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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문화마인드2-창조만이 살길이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6/11 [16:41]

첨단문화마인드2-창조만이 살길이다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6/11 [16:41]
 

첨단문화마인드2-창조만이 살길이다

문화세기에 가장 필요한 창조력


문화의 세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류의 문명이 단 한 번도 문화가 아닌 적이 없었는데 왜 21세기에 이르러 굳이 문화의 세기라고 할까? 여기에 해답이 있다. 인류의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여 자연과의 경쟁이나 비교의 관점에서 볼 때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난숙해질 대로 난숙해진 때문이다. 이제 본래의 자연은 주위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설사 지극히 자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인간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태도나 가공방식 뿐만이 아니라 자연 자체도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세기에 문화인 것이다.

우리는 외국의 도시를 거닐 때 낯선 느낌을 갖는다. 또 고향에서 느끼지 못한 도시의 디자인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차도와 인도의 크기라든지, 거리의 빌딩모습이라든지, 기타 도시의 풍경 자체에서 낯선 것을 느낌과 동시에 어떤 디자인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친숙한 고향의 풍경은 원래 자연과 같이 친숙한 것이어서 새롭게 다가오지 않고 따라서 원래 그랬던 것처럼 느끼는 까닭에 디자인을 느끼지 않고 산다. 그런데 이국에서는 그것을 느끼는 것이다. 거리풍경 자체는 디자인--다시 말하면 도시계획의 산물인 것이다. 그런 도시계획에 이미 그 나라의 문화적 디자인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문화는 생활 가까이에 있다. 비단 음악이나 미술 작품을 비롯, 정통적인 문화-예술 분야뿐만이 아니라 조금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생활 그 자체가 모두 문화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문화란 무엇일까. 흔히 인류학자들은 문화를 학습되는 것, 전승되는 것, 해석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문화는 창조되는 것이다. 학습이나 전승이나 해석이 창조로 연결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재생산 또는 변형되지 않으면 그 빛을 잃고  마는 것이다. 여러 나라의 문화가 이제 시공을 초월하여 공존하는 마당에 새롭게 창조되고 변신되지 않으면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되고 시장경쟁에서도 낙오하고 도태되게 마련이다.

이제 세계문화는 통합되는 경향이 강해서 자기문화의 고유성보다는 남의 문화와 융합하고 새로운 문화복합을 만들어 세계문화로 성장하고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문화는 재창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제 문화에서 과거와 단순하고 양적인 집적은 그리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것보다는 미래와 새롭고 질적인 창조가 각광을 받는 것이다. 예컨대 단순한 판소리 다섯 마당의 학습과 전승과 해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양의 오페라와 판소리의 융합을 통해서 새로운 판소리-오페라(오페라-판소리)를 탄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판소리 쪽에서 보면 판소리이고 오페라 쪽에서 보면 오페라인 제 3의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창조력은 어디서 오는가. 한 마디로 상상력에서 온다. 다시 말하면 청소년들의 상상력을 키우지 않으면 미래의 세계에서 앞서 나아갈 수 없다. 상상력은 또한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보이지 않게 얻어지는 것이다. 창조력을 계량적으로 재기는 힘들다. 그러나 기초를 충실하게 습득하게 하고는 그 다음은 젊은이의 자연스런 발달과정과 재능을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농업사회 때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탈피하여 산업사회(후기산업사회)에서 도전적인 모습을 증진시키고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후기 산업사회는 분명 노인의 문화라기보다는 청년의 문화이다. 청년의 문화는 청년의 문화답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을 위주로 하여야 하는 것이다.


한글이 가장 우선의 창조성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문화에서 가장 창조적인 것은 무엇일까. 흔히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잘 아는 고려청자? 거북선? 한글? 중 어느 것일까. 그 창조성이나 오리지널리티에서 보면 한글이 제일 우선이다. 그 다음이 거북선이고 그 다음이 고려청자이다. 창조성 가운데는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이기 때문에, 그 지역이기 때문에, 잘하는 분야가 있는가 하면 그것과 관계없이도 잘하는 것이 있다. 바로 그 나라-그 지역이기 때문에 창조성을 부여받는 것이라면 문화적 비교평가에서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고려청자가 그런 것이다. 거북선은 그 다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가장 오리지널리티가 높은 창조물인 셈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보면 프로그램의 정도가 가장 높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에서 고부가가치를 부여받는 것은 창조성의 정도가 높은 것이고 창조성의 정도가 높은 것은 바로 소프트웨어의 정도가 높은 것이다. 문화에서 하드웨어도 물론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하드웨어는 문화이지만 문화라기보다는 문화적 재료에 가까운 것이다. 여기서 소프트웨어로 옮아가면 갈수록 부가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 가게 마련이다. 훌륭한 소프트웨어는 바로 재료에서 가장 먼 문화이다. 재료에서 먼 것일수록 재료를 자유자재로, 마음대로, 풍부하게 쓸 수 있다. 한글은 그런 점에서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음성학적으로 완벽한, 과학적인 표음문자인 것이다. 영국이 세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꾸지 않는다고 말하였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글과 우리나라를 바꾸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한글만 있으면 우리나라를 망하지 않고 빼앗아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설사 잘못하여 나라를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한글에 의해 나라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교문화와 유교문화와 기독교문화를 자랑하지만 실은 이것들은 외국에서 발생하여--다시 말하면 외국에서 아이디어가 형성된, 오리지널리티를 가지는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재가공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문화에서 신문물의 도입과 재가공과 재창조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발달하여도 우리가 오리지널리티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에서도 잡종강세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문화적 창조와 발명에서 저작권과 특허권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는 중요하다. 그래서 로얄티, 이것을 많이 챙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개인과 나라의 유명세와 국력을 재는 바로미터가 된다. 단순모방과 재조립으로는 밥은 먹을 수는 있지만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리지널리티를 많이 가지는 길이다. 여기에 살길이 있다.


느낌의 시대와 몸


문화적 창조력과 함께 중요한 것은 이 <느낌의 시대>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의 우수성과 적응력이다. 한국인의 체질은 그 어떤 나라와 민족의 체질보다도 우수하고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정평이 나 있다. 일제 때, 하와이의 사탕농장에서도 증명이 되었고 시베리아에서도 증명이 되었고 베트남에서도 증명이 되었고 중동에서도 증명이 되었다. 사철과 삼한사온으로 다져진 우리의 몸은 그 무엇보다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중요한 유산이다. 이것을 과학적 의미에서는 문화유산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실은 유전공학적으로 말하면 유전인자의 유전에 의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 유전인자는 분명 문화와 연계되어 특유한 문화적 특징을 이루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문화이고 어느 것이 유전인지, 정확한 경계선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몸의 일부인 농산물이 그 맛과 품질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는 문화적 프로그램--소프트웨어보다는 체질적 바탕--하드웨어의 적응력에 의해서 생존하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성-과학-창조의 측면에서 약함을 노출하였다. 그만큼 우리는 감각-기술-모방에 의해서 살아온 측면을 숨길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의 프로그램 생산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랑그보다는 파롤에 의해서 살아왔고, 컴피턴스보다는 퍼포먼스에 의해서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유달리 축제를 좋아하고 역사의 운영방식도 극적인 사건의 연속인지 모르겠다. 사실 역사가 어떤 작가의 창작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이것은 결코 자랑할 것이 못된다. 그 만큼 현실의 삶은 고달픈 수난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각에 창조력만 보탠다면 어떤 경쟁자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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