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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㊻ 수코타이 왕국과 란나 왕국의 불교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11/14 [08:35]
실론 마하비하라파(大寺派) 정통불교 본격 수용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㊻ 수코타이 왕국과 란나 왕국의 불교

실론 마하비하라파(大寺派) 정통불교 본격 수용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11/14 [08:35]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수코타이 왕국과 란나 왕국의 불교

실론 마하비하라파(大寺派) 정통불교 본격 수용

 

태국 불교는 인구의 95%가 불교도이다. 세계에서 불교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태국 불교의 역사는 8백 년 정도 되는데, 사실 태국 땅에 있던 민속 종교를 통합했다. 태국의 불교 사원은 높은 황금 사리탑이 특징이며, 태국의 불교 건축은 태국이 문화 및 역사적 유산을 공유하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 특히 캄보디아와 라오스와 유사하다.

 

불교 내용상으로 보면, 스리랑카 불교와 많은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다. 태국의 상좌부 불교는 캄보디아, 미얀마, 스리랑카, 라오스의 상좌부 불교 전통과 대동소이하다.

▲ 태국의 최초 국가인 수코타이 왕국과 란나 왕국 주변 나라 지도.


실론 마하비하라파(大寺派) 정통불교 본격 수용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등은 본격적인 실론의 상좌부 불교 전통이 수용되기 전에 이미 인도의 상좌부나 중국의 대승불교 전통이 소개되었지만, 11세기경부터 실론의 상좌부 승려들이 점차 동남아시아 대부분을 상좌부(Theravada)로 개종시켰다고 해야 한다. 특히 실론의 마하비하라(Sinhalese Mahavihara 大寺派) 부파가 개종시키는 일을 주도했다. 실론의 상좌부가 이렇게 막강한 확산을 가져온 것은 미얀마 지역의 바간 왕국의 아나와라타(재위:10441077) 왕에 의한 지원에 의해서였다.

▲ 크메르(캄보디아)의 자야바르만 7세(1181〜1218)의 통치 기간에 건설된 롭부리의 크메르 대승 사원인 프랑 삼 욧 사원(현재는 태국 영토).

 

타이족은 11세기에 본격적으로 남하했지만, 사실상은 7세기부터 태국인들은 점차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이주했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하리푼차이와 같은 동남아시아 왕국을 정복하고 피정복 지역에 이미 존재했던 불교 신앙의 실천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수민족으로서의 태국 왕국은 1238년에 건국된 수코타이 왕국(1315세기)이었다. 처음에는 이 지역에도 불교로 말할 것 같으면 상좌부와 함께 크메르의 대승불교와 브라만교도 함께 공존하여 뒤섞여 있었다.

▲ 나콘시탐마랏 시가지의 거리.

 

13세기 동안 태국 승려들은 스리랑카로 여행하여 싱할라족 마하비하라 상좌부 부파에 가서 구족계를 받고 빨리 삼장을 공부하는 것을 정통으로 생각했다. 말하자면 태국 승려들이 스리랑카로 유학을 간 것이다. 태국에서는 실론 승단을 랑카왕사(Lankavamsa) 또는 랑카봉(Lankavong)으로 일컬었다. 상좌부파를 의미했다. 미얀마는 물론이었지만, 실론 승려들이 태국 수코타이 왕국으로 와서 직접 태국 비구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실론(스리랑카)식 상좌부 불교 승단을 옮겨 놓은 듯 했는데,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실론(싱할라)식 상좌부의 초기 전파가 가장 활발한 지역은 나콘시탐마랏으로 태국 남부 지역이었다.

▲ 태국 비구스님들도 이젠 스마트 폰을 사용한다.

