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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⑰ 남인도 힌두 왕조와 스리랑카 전쟁빈번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4/25 [08:45]
스리랑카 불교 승단 쇠퇴와 복구 반복, 남인도 불교 동남아 몬족에 전파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⑰ 남인도 힌두 왕조와 스리랑카 전쟁빈번

스리랑카 불교 승단 쇠퇴와 복구 반복, 남인도 불교 동남아 몬족에 전파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4/25 [08:45]

스리랑카 불교 승단 쇠퇴와 복구 반복, 남인도 불교 동남아 몬족에 전파

남인도 출신 보리달마 중국에 명상()불교와 소림 쿵후 전파

 

인도불교역사나 스리랑카 불교 역사를 논할 때, 남인도를 비켜 갈 수가 없다. 실제로 인도에 가보면 북인도와 남인도의 사정은 판이하게 다르다. 남인도는 5개의 주와 연방직할지인 락샤드위프 제도(諸島)와 푸두체리를 포함하고 있다.

▲ 남인도의 5개 주와 락샤드위프 제도.   

  

5개의 메인 주는 안드라프라데시 주, 카르나타카 주, 케랄라 주,타밀나두 주와 텔랑가나 주 이다. 락샤드위프 제도는 라카디브 해와 아라비아 해 사이에 위치한 인도의 연방 직할지로서 여러 개의 섬들로 형성되어 있다. 전체 인구는 10만 명 미만이고 섬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10만 개의 섬을 뜻한다.

▲ 락샤드위프 제도의 한 섬의 아름다운 해변마을.   

 

인도 아 대륙(인도반도)은 현재 남아시아에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 등의 나라가 위치한 지역으로서, 지리적으로 북동쪽은 히말라야산맥, 서쪽은 아라비아 해, 동쪽은 벵골만으로 둘러싸여 있다. 여기서 장황하게 인도의 역사나 지리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간략하게 말해서 북인도와 동인도 그리고 남인도는 인종이나 언어, 역사, 문화가 다르다. 사실 인도 아 대륙을 여행하다보면 북인도와 남인도는 전연 다른 나라에 온 느낌을 받게 된다. 이 뿐만 아니라, 각 주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와 풍속이 다르다.

 

그렇지만 대체로 북 인도는 인종이나 언어가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고, 남 인도의 5개 주는 인도 아 대륙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비다인 계열이 대부분이며 이 중에서도 타밀족이 대표적이다. 물론 현재 남인도에는 드라비다인 이외에도 인도아리아인을 비롯한 타민족 사람들도 거주하고 현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도아리아인들이 대부분인 북인도 지역에도 약 2억 명의 드라비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원래 인도 아 대륙의 주인들은 드라비다인들이었지만 인도 아리아인들에게 밀려서 남인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 푸두체리의 프랑스 풍 비치와 주택.  

 

푸두체리는 옛 이름 퐁디셰리로서 인도 아 대륙 남부에 위치한 인도의 연방 직할지로 행정 중심지는 퐁디셰리로 인구는 약 150만 명 정도이다. 4개의 월경지(越境地)인 퐁디셰리, 카라이칼, 야남, 마에로 구성되어 있는데 퐁디셰리와 카라이칼은 타밀나두 주에, 야남은 안드라프라데시 주에, 마에는 케랄라 주에 둘러싸여 있다. 1674년 프랑스가 인도를 식민 통치하기 위한 차원에서 건설되었다. 1954년 프랑스가 이 곳을 사실상 인도에 반환했고 1963년 인도의 연방 직할지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도시 모습과 건축은 프랑스풍으로 관광지가 되어 있다.

 

현재 남인도는 거의가 드라비다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겠다. 이들은 주로 남인도에서 볼 수 있으며, 중부 인도의 일부 지방,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란에도 거주한다. 드라비다인들은 북인도에 거주하는 인도아리아인들과 유전적으로 확연히 다르다. 드라비다인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데, 인도에서 기원했다는 설, 서아시아에서 기원하여 인도 아 대륙으로 이주해 정착했다는 설, 인더스 문명을 이들의 기원과 연관 짓는 설 등의 여러 가지 설들이 제기되고 있다.

▲ 드라비다인의 분포도   

 

이제 스리랑카 불교와 관련하여 고대 남인도 왕조들에 대하여 간단히 일별해보자. 남인도 바로 턱밑에 있는 불교국가 스리랑카는 남인도로부터 자주 침략을 받고 지배당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아소카 왕 때 전해진 불교가 한 때 거의 파멸되다시피 했다.

 

고대 남인도는 촐라국, 팔라바국과 빤댜국이 정립하면서 발전해 왔다. 촐라국은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279년까지 남인도의 타밀라캄 지역에 존재하던 타밀계 왕국이다. 촐라왕국은 스리랑카와 밀접한 관련 속에 역사를 함께 해 왔다.

