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6/20 [07:28]
세계 석학이 밝힌 종교 一事一言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세계 석학이 밝힌 종교 一事一言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6/20 [07:28]
 

사례 1
강남 대형 교회, 전직 목사를 따르는 성직자와 현직 목사와의 갈등으로 폭력 사태 발생

사례 2
거액 헌금의 사용처를 놓고 신도들간의 자성 촉구 시위

사례 3
한국의 대형 교회는 참된 종교의 가치를 가르치기 보다는 돈과 교세 팽창에 몰두
 
 
사회를 구원하겠다는 거창한 명분을 내건 종교계에서 벌어지는 추문으로 일부 신자들은 ‘종교가 사회에 의해 구원되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종교학자들은 한국 종교계의 최대 문제점은 수행이나 영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외형적 성장에 매달리고 있다는 따가운 질책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에대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 종교계의 일그러진 초상을 예견이라도 하듯 석학(碩學) 버트런드 러셀이 발표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등 여러편의 종교 비평문은 새삼 독자들의 일독(一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회의론적 무신론자를 자처했던 러셀의 종교 에세이는 독실한 종교인들에게는 반론을 불러 일으키고 있지만 혼탁한 종교계의 정화(淨化)를 위해서는 시대를 초월해 참고할 만한 충언이라는 공감도 얻어내고 있다.

주요 내용을 인용, 소개한다.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누구든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될 별개의 조항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하나님과 영생을 꼭 믿어야 한다.

두 가지를 믿지 않으면서 기독교인을 자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둘째 기독교란 명칭이 내포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한다. 기독교인이라면 최소한 예수가 신은 아니라 하더라도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정도는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사람들이 스스로를 비하하며 끔찍한 죄인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 저럴 수 있을까 경멸감마저 든다.

우리는 굳건히 서서 이 세계를 진솔하게 직시해야 한다. 있는 힘을 다해 세상을 최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두려움 없는 직시와 자유로운 지성이 요구된다.

* 종교는 문명에 공헌하였는가?

교회와 그 창시자 사이에 이견이 생기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 사회를 구원하겠다는 거창한 명분을 내건 종교계에서 벌어지는 추문으로 일부 신자들은 ‘종교가 사회에 의해 구원되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어떤 사람의 말속에 절대적인 진리가 담겨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의 말을 해석하는 전문가 집단이 생겨나고 이 전문가들은 어김없이 권력을 차지한다.
 
진리의 열쇠를 그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특권층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한다.
아이들에겐 대부분 나쁜 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모른 척 내버려두면 저절로 없어질 수도 있는 이런 습관들에 대해 벌을 가하면 오히려 더 굳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소수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모들은 벌을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 종교는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스승을 따르는 추종자들은 원래 어느 대목들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교회를 세우려는 사람들은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모두 자기보존 본능을 발전시키며 이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창시자의 교리도 축소시키는 법이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합리성, 관용, 그리고 인류 가족 구성원들 간의 상호의존의 실현이다.
 
그러한 상호의존은 현대 과학 덕분에 엄청나게 증대되어 왔으며 내 이웃에 친절하자는 순수하게 현세적인 주장들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얻고 있다.
 
우리가 기대하여야 할 것은 이와 같은 사고방식들이지 몽매한 신화로의 복귀는 결코 아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