 세계에서 해당 인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거나 미사를 드리는 등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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