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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기획] 그림으로 보는 '동물 세계 지도'

오칠교 작가 | 기사입력 2023/03/07 [16:11]
파워 아트 '프랑스편'

[포토 기획] 그림으로 보는 '동물 세계 지도'

파워 아트 '프랑스편'

오칠교 작가 | 입력 : 2023/03/07 [16:11]

 

 

▲ 오칠교 작가가 그린 동물지도./   ©CRS NEWS

 

위 지도는 프랑스의 지도이면서 닭의 모양인데 수탉의 머리, 몸통, 꼬리의 색깔은 프랑스 국기인 파랑, 하양, 빨강을 나타낸다.

 

절대왕정의 모순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민혁명을 이룩한 나폴레옹 시대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상징하는 색상으로 수탉을 그렸으며 그대로 프랑스 지도가 되었다.

 

▲  프랑스 국기  © CRS NEWS


프랑스의 브랜드 르꼬끄(Le coq)‘Coq’ 꼬끄는 우리말에서 꼬꼬에 해당하는 불어로써 수탉을 뜻한다. 수탉을 뜻하는 영어 ‘cock’ 역시 닭 우는 소리 ‘cock ~ o’ 의 의성어 꼬끼오~’ 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구나 한자의 (울 명) 역시 수탉이 우는 모양의 상형문자가 후에 회의자로 바뀐 것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수탉은 한자, 영어, 불어의 어원이 모두가 닭이 우는 모양과 소리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레전드인 지단, 앙리, 음바페가 입는 유니폼의 엠블럼에도 그려진 수탉은 옛 부터 용맹한 전사를 나타내었다. 나폴레옹이 다스리던 시대에만 나약한 동물이라 하여 그에 의해 독수리로 바뀌었다가 다시 닭이 프랑스의 국조(國鳥)가 되었는데 한국의 호랑이와 같은 마스코트(mascot)인 것이다.

 

이 프랑스의 상징이 된 것에는 고대 프랑스에 살았던 갈리아(Gallia)인에서 시작된다. 라틴어로 수탉인 Gallus(갈루스)와 프랑스에 정착한 골(Gaul)족을 Gallia(갈리아)로 부른 옛 지명이 일치하는 것이다. (Gaul)이 곧 갈리아([Gauls] 또는 켈트(Celtae)족으로 불리는데 Celtae[켈트] 에서 ‘t’가 묵음일 경우 갈리아와 유사한 발음이 되기도 한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Hannibal)로도 모자라 골(Gaul)족의 골칫거리 장수 베르생제토릭스(vercingetorix)의 협공까지 받아가며 고전을 면치 못하던 로마제국은 그나마 카이사르(Caesar)가 골 족을 몰아내고 갈리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로마 황제에 의해 프랑스와 소아시아에 걸쳐있던 갈리아(Gallia) 지역이 둘로 갈라졌는데 그 지명이 곧 갈라디아(Galatia) 이다.

 

이 프랑스 동물 그림 제목은 원래 망둥어의 위험한 외출이었다. 그림 지도에서 보듯이 망둥어가 닭의 입 앞에 하니 놀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때 망둥어 자체가 그대로 노르망디(Normandy) 지역이며 망둥어의 눈이 캉(caen) 이란 도시이다. 수탉의 눈은 그 위치가 다름 아닌 프랑스의 수도 파리(paris)가 되었다.

 

망둥어의 사촌 격인 짱뚱어는 프랑스의 북동쪽 알자스 로렌(Alsace Lorraine) 지방이 된다. “꼴뚜기가 뛰니 망둥어도 뛴다는 한국 속담에 나오는 이 귀여운 녀석들은 한국 서해의 개펄에서 지느러미를 발처럼 써서 기어 다니면서 머드(Mud)를 즐긴다.

 

알자스 로렌은 독일과 프랑스가 역사적으로 뺏고 빼앗기는 영토분쟁이 계속되어 국경이 여러 차례 바뀐 지역으로 알퐁스 도데(Alponse Daudet)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하였다.

