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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어가는 젊은이에게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05/04 [21:46]
“꿈은 크게, 그러나 작은 행함을 이루며 가라”

꿈을 잃어가는 젊은이에게

“꿈은 크게, 그러나 작은 행함을 이루며 가라”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05/04 [21:46]
요사이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꿈을 포기하고 있다. 쉽게 실망하고 쉽게 포기하고 불행한 언어로 스스로 부정으로 치닫는다.
 
아름다운 연애도 사랑스런 결혼도 미래의 자녀도 사회 구성의 인간관계와 인간의 최소욕구인 내 집 마련 5포세대의 젊은이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를 탓하고 무리지어 대중 속에서 분노하며 스스로 자기 희망을 포기한다. 도전에 보지도 않고 아예 나와는 상관없는 그리고 너무 먼~ 꿈으로 포기하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걸어 다니면서도 자전거 타는 희망을 생각하며 걷고 오토바이로 신나게 소리 내며 엔진소리로 꿈을 키웠다.
 
그리고 자가용을 꿈꾸며 나는 이룰 수 있다. ‘해낼 거야; 하며 세상에 도전하며 살아왔기에 국가에는 경제성장의 역군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다녀와서는 책 보기 전에 소먹이 풀을 베러 지게를 지고 산으로 들로 2시간 정도를 헤매야했다.
 
TV에서 미국의 목동들이 풀도 안 베고 말을 타고 수백 마리를 키우는 모습을 보고 꿈을 키웠다. 나도 언젠가 한번은 저 푸른 초원위에 수백 마리의 소를 키워서 좋은 일을 해 보아야지 결국 꿈꾸던 목장을 30년 지난 90년대에 만주 벌판에 200만평 초지에 소떼 수백 마리를 키우는 꿈을 이루고 말았다. 그 목장에서 제자들과 내 꿈을 실현했다.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같았지만 꿈은 꿈을 꾸는 자에게 이룸을 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으며 남다른 흥미를 느껴서 반복해서 2~3번을 읽던 기억이 난다. 사실 돈키호테는 과대망상의 아이 콘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풍자 앞에서 작은 칼을 힘차게 들고 주저 없이 승리를 외치며 돌진하는 모습이 어리석고 미친 짓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현실적인 무지일 수도 있다. 무모하게 도전하는 과대망상주의 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저것 계산만하다가 그리고 해보지도 않고 나약하게 포기하는 아예 도전할 생각도 못하는 부정만 하는 못난 인간들보다는 낮지 않은가! 칼을 빼서 썩은 무라도 찔러보는 용기 즉 꿈과 이상이 있어야한다. 최근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라는 관점에서 돈키호테는 재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아들 덕에 스페인의 세르반테스가 작품을 구상하고 돈키호테를 쓴 작은 풍차가 있는 이 마을 언덕에서 400년 전에 돈키호테를 생각하며 아들에게 도전의 꿈을 심었다. 당시 백수였던 아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는 반듯한 직장, 신이 내렸다는 직장에 결국 안착해서 아들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젊은이가 위대한 것은 꿈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부정한 것을 보지 마라. 어리석은 정치인이나 타락한 사회 현상을 깊이 보지 마라. 수천 년 전에도 부정한 이와 어리석은 이가 있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산 사람들은 그 시대에도 있었다. 바로 꿈을 가진 자들이었다.
 
정의는 외치되 부정만 외치지마라. 사랑은 행하되 용서가 먼저여야 한다. 젊은이여! 꿈은 크게 그러나 작은 행함을 이루며 가는 것이다.(단군정신선양회장·전 대종교 총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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