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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우리 집에 모신 신(가신)들 이야기 3
기타 가신들-쇠구영신, 용왕, 칠성, 안택과 고사, 풍신
기사입력: 2020/06/08 [07:36]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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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순서>

1. 우리집에 모신 신 이야기-조령신앙,삼신신앙,성주신앙

2. 측신과 문신,터주와 업, 조왕신앙, 기타 가신들

3. 기타 가신들-쇠구영신, 용왕, 칠성, 안택과 고사, 풍신

 

)외양간의 쇠구영신

 

소를 지켜주는 소 삼신을 구능(군웅)장군또는 쇠구영신이라고 한다. 정월 첫 소날은 소의 생일이라고 하여 그날만큼은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쇠죽에 콩을 많이 넣어서 먹였고, 또 도마질이나 방아질도 못하게 하였으며 쟁기 따위도 다루지를 않았다. 이유는 도마질은 소고기 다지기를 방아와 쟁기질은 땅을 가는 일을 연상시키기 때문이었다. 우리 민속에서 꿈에 소가 보이면 조상이 보였다고 한다. 즉 호랑이는 산신’, 말은 서낭으로 각각 상징되듯이 소는 조상으로 상징된다. 이처럼 우마가 병이 났을 때는 점치는 사람은 군웅 앞에서 북을 치며 산령경을 읽는 의례를 행하는 지역도 있어 군웅의 관련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집 안의 가신으로 모시는 산멕이와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집 안에서는 군웅의 기능이 거의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지만 산멕이에서는 산신군웅이 절차에서 분명하게 구별되기도 한다. 즉 먼저 산신에게 빌고 조상축원을 한 다음 소를 위해 군웅에게 빈다.

 

농가에서는 소가 중요한 재산이고 가족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건강하게 잘 크길 바라는 마음으로 쇠구영신인 군웅을 모신다. 집 안에 고기가 들어오면 반드시 군웅 앞에 올렸다가 먹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가 탈이 난다고 여기는 것이다. 군웅은 지역에 따라 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이 두 신격이 동일한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대부분 지역에서 소를 위한 신으로 조사되어 동일한 신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산과 군웅을 함께 모시며, 그중에 군웅만 소를 위해 모시는 신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소귀신’, ‘쇠군웅’, ‘쇠머리영산이라고 하는 지역도 있다. 기존의 문헌에서는 이 지역 군웅을 소의 삼신으로 보는 경우가 흔하다. 군웅의 신체는 마구간 옆이나 가옥의 정면 벽에다 대못을 박고 한지를 접어서 꽂아 모신다. 그리고 집 안에 육고기나 특별한 음식, 색다른 천이 들어오면 조금 떼어내 그곳에다 걸어둔다. 삼베를 짜면 수지천을 조금 베어서 걸어놓기도 한다. 신체는 봄에 산멕이 하러 갈 때 가져가서 산에다 모셔놓고 집 안에는 새로 접어서 모신다. 평소에 소가 병이 나거나 새끼를 낳으려고 하면 그 앞에다 물을 떠 놓고 빌었다. 안택을 지낼 때는 메만 따로 뜨고 제물은 성주상 그대로 쓰기도 한다. 소지는 대주 소지와 소 소지를 올린다.

 

강원도지역의 가정신앙에서 군웅은 소를 관장하는 신이다. 보통 외양간에 한지를 접어서 모시거나 부엌의 벽에다 삼베조각을 달아서 모신다. 군웅은 대부분 소가 있는 외양간에 모시며, 소가 탈이 나거나 새끼를 낳으려고 할 때 이 앞에서 빈다고 한다. 가정에서 어린아이가 아프거나 아기를 낳으려 할 때 삼신 앞에서 비는 것으로 미루어 이 신은 소의 삼신일 가능성이 있다.

 

)용왕

 

우물과 같은 식수나 논과 바다와 같이 물과 관련 있는 신앙행위에는 용왕과 관련된 관념이 따르게 마련이다. ‘용왕에 대한 민속신앙적 행위에는 부락공동제나 무당의 굿판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가정에서 부녀자들에 의한 행사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우물청소를 위해 정월 열 나흗날에 우물물을 모두 퍼내고 제사를 드리며 용왕에게 치성을 드리는 경우도 있다. 충청남도의 서해 장고도(長古島)에서는 2월 첫 진일(辰日) 만조 때 각 가정의 주부들이 바닷가에서 짚을 깔고 제상을 차려놓고 가정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기도 하며, 제주도에서도 용왕맞이라는 이름의 가정단위 제례를 바닷가에서 지내는 사례가 많다.

