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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 에세이 [꿈꾸는 여자들]~ 화천가는 길

박현선 | 기사입력 2023/04/24 [18:50]
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8. 화천 가는 길

박현선 에세이 [꿈꾸는 여자들]~ 화천가는 길

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8. 화천 가는 길

박현선 | 입력 : 2023/04/24 [18:50]

  사진출처 무료 픽사베이 © CRS NEWS


길가에 안개가 자욱이 내려 앉고 있다하나,길을 걷는 사람들은 마치 다리없이 몸뚱이에 팔만 흔들고다니는 것 같다마음속 깊이 새겨져 잊을수 없는 친구 진희가 안개속에 흐릿하게 나마 보이는 듯 했다.

 

초등학교시절헌인릉에 소풍 가는날소나무가 듬성듬성 들어선 비탈 아래로 억새가 꼿꼿했다그 아래로는 잔디가 금빛으로 치장하고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진희와 말문을 텄다키가 작고, 청초한 그 아이는 밝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나의 관심을 끌었다그후 진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집에 찾아와 자신의 고민거리나 생활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그렇게해서 나는 그 아이의 가족 관계를 상세히 알게 되었다.

 

진희의 아버지는 철물점과 설비를 겸하고 있었다. 진희 아버지는 학생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교정의 한쪽에서 남루한 작업복을 입고 페인트칠을 하거나 막힌 하수구를 뚫거나 하면서 학교 일을 돕곤 하였다. 그뿐 아니라 방수 작업, 미장, 타일을 새로 붙이고 심지어 잔디밭에 떼를 입히는 일까지 그의 부지런한 손길은 필요한 곳에 나타나 능숙하게 일처리를 하였다진희는 아버지가 묵묵히 페인트통을 들고 걷는 모습까지 자랑스러워했다.

 

3살 아래 여동생 미희는 선천성 청각 장애를 앓고 있었다. 진희어머니는 어느 날, 몸이 나른하면서 기운이 없어 감기몸살인가 생각했단다. 약국에서 감기약을 지어다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몸살 기운이 아니라 입덧 초기 증세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으려고 했으나, 장시간 진통 끝의  순산은 어려웠다. 결국, 수술을 통해 아이를 낳았다. 그 과정에 간호사가 아기의 열이 떨어지는 주사를 놓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곧 회복되어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했단다.

 

진희 어머니가 아이에게서 이상스러운 징후를 발견한 건 2살 무렵이었다. 손뼉을 치며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 가족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찾았고의사선생님은 발육이 더딜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보라는 말뿐 진희 어머니의 의문을 풀어주진 못했다.

 

큰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거기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8살이 되거든 농아학교를 보내세요!” 임신을 모르고 먹은 감기약 때문인지 아니면 난산 때 아이의 신경을 건드려 잘못된 것인지 어디서, 무엇 때문에,내 아이에게 이런 엄청난 고통이 따라야 하는가? 진희 어머니는 죄 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마음의 병으로 시름시름 앓더니 거동이 힘들어지면서 누워 지내신다.

 

진희네 가정이 기울게 된 것은 동생 미희의 치료비 때문이었다. 좋다는 온갖 것을 해 보고 좋은 의사를찾아 다니느라 가진 재산을 모두 잃어야 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진희 아버지는 미희 치료를 위해 병원을 가야 했기 때문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날 진희의 모습을 잊을수가 없었다우리가족과 어울려 사진도찍고 식사도 같이 하였다. 진희는 나에게 다가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며 , 학교에 갈 수 없을것 같아!” 라고 말하는데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하는 가게 일을 도와야 했다. 여동생 치료비로 가게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희에게 지금 포기하면, 으로 학교 가기가 더, 힘들어져! 우리 부모님께 얘기해서 어떻게든 해볼게.”라고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진희는 머리가 좋아서 학업을 계속한다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텐데. 이런 사정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진희는 작은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다.

 

진희의 꿈은 의사가 되어 동생도 고쳐 주고많은 병자를 고쳐 주고 싶은거였다진희는 각고의 노력끝에K대학교 의대에 입학했, 같은 대학에서 알게 된 의학도와 결혼도 하였다.

 

이후 강원도 어느 낙후된 지역에 있는 보건소에서 근무하였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뿐이었다유난히 여름 폭우가 천지를 삼킬듯 쏟아져 내리던 산에서 쓸려 내려온 흙더미가 보건소 지붕을 덮치고 말았다. 그때 진희는 진료실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연락을 받고 보건소에 도착했을 땐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무너져 내린 건물 밑에 깔려 진희가 그만.그렇게 진희는 세상을 떠났다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매정하게 잊고 지냈다. 화천 가는 길에 친구가 잠든 그 곳을 찾아가고 있다진희가 좋아했던 안개꽃을 들고서.

 

박현선 작가

▲ 박현선 수필가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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