 

이 지도에서 짱뚱어의 꼬리지느러미는 프랑스의 샹파뉴(champane) 지방인데 champane(상파뉴)는 바로 샴페인 ‘champane’ 의 불어 발음이며 이곳 샹파뉴에서는 포도주와 함께 샴페인을 생산하고 있다.

 

에티켓(étiquette)예의범절을 뜻하는 불어로 본래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들어가는 티켓(ticket)의 이름이다. 루이 14세가 지은 이 궁전이 화장실을 짓지 않은 탓에 각 나라에서 초대된 귀빈들이 만찬, 무도회 또는 접견이나 연회 때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에 실례하는 해프닝이 벌어져 에티켓을 지키라는 의미에서 티켓을 지급하였다고 한다.

 

호화로운 대리석, 화려한 벨벳과 실크, 73m나 되는 거울의 방과 천정 벽화, 375개의 창문과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의 그림, 수백 개의 샹들리에 위에 수천 개의 양초 그리고 웅장한 수로와 정원의 분수대 브론즈 조각상은 만들었으되 화장실이 없으므로 그야말로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은 지뢰밭을 방불케 하였다고 한다.

 

그로 인해 여성 슈즈 하이힐(high heel)이 생겨났으나 남성들을 위해서는 정원에 어릿광대라도 배치하여 앞으로 두발, 뒤로 세발 ~~” 하며 지뢰를 밟지 않도록 에스코트(escort)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에 대하여 그가 침략자냐 영웅이냐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당시 유럽의 빈농, 소작농, 자영농, 상공업자, 수공업자 등의 대다수 시민과 농민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지우고 폭리를 취하는 이른바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의 구제도를 정면으로 공격한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추앙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반대로 전체 인구의 2%밖에 되지 않으면서 절대왕정의 권력을 남용하며 많은 토지를 차지하고 면세 혜택으로 관직을 독점한 성직자, 귀족, 대지주와 국왕에게는 자기들의 목에 칼을 들이댄 나폴레옹이 침략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해 왕정복고를 꿈꾸던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프로이센, 러시아 등의 대다수 서민층은 영웅 나폴레옹이 자기네 나라에 쳐들어 와주길 갈망하였을 것이고 국왕과 특권층은 나폴레옹이란 침략자를 상비군이나 스위스 용병이 막아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프랑스는 영국과 함께 아프리카, 아메리카, 중동, 아시아 곳곳에 식민지를 확보한 나라이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만 유독 아시아 국가에 패배한 흑역사도 있다.

 

그 한번은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강화도에서 조선과 벌어진 전투에서의 패배와 또 한번은 베트남 북부에서 하노이 정부군에게 일방적인 타격을 입은 디엔비엔푸 전투가 그것이다.

 

조선과 베트남에서의 그 전투는 물론 프랑스가 패배하여 물러났으나 이제 미국이 마치 프랑스의 패배를 만회하려는 듯 군대를 이끌고 침입했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영국 못지않은 신사의 나라다.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물러났으며 더 이상 보복공격을 하지 않는 도량이 큰 귀족의 나라인 것이다.

 

닭의 목 아래 포도알은 리옹(Lyon)이라는 도시이며 동쪽의 청포도 알은 스위스 제네바(Geneva)가 된다.

 

이 지도에서 만큼은 프랑스의 상징인 닭의 라인을 표현하기 위해 옆 나라 스위스 여분의 땅을 임대로 빌린 셈이다.

 

리옹은 어린 왕자를 쓴 생떽쥐페리(Saint-exupery)가 태어난 곳이며 브장송 출신의 형제 화가 뤼미에르(Lumiere)가 영사기와 사진기를 발명하여 최초로 무성영화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뤼미에르 형제의 사진기 발명과 영사기의 발명은 그림이라는 예술분야와 광학, 그리고 과학기술이 함께 결합된 예술의 정수(精髓)이다.

