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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 에세이 [꿈꾸는 여자들]~ '복희'

박현선 | 기사입력 2023/04/18 [19:35]
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7. '복희'

박현선 에세이 [꿈꾸는 여자들]~ '복희'

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7. '복희'

박현선 | 입력 : 2023/04/18 [19:35]

서울에 있는 몽촌마을로 이사를 왔다. 야산을 끼고 한눈에 보아도 사이좋은 모양으로 옹기종기 집들이 형성되어 있다.

 

우리 집은 밭이 딸린 기와집이었다. 뒤에는 오백 년 묵은 은행나무가 서있다봄이나 여름에는 초록빛이묻어날만큼 짙어 있고가을단풍은 포근히 마을을 감싸주고 있다

 

학교로 가는길, 담 모퉁이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하체가 상체와 비교하면 왜소해 보인다. 특이하게 손에 신발을 끼고 있다. 무엇보다 나를 쳐다보는 눈이 몹시 낯설어하며 굳은 표정이다. 난 시선을 외면한 채 아이 앞을 지나 도망치듯 뛰어갔다.

 

어머니에게 아침에 본 아이에 대해 알아 보았다복희라는 아이인데 나와 나이가 같다며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씀하셨다중증의 체적 장애를 지니고 있고, 할머니와 살고 있다고 한다.

 

18개월 되었을 때인가? 몸에 열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복희 어머니는 아이를 둘러 업고 병원에 갔다고 한다. 이후 몸은 점점 상태가 안 좋아졌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고칠 수 없다고 진단을 내렸다. 막노동으로 땟거리를 이어가던 복희 아버지는 딸의 충격적인 모습에 매일 술만 마셨다고 한다. 불만을 토로하며, 복희 어머니를 힘들게 하다 결국 집을 나갔다. 복희 어머니는 식당에 다니며 입원비를 마련해야 했다. 복희를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외할머니댁에 맡겼고, 돈 많이 벌어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후 소식이 끊겼다.

 

복희는 어렸을 때부터 기어 다니면서 생활했다. 흙과 땀으로 온몸이 엉망이 되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여기저기 상처가 나기도하였다. 지능은 정상이었고, 상체도 정상이었다. 무릎 관절에 힘이 없어져 자주 넘어지고 걷기가 힘들어졌다. 생활이 어렵다 보니 마을 이장님이 면사무소에서 타다 주는 쌀과 조금의 돈으로 살림을 꾸려 가고 있었다. 김치는 마을 아주머니들이 돌아가며 담가 주었다복희 어머니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지만, 그나마 할머니라도 계셔서 다행이다. 하지만 연세가 많으셔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할머니기에 늘 힘들게만 드리는것 같아 복희는 마음이 아프단다.

 

복희네 집에 놀러 갈 때는 만화로 그려진 한국의 역사책을 들고가서 읽어 주었다. 아버지는 종로 근처 은행에 다니셨는데, 헌책방에서 우리가 볼만한책을 구해 오셨다나는 아버지께 다른 아이들처럼 신간 동화책을 보고 싶은데 왜 냄새나는 헌책을 사오느냐고 여쭤보면 새 책 살 돈으로 발품만 잘 팔면, 많은 책을 마음껏 볼 수가 있단다.”라고 하시며, 아버지에겐 헌책방이 보물창고라고 말씀하셨다. 복희와 마루에 엎드려 재미있게 보았던 동화책은 기억속 어딘가에 항상 자리 잡고 있다.

 

약간 갈색빛이 도는 반곱슬머리석류알같이 발그레했던 활짝 웃으면 가지런한 이가 돋보이는 아이, 언제부터인가 나는 복희와 꼭붙어있는 단짝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숲 들여다보기를 즐기는 희를 위해 은행나무 그루터기에 걸터 앉혔다어머니가 밀가루 반죽것에 팥을 넣고 솥에 쪄낸 찐빵을 가지고외로운 마음을 녹여 주었다

 

주위에선 한바탕 아이들이 술래잡기 한다고 숲의 고요함을 깨트린다복희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생각을 하면 아려오는 슬픔이 가슴에 머문다. 하지만 복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란 은행나무 잎을 이불 삼아 대자로 눕기도 하고뒹굴기도 하며 말한다.

 

예전엔 혼자라 쓸쓸했어지금은,네가 있어 덜 외로워!”

 

쭈그리고 앉아 조그만 돌멩이를 주워 손이 까매지도록 공기놀이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즐거웠는데. 길가에 무엇이 있는지 손에 낀 신발로 천천히 다 확인하고 치우며 걷는다복희는 나뭇잎 하나하나에도 손길을 주며 새롭게 느끼고땅도 느끼고 싶을땐 온몸으로 누워 뒹굴며 속에서 밝게 보이려고 애썼는지 모른다.

 

은행잎이 떨어질 즈음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파트 개발 열풍으로 몽촌 마을에서 떠나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도시로 나올 때, 복희는 모두 자신의 곁을 떠나고 혼자 남는다고 생각했다.

 

잘 가, 친구야!”라며 나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안녕,나의 친구 김복희!” 그땐 부둥켜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의 몽촌 마을은 올림픽 공원 북쪽 구간의 몽촌토성 산책로로 변해있다

 

박현선 수필가

▲ 박현선 수필가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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