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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아뢰야식과 아말라식의 표준이론적 해석’

정영부 | 기사입력 2023/03/24 [07:58]

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아뢰야식과 아말라식의 표준이론적 해석’

정영부 | 입력 : 2023/03/24 [07:58]

이번 회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8주요 인간론(人間論)’ 아뢰야식과 아말라식의 표준이론적 해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참고로 제8장의 목차와 그중 이번 회에서 다룰 부분은 다음과 같다.

 

8. 주요 인간론(人間論)

8.1. 그리스 철학과 영언여작의 삼혼설

8.2. 기독교의 인간론

8.3. 불교의 인간론

8.3.1. 오온과 식()의 인간론

8.3.2. 아뢰야식과 아말라식의 표준이론적 해석

8.3.2.1. 아뢰야식이란?

아뢰야식과 혼의 유사성

8.3.2.2. 아말라식이란?

8.3.2.3. 무아론의 문제점

8.3.3. 불교의 우주론

8.4. 원불교의 영기질 인간론

8.5. 자이나교의 혼육이원의 인간론

8.6. 힌두교의 인간론

8.7. 정기신(精氣神)의 인간론

8.8. 도교의 인간론

8.9. 도가의 인간론

8.10. 우리나라의 민속적 인간론

8.11. 영지주의의 인간론

8.12.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

8.13. 대종교의 인간론

8.14. 정신분석학의 인간론

8.15. 동의보감의 인간론

8.16. 카발라의 인간론

8.17. 헤르메스주의의 인간론

8.18. 신지학적 인간론

8.19. 뉴에이지의 인간론

8.20. 통합적 인간론

8.21. 기타 여러 가지 인간론

 

아뢰야식이란?(1)

 

불교에서는 우리 인간의 인식활동을 안()()()()() 다섯 가지 감각기관(五根)의 전5(前五識)(2)과 제6식인 의식(意識)(3)을 합해서 여섯 가지 식을 말하고 있다. 또 색성향미촉의 외부 오경이 제6경인 법경의 자극으로 인해 육근의 감각기관을 거쳐 육식으로 전달되면 그 제6식의 소산인 의식이 제7식으로 넘어가 선악의 판단이 이루어지고 마음활동이 이루어지며 그 결과물은 업이 되어 제8식에 쌓인다.

7식은 자의식으로 소위 말나식이다. 자의식은 에고(ego)로서 제6식보다 한 단계 깊은 마음의 세계이다. 그리고 제7식 자의식보다 더 심층에 숨어 있는 존재가 아뢰야식으로 불리는 제8식으로 7식에 의해 형성되지만 다시 아()의 뿌리, 즉 의지처가 된다. 8식에 의지해서 제7식에서 아()가 일어난다는 말이다.(4) 불교에서 제8식은 ego인 제7식과 id인 제6식을 총괄해서 마음의 흐름에서 주체가 되는 존재이다. 6식과 7식은 인식된 것을 계속해서 보존할 수 있는 보존성이 없기 때문에, 어느 때 어느 곳을 막론하고 항상 변하지 않고 그 존재가 이어져 갈 수 있는 궁극적인 실체로서 8식의 존재를 따로 상정하고 있다. 즉 기억과 업의 저장소로 윤회의 주체가 되는 그것이 바로 제8식으로 여기서 비로소 표준이론의 윤회혼과 같은 개념의 존재가 등장한다.

 

아뢰야식과 혼의 유사성

 