 

▲ 용단지    

 

원래 용신은 바람이나 비 또는 물과 같은 농사와 같은 자연현상을 관장하는 신으로 하늘과 땅을 오가는 전능한 수신이다. 따라서 가택신으로 모시는 용신농경신’, ‘재산신으로 재산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업신또는 터주신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용단지라는 신체는 용이 드는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용이 든다는 말은 재산이 들고 가정을 잘 수호해 준다는 의미가 있다. 용단지가 놓이는 곳은 곡물이 출입하는 부엌이나 고방, 또는 돈궤를 두는 금고역할의 다락 등이다. ‘용단지에는 쌀이나 나락을 담아두는데 이는 농경신인 용신을 받듦으로써 풍작을 기원하고 재물을 보살펴주는 신체로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경북 안동 예천 풍기 상주 등 경북 북부지역에서는 용단지를 섬긴다. 특히 안동 지역에서는 용단지 신앙이 가장 보편적인 가신신앙이다. 용단지는 신체의 모양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가택신은 각자 고유기능이 있지만 다양한 가신기능이 혼재되어 있다. 집을 수호하고 재물을 관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가택신인 업신또는 터주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특히 안동지역의 경우 터주신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용단지업신과 같은 신관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늘날 농사와 모관한 가정에서도 용단지를 섬기기도 한다.

 

)칠성

 

한국에는 북두칠성신앙이 많다. 물론 풍수지리에서도 칠성과 관련된 이론으로 구성론이라는 것이 있다. 민속적으로 칠성신은 인간의 수명장수·소원성취·자녀성장·평안무시 등과 관련이 깊다. 또한 사찰에 있는 칠성각은 도교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제주도에서 전해지고 있는 안칠성이나 밧칠성과 같이 민간에서 전승되는 뱀과 관련된 신앙에 칠성의 이름이 붙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장독대에 새벽 정화수를 떠놓고 집안의 평안과 가족의 장수를 기원하는 여러 칠성신앙 형태들도 보인다.

 

)안택과 고사

 

안택(安宅)과 고사(告祀)는 여러 가신들에 대한 종합적인 제의이지만 구분상으로 명확하지 않다. 지방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정월이나 추수 후에 지내는 점으로 미루어 추수감사제와 같은 성격을 가진다. 주로 정월에 지내는 안택은 새해 집안의 무고를 기원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필요에 따라 부정기족으로 지내기도 한다. 경상북도 영덕지방에서는 정월보름 전 또는 10월에도 안택을 한다. 안택은 판수들을 초청하여 주로 독경을 하도록 하는데 조왕성주삼신의 순서로 모신다. 제관은 주부나 더러는 가장들이며, 순서는 먼저 장독대에서 철륭에게 제사하고 다음에 안방에서 성주·삼신·조상의 상들을 차리고 소지를 올리며, 마지막에 안뜰에서 지신제를 올리고 나서 동네에 떡을 돌린다. 전라북도 지방에서는 도신(禱神)’이라고 해서, 10월 중에 택일해서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가신 전체를 모시는 예들이 있다. 호남지방에는 벼가 익을 무렵에 지내는 감사제로 올베심리라는 것이 있다. 올베심리는 조상신·조령·성주·삼심까지 함께 모시기도 한다. 이때는 일가친척들을 불러 가주가 제사를 지낸 뒤 함께 회식을 한다.

