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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 명탕터, 대순진리회 중곡도장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1/18 [09:31]
정성수의 도심종교 기행

용마산 명탕터, 대순진리회 중곡도장

정성수의 도심종교 기행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1/18 [09:31]


한국사회에서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는 낯선 종교로 인식된다. 신종교는 무조건 개인숭배나 치병, 주술 등 사회병리적 요인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우리사회 의식 때문이다. 이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대순진리회를 한국 문화와 역사적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유불선 전통사상과 외래종교 요소들이 병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개신교, 가톨릭, 불교 등 종교단체들이 선교나 포교 과정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교육과 의료사업 등 간접적 선교방식을 취하게 되는데, 대순진리회는 자신이 설립한 교육기관에서 다른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종교교육을 강조하지 않아 종교간 평화공존 차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곳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희로애락 속에 살아간다. 구내식당에서 만난 한 신도는 카이스트 박사 출신 아들이 이번에 정부 장학금으로 미국유학을 가게 됐다고 기뻐했다. 이 역시 우리네 부모들과 다를 바 없었다.


대순진리회는 우당(牛當) 박한경(朴漢慶·1917~1996)이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1871~1909)의 종통을 계승하기 위해 1969년에 창종한 민족종교다. 대순진리회가 한국종교사 이해에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본산격인 서울 광진구 중곡동 소재 중곡도장(中谷道場)을 찾았다. 중곡도장은 전국의 5개 도장(중곡, 여주, 포천, 고성, 제주)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된 유서깊은 곳이다.


겨울의 초입.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중곡동 골목을 지나 용마산으로 향하는데, 등산로 인근에 팔작지붕의 전통가옥 몇 채가 눈에 들어온다. 중곡도장이다. 때마침 중천에 떠있던 해가 용마산 자락에 고즈넉히 앉아있는 중곡도장을 따스하게 비추고 있다. 중곡도장은 10여 개 건물마다 전통 기와양식을 취하고 있어 산속 사찰이 연상된다. 이것은 불교에서 차용한 것이 아니라, 본래 우리 한옥양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곡도장을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용마산(348m)은 아차산(287m)과 나란히 서울의 동쪽에 산벽을 이루고 있어 울타리처럼 믿음직스럽다. 가히 ‘서울의 동벽’이라고 부르고 싶다. 충북 괴산 사람 우당이 이곳을 찾은 것은 1969년 6월. 증산의 제자였던 정산(鼎山) 조철제(趙哲濟·1895~1958)가 창종한 태극도에서 도전(都典)까지 지낸 우당은 스승인 정산이 화천(化天)하자, 태극도에서 나와 안양의 수리산에 머물다 그해 4월 대순진리회를 창설한 뒤, 본부 건물을 짓기 위해 용마산까지 찾아온 것이다.


중곡도장은 용마산 배꼽바위 밑에 궁궐 형태로 앉아있는데, 전에 내천이 흐르던 곳을 메워 인류를 구제하기 위한 진리의 도장터를 잡았다고 한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용마포태혈(龍馬胞胎血)’ 형국이다. 속설에 의하면 태조의 한양천도를 지지했던 무학대사가 맨 처음 이곳을 궁궐터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소를 끌고 자기 앞을 지나가던 노인이 이곳은 “하늘의 궁전이 들어설 자리”라는 범상치 않은 말에 뜻을 접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시작된 조선 궁궐터 구상은 왕십리를 거쳤다가 현재의 세종로 1번지까지 옮겨가게 된 것이다. 대순진리회의 나머지 도장들도 모두 배산임수(背山臨水) 형상을 이루는 곳에 건립됐다고 한다. 그중에 강원도 고성의 토성수련도장은 금강산 제일봉인 신선봉 자락에 위치한 명경지로 꼽힌다.