다음의 글은 불교에서 말하는 8식에 대한 어느 훌륭한 설명(5) 중 해당 설명의 ‘8을 표준이론의 으로 바꾸어 본 글이다. 그런데 이처럼 단어를 바꾸어 읽어도 글이 전하는 바가 원문에서 크게 흐트러짐이 없으니 제8식 아뢰야식은 표준이론의 혼(윤회혼)과 같은 개념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은 저장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무엇을 어디에 저장한다는 말인가? 종자(種子, bija)를 저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통해서 하는 생각과 행동은 하나도 빠짐없이 종자로 변해 에 저장된다. 종자를 업이 남긴 흔적, 남겨진 습관적 기운이라는 의미에서 습기(習氣)라고도 한다. 이 종자 또는 습기는 의식이나 의지보다 더 깊은 곳에 남겨진다. 이 업이 남긴 종자가 함장돼 있는 곳이 바로 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일어난 일이나 생각들을 전부 받아들여서 기록하고 저장하는 카메라의 필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이다. 여러 행위가 필름에 찍히듯이 업이 돼 에 전부 저장되게 된다. 그래서을 업장(業藏=업의 창고) 혹은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즉 제6식을 통해서 얻어지는 모든 작용이 제7식을 통해 에 저장된다. 그래서이 거꾸로 자의식의 근거이기도 하다.” “무시이래 각자가 해 온 정신적 육체적 행위는 하나도 빠짐없이 종자(種子)가 돼 에 차곡차곡 저장된다.에 저장되는 것을 훈습(薰習) 혹은 습기(習氣)라고도 하는데, 종자에는 좋은 종자와 나쁜 종자가 있고, 나쁜 종자와 좋은 종자 모든 종자를 훈습시켜 담아 둔다. 좋은 종자를 많이 담으면 혼의 양심체가 발달하고 나쁜 종자를 많이 담으면 정신체가 발달하며, 나쁜 종자를 너무 많이 담으면 혼의 결속력이 약해져서 사후에 혼이 기로 변해서 흩어지거나 각혼으로 등급이 낮아지거나 몇 덩어리로 찢어진다.’” “이와 같이 과거 행위의 온갖 잔상(殘像)들을 저장하는 훈습작용을 한다. 우리가 잠자다가 꾸는 꿈은 제6식인 의식의 영역인데, 전생 또는 이전에 내가 지은 행위()가 하나도 빠지지 않고에 저장돼 있다가 꿈을 꿀 때 제6식을 통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잔상(殘像)들이 미래의 업을 일으키는 행위의 씨앗(종자)을 형성하기도 한다. 종자는 속에 있으면서 스스로 자기 결과()를 일으키는 특수한 에너지()이다.” “이처럼은 모든 존재의 생명과 신체를 유지시켜 나가는 업력(業力)과 윤회의 심종자(心種子)가 저장돼 있는 곳으로 일생 동안 끊어지지 않고 존재의 밑바탕에 붙어 있다가 알맞은 환경과 조건 등의 연()을 만나면 업력이 원동력이 돼 다시 생각하고 행동한다.” “저장된 종자가 다시 생각과 행동을 일으키는 것을 현행(現行)이라 하는데, 현행은 종자를 낳고, 종자는 현행을 낳는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해서 행한 나쁜 생각과 행동은 나쁜 종자를 낳고, 선한 생각과 행동은 선한 종자를 낳는다. 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다. 종자가 현행으로 나타날 때도 악한 종자는 반드시 악한 행동과 생각을 낳고, 선한 종자는 선한 행동과 생각을 낳는다. 여기에서 인과응보(因果應報), 업보(業報)사상이 나온다. 자기가 한 행동과 생각이 빠짐없이 속에 기록으로 남아있다가 그와 유사한 환경에 처하면 의식으로 살아나서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계속되고 있으며, 저장된 종자는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전생에서 금생으로, 금생에서 내세로 계속 이어지면서 세세생생(世世生生)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의식 가운데 하나인 에는 모든 행위()가 발생 즉시 자동적으로 저장 입력된다. 행동하는 즉시, 생각하는 즉시 저장되는 의식의 저장 탱크, 선악의 저축 뱅크다. 그리하여 6식의 심층에 이 있으며, 육체는 죽어도 은 사라지지 않고 내생으로 이관된다고 한다. 에 저장된 종자가 바로 업()이다. 그래서 전생의 업이란 전생의 혼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 인간이 죽으면 혼은 다른 모태를 만나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이 바로 윤회이다.” “따라서 여기에 저장돼 있는 업에 의해 내생이 결정된다. 그래서 이 윤회의 주체, 혹은 실체라고 하며, 이것을 의 연기설(緣起說)이라고 한다. ,에 저장된 종자에 의해 일체 만법이 연기하는 것이 연기설이다.” “업이란 과거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 모든 것들이 우리 몸속(‘’)에 입력된 의식을 말하는데, 에 저장된 업이 어떤 계기로 움직여 일어나는 생각을 업식(業識)이라 한다. 따라서 은 불변의 요소가 아니고 우리 마음 작용과 수행 정진에 의해 변한다. 이와 같이 은 고정된 실체의 개념이 아니라서 업이 소멸되면 또한 정화되고 발전하는 것으로 수행을 통해 자기 업장을 다 소멸시키면 은 소멸되고 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 고정된 실체 혹은 자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불설의 아뢰야식을 혼으로 대체시켜 보아도 그 뜻은 전혀 동일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도 불설과 동일하다. “표준이론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의 심신을 오염된 상태에서 청정한 상태로 질적 변화를 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수행이며, 수행을 통해서 혼 속에 있는 악한 종자를 남김없이 소멸시켜야 완성된 인간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6)

