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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승가와 조사(祖師) 중심 종파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3/07/31 [08:33]
수계 절차 대동소이하고 한국불교 법장부 전통 고수

부처님 승가와 조사(祖師) 중심 종파

수계 절차 대동소이하고 한국불교 법장부 전통 고수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3/07/31 [08:33]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31)

 

불교란 종교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승가다. 승가란 본래 상가(sangha)’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한역을 하면서 음차하여 승가(僧伽)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 의미는 한역(漢譯)에서 중(화합중(和合衆)으로 번역했다. 이 번역은 불교적 관점이다. 

 

▲ 부처님 승가의 초기 모습을 상상한 그림.  © CRS NEWS

 

인도에서 부처님 당시의 문법으로는 승가는 가나(gana)라고도 했다. '집단' '모임' '무리'라는 뜻으로 고타마 붓다 당시에는 동업조합(同業組合)으로서의 길드(guild)와 경제 단체나 어떤 종류의 종교 단체를 가리킨 것이었다. 이 경우, 예를 들어 카스트처럼 태생에 의해 규정된 집단이 아니라 동일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구 성원은 평등하며 동일한 규범에 복종하고 그 가맹은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불교에서 승가는 비구(승려)와 비구니(여승)의 수도원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러한 공동체는 전통적으로 비구 승가 또는 비구니 승가로 불린다. 그렇지만 보다 학술적 맥락에서 접근해 본다면, 승가의 구성원은 44(四向四果) 가운데 적어도 수다원과를 통과한 자들의 모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향사과는 사문4(沙門四果) 또는 성문4(聲聞四果)로서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의 수행 계위이다. 줄여서 4(四果)라고도 하며 48(四雙八輩)라고도 말한다.

 

고타마 붓다의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듣고 수행함으로써 아라한이라는 이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는 44과라고 불리는 8종의 위계(位階)가 있다고 했다. 즉 아래서부터 말하면 예류(豫流일래(一來) · 불환(不還아라한(阿羅漢)4위가 있어서, 아래와 같이 과()를 향해 수행(修行)해 가는 단계()와 그에 의해 도달한 경지()로 나누어서 설명한 것이 44과이다. 수다원과(須陀洹果)는 입류과(入流果), 역류과(逆流果), 득수다원(得須陀洹)이라 하는데 불교의 성자들 중의 한 부류로서, 44과에 속한, 견혹을 끊은 과위(果位)에 머물면서 아직 수혹을 끊지 못한 성자를 말한다. 열반을 증득하기까지 최대한 일곱 번의 생을 반복한다고 한다. 견혹은 이지(理智)적인 번뇌를 말한다. 수혹은 수도(修道)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라고 하여 사혹(思惑)이라고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승가란 단순하게 열반을 증득하기 위하여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는 출가승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적어도 승가의 멤버는 예류과 정도는 통과한 수행자들의 집합체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승가의 개념은 확장된다. 승가의 외호 대중인 재가불자까지를 포함하여 넓은 의미로 확대된다.

 

초기 부처님 승가 시대의 승가 공동체는 일사불란한 집합체로서의 화합의 무리였다. 물론 데바닷따와 같은 문제의 비구도 없진 않았지만, 초기 부처님 승가는 그야말로 화합과 민주적인 공동체로서 수행자 집단이었다.

▲ 중국 당나라 현장 삼장법사가 7세기에 인도를 방문했을 당시 남아시아 주요 불교 부파와 지리적 중심지 지도. 빨간색은 설일체유부파, 주황색은 테라와다의 뿌리인 분별설부, 노란색은 마하상기카(대중부), 녹색은 설일체유부에서 분파한 푸드갈라라파(補特伽羅派)로서 性空派라고 함. 회색은 담마굽타카(법장부)이다.  © CRS NEWS

 

부파불교(部派佛敎)는 고타마 붓다가 반열반(죽음)에 든 후, 제자들 사이에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 운영에 있어서 견해차가 발생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100년경에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로 분열되었다. 이후 18개의 분파가 생겼는데, 이 부파들은 결국 보수 진보파에서 분열한 것이다.

 

부파불교는 원시불교(原始佛敎)와 대승불교가 발흥하기 전의 시기이다. 대승불교가 서력기원 전후에 발생한 후에도 부파불교의 부파들 중에는 대승불교의 종파들과 함께 시대적으로 나란히 활동했던 부파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와수반두(세친316~396) 같은 불교 석학은 부파불교인 설일체유부에서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로 전향하였다. 그가 설일체유부의 논사(論師)였을 때 저술하였던 아비달마구사론은 설일체유부의 교학의 강요서인데, 그는 부파불교의 경량부의 학설 등을 이용하여 비판적으로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집대성하였다. , 이때까지도 부파불교의 부파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으며, 또한 세친의 시대보다 200여 년 후의 인물인 중국의 현장(玄奘: 602~664) 삼장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따르면 그가 인도로 유학을 갔을 때도 여전히 정량부(正量部,Saṃmitīya) 등의 부파불교의 부파들이 상당한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 이 그림은 투루판의 베제클리크 동굴에 있는 벽화로서, 파란 눈 빨간 머리의 이란계 비구가 중국 승려를 가르치는 모습이다.  © CRS NEWS

 

▲ 투루판의 베제클리크 동굴사원.  © CRS NEWS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기원후 30년 경이다. 처음 중국에 불교를 전파한 승려들은 주로 이란계였다. 불교가 인도에서 바로 중국으로 전달된 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인도 북부 지역을 통과하는데, 처음엔 그리스계 헬레니즘 국가에까지도 불교가 전파되었다. 다음은 페르시아계 나라들에 불교가 전파되었다. 이 때 쯤 불교는 중국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불교를 이식했던 사람들은 페르시아계였다.

 

여기서 우리는 담마굽타카부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담마굽타카는 법장부(法藏部)라고 한다. 법장부는 동아시아 대승불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승가와 관련하여서 법장부의 율장은 지금까지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법장부의 율장을 사분율이라고 하는데, 동아시아 대승불교에서 승려가 되려면 이 법장부파의 율장인 사분율에 의해서이다.

 

중국에서 생겨난 많은 종파들이 한 종파의 종지(宗旨)를 세우는 데는 어떤 특정한 경전에 의지하거나 아니면 이론()에 근거하여 종파를 설립했다. 그러나 어떤 종파이든지 승가의 구성을 형성하는 수계의식은 법장부파의 사분율에 의지하였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코리아 대표>

▲ 필자(우측)의 상좌부 비구시절.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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