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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6장 ‘혼(魂)에 대하여’-자율신경과 혼

정영부 | 기사입력 2023/02/03 [10:19]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6장 ‘혼(魂)에 대하여’-자율신경과 혼

정영부 | 입력 : 2023/02/03 [10:19]

  © 매일종교신문


이번 회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6()에 대하여자율신경과 혼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자율신경과 혼

 

혼은 생기체를 통하여 몸을 통제한다. 그러나 불수의근(不隨意筋)’은 자율신경이라 혼의 의지(意志)가 미치지 못한다.(1) 다만 생기체의 불수의(不隨意)시스템을 통하여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간접적으로 몸의 자율신경을 주관한다.

 

설기문 교수는 그의 저서 시간선치료에서 마음은 무의식 등 비각성 시에 소화, 호흡, 심장박동, 체온 조절 등과 같은 생명활동, 즉 불수의적 기능을 통제한다고 주장하며 비각성 시의 이러한 마음을 신체마음이라고 따로 부른다.(2) 그의 신체마음은 표준이론의 생기체다.

 

그런데 무의식(3)이 불수의적 기능뿐 아니라 영성, 직관, 깨달음, 초능력의 세계를 관장한다는 의견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 이것은 미망(迷妄)에서 비롯된 의견이다.

 

우선 무의식이 불수의적 기능을 통제한다는 주장은 비각성 시 무언가가 불수의근을 통제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무의식이라는 모순적 단어로 얼버무리는 주장이다. 무의식이 영성, 직관, 깨달음, 초능력의 세계를 관장한다라는 말은 혼과 영의 존재의 유무와는 무관히 초능력이나 영성, 직관, 깨달음이 실재하는데 그것을 의식이 관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프로이트라는 성인(聖人)’의 말을 추종하여 이를 무의식이 통제한다고 함으로써 짐짓 자신들이 과학적인 체하나 오히려 프로이트가 저지른 오류를 답습하고 있다.(4) 그러면 무엇이 이것들을 관장하는가. 위 의견은 이렇게 고쳐 써야 한다. “혼은 생기체를 통하여 불수의근과 초능력(5)을 관장하고 통제한다. 그리고 영이 영성, 직관, 깨달음을 관장한다.”

 

 

<註釋>

 

1) 신체의 에테르 메커니즘(생기체시스템) 중 하나는 무의식적이며 교감계와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의식적 혹은 자발적이며 뇌척수 계통과 연결된 두 개의 분명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라나(생기)는 신체에서 두 개의 주요한 형태, 즉 에테르체에 활기를 주는 프라나와 육체의 자동적인 프라나(Automatic Prana)로 나누어져 존재한다.(포웰, 에테르체18 메스머리즘, 6.3.1. ‘생기체참조)

 

2) 무의식은 기본적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신체마음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무의식이 신체적 기능을 움직인다는 의미다. 그리고 무의식은 신체를 안전하게 보존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신체가 위험상황에 노출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무의식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설기문, 시간선 치료) 설기문은 그의 다른 저서인 최면의 세계에서도 마음이 자율신경을 통제한다고 한다. 설기문의 신체마음은 생기체다.

 

3) ‘무의식에 대하여

 

1. 무의식은 영어의 unconsciousness를 번역한 말인데 이는 un-con-scious-ness의 합성어로서 곧 의식이 없는 상태또는 인사불성의 상태를 의미한다. 의식이 없다는 것은 곧 죽은 상태를 말할 수도 있다는 뜻에서 최면치료 분야에서는 무의식이라는 개념보다는 잠재의식이라는 말을 쓰는 경향이 있다.

 

영어에서의 잠재의식은 sub-conscious-ness의 합성어로서 문자 그대로 의식의 밑에 있는 또 다른 세계라는 의미에서 하부의식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으나, 이 두 개의 용어들을 같은 의미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설기문, 최면의 세계, 무의식의 의미와 기능 참조)

 

2. 1의 진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무의식이란 단어의 활용 용도는 두 가지다. 먼저 의식이라는 말의 반대상태즉 물질 반물질처럼 쓰이거나 아니면 비각성 또는 반각성 시에 사용하는 뇌의 기억장소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1) 의식이라는 말의 반대, 즉 물질에 대해 반물질이 있는 것처럼 의식에 대해 무의식이 있다는 것처럼 쓰이는 것에 대하여.

