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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⑨ 바다를 건넌 불교, 현재까지 존속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2/28 [08:59]
인도원형불교 상좌부 전통 보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에 전파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⑨ 바다를 건넌 불교, 현재까지 존속

인도원형불교 상좌부 전통 보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에 전파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2/28 [08:59]

인도원형불교 상좌부 전통 보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에 전파

 

오늘날의 불교는 3대 패밀리 불교로 범주화 할 수 있다.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의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의 일부와 방글라데시 등이 상좌부(上座部 테라와다) 전통이고, 티베트 몽골, 라다크, 시베리아 부랴티야 공화국, 칼미크 공화국(카스피 해 북쪽), 투바 공화국(시베리아 남쪽)은 바즈라야나(금강승 밀교)전통이며, 중국 한국 일본 대만 베트남 등은 대승불교권이다. 불교 발생지인 인도는 현대 불교 3대 패밀리가 다 들어와 있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순수한 인도불교는 스리랑카에서 상좌부를 계승한 불교전통이다. 네팔도 상좌부 티베트 불교 전통이 혼재하고 있다.

▲ 인도 아 대륙과 스리랑카 섬을 연결하는 만나르 만과 포크해협.  

 

이런 맥락에서 보면 스리랑카 불교는 인도불교의 원형을 보존하여 유지시키면서 동남아아시아에 전파한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3세기 인도에서 불교 사절단이 스리랑카 섬으로 건너 갈 때는 만나르 만 보다는 수심이 얕은 포크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만나르 만은 인도의 남동쪽 끝부분과 스리랑카의 서쪽 해안과 만나며 보통 그 폭은 160~200km이다. 포크 해협은 저지대와 산호초가 대거 존재하며 최소 깊이가 9.1m 미만이고 폭이 64~137km이다. 현재는 두 나라 사이에 아담의 다리가 놓여 있다. 라마의 다리라고도 부른다.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 주의 라메스와람 섬이라고도 알려진 팜반 섬에서부터 스리랑카 북서부 해안의 마나르 섬에 이르기까지 염주 모양으로 이어진 사주(四洲)인데, 지질학적으로 볼 때 예전에 인도와 스리랑카가 육로로 연결되어있었던 흔적이다. 그 사이에 다리가 놓여 있는데, 다리의 길이는 30km이며 서남쪽의 만나르 만과 동북쪽의 포크 해협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일부 모래톱은 수면 위로 드러나 있으며 일대의 수심이 1m에서 10m 정도로 깊지 않아서 항해가 어렵다. 15세기 무렵까지는 도보로 건널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교로 각 사주가 연결되어 있으며 인도 쪽은 라메스와람 섬까지, 스리랑카 쪽은 마나르 섬까지 철도가 부설되어 있다.

 

아소카 대왕의 아들인 마힌다 장로(비구)가 사절단을 이끌고 스리랑카 섬에 갈 때는 인도 서남부에서 선박으로 건너 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스리랑카 사서(史書)마하왕서에 따르면 스리랑카 최초의 왕이 된 인도 벵골 비자야 왕자가 부왕으로부터 추방되자 칠 백 명의 추종자와 함께 배를 타고 스리랑카 섬으로 건너 왔다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비자야 왕의 신부를 데려온 배에는 팔백 명의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인도 아 대륙에서는 매우 이른 고대시기에 선박이 이용된 것으로 알 수 있다.

 

전설이기는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은 생존 재세 시에 스리랑카 섬을 다녀 간 것으로 전해지는데, 일곱 보석의 바다로 알려진 스리랑카 섬에 칠백 명의 상인을 데리고 떠났다는 기록이 있다.

▲ 고대 시대에 인도 아 대륙과 스리랑카 섬을 오고간 범선.    

  

스리랑카는 물론이지만 인도 불교 역사를 아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가 스리랑카에서 기록된 마하왕서라고 하는 5세기경 빨리어로 쓰인 서사시로 된 연대기(사서)이다. 스리랑카의 전설적인 건국이 있었던 기원전 543년 인도 벵갈 서부의 라르 지방으로부터 비자야 왕자가 스리랑카로 왔을 때부터 아누라다뿌라 왕국의 마하세나 왕의 죽음(기원후 302)까지 스리랑카 역대 왕들의 이야기를 빨리어로 읊은 서사시이다. 기원후 5세기경 아누라다뿌라에 있는 마하비하라 사원(큰 절)의 승려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하왕서의 타이틀을 번역하면 대사(大史)란 의미이다.

