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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⑮ 쿠샨왕조 경전결집 동아시아 불교 원조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4/11 [08:20]
기원 2세기 유라시아 4대 제국의 하나, 서역 오아시스에 불교전파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⑮ 쿠샨왕조 경전결집 동아시아 불교 원조

기원 2세기 유라시아 4대 제국의 하나, 서역 오아시스에 불교전파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4/11 [08:20]

기원 2세기 유라시아 4대 제국의 하나, 서역 오아시스에 불교전파

인도-그리스 왕국 불교 계승, 대승불교 태동에 원동력 제공

 

인도에서 생겨난 불교는 기원 전후가 되면 북쪽으로는 그 주 무대가 쿠샨왕조가 된다. 또한 이란계의 파르티아와 쌍벽을 이루면서 불교를 서역의 오아시스 나라들에 전파하고 결국에는 중국 한() 왕조에 이르게 된다.

▲ 2세기에 유라시아의 4개 제국을 보여주는 지도. 쿠샨 제국은 주요 문명의 중심지였다.   

 

대월지국인 쿠샨제국에 대해서는 한서후한서》 「서역전에 기록되고 있는데, 후한서》 「서역전기록에 따르면 대월지국 도읍은 남씨성이고, 서쪽은 안식국과 접했는데 가는데 49일이 걸리며, 서역 장사 소재지에서 6,537리 거리이며 낙양에서는 16,370리이다. 10만 호에 인구는 40만이고 군사는 10만 명이었다. 그 전에 월지가 흉노에게 멸망한 뒤 결국 대하(박트리아)로 옮겨 왔는데 그 나라를 휴밀, 쌍미, 귀상, 힐돈, 도밀로 나누어 모두 5부 흡후를 두었다. ...중략, 월지는 이후로 강장부유하고 강성하였고 다른 모든 나라에서 부러워하며 모두 귀상 왕이라 불렀다. 그러나 한나라는 옛 호칭으로 대월지라 하였다.”로 기록되었는데, 대월지는 쿠샨제국으로 성장하여 불교를 국교로 삼을 정도였다.

 

오늘날의 동아시아 불교는 쿠샨제국의 불교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인도의 초기불교가 인도 서북부와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면서 인도 오리지널 불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상과 융합을 이루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과 함께 그리스 식민지가 형성되면서 불교와의 교섭이 시작되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스-박트리아, 인도-그리스 왕국을 거치면서 불교는 그리스 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상호 영향을 받고, 융합하는 데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는 페르시아의 문화, 종교사상이 자연스럽게 섞여졌고, 불교는 그리스 사상과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종교사상과도 접촉하게 되는 그야말로 혼합과정을 겪는 일대 사상적으로 하모니의 향연 시대를 거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등장한 왕조가 바로 쿠샨제국이다. 쿠샨제국은 본래 중국 서북 변방과 둔황일대의 초원에서 유목을 하던 민족인데, 흉노족한테 밀려서 중앙아시아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무렵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는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월지 족은 박트리아를 그리고 나중에 인도-그리스 왕국을 무너뜨리고 쿠샨제국을 세우게 된다. 쿠샨 제국은 월지를 건국한 토하라 민족의 일파인 쿠샨족이 세웠으며, 중국, 로마 제국,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 등과 교역했다.

▲ 간다라 불교 예술 건축술에 의하여 세워진 탁티 바히 사원 유적. 파키스탄, 마르단 불교사원 유적지.   

 

▲ 인도-그리스풍의 건축양식에 의한 탁티 바히 사원 추정모형도. 그리스 건축양식의 간다라 불교예술.   

 

쿠샨제국과 불교와의 관련에서 쿠샨제국의 카니슈카 왕의 가장 큰 공적은 불교경전 결집회의를 후원한 것이다. 불교역사에서 경전결집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상좌부 전통에서는 인도에서 1,2,3차까지가 개최되었고, 4차는 두 군데서 개최되었는데 상좌부는 실론에서 기원전 1세기에 열렸고, 이 때 야자 잎에 문자로 기록되었다. 또 다른 4차 경전결집은 기원후 1세기 경, 쿠샨제국에서 설일체유부(Sarvastivada)의 주관으로 카슈미르에서 개최됐다.

 

설일체유부 전통의 제4회 불전결집회의는 쿠샨제국의 카니슈카 대왕(재위: 기원후78105)에 의해 카슈미르 스리나가르 근처의 하르완 불교사원에서 소집되었다. 여기서 주로 다루었던 불전은 논장(論藏)인 아비달마(阿毘達磨)였는데, 빨리어로는 아비담마(Abhidhamma)라고 하며 산스크리트어로는 아비다르마(Abhidharma)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대법(對法: abhi + dharma = + )이다. 아비달마는 법() 즉 고타마 붓다가 설한 교법에 대한 연구와 해석을 말한다.

 

()의 저술은 부파 불교(部派佛敎) 시대의 특징 중 하나로 각 부파는 고타마 붓다의 교법에 대한 해석·주석은 물론이고, 거기에서 도출된 설법의 해석에 의거하여 자파(自派)의 교리학설을 체계적으로 수립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각 부파에 따라서 상이(相異)한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다. 4회 불전 결집의 최대 성과는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Abhidharma Mahāvibhāṣā Śāstra)라는 주석서이다.

▲ 인도 카시미르의 하르완 불교사원 유적지로 불교 4차 경전결집이 이루어진 장소로 추정하고 있다.   

 

▲ 인도로 망명한 한 티베트 린포체 고승이 하르완 불교사원 유적을 방문하여 의식을 집전하고 있다. 

 

카슈미르의 하르완이 불교의 중심지가 된 것은 기원전 3세기 아소카 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3차 결집 시에 1천 명 정도의 정통 비구만 인정하고 6만 명 정도는 가사를 벗기고 갠지스 강에 수장 시킨다는 끔직한 소문이 돌자, 거의 대부분이 히말라야 산록으로 도피했고, 상당수는 카슈미르로 향했다고 한다. 기원전후가 되자 카슈미르 지역의 불교 승가는 교리상의 혼란에 빠지게 됐다. 그래서 상좌부의 분파인 설일체유부 중심의 4차 결집이 단행됐는데, 500명의 아라한과 500명의 보살과 500명의 재가 불교지도자들이 삼장(三藏:경율론)을 카로스티 문자에 의한 간다리어에서 산스크리트어로 재편집했다고 한다. 4차 결집의 중심은 아비담마의 주석서인 마하 비바샤(Mahā-Vibhāshā 佛敎論書)의 결집이었다. 이 논서는 불교철학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고, 불교는 중국에 본격적으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인도에서 불교 확장은 아소카 대왕 때에 테이프를 끊었지만,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대왕이 바턴을 이어받아서 대승불교의 서막을 열었다. 쿠샨왕조는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로마와 펠시아, 인도, 중국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을 하면서 불교를 확장시켰다. 대승불교의 성립은 헬레니즘과 로마 페르시아의 사상까지도 섞여서 혼합된 뒤,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보검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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