 

 

(1) 의식은 상태이고 무의식은 상태가 아니다. 그러므로 무의식하에서 그랬다라는 표현은 의식이 없이 그랬다라고 해야 한다. 의식 대신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이 그랬다는 말로 변용되어 쓰이면 곤란하다. 다시 말해서 마치 물질 반물질의 관계처럼 쓰이는데 실지로는 반물질은 있는() 것이고 무의식은 없는 것이다. 무의식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의식이란 용어는 어떤가. 그러나 그런 개념은 성립할 수 없으니 쓸 수 없다. 도대체 힘이 없어서 쓰러졌다없는 힘이 쓰러뜨렸다가 어찌 같다는 말인가.

 

(2) 의식은 그 속성 자체가 각성인식의 합이다. 그러니 각성이 없는 무의식은 의식상태가 아니고 의식의 일종도 아니다. 그냥 의식이 없는 상태다.

 

(3) 따라서 이러한 의미의 무의식비각성이란 용어를 사용해야 맞다.

 

(4) 의식은 잠재의식(의식) 또는 반각성상태를 포함한다. 반각성상태는 꿈이나 최면 등 변성의식상태(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에 주로 나타난다. 이때에는 의식상태 시 접근이 어려운 몸뇌의 잠재기억에 접근하기가 용이하다. 또 혼이 몸뇌의 구속에서 일부 풀려난 만큼 혼뇌의 일부를 사용할 수 있다.

 

2) 비각성 시에 사용하는 뇌의 기억장소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는 것에 대하여.

 

(1) 의식이 있는 상태, 즉 각성 시에 혼은 몸뇌만 사용한다. 그러면 몸뇌의 비각성 시에 혼이 사용하는 기억장소는 어디일까? 그것은 뇌에 있는 기억인가 아니면 제3의 장소에 있는 기억인가. 뇌의학은 뇌의 일부분에 있는 기억이라고 한다. 일단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의식 시 혼이 사용하는 기억장기가 몸뇌라면 비각성 시 사용하는 기억장기도 따로 용어가 필요하다. 몸뇌를 계속 사용한다면 무의식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라고 하던가 구태여 구분하여 사용할 필요가 있다면 비각성 시 사용하는 뇌라고 하든가 비각뇌라고 하든가 하라.

 

(2) 프로이트가 비각뇌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비각뇌라는 것이 실지로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일 수 있다. 왜냐면 직감적으로 뇌에 그런 부분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소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3) 결론적으로 비각성 시에 사용되는 기억은 몸의 기억장치 즉 두뇌에 있지 않다. 사실 비각성이란 語義 자체가 몸뇌의 각성이 없다는 의미이니 몸뇌를 사용할 리도 없는 것이다. 몸뇌의 기억은 몸이 경험한 것, 즉 각성 시에 일어난 일이 아니면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각성 시에 경험하지 못한 3의 기억을 너무나 많이 갖고 있다. 3의 기억은 각성 시에도 경험할 수 있다. 각성 시에 나타나는 3의 기억에서 소위 창의성이 발현된다. 그리고 숙면중의 꿈이나 깊은 최면, 빙의, 다중인격, 유체이탈 등 비각성상태에서는 더욱더 많은 3의 기억이 활개 친다. 그렇다면 3의 기억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4) 표준이론에 의하면 혼은 각성 시에 생기체를 통하여 몸의 장기를 지배한다. 그러나 보통의 혼은 몸의 불수의(不隨意) 부분을 지배할 수 없다. 혼의 생기체가 혼의 의지와 무관히 시스템적으로 몸의 자율신경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한편 혼은 몸뇌가 각성상태인 때에는 몸에 철저히 속박되어 있다. 그러나 몸뇌의 비각성 시에 혼은 훨씬 자유스럽다. 이때 사용하는 혼의 기억장기즉 생기체의 장기인 혼뇌가 3의 기억장치. 그러니 무의식이라는 말은 부적절하다. 결론적으로 소위 무의식상태라는 것은 육체의 의식(각성+인식)작용이 잠자는 때의 혼의 의식상태다. 즉 의식은 각성 시 혼의 의식상태이고 무의식은 비각성 시 혼의 의식상태. 이때 표준이론은 의식을 몸뇌의식이라고 하고 무의식을 혼뇌의식이라고 한다. 몸뇌의식과 혼뇌의식은 합해져 혼의 전체 의식을 구성한다. 몸뇌의식은 두뇌에 의존하고, 혼뇌의식은 혼뇌에 의존한다. 몸뇌의 반각성 시나 변성의식 상태에서도 혼은 몸뇌의 잠재기억 또는 혼뇌의 일부를 사용할 수 있다(6.12.2. ‘표준이론의 의식구분참조).