 

수코타이 람 캄행 왕(13세기 후반)은 나콘시탐마랏에 있는 스리랑카 상좌부 비구들에게 필요한 시설과 물품을 왕실에서 직접 제공했다. 왕은 또 스리랑카 비구들을 수도로 초빙하여 사원을 지었고 이후 더 많은 태국 승려들을 스리랑카로 보내 공부하게 했다. 이 왕실 지원은 태국에서 명성과 영향력을 높였다. 람 캉행 왕의 통치 기간 동안 스리랑카의 영향을 반영하여 사리탑이 세워졌다. 그 중 하나가 왓창롬 사원이다.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태국인들은 보리수 신앙을 받아 들였다. 태국에서도 보리수 신앙이 보편화 된 것은 실론 불교의 영향이다. 이미 인도에서는 불교가 거의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에 태국은 실론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수코타이 시기의 사원 건축 양식도 실론의 영향을 받았다. 불상도 스리랑카 스타일이었다. 마치 스리랑카 불교를 옮겨다 놓은 것처럼 실론 스타일이었다.

▲ 수코타이 시기의 태국사원 양식은 실론(스리랑카)스타일이다. 

 

일부 학자들은 수코타이 왕국(12381438 A.D.)을 태국인의 첫 번째 통일 왕국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수코타이의 모든 왕은 불교도이자 테라바다 불교의 지지자였다. 사실상 이때부터 태국은 상좌부 전통이 강하게 뿌리가 내리게 된 것이다. 이 무렵에 승가조직과 지도자인 상가라자(승왕) 제도가 확립됐다. 다른 비구들에게도 하급의 승직(僧職)이 주어졌다.

 

나중에 수코타이 왕들은 스리랑카 상좌부 전통이 태국에 수용되도록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고수했다. 수코타이 시대에 수많은 수도원, 불상 및 사리탑이 세워졌다. 빨리어 불교 경전에 대한 연구도 촉진되었다. 태국 왕들은 불교 전통에서 왕권의 개념을 가져왔고, 불교의 법왕이 자비 도덕 관대 온유함을 덕목으로 하듯이 세속적 왕도 이런 불교의 법왕과 같은 미덕을 갖도록 했다.

▲ 마하 탐마랏차 1세 왕. 

 

수코타이 시기에 불교를 진흥시키고 스스로 단기간이지만 출가 경험을 쌓은 왕이 마하 탐마랏차 1(재위:13461368)이다. 그는 학자이기도 했는데, 불교의 우주론인 삼천대천세계에 대한 저술을 했다. 스리랑카 비구들이 직접 와서 상좌부 전통을 전수하도록 했고, 삼림에서 명상을 하는 숲속의 은둔 수행자들도 오게 해서 이런 전통도 전수받아서 오늘날 태국에도 이런 삼림수행자 전통이 생겨나게 됐다.

 

역대 왕들은 불교를 보호하고 장려하면서 그야말로 불교가 국교나 다름없는 종교로서의 기능을 하도록 한 것이다. 스리랑카에서는 계절풍을 타고 순식간에 인도차이나반도에 다다르게 되었다. 5월에서 10월에 부는 남서풍을 타고 스리랑카나 인도에서 쉽게 동남아에 이른다. 또 겨울에는 11월부터 4월까지는 뱃머리를 인도나 스리랑카로 돌려서 금방 순풍을 타고 인도 아대륙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바람이 엉뚱하게 불 때도 있어서 바다에서 헤매게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 아유타야 왕국 시대의 지도.

 

수코타이를 계승한 나라가 아유타야 왕국(1350-1767)이다. 아유타야 왕국은 시암의 첫 번째 왕국으로서 1351년에서 1767년까지 400여 년간 존속하였으며, 수도는 아유타야였다. 1936년 이후 국호를 시암에서 타이로 바꾸면서 오늘날의 타이 왕국이 되었다.

 

태국에서 흥기한 다른 왕조처럼 중국과 인도, 유럽을 잇는 중간에 위치하는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무역을 장려했으며, 무역을 나라의 중요한 경제적 수단으로 생각했다. 아유타야 왕조는 왕가를 중심으로 독점 무역을 했다. 주로 중국에 쌀을 수출하여 국력을 기르고, 조선, 일본, 류큐국 등과 안남 등의 동아시아 국가, 동남아시아 크고 작은 섬들이나, 아랍, 페르시아 서양과 활발하게 무역을 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 부를 바탕으로 아유타야에서는 당시 번영하고 있던 크메르 문화를 흡수하면서, 중국, 유럽, 페르시아 등의 문화의 영향을 받은 독자적이고 화려한 문화가 꽃피게 되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 불교회의에 참석한 보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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