 

촐라국은 9세기 후반부터 촐라 제국으로서 다시 부활하여 13세기 초까지 남아시아 남부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세력을 떨치는 해상 제국으로서 번영하였다. 특히 스리비자야의 막강한 해군을 격파하고 남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최강의 해상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1010년부터 1153년까지, 촐라 제국은 남쪽으로는 몰디브와 스리랑카, 북쪽으로는 안드라프라데시까지 영토를 확장하였고, 스리랑카 섬의 아누라다푸라 왕국과 인도양의 몰디브 제도를 정벌하였으며, 갠지스강 유역과 동남아시아의 스리비자야를 정벌하였다.

▲ 촐라왕국의 최전성기인 11세기 무역루트와 동남아의 종속국가 지도    

 

팔라바국은 275년부터 897년까지 남인도 지역을 지배했던 고전기 인도의 왕국이다. 인도 타밀나두 주의 칸치푸람에 수도를 두었던 팔라바국은 문화의 예술의 다양한 발전과 힌두교의 흥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그로 인해 인도아리아 문화를 남부에 전파하는 매개자 역할을 했다. 팔라바의 군주들은 독실한 힌두교 신자였다. 수도인 칸치푸람의 대학을 중심으로 산스크리트 문학 등의 학문 또한 유행하였다. 수도인 칸치푸람은 남인도 학문의 중심지인 동시에 힌두교의 7대 종교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또한 선종의 교조인 보리달마가 팔라바국에서 태어났으며 불경에서 향지국(香至國)으로 한역되었다.

▲ 팔라바국 칸치푸람 출신으로 중국에 명상(선) 불교를 전파했으며, 소림쿵후 무술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칸치푸람출신 불교 대학승으로는 나가르주나(龍樹150년경~250년경)와 그의 제자 아리아데바(제바 170~270)가 있으며, 이들은 불교이론의 양대 산맥인 중관사상의 대가들이다. 또한 6세기에는 유식의 대가 디그나가(진나480년경~540년경)가 있으며, 5세기에는 빨리어 경전 주석가인 붓다고사(覺音)와 담마팔라(護法)가 이곳 칸치푸람에서 활약했다. 12세기 스리랑카 상좌부 불교가 동남아시아의 미얀마와 태국에 전파되기 전에 이미 56세기 남인도 상좌부 불교는 몬족의 미얀마 태국에 남인도의 상좌부 불교전통이 전해졌다. 또한 보리달마는 중국에 명상() 불교를 전파해서 오늘날 선종의 뿌리가 되게 했다.

 

빤댜국(판디아 기원전 4세기~기원후 1650)은 체라, 촐라와 함께 타밀라캄(타밀족)에 존재하던 타밀계 왕국이다. 빤댜는 오늘날 남인도와 스리랑카를 포함한 광범위한 영토를 다스렸다.

 

스리랑카의 불교 역사에서 보면, 불교가 기원전 3세기에 전해져서 한동안 인도 상좌부 전통을 계승 유지해 왔었으나, 정치 군사적으로는 남인도로부터 계속 시달림을 받아 왔다. 스리랑카 섬은 남인도의 인접 나라들에 의해서 자주 침략을 받았으며, 수도인 아누루다뿌라가 파괴되고 불교사원이 약탈당하는 것은 한 두 차례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섬나라 왕들과 주민들은 불교를 수호하고 유지하는데 생명을 바쳐가며 계승해 가서 오늘날 상좌부 불교의 종주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 칸치푸람의 근교의 논에서 김을 매고 있다.   

 

남인도와의 갈등의 시대에는 아누라다뿌라 불교 사원이 약탈당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불교 승단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스리랑카 불교는 불안정한 시기에도 불교문화, 예술 및 건축의 확장은 물론 9세기까지 불교 사원은 재산, 토지, 사유지 및 관개 시설을 소유한 강력한 기관이었다. 사원은 왕으로부터 영지를 부여받았고 영구히 보유했다. 불교사원은 신할라 왕의 보호를 받는 자급자족 경제 단위였다.

▲ 빤댜 왕국의 최전성기 때.   

 

불교의 중심지 아누라다뿌라는 세나 1(833~853)와 마힌다 4(956~972)의 통치 사이에 평화와 번영의 시기에 여러 왕의 거대한 건축이 있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촐라 제국(993~1077)이 아누라다뿌라 중심부를 침공하고 정복했으며, 이 전쟁은 아누라다뿌라를 황폐화시키고 왕국을 종식시켰다.

 

이로써 스리랑카 역사는 장을 넘겨서 천도를 하게 되고 폴론나루와 왕국이 건국하게 된다. 1070년부터 1232년까지 스리랑카 섬과 다른 지역들을 지배하던 나라로서, 파라크라마바후 대왕의 치세 동안 폴론나루와 왕국은 해외로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폴론나루와 왕국은 빤댜 내전에 간섭하여 남인도에 거점을 마련하였으며, 1165년부터 1180년까지는 미얀마에 원정군을 파견하였다. 또한 1165년에 상좌부 불교 전도승들을 동남아시아로 파견하여 상좌부 불교 포교 사업을 실시하였으며, 이는 동남아시아에서 대승 불교가 쇠퇴하고 상좌부 불교가 동남아시아의 주요 불교 종파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코리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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