 

3. 정신분석학에서 기억은 현재(표면, 각성)기억잠재기억으로 나뉘는데 그 크기는 1:9 정도다. 의식은 각성과 인식의 합이나, 부분각성 상태인 잠재의식이나 최면, 렘수면, 마약에 취한 상태 등 변성의식도 의식의 일종이다. 의식상태에서 뇌파는 대부분 베타파 또는 감마파 등 주파수가 높지만 명상, 최면, 자각몽 등 변성의식상태는 알파파나 세타파로 주파수가 낮아진다.

 

4. 또한 의식은 마음의 구성부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마음이 의식상태일 때(몸뇌의식)에는 각성과 인식이 있다. 따라서 마음을 의식과 관련하여 도식하자면 마음=몸뇌마음+혼뇌마음이다. 무의식+각성의식이 아니다. 혼은 마음이니 몸뇌마음은 혼이 몸에 속박된 각성상태의 마음이고 혼뇌마음은 몸뇌가 잠자는 때의 마음이다.

 

5. 최면 시 경험은 각성 시에도 기억이 된다(최면의 방법과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그때 몸은 반()활성상태, 각성상태, 잠재의식(의식)상태다. 그런데 최면상태에서 혼은 활성 또는 부분활성하는 특이한 행태를 보인다. 혼이 어찌하여 부분적으로만 활성할 수 있을까? 혼도 물성이 있어서 그런 것으로 보이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최면 시에는 한곳에만 집중하여 다른 것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으로 인해 특이한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6. 혼이 명종 후 윤회혼이 되면 혼은 어떻게 기억하는가. 죽을 때 생기체의 혼뇌를 복사해 가져가는가? 그렇지 않다. 혼뇌는 생기체의 기억장치다. 윤회혼의 기억은 혼에게 습관이나 업()으로 기억된다. 혼은 육체에 있을 때 뇌에 대응하는 기억장치가 있을 뿐 몸을 떠나서는 기억장치를 달고 다니지 않는다. 혼은 유체이탈 시 또는 사후 몸을 떠날 때 혼의 장기인 생기체를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회혼의 기억장치는 혼뇌가 아니다. 혼뇌는 생시혼(이승혼)의 일부인 생기체의 기억장치일 뿐 혼의 기억은 혼의 습관 또는 업으로 혼에 각인된다. 그 기억은 몸뇌나 혼뇌처럼 물리적 기억이 아니다. 혼의 기억은 어디에 저장했다가 떠올리는 것이 아니고 파란색을 보면 파랗고 빨간색을 보면 파랗듯이 그냥 본다. 느낀다. 그래서 안다. 그러니 혼에게는 육체의 뇌와 같은 기억장치가 필요하지 않다. 업과 덕에 다 쓰여 있다.

결론하면

1) 혼이 몸에 깃들면 몸의 생기체를 키워 몸의 각 장기에 맞는 혼의 장기를 구성한다.

2) 혼뇌는 육체에 있을 때만 혼이 가진 기억장기이다. 즉 혼뇌는 혼의 생기체에 속한 장기이다.

3) 혼이 육체를 떠나서 전생을 기억하는 장치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혼의 성격처럼 혼에 체화(體化)되어 있다. 강가의 바위가 수천 년의 물의 흐름을 그 몸뚱이로 웅변하는 것처럼.

 