 

항공기 조종사였던 생떽쥐페리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4년 무렵 나치 독일과의 전투에 P-38 라이트닝 전투기를 타고 참전했다가 실종되었다.

 

그 자신이 평화를 사랑한 어린 왕자였기에 라이트닝 쌍발 전투기는 비무장 상태였으며 그는 평소처럼 정찰 임무를 위해 비행하다가 실종되었다. 이미 생떽쥐페리가 초판본을 내어 그의 작품을 읽어본 독일군들은 그의 비행기임을 알고 격추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는가 하면 어떤 독일군 조종사는 자신이 격추한 라이트닝 전투기가 생떽쥐페리가 탄 것이었다며 눈물을 글썽이었다고 한다.

 

생떽쥐페리가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미소라는 단편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전투 중 적의 포로가 되어 감방에 갇혔다. 간수들의 경멸적인 시선과 거친 태도로 보아 다음날 처형될 것이 뻔하였다. 나는 극도로 신경이 곤두서며 고통을 참기 어려웠다.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한 개피를 찾았으나 손이 떨려 겨우 입으로 가져갔지만 불이 없었다. 나는 쇠창살 넘어로 간수를 바라보았으나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나와 눈을 마주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혹시 불이 있으면 좀 빌려주시오간수는 나를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가와 담뱃불을 붙여주려 하였다. 그때 그는 나와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때 나는 무심코 그에게 미소를 지워 보였다. 내가 미소를 짓는 순간 그도 내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더니 내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우리 두 사람의 가슴속에도 불꽃이 점화된 것을 느꼈다.

당신도 가족이 있소?” “그럼요~ 있고 말고요나는 대답하면서 얼른 지갑을 꺼내어 나의 가족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도 자기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계획과 자식들에 대한 희망 등을 이야기 했다. 그와 나는 어느새 눈물이 어른거리기 시작했고 그는 갑자기 아무 말없이 일어나 조용히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감옥을 빠져나와 뒷길로 마을까지 나를 안내해 주고는 한마디도 남기지 않은 채 뒤돌아서서 마을로 급히 사라졌다.

 

삶과 죽음의 문턱인 전장에서도 평소 사랑을 실천했던 생떽쥐페리는 여러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어린 왕자와 같은 아름다운 소설을 완성하였다. 더구나 그의 작품은 전쟁기간에 쓰여져 적국에서도 읽혔으며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는 드골의 망명정부가 다시 돌아와 파리의 개선문 앞에서 프랑스의 독립군인 레지스탕스와 함께 독립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그리고 나치에 협력했던 민족반역자와 부역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였다.

 

조국 프랑스를 배반한 판사와 검사, 경찰, 공무원 등 5천여명을 체포하여 처형하였고 나치 독일에 협력한 외교관과 군인에 대한 숙청은 더욱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다만 나치 부역자들만은 사형에서 제외된 대신 머리를 삭발한 뒤 그 머리에 하켄크로스를 그려넣어 평생을 나치에 부역한 부역자임을 증명하며 살도록 하였다.

 

독일로부터 나라를 잃었던 프랑스는, 이렇게 조국을 배반한 반역자들부터 모조리 사형에 처하고 나서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실천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프랑스를 건설한 것이다.

 

패션과 디자인(Design), 빵과 마요네즈(mayonnaise), 수학과 철학, 루소와 밀레, 고갱과 세잔의 나라인 서유럽의 프랑스를 설명해보았다. 남부의 가오리와 프로방스 지방의 다람쥐까지 설명하지 못한 점은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양해 있으시기를 바라며 닭의 양 발 사이에는 동물 한 마리가 숨어있는 숨은 그림이 있는데 그것을 찾는 것은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하며 이만 마치려 한다.

 

▲  프랑스 지도./   ©CRS NEWS

 오칠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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