 

사회학적으로 문화의 변화는 물질적인 측면에서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정신적 측면의 신앙과 풍속이나 민속행위와 같은 변화속도는 느리게 진행된다. 그러나 근래에 오서는 사회적 현상으로 문화의 변화는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변화의 속도가 급속도로 진행된다. ‘터주’, ‘문신이나 측신등은 거의 문화적 존재로서 사라져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조령신앙은 일찍부터 유교 제례에 가려서 영남이나 호남지방에서조차 전승자료를 얻기 어려울만큼 소멸되어버렸다. 앞으로도 근대화의 사회·문화 변동과 함께 가신신앙은 점점 더 사라져갈 것이다. 그러나 가택신앙은 무속과 마을제사인 동제의 전통과 같은 의미로서 거의 일신동체의 관념에 의해 뿌리가 견고하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가정중심의 행복을 기원하는 가택신앙은 전통적인 가치관들을 대변하면서 민중신앙으로 종교적 심성과 함께 다시 부활하는 문화의 생명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에서의 가신신앙은 유구한 우리민족의 농경생활 역사에서 일상생활과 밀착되어온 종교적 현상이었다. 가신신앙은 자연에 순응하는 가치관으로 특별한 행사보다는 대개 가족의 생일이나 제사 또는 명절에 마련한 음식을 바쳤다가 물리는 식으로 주부들을 중심으로 매우 검소하게 전승되어 왔다. 안택에 관한 옛 기록을 살펴보면

 

필원잡기(서거정)에서는 사대부의 집에서 매해 초에 기복을 하고, 수선이나 영조(營造) 등의 경우에는 양재를 하는데, 반드시 장님 5, 6명을 써서 독경을 한다.”

 

동국세시기(홍석모)에서는 상원에서 정월 말 사이에 소경을 불러서 안택경을 읽으며 밤을 새워 액을 막고 복을 빈다.” “시월을 상달이라 해서 무당을 데려다가 성조신을 맞아 떡과 과일을 놓고 안택하기를 기도한다.”

 

)풍신

 

기타 산세지역의 산간지방에는 밭의 경작과 재화의 운송을 위한 소는 중요한 재산의 하나이다. 이 소를 위한 신앙이 있으며, 산과 관련이 없는 해안지대와 내륙에도 바람의 신인 풍신(風神)으로 영등에 관한 신앙이 있다. 제주도에서는 동제로 영동굿을 하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농사를 위해 바람과 비의 원만함을 기원하는 가정단위의 대상신으로 모셔진다.

 

)주거신앙의 내용분석

 

가신신앙은 문헌상에 기록도 가장 적고 일제 총독부 조사에서도 무속·부락제·풍수는 물론 향토오락·귀신·점복·예언도 다 한 권씩의 책을 이룬 가운데서 석전·기우·안택이란 한 권 책의 겨우 맨 끝 부분을 이루고 있다. 최근의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민속종합조사에서도 물론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는데, 그것은 무속에 다 포함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상거리’·‘성주거리’·‘제석거리등 가신의 제사는 무의(巫儀)나 부락제에서도 다 중요한 부분을 이루며 가신신앙은 우리 민속종교 전체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조령·삼신·성주·조왕·터주· ·측신·수문신·기타 신 등으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

 

가신신앙의 역사성은 첫째, 역사적으로 볼 때 이 가신신앙들을 직접 분명하게 기록한 자료들은 조선시대 전기에도 더러 있기는 했으나 대개 조선시대도 후반에 와서야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신라 김씨왕가의 조령 용기로서의 황금궤는 그들의 조신인 김알지의 출생을 시화화한 것이며, 역사가 오랜 가신신앙의 또 하나는 용왕제이다. 신라 초기 박혁거세 왕비 알영부인은 계룡으로 돼 있다. 현재도 우리는 무신도에서 산신의 기호노인상(騎虎老人像)과 같이 용신, 정신의 기룡여인상(騎龍女人像)들을 볼 수 있다. 우물물에 용 관념이 따르고 그 수신이 여신으로 인격화되는 사례는 고려 왕세계의 용건의 부인 용부인 외에도 그 예가 많다. 이러한 정신, 용녀신 신앙이 이미 삼국시대 초기이래 고려시대를 거쳐 계속돼 왔다. 가신신앙으로서의 용왕제는 유구한 역사를 가져 왔다.우리 농어촌에서 보토 우물은 가옥마다 울타리 안에 있기보다는 공동 우물인 경우가 많아 울타리 안의 우물은 용신앙에 포함시키기가 곤란하다.가신신앙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하는 세 번째 자료는 수문신이다. 벽사신으로서의 처용은 문신역할도 해서 이미 삼국유사에 기록國人門帖 處容之形 以群邪進慶.”이 있고 정초에 대문에 처용의 그림을 붙인다는 기록은 조선조 초기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도 보이므로 그 오랜 전통을 알 수가 있었다. 또한 삼국사기에도 신라에서는 사성문제(四城門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가신신앙으로 또 하나는 화신인 조왕신앙이 있다.