7. 최면 시에는 몸뇌가 부분각성상태이기 때문에 혼이 몸의 속박에서 일부 벗어난다. 이때에는 혼이 각성 시에 활용하지 못하는 몸뇌의 잠재기억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최면상태에서는 몸뇌의 잠재기억이 각성 시보다 용이하게 드러난다. 또는 잠재기억을 포함한 몸뇌의 모든 기억을 혼뇌에도 기억하기 때문에 혼뇌에 있는 몸뇌의 잠재기억을 꺼내어 활용한다고 하여도 결과는 같다. 같은 이유로 혼뇌의 기억중 전생의 기억도 일부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8. ‘무의식과 표면의식을 자기최면이나 명상 등으로 통합하면, 또는 무의식을 의식화하면 초능력자가 된다거나 정신적 또는 영적으로 발전하고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혼과 몸을 일체화시킨다는 불합리한 논리이다. 표준이론의 생기체를 통하여 몸을 간접적으로 장악하던 영과 혼이 발전하고 수승(殊勝)하면 몸을 직접 장악하고 몸의 속박에서 벗어나 각성 시에도 혼뇌와 혼의 장기에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초능력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다라는 진술이 합리적이다. 불가에서 해탈의 경지를 이루면 전생을 보는 숙명통을 얻는다함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초상능력(超常能力)을 보이는 것도 혼이 혼의 장기의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9. 뇌에 경험한 모든 것이 기억되지는 않는다. 뇌는 그런 용량이 되지 않으며 따라서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것은 영구 삭제된다. 뇌의학자들은 두뇌의 기억용량은 무궁무진하다고 하는데 이는 상식에도 어긋나는 주장이다. 자신을 보라. 과연 뇌의 용량이 무궁무진한가?

 

이는 잠재기억 특히 혼뇌의 기억이 드러나는 저 많은 경우와 막대한 뉴런의 개수를 보고 질려서 대충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또 무의식에 저장된다는 주장도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용어상 그리고 의학상 비합리적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혼이다. 혼이 이승혼일 때에는 혼의 저장장치인 혼뇌에 모든 것을 저장한다. 동시에 혼에 업처럼 체화하여 새겨진다.

 

아카식 레코드가 그것이다. 그래서 고급영이 혼을 보면 그의 모든 것을 안다. 혼의 얼굴에 그의 기억이 쓰여 있다. 그래서 아카식 레코드는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일 것이다. 아카식 레코드가 신지학이나 케이시(Edgar Cayce 1877~1945)의 주장처럼 에테르에 별도로 저장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10. 뇌를 다치거나 치매에 걸려 프로세서와 메모리가 망가진 사람에게 최면을 걸면 정상인이 최면에 걸린 때처럼 그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까? 뇌의 메모리 기능 부분만 망가졌다면 (표준이론에 의하면) 최면 같은 부분의식 상태에서는 혼뇌의 기억을 일부 사용할 수 있다고 보므로 어느 정도 가능하여야 맞다.

 

그러나 뇌의 프로세서 부분이 망가졌다면 혼은 몸이 있어야 액팅할 수 있는 까닭에 최면으로 혼뇌의 기억을 드러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에는 혼뇌의 기억을 쓸 수 있다. 몸뇌의 프로세서 기능마저도 혼이 하면 된다.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되어 뇌가 완전히 망가진 사람이나 임종 직전의 사람이 정상적인 의식활동을 보이는 회광반조(回光返照)의 경우 또는 서번트증후군이 그런 경우다(12.1 ‘임종명석현상(Terminal lucidity)’ 참조).

 

11. 최면이나 수면 중에 활성화되는 기억이 혼뇌의 기억이 아니라 두뇌의 잠재기억에 불과하다면, 몸뇌에 모든 것이 기억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몸뇌에 모든 것이 기억되어 있다는 주장은 틀렸다. 그 이유는

 

1) 잠재기억에 있을 수 없는 3자의 기억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혼뇌에서 나온다. Agree하지 않는 측에서는 뇌가 기존 기억을 토대로 창조하였다고 일갈하겠지만 똑같은 논리와 확률로 각성 중의 경험이 아닌 혼의 경험이나 타인의 경험에 의한 기억이라고 일갈할 수 있다. Agree하지 않는 측의 대부분은 의식은 뇌의 전기현상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런 믿음에서 어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오겠는가.

 

2) 혼뇌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음은 증명되어 있다. 물론 증거로 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3) 최면 중에 다른 인격이 튀어나온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각성 또는 비각성 중에 외부의 다른 인격이나 복합혼을 가진 사람의 주혼 외에 숨은 다른 종혼의 인격이 나타나는 것이다. 최면 중의 기억이 뇌에 저장된 기억이라면 최면 중에 거기에서 어떻게 다른 인격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것은 기억장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주체가 주혼에서 종혼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몽유병 또한 복합혼의 종혼이 수면 중인 주혼 대신 몸을 지배한 경우일 수 있다.(6.3.1. ‘생기체참조)

 

