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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여자들 [박현선 에세이]~ 쇠똥구리 발자국

박현선 | 기사입력 2023/01/25 [09:12]
제 1부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야

5. 쇠똥구리 발자국

꿈꾸는 여자들 [박현선 에세이]~ 쇠똥구리 발자국

제 1부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야

5. 쇠똥구리 발자국

박현선 | 입력 : 2023/01/25 [09:12]

  박현선 (수필가) ./ © 매일종교신문


더위가 곰팡이 피어나듯 등줄기에 퍼지고, 화기가 온몸에서 끓어오른다.

뛰면서 음악을 즐기고 싶다. 사실, 댄스곡은 여름에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럴 땐 혈기로 무장된 우리는 어딘가로 가곤 했다.

 

댄스곡이 쿵쾅거리고 네온이 울긋불긋 비춰대는 지하 어둠속귀청을 찢을 듯한 음악소리끈적거리는 열기속으로 빨려들어간다춤으로 자신의 피를 뜨겁게 달구어 이열치열로 맞선다.

 

얼굴을 가려주는 검푸른 어둠은 용기를 준다. 번개처럼 쏘아대는 조명은 기름을 붓듯춤바람에 자신감이 솟아나게 한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킨다. 몸속에 갈색 거품을 부으면 낙타처럼 뛰는 여자로 변신한다. 음악을 타고 넘실대던 춤은 발광으로 이어진다모든것을 잊게 하는 마법에 빠져 한여름밤을 즐겨댄다.


학창 시절. 무용이란 과목에서 댄스를 구체적으로 배우게 되었. 강당은 유난히 북적거린다. 삼삼오오 모여서 댄스 연습을 한다.그 시절 인기있는 각종춤을 배우고 익혔다

 

가을 체육대회 때는 반별로 의상을 갖추어 입고, 준비된 음악에 맞추어 매스게임을 연출했다. 춤추는 모습에서 환희가 느껴지고 지켜보는 관객들은 박수를 보낸다어린 눈에 비친 무용선생님은 몸매가 좋고머리를 게 늘어트린 지적인 미인이었다.

 

댄스를 잘하기 위해서는 바른 자세를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단다. 아름다운 자세가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한 스트레칭과 유연성을 향상해주는 체조를 통해 련하고자세를 도와주는 동작을 여러번 반복하면서 몸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댄스를 하기 전, 준비 운동으로 왈츠 음악을 들으며 자연스러운 호흡과 편안한 마음 상태를 갖는다. 자신의 유연성에 맞게 다리어깨복부등의 근육부터 스트레칭을 하면서 단계적으로 횟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머리로 먼저 이해를 시키고, 몸이 춤을 받아들이게 하는 댄스 전 준비 운동은 지금까지도 몸을 유연하게 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을지로 입구역에서 무용을 포함한 여러 장르 공연을 보여주고 있었다지하철역에서 하는 공연이라서 그런지 편안한 자세로 서거나바닥에 앉아 볼 수 있었다.

 

쇠똥구리 발자국이란 제목부터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안무자중 한분이 나와서 쇠똥구리의 삶을 춤으로 승화시킨 공연에 대해 세세히 설명해 준다. 쇠똥구리는 원래 소똥을 먹거나 그 속에서 평생 묻혀 사는 벌레이다. 사람의 오만 가지 군상을 배우기에는 지하철 만큼 적절한 장소가 없을 것 같아 이작품을 이곳 무대에 올리게 되었단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지쳐버린 자신과 그리고 나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지하철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더러운 똥인 줄도 모르고 생명줄처럼 연명하는 쇠똥구리와 같은 비애감도 생길 것이다. 안무자는 이 사회가 소똥 밭과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래서 그런지 쇠똥구리의 고뇌를 역동적인 동작으로 표현한 것이 뇌리에 남는다. 사람의 몸이 쇠똥구리 벌레로 변해 섬세하게 움직여 댄다. 내가 변신한 듯 착각에 빠지게 한다짜릿한 전율이 교차하며 춤에 점점 취해간다.

 

쇠똥구리로 변한 안무자의 동작을 보면서 공간에 따라 춤의 선은 무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무대가완전히 노출된 경우라 공연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 들었다길을 잠시 접은 채 즐거운 한때를 경험한다.

 

특히 번잡한 을지로 입구역에서 보여준 공연이 목적지로 또다시 바삐 움직여야 하는 사람을 잡아 두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이날 공연하는 안무자들은 사정없이 흘러내리는 땀을 참아가며 보기 좋은 무대를 만들었다. 지하철역에 설치한 딱딱한 평상 바닥에서 무용하는 것이 안무자들에겐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무용이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아름다운 춤 동작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무대였다. 춤은 관객에게 단 한 번 보일 뿐이지만, 오래 기억하게 하는 것에 그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박현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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