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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진화의 궁극적인 법칙은 사랑”

신민형 | 기사입력 2017/07/16 [22:03]
서평●인간의 위대한 여정(배철현 著·21세기북스刊·428쪽·2만2000원)

“창조와 진화의 궁극적인 법칙은 사랑”

서평●인간의 위대한 여정(배철현 著·21세기북스刊·428쪽·2만2000원)

신민형 | 입력 : 2017/07/16 [22:03]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교 교수가 137억년 전 우주의 탄생부터 1만년전 현생인류의 탄생까지 의 역사를 관통하며 인간의 본질·실존을 고찰한 책 ‘인간의 위대한 여정’(배철현 著·21세기북스刊·428쪽·2만2000원)은 고답적인 듯하면서도 새롭다. 과학적이면서도 ‘이타적 사랑의 유전자’를 강조하는 종교적 결론이 종교학자의 사세를 보여준다.     

각 일간지 서평의 제목만 봐도 이 책의 성격을 가늠케 한다. ‘원시인류부터 인간은 본래 이타적이었다’ ‘종교가 생기기 이전, 태초부터 인간은 영적인 존재였다’ ‘인간은 이기적 생존 기계 아니다’ ‘利他的 유전자가 600만년간 인류를 생존케 했다’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원동력은 이타심’…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지배된 세상에서 ‘이기적 유전자가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리처드 도킨스 등의 이론이 풍미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 인간 본성에 대한 종교와 철학의 정의를 무너뜨리는데 기여했다면 리처드 도킨스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 진화의 핵심을 '이기적 유전자'로 설명함으로써 현대인들에게 많은 정신적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호혜적 이타주의'로 인간을 설명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배 교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듯하다. 그는 인류가 이룩한 혁신과 창조의 과정을 파헤치면서 그 원동력이 바로 인간의 '이타적 유전자'라고 정리한다.    

저자는 공감, 배려, 정의, 정직, 희생 등으로 발현되는 이타심(compassion·자비)이 인간 본성의 핵심이며 그 덕에 인간이 살아남았다고 설파한다. 책은 그 논증을 위해 600만년에 걸친 인류의 정신사를 추적한다.     

흔히 기원전 1만년 농업을 발견하고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도시, 문화, 문자, 종교와 같은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특징이 생겨났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책은 6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문명 이전의 원시 인류와 지금 우리가 공유하는 내면의 이타심을 밝혀낸다.     

배교수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찾아낸 것은 “인간은 종교나 과학의 발명 이전부터 줄곧 ‘영적인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신적인 유전자’ ‘이타적 유전자’가 있다고 보는 배 교수는 “창조와 진화의 궁극적인 법칙은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인류 진화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종교학자의 시각도 눈에 띈다.     

그는 스페인의 고원 지대인 시에라 데 아타푸에르카의 동굴에서 발견된 30만 년 전 인간의 두개골에는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주목한다. 구멍이 2개여서 누군가 주먹도끼 같은 무기로 되풀이해 내리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구약성서에서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이 두개골은 최초의 살인사건에 대한 증언이고, 당시 인간 사이의 갈등을 볼 수 있는 창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책은 인간의 폭력성보다 이타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같은 동굴에서는 치명적인 선천성 두개골 기형을 앓았던 5세가량의 어린아이 뼈도 발견됐다. 생후 1년 동안 증상이 현격하게 나타나는 병인데도 5세까지 살 수 있었던 건 누군가 헌신적으로 돌봤다는 뜻이다.     

저자는 “인류는 함께 모여 살면서 갈등이 생겨나고, 자신들이 개발한 무기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족과 사회의 약자를 돌보는 배려의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며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스스로를 ‘이타적 동물’로 변모시켰다”고 했다. 인간의 특성 중 배려하기에 주목한 것이다.     

저자의 전공인 고전문헌학과 연결되는 서술 등도 흥미롭다. 고대 그리스인은 인간을 ‘안트로포스’로 불렀는데 이는 ‘얼굴을 위로 하고 하늘을 쳐다보는 존재’라는 뜻이라고 한다. 저자는 “눈이 양옆에 달려 자신을 공격하려는 다른 동물들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동물과 달리 생존을 위해 대상을 관찰하면서 눈이 정면으로 이동한 인간이라는 종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이름”이라고 했다.    

저자는 하버드대에서 고대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비교언어학·비교종교학의 성과를 접목시키는 작업이 대가이다. 2003년부터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심연' 등이 있다.     

현재 한국일보에 ‘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읽기’를 연재하고 있는데 이 칼럼에서도 그리스 비극을 통해 인간의 공감능력, 배려심, 인간애 등을 읽어내고 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만연된 현대사회에서 '인간진화의 열쇠는 이타심'이라는 신선한 시각이 현대인의 종교 이상의 울림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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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섭 2017/07/17 [12:37] 수정 | 삭제
  • 인류의 정신을 이타심-자비에서 찾으려는 철학자의 노력에 박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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