 

마하왕서의 내용을 크게 4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스리랑카 방문이다. 이 자료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스리랑카 섬 방문에 대한 전설적인 세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이야기들은 석가모니 부처가 당시 스리랑카 섬에 거주하던 야카족과 나가족을 그의 위신력으로 제압하거나 몰아내고 스리랑카가 중요한 불교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 예언)를 전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방문은 빨리어 율장(律藏)이나 다른 초기 문헌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내용이다.

 

두 번째는 스리랑카 왕들의 연대기이다. 이 자료는 스리랑카 왕들의 계보와 연대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때로는 스리랑카의 왕위 계승이나 재위 중에 있었던 주목할 만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자료는 스리랑카 내에서 자국어로 구전으로 기록되었던 이전의 왕실 연대기와 왕력(王曆)에서 유래되었을 수 있으며, 스리랑카 및 인근 인도 왕국의 역사에 대한 중요한 자료의 원천이 된다.

 

세 번째는 승가(불교 승단)의 역사이다. 마하왕서의 이 부분은 아소카 대왕이 스리랑카에 보낸 사절, 보리수나무 이식(移植), 마하비하라(큰 절)의 창건을 다룬다. 여기에는 스리랑카 초기 승가(승단)의 저명한 승려와 비구니들의 이름이 실려 있다. 초기 불교의 경전 결집에 대한 빨리어 율장을 문자로 최초로 적은 기록도 포함한다. 이것은 초기 불교 승가의 발전에 대한 중요한 자료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파견된 법대관(불교 전도사)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중 일부는 비문 등 고고학적 증거에 의해 확인되었다.

 

네 번째는 스리랑카의 연대기인데, 비자야 왕자가 그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인도에서 이주해 온 것에서 시작되어 마하세나 왕의 통치 때까지 계속되며 전쟁, 후계 분쟁, 부도(浮屠) 및 저수지 건설, 기타 주목할 만한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다. 신할라 왕 두타가마니와 타밀 왕 엘라라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 스리랑카 아누라다뿌라의 마하비하라(큰절) 대탑. 

 

마하왕서의 내용 대부분은 디빠왕서 島史에 보이는 내용의 확장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마하비하라(大寺)의 경쟁 사찰이었던 아바야기리 비하라(무외산사無畏山寺)를 다루는 여러 구절이 생략되어 있어서, 이 사서는 마하비하라와 더 구체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디빠왕서는 도사(島史)라는 의미인데,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이다. 기원후 3~4세기 경 빨리어 경전의 주석(註釋)인 아타카타(Atthakatha)와는 다른 경로로 수집, 편찬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하왕서와 함께 스리랑카와 인도의 고대 역사를 알려주는 사료일 뿐만 아니라 상좌부 불교 및 빨리어 문학의 중요한 초기 작품으로서도 중요성이 높다고 하겠다.

 

스리랑카 불교가 세계불교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중요한데, 인도나 스리랑카의 초기 불교사를 기록한 사서(史書)를 갖고 있으며 인도에서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빨리어 삼장(三藏)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가 열반에 든 다음,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 그룹은 두 파로 분할 됐다. 다수파인 마하상기카(Mahāsāṃghika)와 소수파인 스타비라와다(Sthaviravāda)로 갈라졌는데, 마하상기카는 대중부(大衆部)라고 하며, 스타비라와다는 상좌부(上座部)라고 한다. 오늘날의 상좌부는 이 스타비라와다의 계보를 잇고 있는 것이다. 스타비라와다인 상좌부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 종주국이 바로 스리랑카이며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방글라데시 등의 나라이다.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대승불교는 지금의 동아시아 불교인 중국 한국 일본 대만 베트남의 불교전통으로 계승됐지만, 인도-중앙아시아의 대승불교전통과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스리랑카를 종주국으로 하는 상좌부 불교전통은 부처님 당시의 승가의 원형성(原型性)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할 것이다.

보검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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