12. 1) 무의식은 또한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도 작용한다. 자동차운전을 배우거나 새로운 악기연주법을 배울 때 처음에는 의식적인 노력을 통하여 하나하나의 기술을 연습하고 익히지만 어느 정도의 단계가 지나면 그것에 대하여 의식을 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기술이 몸에 배어 자연스레 활용이 된다. 그래서 실제로 자동차 운전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기계를 조작하는 사람들은 그 조작법을 일일이 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 ‘자동화된 동작과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기계나 도구를 만지게 된다. 그러나 초보자들은 아직 숙달되지 않았기에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그러다가 숙달될수록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크게 의식을 하지 않아도 잘 해내게 된다.(설기문, 최면의 세계중에서)

 

 

2) 뇌의학은 이러한 기억은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 중 절차기억이라고 하며 무의식에 저장된다고 주장한다.(무의식에 저장된다는 것은 전술한 것처럼 어폐가 있으니 잠재기억에 저장된다는 말로 해석하자) 그러나 뇌 이외의 신체기관에 저장된다는 연구도 많다. 대부분의 경우 이는 진실이다. 손에 익고 몸으로 익힌다는 것이 그것이다.

 

13. 1) “무의식은 실제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몸과 마음을 주관한다. 특히 그것은 생물학적·생리적 생명활동에 관계하는데, 예컨대 심장을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1분간에 일정한 횟수의 비율로 움직이도록 할 뿐만 아니라 폐의 호흡작용이나 위장의 소화작용 등에 작용을 하여 일정한 속도와 비율로 생명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관여한다. 그뿐만 아니라 무의식은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입을 벌리고 씹는 행위와 같은 근육의 움직임을 통제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무의식은 소화, 호흡, 심장박동, 체온 조절 등과 같은 생명활동, 즉 불수의적 기능을 통제한다.” (설기문, 최면의 세계) “자율신경(Autonomic nerve)은 호흡, 순환, 대사, 체온, 소화, 분비, 생식 등 생명활동의 기본이 되는 기능이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자율신경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한다. 자율신경이 있는 덕분에 우리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각종 내장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으며, 심장을 움직이는 속도를 변화시키거나 음식을 먹은 후에도 소화관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네이버백과, ‘SIM 통합내과학참조)

 

2) 1)의 진술에서 무의식이 불수의근을 통제한다면 자율신경계를 무의식이 통제하고 있다는 말이다. 자율신경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자율신경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한다고하니 서로 말이 통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에는 어폐가 있다.

 

(1) 이미 언급했지만 무의식이란 단어는 틀렸다. 전술한 바와 같이 비각성이란 용어나 병리적 의식(프로이트의 무의식인 경우)’이라고 하여야 하며 경우에 따라 잠재의식이란 말로 대체하여야 한다(6.12.2. ‘표준이론의 의식구분참조).

 

(2) ‘무의식적으로 작용한다자동적으로 작동한다는 말이고 그러면 무의식뿐 아니라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의식이 불수의근을 통제한다는 논리는 더욱 틀렸다.

 

(3) 그런데 혼이 자율신경을 통제한다면 말이 된다. 자율신경에 혼의 신경계(생기체)가 덮혀 있으며 이를 통하여 혼이 자율신경을 통제한다. 그러나 혼의 생기체는 불수의근을 통제 시에는 혼의 정신체로부터 독립한다. 혼의 생기체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소화, 호흡, 심장박동, 체온 조절 등과 같은 생명활동, 즉 불수의적 기능을 자율신경을 통하여 통제한다. 다만 표준이론에서 수승(殊勝)한 혼은 자율신경뿐 아니라 혼뇌의 모든 기능을 각성 시에도 통제하고 사용할 수 있다.

 

14. 직관 또는 직감(insight), 영감(inspiration), 육감(sixth sense), 예지(豫知)능력(precognition)은 무의식의 능력이 아니라 대부분 영의 능력이다. 반면 텔레파시(telepathy)등의 초상현상이나 참선, 요가, 기공, 단전호흡, 명상수련과 같은 방법을 통해 병이 치료되고 기적 같은 일(공중부양, 투시력, 천리안과 같은)이 나타나는 것은 기()의 일이니 혼이 혼의 장기를 사용하는 작용이다.

 

4) 6.12. ‘의식상태별 혼의 활동참조

5) 초심리학에서 말하는 psi능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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