 

아뢰야식에 대한 불교의 주장에 혼을 대입시켜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선행은 선종(善種)을 낳고 다시 선행을 가져오며, 악행은 악의 종자를 낳고 다시 악한 행동을 생산한다. 한번 훈습된 종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현행되는데 선을 쌓으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악을 쌓으면 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악의 종자는 업장소멸을 위한 수행과정을 거치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고 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불교의 수행은 바로 에 저장된 악의 종자를 소멸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하여혼을 완전히 정화하여 영으로 거듭나는 것이 곧 구원이다.’” “8식인 을 인간의 근본이 된다는 뜻에서 근본식(根本識)이라 하기도 하며, 아다나식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아다나식을 집지식(執持識)이라 번역하기도 하는데, 집지(執持)란 모든 선업과 악업을 비롯해 정신과 육체도 함께 붙들어 유지시킨다는 뜻(7)이다. 이와 같이 제8식인 은 우리 인간을 비롯해 중생의 과보를 받는 데 매우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은 모든 업력을 함장(含藏)하고 보존하며, 우리 생명을 보존하고 유지시키는 마음이라는 뜻에서 상속식(相續識)이라 한다. 그리고 선업과 악업의 힘에 따라 과보를 바꾸어 받아 출생하는 마음이라는 뜻에서 이숙식(異熟識)이라고도 한다. 또한 혼이 업력에 의해 태생(胎生)과 난생(卵生)과 화생(化生) 등의 출생으로 과보를 받는 것이라서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

 

불설이 더욱 표준이론스러운 이유는 이어지는 다음 불설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는 8식까지만 있다고 했으나 인간의 육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도 진화해 유가행파(유식학파) 이후 후대에 제9식인 의 단계가 있다고 하는 이론이 성립됐다.”

 

아말라식이란?

 

다음의 설명은 역시 불교에서 진술하는 9식에 대한 설명인데 9식의 자리 중 적절한 곳을 모두 으로 대체한 진술이다. 이를 통해서 제9식 아말라식(阿末羅識)식은 표준이론의 영과 같은 개념의 것임을 알 수 있다. 9식을 무구식(無垢識), 진여식(鎭如識), 혹은 백정식(白淨識)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반야(般若)의 지혜가 곧 제9식이고 이는 표준이론의 영이다.

 

양나라 무제(武帝) 때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진제(眞諦 499~569) 계통의 섭론종(攝論宗)에서는 9식설을 주장했고, 당나라 현장(玄奘 602~664) 계통의 법상종(法相宗)에서는 8식설을 주장했다. 섭론종의 9식설을 유식이라 하고, 현장의 8식설을 유식이라 한다. 그리고 신라 유식의 대가 원측(圓測)은 구유식의 9식설을 취하지 않고 신유식의 8식설을 취함으로써 종래의 섭론종이 주장하는 제9 아말라식(阿末羅識)을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정분(淨分)으로 이해했다. 8식 아뢰야식까지로 모든 식을 마무리한다는 주장에는 아뢰야식에 염()과 정(), 오염된 식()인 정신체와 청정한 식인 양심체가 같이 아울러 있다. 그러니까 청정한 식인 백정식(白淨識)의 요소인양심이 아뢰야식 가운데 다 갖추어 있으니 새삼스레 무슨 필요로 9식설을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 9식인 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제8식의 청정한 부분인 양심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9식설을 말하는 사람들은 제8식의 청정한 식은 오염된 8식이 정화된 것이니 별도의 식은 아니라고 하는 한편 제8식을 정화로 이끄는 별도의 식이 있다고 보아 제9식을 마땅히 별도로 시설해야 한다고 한다. 즉 유식론에서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팔식 중, 8식인 이 미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깨끗해져 구원의 상태에 이른 것을 제9식인 ()’이라는 것이다. ()’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참나를 의미하고, 인간의식의 가장 저변에 있다고 한다. 6식의 저변에는 제7식인 말나식이 있고, 그 제7식에서 보다 깊이 들어가면 제8식이 있으며, 8식에는 그 근저에의 씨앗이 있는데 이는 이른바 불성(佛性) 또는하느님의 불씨. 이 불성과 불씨에 의하여을 향하여 발전한다. 현장(玄裝) 이후에 해심밀경(解深密經) 같은 경전에서 이러한 제8식에 가려 있는 무명이 없어진 깨끗한 식을 상정(想定)해서, 8식 외에 감추어진 식을 제9식 아말라식이라고 했다. 9식이라고 해서 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은 반야(般若)이니 아뢰야식이 깨달음을 얻으면 제9 백정식이 되며, 백정식에 이르면 곧 부처가 된다.