어쨌거나 명당을 보는 안목을 가졌던 우당은 용마포태혈에 본부 건물을 마련한 뒤 밤낮 없이 정성을 쌓으며 교단을 이끌었다. 대순진리회는 민족종교 가운데 후발주자였지만, 지금은 신도수나 교단 규모 면에서 정상을 달리고 있다. 종무원 한 관계자에 따르면 우당은 어진 성품의 활연관통한 지도자로, 재세시 제자 한사람, 한사람을 성심껏 지도해 주었다고 한다.


중곡도장의 가장 위쪽에는 불교의 대웅전격인 ‘영대(靈臺)’가 우람하게 자리잡고 있다. 겉에서 보면 3층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4층 구조로 돼 있다. 제일 위층에 강증산, 조정산, 박우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3층에는 기도실이 마련돼 있다. 기도실에서는 임원과 신도 등 3명이 1개조가 돼 하루 1시간씩 12개조가 돌아가며 24시간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중곡도장이 설립된 이래 단 하루도 기도와 주문이 끊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청수기도가 이곳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 같다. 문득, 대순진리회의 저력이 기도와 주문의 힘이 아닌가 생각됐다.




박한경이 龍馬胞胎血에 진리의 도장 열어
대순진리회 저력은 치성다한 기도와 주문


▲ 1층 벽면에 그려진 신선도     © 매일종교신문


영대를 나오기 직전 1층 벽면에 그려진 신선도 한 점을 목격했다. 산천경개 좋은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수염과 머리, 눈썹이 하얗게 센 노인 4명이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고, 곁에는 노인 한분이 꽃사슴의 등을 자애롭게 쓸어주고 있다. 옆에는 시중을 드는 소녀가 복숭아와 인삼이 가득 담긴 쟁반을 들고 서 있다. 그 너머에는 아름다운 계곡을 타고 폭포수가 기운차게 쏟아져 내린다. 참으로 유유자적하고 평화로운 화폭이다. 안내해 주던 대순진리회 관계자가 “한반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6자회담이 연상되지 않느냐”며 빙그레 웃어보인다. 바둑을 두는 신선들은 각각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의 4대 강국을 상징하고, 곁에서 구경하는 신선은 남북을 합친 한반도 주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바둑을 다 끝내고 돌아가면 주인은 금수강산을 벗삼아 도란도란 재미있게 살아갈 것이다. 중곡도장은 비록 콘크리트 구조물이지만, 건물마다 단청이 곱게 채색돼 있고, 다양한 민화가 벽면 곳곳에 장식돼 있다.


대순진리회는 구천상제(九天上帝)로 숭앙받는 강일순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 근본적 가르침, 즉 종지(宗旨)는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寃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으로 압축된다. 종단에서는 나약한 계층의 인간을 음으로, 강한 계층의 인간을 양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대립적 구조 때문에 세계에는 원(寃)이 발생했다고 본다. 때문에 음과 양이 바로 서고,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 음양합덕의 정신이다. 신인조화는 신을 음으로, 인간을 양으로 보면서 서로가 조화를 이룬 인간상 실현을 의미한다. 인간 각자의 마음이 ‘신명의 통로’라는 인식은 신인조화의 근거가 된다.


또한 해원상생은 선천(先天)에서 상극이 인간을 지배함으로써 세상에 원한이 쌓여 천·지·인 삼계가 서로 통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인간의 몸으로 내려온 상제가 9년 동안 짠 천지공사(天地公事) 도수로 포원시대가 완전히 풀리면서 상생시대로 이행된다는 후천선경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선천시대에는 모든 인간이 도통을 이루는데 구조적 한계가 있었지만, 상제와 유불선 도통신들의 역할로 모든 인간이 수도나 수련의 열심 정도에 따라 도통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과 금강산이라는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1만2000명의 도통군자가 출현한다고 보고 있다. 신도들이 주요 의식 때 입는 옷도 우리 전통 한복이어서 친근감을 더한다. 실제 중곡도장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기도드리러 오는 남녀 신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대순진리회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후천세계를 주도하는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한국이 스포츠, 경제, 종교, 문화 등 다방면에서 전세계에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한국은 점점 더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며 욱일승천의 기세를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팔작지붕 靈臺에는 강증산 등 3위 영정 안치
3인1조 24시간 기도···40년간 하루도 안 빠져
도장 곳곳의 신선도는 한반도 밝은 미래 상징
중곡동 일대 유난히 넓고 기운찬 형세 느껴져