 

유구한 역사를 가져온 가신신앙은 아직도 전국에 잔존하고 있다. 명칭에 있어서 삼신·성주·조왕 등이 전국 공통이고, 조령숭배가 제석오가리(전남), 세존단지(영남), 조상단지(여타 지역)들로 달리 불려지기도 한다. 터주와 업이 영호남의 남부지역에서는 철륭(호남)이나 용단지(영남)라 하여 남아 있다. 측신과 수문신은 지금 공통의 고정명칭을 찾기 어렵고 우물의 용왕제나 칠성신앙들이 역시 희미하게 전국적으로 남아 있다. 형태는 조령과 삼신이 주로 단지에 쌀보리를 담아서 안방에 놓으며, 성주는 호남에서는 주로 독이고 중부는 한지, 영남은 한지 또는 독이며, 여기에 쌀보리를 갈아 넣고 있다. 조왕은 대개 무형인데 호남지방에 조왕중발(竈王中鉢)이라는 모정 어린 특수형이 많다. 터주의 경우 중부지방에서는 단지 속에 곡물과 천들을 넣고 짚주저리를 씌웠는데 호남의 철륭()과 유사하다. 업도 주저리인 경우들이 있으나 형태도 위치도 각양각색이다. 측신과 수문신은 전승되는 지역이 거의 없고 칠성신앙은 뒤꼍에 단을 모으고 정화수를 놓는 형태이며, 우물의 용신 형태도 사라지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는 형태나 명칭에서 육지와는 차이가 있다. 조상·삼신·성주·조왕은 명칭이 비슷하나 이들은 모두 아무런 형태를 갖지 않고 성격과 내용들도 크게 다르다. 터주는 오방토신으로 역시 형태도 없다. 업은 재신·사신이라는 점이 비슷하나 안칠성·밧칠성으로 이름도 형태도 아주 다르다. 측신과 수문신도 본토와는 모두 다른데, 지금도 무속과의 밀착도가 보다 강하다. 서사무가인 본풀이에 의해서 그 근본 성격들이 풀이되어서 보다 더 구체적인 개성들이 파악된다. 제주도에서 우리는 가신신앙의 특수한 한 지방형으로 육지의 옛 형태를 추론하게 한다. 호남의 경우 조왕중발을 가신으로 하고 있고 조령용기인 제석오가리신앙이 남아 있다. 곡창지대여서 그런지 도미의례성(稻米儀禮性)이 강한 느낌이 든다. 호남지방은 가신신앙 외에도 특유한 많은 민속이 잔존하며 예능성이 강하다. 그 밖에 영남지역의 용단지, 강원도 산악지대의 외양간신 등 다소 색다른 것들이 있으나 가신신앙으로서는 그렇게 크게 특이한 것은 없다.

 

가신신앙의 성격적 특성으로 너그러운 포용성을 들 수 있다. 조령숭배에서 보듯이 여신성·조령성·농신성·불교성·유교제례성·삼신성 등 많은 성격이 복합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포용성은 가신신앙의 민간신앙적 특성을 의미한다. 본래 서민 대중을 위한 민간신앙이나 종교는 어디서나 까다로운 논리성이나 복잡한 체계나 숭고한 관념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신신앙은 주부들의 주재물이다. 지난날 한국 여성은 교육을 못 받았고 또 주부는 가장 정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민간신앙 중에서도 가장 정적이고 구분 의식이 적은 애매하고 모호한 특성을 제일 많이 가진 것이 가신신앙이기도 하다. 또한 가신신앙은 모성적인 측면이 강하나, 남성들은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제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여성보다는 신앙심이 약했다. 따라서 가신신앙을 최후까지 수호한 자는 주부들이고 여기에는 그 수호자, 중재자인 주부들의 신앙의식이 제일 크게 반영돼 있다. 그래서 가신신앙에는 아무런 형식성도 없고 교리도 없다. 그것은 사무치는 정에서 일상생활에 밀착된 종교가 가신신앙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중심의 가신신앙은 자신을 위하기보다 우리 또는 집안의 평안과 융성의 기원이었다.

▲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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