 

위에서 설명하는 제9식은 2단계 이하의 자아를 가진 사람(일반 중생)에게는 해당이 없다. 그러나 먹고살기 바쁜 서민 대중이나 아니면 이제 겨우 발심하여 수행 정진하는 출가자일지라도 중급혼일 가능성은 충분하니 혼의 5% 이상이 차생에 영이 되는 고급혼의 3단계 자아인 현인(賢人)의 경지에는 일단 도전해 볼 만하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중생들도 희망을 갖고 9식인 영을 논의해도 되는 것이다.

 


<註釋>

 

1) 이 글은 blog.daum.net/511-33/12369649의 글을 표준이론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2) 표준이론에서는 혼의 장기인 생기체이다.

 

3) 표준이론에서는 혼의 정신체의 하위부분인 이드(Id)이다. 6식을 불설의 현식(現識)으로 보면 생기체에 포함시킬 수도 있으나 분별식(分別識)으로 보면 각혼 수준의 이드 정도로 본다.

 

4) 이처럼 유식학에서는 다시 8식은 거꾸로 7식에 영향을 주어 아()라는 것을 탄생시키고 아()는 다시 제6식인 의식의 뿌리가 되고 제6식을 거쳐 전오식과 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모가 자식이 되듯 원인과 결과가 뒤집혀 작동한다는 말이니 오온과 연기에 근거한 색()으로부터의 진화적 영혼론을 주장하는 유식의 근본논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힌두 정통철학인 삼키아와는 달리 아래로부터의 진화를 이야기하는 불설에서는 오온의 구조로 보아 6식에 연하여 7식이 생기고 7식에 의지해서 다시 8식이 생겨야 마땅하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유식학이 삼키아학파의 교설(8.6.3. ‘힌두철학 삼키아학파의 인간론참조)을 뒤집어 유식론을 제작하다가 잠깐 주체성을 잃었거나 또 다른 불설인 四有論이나 윤회론과 부딪쳐 나타난 언설로 보인다(5.5.6. ‘이슬람교의 저승참조). 다만 上下의 여러 이 화엄의 상즉상입(相卽相入)으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뜻이라면 겨우 이해할 수는 있겠다.

 

5) 원문은 다음 블로그 아미산511의 내용이다.

 

6)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오만 원권 돈다발을 발견했다고 하자. 이때 어떤 사람은 남이 볼까 봐 빠른 동작으로 호주머니에 넣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남이 보든 말든 돈을 주워서 돈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경찰서로 가지고 가서 신고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왜 이런 차이를 보일까? 그 차이는 그들이 과거에 정신적 육체적 경험에 의해 축적돼 온 종자의 차이 때문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다는 것도 어려서 어른들이 하는 짓을 봤기 때문에 그 본 것이 종자로 저장돼 있다가 그와 같은 상황이 닥치면 자기네 부모가 했던 짓을 자식도 따라서 하기 때문이다.”

 

7) 아뢰야식이 執持한다는 주장은 선업인 덕과 정신인 이드와 에고를 執持한다는 것이니 아뢰야(阿賴耶)식이 사실상 혼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리는 상속식(相續識), 이숙식(異熟識)의 주장에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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