대순진리회는 4개 종지를 근간으로 포덕천하(布德天下)·구제창생(救濟蒼生)·보국안민(輔國安民)·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을 목표로 삼는다. 이와 함께 ‘마음을 속이지 말라’ ‘언덕(言德)을 잘 가지라’ ‘척(慽)을 짓지 말라’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남을 잘 되게 하라’ 등 5가지 훈회(訓誨)를 중요시 여긴다. 여기에 국법을 준수하고 국리민복에 기여하며 삼강오륜을 잘 지키라는 커다란 수칙도 강조한다. 이밖에 주요 의례에는 입도의식, 기도의식, 치성의식이 있다. 입도의식은 신자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이고, 기도의식은 평일기도와 주일기도가 있다.


대순진리회는 음력을 적용하기 때문에 5일 단위로 주일이 돌아온다. 이때 각 포덕소와 회관에서 자(子)·오(午)·묘(卯)·유(酉)시에 기도가 진행된다. 평일기도는 각자 집에 설치된 수도실에서 진(辰, 오전7시), 술(戌, 오후 7시), 축(丑, 밤 1시), 미(未, 낮 1시)시에 주문 등을 봉송한다. 이 때문에 대순진리회는 외형적으로는 불교를, 예법은 유교를, 교리는 도교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강일순을 신격화시키고 있어 예수에 대한 기독교인의 인식도 떠올리게 한다. 하루 4차례 기도는 하루 5차례 아잔에 맞춰 올리는 이슬람교 예배방식이 연상된다. 세계종교를 아우를만한 민족종교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엄숙하게 정돈된 도장에는 증산의 훈회가 쟁쟁 울리는 듯했다.


대순진리회 조직에서 가장 상위 직분은 도전이다. 도전에게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종무원장, 중앙종의회의장 순으로 직무를 대리한다. 도전은 박우당만이 행사할 수 있는 일신전속적 자리라고 볼 수 있다. 중앙본부에서 가장 핵심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는 종무원으로, 기획부, 총무부, 교무부, 수도부를 관할한다. 중곡도장의 일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곳이 2층 구조의 종무원 건물이다. 대순진리회의 3대 중요사업은 바로 종무원 지휘로 일사분란하게 펼쳐진다. 그 첫째는 이재민 구호, 불우이웃돕기 등 구호자선사업이고, 둘째는 무료예식장 운영, 부인회 봉사단 운영, 병원(동두천 제생병원, 분당 제생병원) 운영 등 사회복지사업이다. 인류 미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5억평의 땅을 불하받아 벼농사 등을 성공적으로 짓고 있다. 셋째는 대진대, 대진고, 대진여고, 대진전자정보고 운영 등 교육사업이다. 대순진리회는 이 3대 사업을 통해 자신들의 교리를 외부에 구체적으로 실현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종교가 성장과정에서 성장통을 앓듯이 대순진리회도 박한경 도전 화천 이후 집단체제로 운영되는 과정에서 지도체제, 경제권 등을 둘러싸고 내부갈등을 겪고 있다. 이것은 불교계나 개신교계가 동일한 주제로 겪는 갈등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종교단체가 너무 재정 문제에 연연하거나 갈등을 오래 지속하면 국민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원만한 합의점을 도출해 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대순진리회 관계자는 내년에는 좋은 소식이 들릴 것이라고 귀띔한다.


대순진리회는 한국민족종교협의회(회장 한양원)에 소속돼 있으며, 가장 큰 힘으로 민족종교를 떠받치고 있다. 그만큼 민족종교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해 왔고, 미래에 거는 기대도 크다 하겠다. 중곡도장을 떠나면서 서울의 동쪽에 자리잡은 중곡동 일대가 유난히 너르고 기운이 뻗쳐나가는 형세라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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